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이설/청명이설] 타생지연他生之緣

[청명이설/검존이설] 他生之緣(타생지연) - 10. 정서전면

구화산에 떨어진 유이설

* 급전개 주의, 개연성X, 무협알못 

* 情緖纏綿(정서전면): 얽히고 감겨 떨어지기 어려운 남녀의 정 


"...나보다도?"

달빛만이 가로지르는, 구름 한 점 없이 텅 빈 밤하늘 아래 두 남녀가 서있었다.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바닥의 체온이 홧홧했다. 유이설은 청명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굳은 입매로 저를 내려다보는 청명의 얼굴은 달빛 아래에서도 확연히 불그죽죽했다. 잔뜩 넓어진 흰자 안에 자리한 눈동자는 유이설을 바라보면서도 쉴새없이 요동치고 있었고, 차게 내려 앉은 굵은 눈썹도 움찔 움찔 떨리고 있었다. 다만 눈매만은 완만하게 휘어진 것이, 평소의 억센 그의 인상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부드러운...

그저 자연스레 든 감상이었지만, 입에 담으려니 어딘가 느낌이 이상했다.

✿∘°˚∘°❀°∘˚°∘✿

사건이 일어나기 두 시진 전, 청명은 벌을 서느라 뻐근해진 어깨를 붕붕 돌려대고 있었다.

"어쨌든, 소림에서 방이 내려왔다. 마교가 얽힌 일이니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하더구나. 개방은 이미 조사를 시작했다."

"와, 누군지 몰라도 참 힘들고 바쁘겠네요. 거지들이랑 합심해서 그 잡아도 잡아도 나오는 장랑(䗅蜋, 바퀴벌레)같은 놈들을 쫓아야 하다니."

"... ..."

청문의 의미심장한 침묵에 청명이 환멸나는 표정을 하고는 검지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켰다.

"설마 그게 우리예요?"

"네가 마교도로 오해받은 걸 우리 선에서 덮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개방에서 연락이 오는대로 움직여야 하니 준비해둬라. 그러니 행동 잘 했어야지."

"핑계는 무슨! 저번에도 곤륜이 지원요청 보냈을때, 또 구파일방이 서로서로 미루다가 멀리 섬서에 있는 화산이 나섰잖아요! 장사에서 그놈들 잡아낸 것도 난데, 이번에도 천하의 온갖 허드레 일 화산이 다 하네!"

"허드레 일이 뭐냐! 마교가 얽힌 중요한 일이라고 했잖아!"

"이번에도 온갖 천하의 위험하고 궂은 일 화산이 다 하네!"

"하여간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그리고, 이번엔 유이설이 엮이지 않게 주의하고."

"유이설이요?"

"그 아이가 너를 통제하기에는 좋... 아니,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구파 소속도 아닌데 마교와의 일에 휘말리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 사실 그 아이를 장사에 데려간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말렸는데 기어이 따라온 거라 했잖아요. 난 그 녀석 황소고집 못 당해내요."

"어쨌든, 이번엔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 유이설은 이 일에 관여하지 않는게 좋겠다. ...그리고, 그 아이도 슬슬 거취를 정해야겠지. 여기 계속 의탁할 것인지, 아니면 제 길을 찾아 떠날 것인지."

"...유이설이 이곳을 떠난다고요?"

"의문스러운 점은 많지만, 그 애가 가려 한다면 그리해야지. 언제까지고 이렇게 애매한 상황에 머무를 수는 없지 않느냐."

청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청명아, 그 아이가 떠나는 것이 싫으냐?"

청명이 펄쩍 뛰었다.

"예? 제가 왜요? 아닌데요? 완전 좋은데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련해달라 비무해달라 종알거리고, 여기저기 따라간다 떼쓰고, 술 마실때마다 귀신같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 그냥 나가버렸으면 좋겠는데요? 아주..."

청명의 넋두리는 청문의 꿀밤이 떨어지고 나서 겨우 멈췄다.

"말꼬리가 점점 길어진다, 이놈아." 

"이씨..."

"청명아, 우리가 널 포기... 아니, 가능한 한 자유롭게 살도록 두고 있지만, 도인인 네가 외인에게 너무 마음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되는구나."

