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이설/청명이설] 타생지연他生之緣

[청명이설/검존이설] 他生之緣(타생지연) - 11. 일촌광음

구화산으로 트립한 유이설

* 급전개 주의, 개연성X, 무협알못, 원작설정숙지 잘 안됨

一寸光陰(일촌광음) : 매우 짧은 시간.


"그러니까, 실종...?"

"그렇소. 요즘 안그래도 여기저기서 실종 사건이 많았는데, 이번에 이녀석 또한 사라진 것을 보니 이것도 마교의 소행이지 않을까 싶소이다."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온 청명은 뜻밖의 소식에 삿대질을 하며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막 부르길래 뭐 찾은 줄 알고 눈썹 휘날리며 튀어나왔더니 실종?? 실조오오옹? 그러니까 왜 경험도 별로 없는 이결개 나부랭이를 시켜요! 마교놈들 찾으라 했는데 다른 걸 잃어버리고!"

"계속 추적 중이오. 궂은 일이지만 거지들이 몸을 던지고 있..."

"궂은 일이라니요, 마교랑 엮인 중요한 일 아닙니까."

"... ..."

장사 분타주 작선간(雀線間)은 대답 대신 이를 꽉 깨물었다. 어금니에 힘이 뿌득 들어갔다. 도우러 파견된 자가 별호도 번쩍번쩍하고 소문도 자자한 화산제일인이라 하니 최소한 점잖은 척은 하는 도사가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웬 새파랗게 어린 것이, 휘적휘적 걸어와선 제 맘대로 화내고 삿대질을 해대는게 꼭 뒷골목 왈패가 온 것만 같았다. 저딴 게 도인인가...? 

저 놈이 고성을 내자 같이 파견되어 온 다른 화산의 제자들도 이젠 익숙하고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수고하라는 목례만 하고는 각자의 역할을 찾아 뛰어올라 사라졌다. 무뢰한 같은 놈이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헝클었다.   

"하여간 돕는다더니 일을 늘리고 그래. 대충 어디서 사라졌었는데요?"

"이 곳에서 호각이 울려퍼졌었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길, 싸움의 흔적이 있었던 듯 이리 저리 패인 흙바닥에 피와 검은 흔적들이 낭자했다. 마치 검은 눈이 내려 스민 듯 묘하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청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마..."

"마교의 소행."

청명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산문을 나서는 길에 애써 도망치며 떼어놓은 유이설이 태연자약하게 그와 눈을 맞추며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그녀의 가슴팍에 화산을 상징하는 매화 자수가 보였다. 저건 뭐지?

청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잘 어울리긴 하네.

마치 원래 옷을 찾은 것 마냥 편안해보이는 기색이라 더욱더 기묘했다. 

"...그건 어디서 줏어 입었어?"

"줏은 게 아니라 주신 거. 멀리 나가니까."

유이설이 이 일에 끼지 않길 바랐던 화산이었지만, 결국 절을 해가며 고집을 꺾지 않는 유이설의 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실은 청명을 잘 다루는 뛰어난 인재(人材)였기에 내심 이를 반기는 자들도 있었지만.

유이설이 입고 있는 화산의 도복은, 청명과 함께 움직이게 된 그녀가 외부인이라는 것을 굳이 알려 좋을 일은 없었기에 잠시 화산의 신분과 함께 빌려준 것이었다. 다소 파격적이었으나, 청문의 고민과 설득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나저나 네가 마교를 어떻게 아는데? 본 적 있어? 싸운 적 있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왜인지 청명 뿐만 아니라 작선간과 다른 개방도들의 시선도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 ...감."

대책없는 한 음절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작선간이 한마디 했다. 

"...앞날이 캄캄하다. 진짜."

✿∘°˚∘°❀°∘˚°∘✿

"진술을 아무리 취합해 보아도, 우리가 예상한 시기와 최소 삼십년은 차이가 납니다."

"사람마다 진술이 조금씩 다른 걸 감안하더라도, 순리대로 흘러간다면 앞으로 십년 이내로는 천마의 재림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는 게 맞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

보고를 하러 머리를 조아린 자들이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비록 여기저기서 미래에선 온 것으로 보이는 자들을 잡아와 캐낸 정보의 양이 마교 본단보다야 한참 적긴 했지만, 거기서조차도 이토록 일관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아무래도 실제로 미래에 일어난 일들이 십일교구의 교주와 사자가 주장해온 것과 완벽히 상충한다 봐야 했다. 

즉 간단히 말해, 이들은 '틀린'것이다. 

