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2차

[금룡송백]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 혼례를 강요당하는 진금룡


“금룡아. 네 혼례를 더는 미룰 수가 없겠구나.”

찻잔을 들던 금룡의 손이 뚝 멎었다. 아버지를 마주보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탁자 위에는 아까부터 무엇인지 의아하던 서한과 두루마리, 그리고 작은 함이 있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은 순간 손끝에 든 찻잔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봉문을 하면서 이 나이까지 미뤄진 혼례였다. 지금까지 혼사에 대해 큰 뜻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으레 그렇듯-, 갑작스레 바뀌는 날씨처럼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언제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가-, 별안간 나타난 괴물같은 존재에 의해 모든 것이 부정당했던 것처럼.

금룡에겐 그렇게 봉문을 하면서 바뀌어버린 상황들이 있었다. 그 바뀐 상황 속에서도 단연코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을 떠올린 금룡은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차를 내려놓았다.

“아버지. 저는 혼례를 치르지 않습니다.”

단호한 말에 초백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그 모습을 보며 금룡이 말했다.

“제게는 정인이 따로 있습니다.”

“무슨……, 그 여인이 누구냐?”

정인이 따로 있을 줄은 몰랐다. 그저 혼사에 뜻이 없다고만 생각했지. 초백은 당황했던 마음을 다잡았다. 들어온 혼담이야 거절하여 보내면 그만이었다. 외려 좋아하는 이와 혼인 한다면 더 나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진초백은 마음을 편히 먹고 아들의 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여인이 아닙니다. 이송백. 그가 저의 정인입니다.”

혼서를 다시 쓸 생각을 하는 진초백에게 아들의 청천벽력같은 말이 떨어졌다.

 

*

 

종남은 발칵 뒤집혔다.

진초백 장로의 처소에서 큰 소리가 여러차례 퍼지고, 금룡이 진초백에게 크게 맞았다는 사실은 숨길 새도 없이 산문 내에 가득 퍼졌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같이.

‘네 어찌-! 사제를! 그것도 동성의 사제를 정인이라고 한단 말이냐! 이 수치도 모르는 놈!’

집기가 깨져나가는 큰소리에 몰려든 문도들은 장로의 말을 전부 듣고 말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동성의 사제라니? 수근거림 속에서 기어이 그 당사자가 누군지까지 손쓸 틈 없이 퍼져나갔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 금룡은 엉망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인 진초백 장로의 처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들어온 혼담을 강행할 것이라는 말에 벌어진 일이었다.

벌써 네시진이 지났다. 점심과 저녁이 지나는 시간에도 금룡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저리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 진초백은 단 한번도 아들을 내다보지 않았다.

무인이니 만큼 몇날며칠이고 저리 버틸 수야 있겠지만, 쌓여가는 소문은 과연 어떨까. 고고한 자존심에 얼마나 상처가 번질지-. 모두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날이 지나-, 아침이슬이 떨어지는 시각에 금룡은 여전히도 제 아비의 처소를 노려보며 무언의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 옆으로 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무게를 담은 일정한 걸음걸이, 그리고 차가운 아침공기 속에 같이 번지는-, 편안한 체취. 돌아보기도 전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옆에 같이 무릎을 꿇었다.

“이송백.”

금룡이 눈을 찌푸리며 부르는 소리에 이송백은 돌아보지 않고 눈을 감았다.

“말 걸지 마십시오. 저도 화가 났으니까요.”

금룡은 잠시 입을 달싹였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형은 언제나 멋대로십니다. 이번만큼은 한발 물러서서 나오셨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 의견도 물었어야 했습니다.”

“기분이 상한 것이냐.”

“…….”

기분이 상했느냐하면 복잡하기만 했다. 사형이 자신을 정인으로 생각하는 점이 어찌 기분이 상할까. 다만-. 그것이 다가 아닌 게 문제인 것이다.

“너까지 꿇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아버지와 나의 일이니.”

송백은 천천히 눈을 떠, 굳게 닫힌 장로님의 처소를 보았다.

“어찌 되었든-, 사형이 저를 정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저도 같이 책임이 있습니다. 사형과 함께 꿇고 있을 겁니다.”

