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실
방백 / 청명이설
나는 종종 월하노인의 실존을 바라고는 했다. '언젠가 나도, 그가 붉은 실로 엮어놓은 이를 만나 함께 영원을 약속하고 싶다' 따위의 아이같고 낭만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실존해야 멱살을 틀어쥐고 내 부탁을 들어달라 협박이라도 건네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서슬 퍼런 눈으로 칼춤이라도 추며 겁박하다 보면 마지못해 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겠노라 하지 않을까? 그도 나름 신인데, 한낱 매화 검수 때문에 험한 꼴을 보고 싶지는 않을지도 모르잖아.
그냥 뭐라도 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자꾸만 저 달로 떠나갈 것처럼 구는 제 세상에게 붉은 매듭 하나 달랑 달아 땅에 묶어 두고만 싶어서.
그냥 내 옆에. 이곳 화산에. 멋대로 죽어 떠나지 못하게.
혹시 모르지. 내 손에 달려 있는지 안 달려 있는지 당최 알 길이 없는 그 얇아빠진 실 한쪽 끝 떼네어 그의 소지에 달아두면, 그것이 그를 내세에 묶어둘 추가 되어줄지도.
혹시 또 모르지. 그 노인, 이미 그 실 너와 그 애 사이에 있다 할지. 그럼 그 실 두겹 세겹 두꺼이 겹쳐 늘려 달라 답지않게 떼를 좀 써 볼까.
그리하면, 그래.
그가 눈을 까뒤집고 달을 향해 비상하다가도 제게 매인 실 자락, 그 끝에 달린 나의 무게에, 한번쯤 망설여 뒤를 돌아보아주지 않을까 해서.
그럼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한달음에 그의 곁에 다다를 것이다. 너는 이것을 잘라내지 못한다. 그러니 나를 데리고 달로 가던지, 나와 함께 땅으로 내려오던지.
홍실 그것, 월하노인께서 달아둔 것이니 너는 끊지 못한다. 나도 끊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리하면 너는, 소중한 너는,
너를 향한 내 감정이 얼마나 깊고 애달프고 처절한 것인지. 알아 줄텐데.
나는 종종 월하노인의 실존을 바라곤 했다.
아이같고 낭만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무엇 하나 그를 묶어둘 것을 만들어 두고 싶어서.
네가 내 무게를 알았으면. 그런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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