"... ..."

"돌려 말하지 않으마. 이건 도문에 적을 둔 자로서 옳은 행동은 아니다."

"눼."

명색이 도사란 것이 술도 모자라, 여자에까지 관심을... 하기야 아직 한창 혈기 어린 나이이니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긴 했었다. 청문은 짧게 한탄했다.

"그런데, 만약 그 관심이 같은 사형제를 향한 거라면 괜찮지 않나요?"

"그래, 그 관심을 반의 반이라도 다른 사제들에게... 잠깐."

청문의 눈썹이 씰룩였다. 청명이 수염도 없는 제 턱을 만지며 얘기했다.

"유이설 정도면 지금 바로 청자 배에 막내로 들어가도 손색 없을텐데 말이죠."

"그건 그렇... 저기, 청명아, 야 이 놈아."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이만."

청명의 모습이 청문의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평범한 사람이 보았다면 자신이 귀신을 본줄 알고 도관에 도제를 요청했을 것이다.    

"야! 야, 인마!"

청문이 있던 처소에서 빠져나온 청명은 노을이 거의 물러간 까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이설은 본인도 감출 의지가 없는 것인지, 내공이고 검이고 도가계열의 기운이 가득했다. 아마 돌아갈 곳이라면, 그곳도 도관 쪽이겠지. 무당? 곤륜?

...종남?

그건 아닌데.

그 정도의 규모가 큰 문파 소속이었다면 진산이든 속가든 갑자기 사라진 제자를 찾으려 하는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이설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본래 소속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그녀의 무공은 화산의 것과 닮아있었다.

어쨌든, 출신은 모르겠지만, 유이설은 버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라고 청명은 그리 추측했다. 

...아니면 진짜 지상에 떨어진 선녀든지.

의약당 제자들의 말에 따르면 유이설은 빈사상태로 이 산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험한 화산에서 발견된 점이 기묘하긴 하나, 본래 속해있던 산문에서 배신이나 버림을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고, 화산에 의해 목숨을 건진 것일테다. 그럼에도 옛 집이 아직 마음에 남아 화산에 의탁하길 망설이고 있는 듯 했다. 

설득하면, 이 곳에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도 너에게 가족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그 목석 같은 유이설도 솔깃할지 모른다. 아닐 수도 있지만...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지.

청명은 유이설을 찾아 나섰다. 대충 인적이 드문 산중턱이나 절벽을 뒤지니 그녀를 찾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전에 서안에서 구해 온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었다. 말소리가 들려오자 청명은 저도 모르게 나무 위에 올라 기척을 죽였다.

아이의 정갈한 말씨가 청명의 귀에 들려왔다.

"이설 님도 화산의 문도가 아닌 빈객이라 들었습니다만, 돌아갈 곳이 없다면 이곳에 적을 두는 것이 어떠신지요?"

저녀석도 유이설이 이곳에 계속 머물길 바라고 있다. 하기야, 자기 목숨을 구했으니 저리 따르는 거겠지.

"...글쎄, 아직은."

그 말에 청명은 미간을 팍 구겼다.

"이설 님도 고민 중이신 건가요? 돌아갈지, 머물지..."

"응."

청명은 안력을 돋구어 유이설의 표정을 살폈다. 무감한 듯 하나, 저건 명백히 그리움에 젖은 얼굴이었다. 그는 그녀의 그런 표정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리 말하는 유이설의 음성은 어딘가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 ..."

청명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단장애의 동굴 안에 누워있는 자신을 자각했다. 동굴 바닥에는 내용물이 반도 남지 않은 술병이 구르고 있었다. 

"... ..."

청명은 몸을 뒤척이며 옆으로 몸을 돌려누웠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까지 상심해할 일인가? 청명도 자신의 행동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아니다, 아니지. 청명은 원래 별 일 없어도 단장애 동굴에서 사형 몰래 꿍쳐놓은 술을 퍼마시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저 그의 습관이다. 그리고 기분이 이리도 꿀꿀한 것은... 그래, 

유이설이 자꾸 헷갈리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산문의 그 누구도 청명을 걱정하지 않건만, 유이설은 계속 자신을 걱정하고 지키려 해댄다. 종남의 잡것들이 검을 날렸을때도 제게 날려드는 검마냥 악착같이 막아내고, 청명이 어딜 가면 이곳 저곳 따라간다고 떼를 쓰고... 

