[단편] 지던 꽃망울은,

청명이 매화검존임을 밝힌다면 그게 현종/운암이었으면 좋겠다


청명이 현종과 운암의 앞에 섰다. 청명은 고개를 내린 채 들 생각도 없이 떨리는 손을 들어 가만히 포권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현종과 운암은 그저 아무런 말 없이 청명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손 뿐만이 아니다. 어느샌가 태산같던 그의 모습은 작아져있었고, 그저 하염없이 어깨가 떨려왔다. 겹친 손에 한번 힘이 꾹 들어가나 싶더니 푹 숙이던 고개를 살짝 들어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 또한 처량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화산파… 13대 제자, …당대 천하삼대검수(天下三大劍手) 매화검존(梅花劍尊) 청명.”

그 말이 귀에 새겨지듯 들리자마자 현종의 눈에 반짝임과 일렁임이 동시에 일었다. 운암은 현종을 짧게 일별하고 고개를 숙여 포권한 이를 바라보았다. 소란스러움에 산문을 열고 아이를 마주했던 그 때가 떠오른다. 다 낡고 쓰러져가는 화산에 올랐던 어린 지학 무렵의 작았던 소년. 당시 소년의 모습과 눈앞에서 고개를 숙인 이 청년의 모습이 겹쳐졌다. 세월이란 참으로 덧없이 흘러간다곤 하나, 그가 찾아온 이후의 화산은 어두운 그믐의 밤에 빛이 하나 떠오르듯 서서히 밝아져온 것이다. 인연. 그 작은 실 하나가 묶이고, 엮이고, 뭉쳐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찰나에 생각에 잠겨있었던 운암의 눈꼬리가 상냥히 내려앉았다.

청명은 꺼내는 말 하나하나가 새삼스러운 동시에 무척이나 어색했다.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선 둘은 벅차고 끓어오르는 가슴을 꾹꾹 억누르며, 그저 차분히 들려올 목소리의 끝을 기다릴 뿐이다.

“…….”

“대화산파 23대… 태상 장문인, 현 장문인께… 본도, 인사… 드립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종 또한 입을 꾹 다물었다. 바라보는 제자의 모습은 코끝이 시리도록 아려왔고, 눈앞이 흐려지는 것만 같았다. 운암은 그 모습을 보며 쓰게 미소를 지었다. 운암이 느릿하게 팔을 올리자, 현종도 곧장 팔을 들어 손을 겹치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늙어버린 후손이 겹친 손도 눈앞의 어린 선조와 똑같이 떨고 있었다.

“대화산파 태상 장문… 현종.”

“대화산파 23대 현 장문인 운암이 사존을 뵙습니다.”

“…….”

“…사문을 살펴주신 하해같은 사존의 은혜에…… 더없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청명은 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인사를 끝내고도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연신 뺨에서 뜨거운 물길이 주르륵 이어졌고, 바닥을 자꾸만 젹셨다.

툭, 툭, 투둑. 후둑.

청명은 말했어야했다. 내가 문파의 어른임에도 문파의 미래를 이어갈 제자들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미련했기 때문에, 내가 더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희가 온전히 누렸어야 할 것들을 돌려주는 것이 늦은 것이라고. 사조가 못난 탓에 어린 너희가 머리에 새치가 깊게 자리할 때까지 고생시키게 된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고. 백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건만. 어째서 이 목은 메여 숨을 삼키는 소리 밖에 낼 수 없는 걸까. 그때였다.

“청명아.”

청명은 흠칫 놀라 몸을 움찔거렸으나 곧 천천히 고개를 들고 제 손에 닿은 온기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현종이었다.

“……괜찮다.”

“……태, 상 장문인…….”

“그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괜찮다.”

붉어진 눈가에 눈물로 흥건히 젖은 눈이 청명과 똑 닮아있었다.

“사조이신 매화검존으로서도, 23대 제자로서도, 너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단다.”

“……나는,”

“저는, 저희는 이미 충분히 받았습니다. 더는 자책마십시오. 이제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나야말로.”

앞으로도 함께 나아간다. 이후로도 이어질 것이다. 계속. 어느 누구 하나 빠진 자리 하나 없이.

“……고맙다.”

결코 지지않고 온전히 함께할 것이다. 다시 피워낸 청명의 화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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