“……그럴 필요 없다질 않았느냐.”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송백이 금룡을 돌아보았다.

“저도 사형이 혼례를 치르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진초백은 기어이 아들을 혼인시키고자 마음을 먹은 듯했다. 혼담을 넣어온 집안의 여식을 산문 안으로 불러온 것이다.

당사자인 진금룡은 이 사태를 직전까지도 알지 못했다. 미리 말하면 아들이 이 자리를 파할 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에 진초백이 부러 아무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불려진 자리에 도착하고서야 금룡은 제게 수줍게 인사하는 여인을 보았다. 금룡은 이대로 있다간 돌아가는 상황이 제 의견과 상반되게 흘러갈 것을 직감했다.

기어이 아들과 척을 지려 하시는건지-.

제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해오는 이는 나무랄데 없는 미모와 태도를 갖췄으나, 금룡에겐 그 어느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이 더욱 길어지기 전 금룡은 이 자리를 파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정중하고도 싸늘하게 말했다.

“이리 와주신 소저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제게 따로 정인이 있습니다.”

“예?”

당황한 눈이 크게 깜박였다. 금룡은 이 일이 제 뜻과는 무관하게 벌어졌다는 말을 빠르게 전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에 다시 자리를 마련하여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을 붙여 산을 내려가는 길을 호위케 할테니, 살펴 가십시오.”

자, 잠시만요,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금룡은 무시하곤 그 길로 아버지의 처소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정갈한 걸음걸음마다 냉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

 

아버지의 처소에 다다른 금룡은 곧장 문을 박차고 들어갈 생각뿐이었다. 일을 밀어붙이시겠다면, 자신이 이리 나올 것도 감당하셔야만 했다.

그런데-,

“이송백.”

복도를 지나는 순간 들리는 이름에 금룡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이제보니 아버지 말고도 기척이 느껴졌다. 이송백이 왜-, 의아해하는 순간 곧 의문이 풀릴 이야기가 귀에 꽂혔다.

“보았겠지만 금룡이 그놈과 혼례를 치를 아이가 와있다. 더이상 일을 그르칠 생각하지마라. 장문인의 자리에 오를 금룡이에게 단수라는 흠은 용납할 수 없다.”

서늘한 일갈에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 이송백은 저 안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듯 생생한 광경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알아들었으면, 네 어찌 해야하는지 알고 있을 터. 네 발로 나가겠느냐, 아니면 기어이 내가 너를 쫓아내는 그림을 그릴 것이냐.”

분노인지-, 충격인지-, 무언지 모를 감정으로 심장이 서늘하게 굳는 것만 같았다. 이 말은 파문을 시키겠다는 말과 하등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속가로 내려가게는 해주마. 단, 섬서에 있는 곳은 안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곳으로 이송백을 치우겠다는 말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금룡이 걸음을 다시 떼는 순간이었다.

“……잠시 말미를 주십시오.”

금룡은 그대로 문을 쾅-! 소리가 나게 열었다.

놀라서 돌아보는 송백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시선이 잠시 마주쳤으나, 금룡은 제 아버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 네가 왜 여기있느냐! 벽가의 여식은 어찌하고!”

금룡은 답없이 몇 초간 서늘하게 아버지를 마주보았다. 그리곤 주섬주섬 한손으로 허리에 찬 검의 매듭을 풀어내, 검을 아버지 앞쪽의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리곤 서늘하게 말했다.

“이송백을 내쫓으시려거든, 저부터 파문 시키십시오.”

“뭐? 이 놈이-, 네가 진정 미쳤느냐!”

진초백이 일어서려 했으나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휘청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진금룡은 꼿꼿하게 서서 제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부자간의 마찰이 파국이 이는 것을 보며, 송백이 사형을 붙들었다.

“사형,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넌 닥치거라!”

송백은 자신과 마주한 눈이 그 어떤 때보다도 흉흉한 것에 놀라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어쩐지 사형이 제게 더 화가 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금룡-! 네 어찌 그런 망언을 입에 담아! 장차 종남의 장문인이 되어야 할 놈이, 파문? 네가 정녕 미치지 않고서야-!”