근데, 그래 놓고 이제와 돌아가고 싶어한다? 

거기가 얼마다 대단하다고!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누구나 충분히 혼란스러워 할 만한 일이다. 암, 그렇고말고. 청명은 원래의 그답게, 자연스럽게 반응했을 뿐이다. 빈정 상하면 빈정 상해하고, 화나면 화내고. 그리고, 

...할 말이 떠오르면 하러 가야지.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마음이 가벼워지고 고민이 해결된 기분이다. 청명은 몸을 일으켜 단장애를 나섰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유이설에게 한마디 해줘야지.

✿∘°˚∘°❀°∘˚°∘✿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다짜고짜 유이설을 찾아갔던 청명이었다. 호기롭게 그녀에게 핀잔을 던졌을 때 까진 괜찮았으나,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맑은 눈동자를 보니 저도 모르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러다보니...

"...나보다도?"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청명은 그 말을 내뱉고 나서도 자신은 여전히 평소의, 공명정대(?)한 그의 언행대로 정당한 질문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와중 왜 자꾸 가슴 안쪽에서 북소리가 나며 간질간질거리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으나...

유이설의 시선이 청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청명은 유이설이 안 그래도 큰 눈을 저렇게 홉뜨니 아주 조금은 귀여웠지만, 뭔가 자신은 아무 잘못 없다는 듯 그저 당혹스러워하기만 하는 그녀의 반응이 그저 아니꼬웠다. 청명은 어물쩡 빠져나갈 생각은 말라는 눈치를 주기 위해 유이설을 맹렬하게 쏘아보았다. 유이설은 한참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머뭇대며 달싹이는 도톰한 입술이 더 돋보였다.

"어디가 더 좋고 어디가 더 좋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야."

여전히, 유이설에게 청명은 그저 청명이었다. 그가 화산의 선조라는 것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유이설이 지켜야 할, 그리고 배워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이설은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지 그 뿐이다. 

"... ..."

"거기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야. 단지 그것 뿐."

"돌아갈 순 있고?"

차갑게 내뱉는 어조와 달리 청명의 눈은 마치 금방이라도 떠날 사람을 마주한 것 처럼 불안했다.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이 내려가, 유이설의 소맷부리를 쥐었다.

"그렇게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면, 진작에 돌아갔을 거 아니야."

유이설의 눈이 흔들렸다.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

그의 말에 유이설은 자연히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다. 만약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녀는 여기서...

여기서, 똑같이 청명을 지킬 것이다.

화산에 돌아가지 못하면, 모든 걸 잃어도 청명 만은 그녀의 곁에 남는다. 그것만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건 아직 몰라. 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너를 지킬거야."

"... ..."

붉게 풀어져 있던 청명의 표정이 서서히 차갑게 식었다. 

"됐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

청명이 유이설을 잡은 손을 놓고 툭 멀어졌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저울질이거든, 차선책 되는 건 사절이야. 말장난 그만 해." 

그 말에 유이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울질...?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헤아리기엔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나를 지키니, 뭐니 그냥 때려치우라고. 난 혼자서도 잘 사니까."

"그건 안..."

"나 당분간 장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바쁘니까, 더는 찾지 말고. 빈객은 빈객 답게 얌전히 있어라."

유이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일?"

청명이 혀를 찼다. 이놈의 주둥이가...

"그야 당연히... 근데 내가 왜 대답해야 해? 방금 참견 말라고 했잖아!"

"마교?"

"으아악!"

청명은 갑작스럽게 제 손을 잡아 그녀 쪽으로 끌어대는 유이설의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나도 가."

"화산만 하는게 아니라 돕는 거지들도 있으니 상관 말... 이이익..."

유이설은 청명을 올려다보며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본래 유이설이 알던 청명이었다면 콧방귀를 뀌었겠지만, 왜인지 이 곳의 청명은 이 방법이 꽤 잘 먹혔다. 찾아낸 약점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 무인의 기본이다. 