그러나 이제와 십일교구의 주장이 이단이며 잘못된 교리의 해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어도 돌아갈 길 따윈 없다. 애초에 마교 본단에 반기를 들고 곤륜을 헤집기 시작할 적부터 이들의 운명은 한 배를 탄 것이었다. 그 종착지가 지옥불일지라도. 

그렇기에 섣불리 자신들이 붙들어온 천마의 조기재림설(早期再臨說)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보고를 받던 여채한은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귀자들을 심문할 때, 그들이 어찌 말하더냐."

"천마님을 필두로 만마가 일어나 중원을 정화..."

"아니, 그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어라. 벌하지 않을테니."

"... ..."

마교도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십만대산에서 마교놈들이 발호해 마을을 휩쓸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천마는 팔다리를 움직이지 않고도 사람을 종잇장 구기듯이 뭉개는 괴물... 천마재림, 만마앙복!"

"마저 해라, 어서. 이 이상은 충심이 아닌 불복이다."

그 말을 듣고도 입을 떼지 못하던 마교도들은 자신의 목에 서늘한 날이 닿고 나서야 피를 토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 ...구파에서 만든 결사대가 천마를 죽였다.라는 이야기를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들었었다고 했습니다."

"그 세대에는 마도천하가 끝난 시점이란 게지."

"그렇지만, 이건 필시 광인들의 헛소리입니다! 애초에 미래에서 왔다니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이들이니 교에서도 이같은 이유로 이들에 대한 조사를 관두었잖습니까." 

"천마의 권능이 너무도 두려워 헛 이야기를 지어낸 것입니다."

"그 말은 내가 틀렸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집법사자의 말에 마교도들이 입을 다물었다. 

"만에 하나라도 이들이 실제로 미래에서 온 자들이라면, 이들의 말이 거짓이라 해도, 그 태도와 언행에서 알 수 있다. 이미 우리의 복음(福音)이 중원의 미천한 영혼들에게 완전히 스며들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다. 중간에 우리의 물결이 중단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그럴 순...! 천마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냉정하게 바라보아라. 천마신교는 실패한 것이다. 천마께서 재림과 동시에 바로 전지전능한 권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면 우린 지금까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몇십년, 아니 몇백년 전에 마도가 천하를 쥐고도 남았겠지."

"... ..."

"훗날의 누군가가 천마의 신성한 사역을 방해한 것이다. 그 분께서 완전히 힘을 되찾기 일 년 전, 한 달 전, 아니, 하루 전에라도, 그 놈이 기어이 저지한 게지."

마교도들이 혼란스러운 듯 서로를 돌아봤다. 

"나는 그것이 천마의 재림이 앞당겨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바꾸려면 지금을 바꿔야 하니까."

말을 마친 여채한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조아렸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와 밀도 높은 기운에 교도들은 제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교시여...!"

"천마재림, 만마앙복..."

여채한을 포함한 십일교구의 교도들 앞에,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한 십일교구의 주교 섬잔(殲殘)이 천천히 걸어왔다. 아직 부상의 여파가 있는 듯 하였으나 평소의 상태였다면 기운만으로도 주변의 모든것을 파괴했을 그 기백와 위엄은 여전히 신도들을 떨게 했다. 

"미래를 예지하신 천마의 영께서 충실한 종인 내게 계시를 내려주었다. 원래 정해진 시기에 재림을 하면 그 불신자의 앞잡이가 천마의 빛나는 앞길을 막을테니, 너는 더욱더 빨리 이 땅에 내려오도록 나를 도와라. 내가 너와 너의 교구를 선택했다."

"...!"

"천마재림, 만마앙복!"

마교도들의 고개가 뻣뻣하게 굳더니, 일제히 고개를 들어 제 앞에서 진리를 설파하는 섬잔을 바라보았다. 그 눈들에는 마치 업화와도 같은 신앙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비록 우리가 그 계집을 데려오려다가 구파에 발각되어 일을 그르쳤지만, 이 또한 우리가 넘어야 하는 시련이느니라."

"천마재림! 만마앙복!"

"구금되어 있던 적융회인들은 전부 제거했느냐?"

"예!"

"아쉽게도 회귀자들의 진술에선 재림을 앞당길 단서나 근거를 얻지 못해 계획이 틀어졌지만, 궁극적인 목표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교구는 청해에서 못 다한 재림의식을 진행한다. 그것을 돕는 것이 천마께서 예비하신 너희의 존재 이유이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재림의 그릇이 될 육체는 준비하였느냐."