“제가 파문되지 않을 이유가 그것 뿐입니까? 그럼 묻겠습니다. 제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할 이가 문파를 지킬 수 있습니까? 이 일 하나 뜻대로 못하는 이가 문파를 이끌 순 있습니까?”

“진금룡 네가, 네가 어찌……. 아비인 내게 이리까지 할 일이냐? 혼약을 깨고, 아비에게까지 대들어야만 해!”

“지금은 장로님이 아니셨습니까? 대제자로서 말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하는 말씀이셨다면, 그 또한 답해드리지요. 저는 아버지가 원하는 혼사를 치르지 않을 겁니다. 원망한 적은 단 한번도 없으나, 아버지께서 저나 제 어머니께 좋은 분이었다곤 못하니까요.”

그 말에 진초백은 눈을 부릅뜬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을 다급하게 들이키는 모습에 송백이 장로님! 하고 부축하려는 것을 금룡이 제지했다. 금룡은 냉정하게 돌아서며 송백의 팔을 잡아 끌었다.

“나오거라!”

문 안에서 진금룡! 하고 소리치는 진초백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돌아보는 송백과는 달리 진금룡은 신경 쓰지 않았다.

 

*

 

처소를 박차고 나온 금룡은 조금 멀어진 곳에서야 송백의 팔을 놓아주었다. 송백은 시큰거리는 손목은 신경 쓰지 않고 사형을 붙들며 입을 열었다.

“사형, 장로님은 사형의 부친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것이 문제냐?”

“예?”

금룡이 송백을 돌아보았다.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리 말하고 계시는데-, 멍청하게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그것을 다 들어주고 앉았어?”

“장로님이 아니십니까.”

“널 파문시키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넌……!”

반박도 못하고서-, 그 이야기 끝에 고작 하는 말이 말미를 달라는 말이었다. 그 뜻은 흔들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가 난 것이다. 그가 아무리 단단하게 버티고 서있다 하더라도 모진 풍랑 속에선 결국 깎여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풍랑이 자신이 된 것 같아서 금룡은 견디기 힘들었다.

“네게 종남이라는 이름이 그리 쉽더냐?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거였느냐? 네가 그러고도 종남의 제자가 맞느냔 말이다!”

송백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쥐어진 주먹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면서도 금룡은 화를 참지 못했다.

“네가 무어라 했지? 내가 혼례를 치르는 건 보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싫은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내도록 조용하던 송백이 버럭 소리를 질러왔다.

“당연히-, 당연히 저도 싫습니다! 사형이 제게 정인이라고 하셨듯-, 제게도 사형이 정인입니다.”

“그런데 왜-!”

“장로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송백의 얼굴이 울듯이 일그러졌다.

“저도 사형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종남의 자랑스런 제자로 살아가고 싶고, 장문인이 된 사형의 옆을 지키는-, 사형의 검이 되어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금룡은 그런 송백을 바라보다, 쓰디쓴 속내가 울컥 토해질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놓았던 손목을 다시 붙잡아 당겨 끌어안을 따름이었다. 어깨가 조금 축축이 젖어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송백의 어깨도 젖어들었을지 모른다.

이송백이 제게 정인이고, 이송백에게 제가 정인이라는 간단한 사실이, 정말로 쉽지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진가의 부자관계는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위태로울 지경으로 금이 갔다.

‘네놈이 그러고도 장문지재라 할 수 있느냐! 못난 놈! 대제자로서의 자격도 없는 놈 같으니!’

울려퍼지는 장로님의 목소리에 제자들은 심장을 졸여야했다. 그런데 이 다음 진금룡이 보인 행보에 종남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따로 없는 곳이 되고야 말았다.

‘알겠습니다.’

단 한마디를 던진 직후, 대제자로서의 모든 업무를 내던진 것이다.

아버지이자 장로를 대하는 것에서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금룡을 보며 모든 문도들이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부자 사이를 중재하지 못했다. 진초백의 둘째아들이자 진금룡의 동생인 진은룡이, 두손두발을 다들며 고개를 저은 탓이었다.

