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 청명이설

연모지정 by 하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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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나지 않아?"

날붙이 끝에 매달린 빗망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무심한 낯이 기울었다. 

"언제."

"그 왜, 그날도 비가 왔잖아. 사고가 대뜸 튀어나와서... 어이쿠, 사람 말하는데."

서늘한 날붙이가 아슬하게 목께를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남자는 지나치게 동요가 없었다. 검 끝에 부딪혀 튄 물방울이 더 거슬린다는 듯, 짧게 혀를 차는 양을 눈에 담던 유이설이 검을 내리고 한발짝 물러섰다. 

대련을 멈추고 싶으면, 그냥 그만하자고 하면 될 것을. 검집에 날붙이를 밀어 넣는 손길이 거칠었다.

"사고가 머리 두 짝인지 세 짝인지, 암튼 냅다 던졌던 날 있잖아. 기억나? 그때 그 새끼는 진짜 사고 귀신인 줄 알았을걸."

"귀신은 너였겠지. 내가 아니라."

"아냐, 사고였어."

"...무슨 말이 하고 싶어?"

고운 눈매가 가늘게 접혀 들어간다. 쏟아지는 빗망울이 시야를 뿌옇게 흐렸다. 긴 속눈썹 위로 방울방울 맺힌 것이 톡 톡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대뜸 멈춰 서 갑작스레 헛소리를 내뱉는 이의 표정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래야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기억나?"

"뭐가."

".....사고."

"응."

"그때도 이렇게 추웠나?"

"뭐?"

"....나 추워."

"...."

"...."

"...하아.."

"이야, 끝도 없이 쏟아지네. 가을비가 무섭다더니... 콜록. 어우 진짠가 봐, 사고."

빗줄기는 도저히 잦아들 줄을 몰랐다. 이게 빗물이야 폭포수야. 전각이 있어서 망정이지. 청명은 연신 기침하며 처마를 타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가운 물 덩어리가 손 위를 적시기도 전에, 흰 손이 대뜸 그의 손목을 잡아채 주욱 끌어당겼다. 어정쩡 멈추어 선 손끝이 허공을 맴돈다.

"뭐야. 왜."

"춥다며."

"아니, 심심하잖아. 손에 물 좀 더 닿는다고 안 걸릴 고뿔 걸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 많아. 하지 마."

"... 예에."

아니 근데 이 여자 손은 또 왜 이리 차. 추위 탄다는 말은 없었는데. 하여간 알 수가 있어야지.

"사고는 안 추워?"

"응."

"와. 사고는 왜 추위도 안 타지? 거참 진짜 나만 죽겠네, 나만."

"나는 겨울이니까."

"엉?"

"넌 봄이고."

"...내가?"

"응."

멍하니 기울어지는 얼굴이 좀 바보 같기도 하고. 청명이 넋을 놓았건 말건 제 알 일 없다는 듯, 유이설은 그저 손에 잡힌 온기를 제 쪽으로 더욱 끌어당겼다.

"더 들어오기나 해. 비 맞아, 너."

"....잔소리는."

"들어와."

"알았어 알았어. 하여간 남 걱정은."

"더 붙어. 춥다며. 고뿔 걸리면 대련 못해."

"아 알았어! 사고 손이 나보다 찬 건 알아?"

"난 겨울이니까."

"...말을 말자. 손이나 이리 내."

"..."

투두둑 빗소리. 질척해진 땅. 시리디시린 공기. 이 서늘한 여자도 여기 두니깐 좀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찬가. 어깨는 좀 따뜻한데, 손은 차네. 안 추운가 진짜.

하여간. 비는 언제 그칠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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