"가능한 한 조건에 맞는 것으로 예비했습니다."

섬잔은 제 앞에 놓인 이결개 육천의 시신을 섬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만은, 청해에서 못 다 했던 의식을 성공시켜야했다.  

"주교님, 화산에서도 수색을 시작했답니다."

"화산... 빌어먹을 악연이구나."

화산은 십일교구가 곤륜을 습격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지원을 온 유일한 문파였다. 그리고 그 선두엔 매화검존이 나섰다는 것 또한, 섬잔에겐 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매화검존."

자가 그 때 청해의 어느 토굴 속에서 거의 완성되었었던 의식을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십일교구는 지금 이렇게 중원에서 쥐새끼처럼 숨어다니는 신세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그 끈질긴 인연을 끝내야 하리라."

✿∘°˚∘°❀°∘˚°∘✿

"다 죽었다고?"

"다들 괴이한 현상이라 부릅니다. 갑자기 불들이 전부 꺼지더니, 순식간에..."

위병의 설명을 들으며 청명과 유이설이 유혈과 살점이 낭자한 뇌옥을 살폈다. 청명조차 잔소리가 쏙 들어가게 만들 정도로 처참한 현장이었다. 

마교와 결탁한 것이 적발된 적융회의 사파인들은 모두 이 뇌옥에 가두어졌었으나, 지금은 몇 개의 덩어리들이 된 지 오래였다. 목숨을 끊는 것도 모자라, 최소한의 형체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집요한 파괴와 유린의 현장이었다. 이 곳도 또한 더러운 기운과 함께 거뭇한 마공의 흔적이 보였다.

"놈들의 짓. 입막음이야."

"미친새끼들..."

"한시라도 빨리 잡아야해."

"...그런데, 꼭 네가 이걸 해야겠어?"

청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이설을 슬쩍 돌아봤다. 유이설의 역량이야 의심할 바 없이 뛰어나다. 쉽사리 위험헤 처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마교와의 대치는 실력과 관계 없이 많은 변수를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청명은 청해에서 마교와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몸이 꿰뚫리고 숨통에 피가 차오르던 순간까지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있지 않던 마교도들의 광기가 떠올랐다. 문득 청명은 유이설이 그것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평소답지 않게 말꼬리를 늘였다.

"야아."

그는 잠자코 있는 유이설의 표정을 살피고자 그녀의 옆머리를 넘기며 재차 물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반드시, 내가 해야 해."

순간 청명은 할 말을 잃었다. 

유이설의 눈이 한번도 보지 못했던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녀를 가까이에서 봐온 청명에게는 확연히 보였다. 두 눈에 차갑게 가라앉은 분노는 살기가 되기 직전의 날카로운 기운까지 풍겼다. 그 기세에 잠시나마 그녀를 말려서 돌려보내려 했던 청명은 단념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나한테서 절대 떨어지지 마라."

"응. 널 지켜야 하니까."

"니나 조심... 에휴, 됐다. 하여간 그 말 지켜. 내 곁에만 있으면 별 일 없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유이설이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봤다. 뾰족하게 뜬 눈에 청명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짚이지는 않으나 뭔가 뜨끔 켕기는 감각을 느꼈다. 

"...청명."

"...왜."

청명은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쇄도하는 유이설의 검집을 턱, 잡았다.

"이젠 안 당하거든?"

"잘난 척 하지마."

"잘난 척? 내가?"

"재수 없어, 밥맛."

"밥마앗?"

유이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대담한 막말에 반쯤 얼이 빠진 청명을 지나쳐 현장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몇 구인지도 모를 만큼 잘게 잘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신체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시취(屍臭)가 코를 찌르고 도복의 밑단이 검붉은 피로 젖어들어갔다.

'마공의 장력.'

마치 사람을 손바닥으로 눌러 죽이는 벌레만으로도 보지 않았다는 듯, 일말의 연민도 없이 장력으로 사람을 뭉개 죽였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방식이었다. 거슬릴 정도로 진한 기운이 신경에 거슬렸다. 

"더 심한 꼴을 볼 수도 있어."

유이설은 뒤에서 넌지시 던져오는 청명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청명은 투덜대거나 웃음기 없이 진지한 기색이었다.

"마교랑 싸우면, 더 험한 꼴도 볼 수 있다고."

청해에서의 전투에서 화산이 입은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청명이 목격한 곤륜의 피해는 그의 상상을 초월했었다. 곤륜이 아닌 다른 문파였다면, 멸문도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뭣보다 넌 경험도 없고 아직 아는 것도 없고 맹... 나 이제 안 당한다고 했다? 어? 아악!"