‘저리 나오시면 도리가 없습니다. 아버지도 형님도 고집이 세서 저는 못 말립니다.’

자연스레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이송백에게도 눈치가 갔다. 하지만 그조차도, ‘할 말이 있으면 내게 직접 해라.’ 하는 금룡의 말에 모두들 눈을 내리깔아야만 했다.

“사형,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이러다 장문인께서도 참아주시지 못할 겁니다.”

“내게 장문의 자질이 없다지 않느냐? 그러니 더 어울리는 이를 찾으시겠지. 내가 마뜩지 않다는 장로님이 알아서 장문인께 청을 올릴 것이다.”

심드렁한 태도로 차를 마시는 금룡은 그야말로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그를 대체할 사람이 종남 내에 없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서 이러는 것이다.

송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 않던 반항을 왜 이 나이에 하십니까.”

“인생이 아버지 마음대로 결정되게 생겼는데 그럼 어찌 하겠느냐.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내가 아닌 남이다. 나는 남이 휘두르는 삶을 살 생각이 추호도 없어.”

그 말에 송백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잔을 내려놓은 금룡이 송백을 돌아보았다. 찻잔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선이 불안에 젖은 듯 가라앉아있었다. 금룡은 그 시선이 거슬렸다.

“……여전히 흔들리는 것이냐?”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알다가도 모르겠군. 종화지회 이후로는 그리 우뚝 서서 고집스레 버티더니, 왜 내 일엔 그러지 못하는지 말이야……. 내가 검만 못한가보지?”

금룡의 말에 송백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그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농이었다만……, 이리 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진짜 그리 생각했나 싶군.”

“장난 그만 치십시오.”

조금 풀어진 분위기에 금룡이 의자에 좀 더 편하게 기댔다. 그리곤 웃음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농이기도 하지만, 진심이기도 하다. 왜 이번엔 버티지 못하는 것이냐?”

그렇게 묻는 금룡의 시선이 송백을 꿰뚫을 듯 날을 세웠다. 송백은 시선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피하지 못했다. 사형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천하삼십육검을 고집했던 것은 종남의 길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게 옳다고 여겼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사형에 대해 위아래로 비난이 쏟아진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오물이야 익숙했다. 자신의 자리는 그런 비난에 흔들리거나 흠이 생기지 않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사형의 자리에 묻어나는 것은 결이 달랐다. 어떤 흠조차 용납할 수 없는 자리가 아닌가. 그리고 그의 사형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완벽을 추구하는지 잘 알고 있는 송백으로선 전처럼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역시 내가 너에게 있어 검만큼 확신이 없나보군.”

단호한 말에 송백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런 의미가…….”

“맞다. 너에겐 아닐지 몰라도, 내게는 그래.”

“……사형.”

금룡은 송백을 돌아보았다. 표정에 묻어나는 곤혹스러움과, 불안한 기색. 그것을 본 금룡이 고집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내게 확신이 없는 것 같으니-, 제대로 말해주마. 나는 내 옆에 네놈이 아닌 다른 이가 서는 것이 싫다. 네가 꼭 내 옆에 나란히 서 있으란 뜻은 아니다. 지금까지처럼 내 사제로 남아있어도 상관없어. 다만-, 비어있는 그 자리에 다른 이를 대신 채워 넣을 생각이 없단 뜻이야.”

“사형.”

“네게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은대로 버티고 있으라고 하는 거야. 내가 혼례를 치르는 게 보기 싫다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 마음 그대로 있으면 된다. 변하지 말고. 그건 네가 잘하는 짓 아니더냐?”

단호한 음성에 송백이 눈을 깜박였다. 그러더니 이내 헛웃음처럼 푸스스 웃어내렸다.

“사형은-, 정말이지…….”

“대답이나 해라.”

어쩐지 조금 삐뚤게 날이 선 그의 표정을 보며 송백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버티겠습니다.”