유이설은 청명이 빠져나가려 하자 그의 팔을 두 팔로 꽉 붙들어왔다. 청명의 어깨에 제 볼이 눌려도 주춤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청명의 얼굴이 다시 확 붉어졌다. 유이설의 품 안에 갇힌 그의 팔이 덜덜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놓, 놓으라고..."

"무슨 일인지 말해."

달빛 아래 남녀가 나누는 대화내용은 흡사 자백을 받아내려는 고문관과 입을 열지 않으려는 포로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냥, 그 사파새끼들이랑 결탁한 마교 놈들 잡으러 가는 거야! 놈들이 어딘지는 나도 아직 몰라! 왜! 됐냐?"

실토했으나, 유이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도 가."

"어림도 없... 아아악! 부비적대지마, 안 떨어져?"

"부비적댄거 아님, 청명이 움직인 거."

순간 청명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유이설의 손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청명의 앞을 순식간에 가로막은 것은 검을 뽑아 든 유이설이었다. 뛰어올라 청명의 앞지른 유이설이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청명에게 달려들었다.

"수틀리니까 칼 뽑아드냐!"

"응. 최후의 수단."

"칼 뽑으면 뭔가 달라질 게 있는 줄 아나 본데, 전혀 아니거든?"

"말이 많아."

"이게 진짜!"

밤 하늘 아래 붉은 매화검기가 유이설의 눈 앞을 수놓았다. 월녀검의 초식을 사용하여 검기를 깨뜨린 유이설이 청명의 검을 압박해왔다. 잠자코 그녀의 검을 받아내던 청명이 일부러 검을 크게 충돌하며 유이설에게 충격을 전달했다.

먼저 살초를 아끼지 않은 것은 유이설이었으나, 그는 유이설에게도 검에 있어서만은 자비가 없었다. 

항상 느끼던 것이었지만, 본래 이전의 청명은 이러지 않았다. 그는 마치 유이설의 스승 노릇을 하려는 것처럼 약점을 파고들더라도 유이설의 약점을 그녀가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고, 시종일관 악착같이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한 수 위의 위치에서 차겁게 그녀의 검을 내려다 봤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달랐다. 이 자는 유이설의 검 중 조금이라도 힘이 덜 들어간 부분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악착같이 반격을 해왔다. 또한 종종 자신의 눈빛을 읽으려 하는 유이설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회피해댔다. 

전투 중에 상대에게서 얼굴을 돌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검수의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다. 일단 전투에 있어 확연히 불리해진다.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관찰하는 것은 전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왜 자꾸 눈을 돌려?"

돌아오는 것은 악담 뿐이었다.

"하여간 네가 바보라서 나만 고생하지."

"...?"

청명의 검이 갑자기 걷잡기 힘든 속공을 펼쳤다.

"너가 처음 여기 들이닥친 한달 하고도 보름동안, 너같이 생긴 애가 나만 쫓아다니고 나한테만 지킨다 따라간다 종알대는데 내가 어떻게 태연하냐? 도사라고 벌써 신선된줄 알아, 내가?"

시시각각 상상도 힘든 각도에서 날아오는 검존의 검을 유이설은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진심을 다하니 과연 만만치 않았지만, 그녀가 상대하던 청명에 비하면 이건 약과였다.

"난 그저...!"

"걱정되어서? 내가 왜 걱정되는데? 여기서 날 걱정하는 사람 사형 빼고는 아무도 없어. 다들 하나같이 나한테 한 대 맞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천진데. 내가 누굴 치면 쳤지, 어디서 얻어맞는거 본 적 있냐? 넌 유독 날 과소평가 해."

"... ..."

청명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실력도 아니면서, 유이설은 이상하게 청명이 아직은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태도로 일관해왔었다. 비무를 하더라도 자기가 지고 있는 주제에 청명의 검을 냉정하게 바라본다든지, 그의 실력은 줄곧 상승세였음에도 자꾸 누군가와 비교하는 기색을 보인다든지, 되려 보호하려 든다든지. 그녀의 관심이 조금은 달가웠지만, 솔직히 남자로서는 자존심이 다소 상하는 행동이었다. 

"내가 왜 고개를 자꾸 돌리냐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온갖 감정이 폭발했다.

"예뻐서 돌린다, 예뻐서! 이 바보 같은 것아!"