유이설은 청명에게 오른 손목을 잡힌 채로 왼 주먹을 그의 정수리에 내리쳤다. 

"또 잘난 척."

"그리 세지도 않은데 아프게 때리는 재주는 또 비상해가지고..."

"손목 놓기나 해."

"또 때릴까봐 못 놓겠는데."

투닥이던 둘은 동시에 어느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감에 걸리는 무언가가 재빨리 모습을 감췄지만, 이미 그 방향을 들킨 후였다. 둘은 앞다투어 그 방향으로 경공을 펼쳤다. 유이설이 앞서려 했으나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발을 놀리는 청명을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멈췄어."

"알아."

어느새 해가 져가는 시각, 기척을 좇아 숲속에 꽤 깊숙이 들어온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서 팽팽하게 기감을 곤두세웠다. 예민한 감각에 작은 짐승 움직이는 소리, 나뭇잎이 서로 스치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유독 수상하게 기척이 비고 조용한 지점이 있었다. 청명은 그곳으로 돌진했으나 이번엔 유이설이 빨랐다.

카가각!

마교도의 톱날이 달린 이형 조도(爪刀)가 유이설의 검에 맞물렸다. 마기가 발하며 소름끼치는 괴성을 자아냈다.

"야!"

"찾았어."

유이설은 검날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를 끈질기게 쫓았다. 마교도는 유이설의 검을 받아치며 계속해서 뒤로 이동했다. 마치 숲 안에 더욱 깊숙이 유인하려는 것 처럼. 청명이 급히 뒤따라가며 유이설에게 날아드는 마기들을 쳐냈다. 

'방어를 전혀 안하다니 미쳤나!'

유이설은 다른 것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자신을 방어하지도 않은 채 추격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었다. 청명이 능히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미쳤지, 미쳤어.' 

아무리 청명이 지켜주겠다 자부하긴 했지만, 잘못 맞으면 온 몸이 마화에 물들어 죽을 수도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방어를 포기하다니. 청명은 유이설에게 검은 손바닥을 내지르는 녀석의 목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마교도들의 행방이 미궁에 빠진 지금 수색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놈을 섣불리 죽일 순 없었다.

"불신자 놈들이 끈질기군."

"항상 불리하면 불신자 운운하더라."

청명이 빈정거렸다.

"사자님의 말씀이 맞았구나."

"?"

"겁도 없이 단 둘이서 이렇게 잘도 따라오다니."

"청명!"

청명이 유이설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았을 땐 사태같은 마기가 여러 방향에서 그와 유이설을 향해 쇄도해 오고 있었다. 저 놈은 일부러 청명과 유이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기척을 흘린 것이었다. 평소였다면 이정도 수작은 쉽게 알아챌 만도 했었는데...

"떨어지지 말라 했다, 내가."

이 정도는 그 혼자서 감당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청명은 마기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대신 유이설을 막아섰다. 그의 검이 부르르 떨며 매화를 피워내 벽을 만들었다. 찰나의 시간동안에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낭패를 본 기색이 만연했으나 그의 입에는 그가 습관으로 짓던 미소가 걸려있었다.

뭐, 아주 심해봤자 팔 한 쪽 내주는 데에서 그칠 자신은 있으니까. 

검고 자욱한 마기가 무방비한 청명의 사지에 이빨을 세운 짐승처럼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청명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또 엄청 노발대발 하겠구만.'

그러게 말 좀 듣지.

단 일 초도 길게 느껴질 만큼, 민첩한 무인의 감각이 잘게 쪼개놓은 찰나의 찰나들, 청명은 그것들이 지나가는 것을 오롯이 느끼며 마기가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것을 예상하고는 눈을 부릅 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시야는 검은 마기가 아닌 붉은 매화검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건...

"매화난벽(梅花難壁)?"

겹겹이 전개된 매화검기가 그의 앞을 벽처럼 막아서자, 마기가 힘을 쓰지 못하고 흩어져갔다. 청명은 그의 주변을 가득 채운 파사(破邪)의 기운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노기에 가득차 자신을 노려보는 유이설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녀의 검에서 매화가 쉴새 없이 피어올라, 청명을 마기로부터 지키고 있었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어떻게 쟤 검에서 매화가...

그것도 화산의 장로만이 구결로 배울 수 있는 이십사수 매화검법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더욱더 신경쓰이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진짜 단단히 화났네.'

저걸 어떻게 달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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