 

*

 

금룡이 일을 다 내던진지 칠주야가 지났다. 결국 먼저 인내심이 끊어진 것은 진초백이었다. 밥을 먹는 금룡의 앞으로 가 앉은 진초백을 보며 모두 질린 얼굴로 자리를 피했다. 장로님의 얼굴엔 인내가 한계에 달해있는 것이 보였으나, 금룡의 얼굴은 여전히 전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사달이 나도 분명하게 날 것이 뻔했다. 멀찍이서 밥을 먹는 문도들이 불안하고 초조하게 그 자리를 지켜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몇마디의 대화 끝에 식탁이 큰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제자들은 식사를 하다 자리에서 그대로 굳었다.

금룡은 자신의 하얀 무복 자락 밑단이 음식물로 더러워진 것을 힐긋 내려다보았다.

“진정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네놈이야말로 이 아비가 이리 나오게 만들테냐! 장문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네가 그걸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금룡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습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으려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원하는 혼례를 치르면요? 그 다음은 아들을 낳아오라 하실 겁니까? 아들을 낳지 못하면, 첩을 들이게 하실 겁니까?”

“너-, 너! 네가!”

“진가의 대가 문제라면, 은룡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화산으로 적을 옮기긴 했어도 동룡이 그놈도 아버지의 아들이지요. 아들이 둘이 더 있으신데 무슨 문제입니까?”

금룡의 신랄한 말투에 듣고있던 사제들이 기겁을 했다. 대체 어쩌려고 저러는건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뒤에서 불안하게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으나 금룡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또한! 종남에 입문을 했던 그 어릴 적부터 혼사엔 뜻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 정인이 누구건 간에 바뀌는 것은 없단 뜻입니다. 혼례는 치르지 않습니다. 치른다고 해도 제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향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데려온 그 여식은 그곳에 있지 않습니다.”

단호한 말이 쓸고 지나간 식당에 정적이 흘렀다. 폭풍 전의 고요함과도 같은 정적이었다.

“진금룡-!”

싸늘하고도 위태로운 공기는, 진초백이 검을 빼어들며 깨졌다. 푸르스름하게 맺힌 검기에 제자들이 사색이 됐다.

“자, 장로님!”

“진정하십시오!”

다급하게 말리려는 제자들을 진초백이 밀어냈다. 뿜어내는 기에 제자들이 날려갈 정도였다. 그 사이에서도 금룡은 싸늘한 얼굴로 아버지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리곤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사제들을 향해 말했다.

“당장 나가거라!”

“사형!”

“뭘하느냐! 서한! 사제들과 제자들을 챙기지 않고!”

종서한은 저리 고집을 부리는 사형이 걱정이 되는 한편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자고 일을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끼어들 수 없어 제자들에게 밖으로 나가라 명하며, 넘어진 아이들을 챙겼다. 마지막 제자까지 밖으로 내보낸 그는 제 몸까지 빼기 전 송백을 보았는데, 같이 나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송백도 당사자였던데다-, 다 떠나서 이곳에서 장로의 분노를 다 맞는 한이 있더라도 남아있을 기세였기 때문이다. 종서한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못 본 척 외면했다.

다른 이들이 다 나간 것을 확인한 금룡이 다시 진초백을 돌아보았다.

“장로님. 이곳은 대종남파의 제자들이 다 있는 자리입니다. 기어이 이곳에서 검까지 빼어들어서 아이들을 상하게 하셔야 합니까?”

“하-, 이젠 장로라 부르는구나. 그럼 장로로서 내 묻겠다. 정녕 장문의 자리까지 걷어차고 이송백을 정인으로 고집할 생각이냐? 내가 저놈을 파문시키겠다고 해도!”

“말씀 드렸을텐데요. 이송백을 파문시키려거든, 저부터 파문 시키심이 옳다고 말입니다.”

송백은 화제의 중심에 선 것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사형에게 버티겠다고 약속했으니, 버티기로 했다. 차마 장로님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건 장로님이 아닌 아버지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송백은 가만히 있었을 뿐입니다. 그를 먼저 마음에 담은 게 접니다.”

“오냐, 그렇다면 내손으로 너를 죽이는 것이 낫겠다. 이 수치도 모르는 놈!”

“끝까지 인정하실 수 없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십시오.”