"!"

"이제 뭘 좀 알겠냐?"

청명은 유이설이 보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검을 쳐냈다. 튕겨나간 검이 바닥을 뒹굴고, 뒤로 주저앉은 유이설에게 청명이 몸을 낮췄다.

"너도 내가 위험에 처하고, 다치는 게 싫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너랑 밖에 나설 때마다 너한테 꽂히는 시선들이 하나하나 거슬려 죽겠고, 네가 음침한 마교놈들이랑 엮이는 것도 싫고,"

씩씩대던 청명이 숨을 삼켰다가 내쉬었다. 청문의 말을 떠올렸다.

-도인인 네가 외인에게 너무 마음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되는구나.

"...네가 떠나는것도 진절머리나게 싫다고."

"... ..."

"그래서 더욱 어처구니가 없어. 나랑 함께 있고 싶어하면서, 그래서 나도 널 마음에 두게 만들었으면서, 왜 자꾸 다른 곳을 그리워하고 떠나려 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

청명이 가만히 유이설을 바라봤다. 애원과도 비슷한 낯선 눈빛에 그녀는 그저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 얼굴을 본 청명의 표정이 한층 더 누그러졌다.

"...됐어, 내가 양보해야지 뭘 어쩌겠어."

청명은 훌쩍 몸을 일으켜 검을 회수하고는 유이설에게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서도 가끔 만날 수는 있는 거지?"

"그건..."

그럴순 없다. 만약 그녀가 돌아간다면, 아마 영영 만나지 못한다.유이설은 그제서야 제가 돌아가면 남겨질 자가 생긴다는 것을 자각해냈다. 

유이설은 여전히 주저앉은 채 청명을 올려다봤다.

유이설이 알던 사질과는 다르게, 이곳의 청명은 그의 유일한 사형과 직속사제를 빼고는 다소 겉도는 존재였다. 타고난 압도적인 힘에 의지해 사형제들에게서 한 발 물러서, 그저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존재.

조금 가여웠다. 

"...응."

유이설은 그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유이설은 청명의 손을 잡았다. 청명이 유이설을 제쪽으로 당기며 그녀를 일으켜주었다.

"청명, 나..."

유이설이 청명의 손을 꾹 잡았다.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어."

어쩌면 영영 못 돌아갈지도 모른다. 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청명이 씨익 웃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데."

✿∘°˚∘°❀°∘˚°∘✿

"천한 불신자들이 감히 숭고한 임무를 위해 손수 낮은 곳에 내려온 신도들을 쫓으려 하다니, 단 한명도 남기지 않고 이 땅에서 멸할 것이다!"

"뭐라는거야아아아!"

이결개 육천(六泉)은 바삐 도망치는 와중 저에게 손아귀를 펼쳐오는 마기에 타구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낡고 단단한 몽둥이는 새까만 마기에 속부터 재가 되어 흩어져 갔다.

"이런 미친!"

육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적융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장사의 사파들과 마교의 결탁을 포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은밀하게 진행했어야 할 마교 추적은 삽시간에 퍼진 소문으로 인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었다. 함정도 연막 작전도 없이 악착같이 숨어들어갈 소수의 마교인들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구파의 회의가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이를 보다 못한 개방과 화산이 앞장 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방 방도들은 방주의 긴급 명령에 따라 바로 장사 주변 지역들의 분타주와 먼 곳에서 달려온 개방의 장로들까지 동원하여 샅샅이 중원을 뒤졌다. 그런데, 그 성가신 마교도중 한 명을 고작 이결개인 육천 자신이 맞닥뜨리게 된 거였다. 

'그냥 적당히 숨어서 위치만 캐오려고 했었는데...!'

그를 쫓는 복면인은 이젠 자신의 정체를 감출 의지 조차 없는 듯 하다. 저 음침한 기운, 심장까지 파고들 것 같이 소름끼치는 눈빛, 저건 분명 마교도이다. 저런 소름끼치는 것 들이 지금껏 잘도 사람들 틈에 숨어 살았다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런 놈과는 절대 싸울 수 없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 뼈 한조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거지 놈이라도 맞서싸워야지. 

고요한 숲 한복판에서 이결개 육천의 호각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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