물러나지 않는 모습에 진초백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면서도 내심 금룡이 검을 빼어들어 막을 거라고 생각해 그의 손속엔 자비라곤 담겨있지 않았다. 하지만-, 진초백의 두 눈에 자신의 아들이 들고있던 검을 바닥으로 내던지는 것이 잡혔다.

세차게 날아가는 푸르스름한 검기 사이로 금룡이 눈을 감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저항의 의지라곤 없이 그저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진금룡!”

아차하는 마음이 뒤늦게서야 덮쳐들었다. 검기를 날려보낸 그가 무슨 수로 검기를 막겠는가? 진초백의 심정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사형!”

송백이 외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을 울리는 소리가 콰앙-! 크게 울렸다.

“금룡아!”

진초백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검기가 가라앉은 사이로 바닥에 널부러진 두 인영이 보였다. 다행히 그 어디에도 핏자국은 없었다. 무너졌던 심장이 다시 뛰는 듯했다.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송백에게 떠밀려 같이 뒹군 금룡이 눈을 떴다. 사형, 괜찮으십니까? 하고 묻는 송백을 금룡이 조심히 옆으로 밀어냈다.

“금룡이, 너-.”

어쩌자고 검을 내던진건지 진초백이 다그치려는 찰나 금룡이 차갑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고저없이 내뱉었다.

“아버지. 방금 아버지께선 정말로 절 죽이신 겁니다.”

말문이 턱 막혔다. 다그치려던 말이 모조리 목 안에서 걸려 나오지 못했다. 그의 아들 금룡은,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한번 더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정말로 죽어서라도 저항하겠다고.

진초백은 망연한 눈으로 제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셋째가 기어이 화산에 남겠다고 했을 때와 똑같이 고집스런 눈이 그 자리에 있었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너희들은 왜 하나같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제 의견만 고집하는 것이냐.”

“너희들이라……, 동룡이 그놈의 마음이야 제가 알 수 없지요. 다만, 하나는 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남이 휘두르는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진초백은 검을 늘어뜨렸다.

“……내-, 너무 지쳤다.”

“…….”

“네 고집을 이길 수가 없겠구나.”

자조하듯 중얼거리는 말을 금룡은 담담히 들었다. 그런 금룡을 돌아본 진초백이 눈을 감고 길고긴 숨을 내쉬었다.

“내가 졌다. 네 뜻대로 하거라.”

그 말에 내도록 무뚝뚝한 금룡의 얼굴에 변화가 일었다. 의심인지, 아니면 놀라움인지-. 어쨌거나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시선이었다. 그 속에서 바라는 것을 이뤄낸 성취감이 선명하게 피어났다.

그런 아들이 고까운 듯 진초백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섣불리 기뻐하지 마라. 네 뜻대로 하라고해서, 너희 둘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다.”

진초백은 시선을 돌려 송백을 한 번 쳐다보았다.

“이송백, 나는 너를 끝까지 인정치 않을 것이다.”

송백은 받아들이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복잡한 눈으로 본 진초백이 다시 제 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진금룡, 너도 이 일에 얼마나 추문이 붙을지 안다면, 네가 장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부터 걱정하는게 좋을 게다. 그동안은 내가 나섰기에 장문인께서도 참으신 것이다. 집안일이 먼저니까. 하지만-, 이젠 아닐 것이다. 나는 너희를 막아주지 않을 것이고, 모르는 체 할 것이다. 그러니-, 감당해보아라.”

단순히 말로 옮기기엔 더욱 거칠고 무자비한 현실이 기다릴 것이다. 끝내 둘을 인정치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과 진배 없는데도 금룡은 신경쓰지 않고 송백을 돌아보았다. 송백은 마주한 시선에서 변하지 말고 버티고 있으라던 말이 떠올랐다.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반대하라고 하십시오. 저는 바뀌지 않을테니.”

마침 사형도 변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뻔뻔하게-, 조금은 기쁜 듯이 웃었다.

송백은 속으로 얕게 한숨을 내쉬며 고집스런 사형처럼 자신도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못마땅한 장로님의 시선이 떨어지고-, 송백의 입에서도 조금의 웃음이 조금 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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