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 드림] 매화연(梅花燕)
유료

[화산귀환/검존드림] 매화연(梅花燕)

14. 세 사람

* 적폐 / 날조 / 캐해석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당보 드림 언급 있습니다. 삼각관계 주의.

* 쌍존과 자캐의 술자리를 이어 볼 수 있습니다. (유료입장)

풀썩.

침소에 돌아온 연홍 련이 지친 얼굴로 침상에 눕는다. 얼마 만에 누워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인들은 일정부분 스스로 치료가 가능하다. 때문에 의원에게 치료받는 경우는 심각한 경우들이 대부분이라 아군의 죽음을 가장 많이 보는 건 우습게도 의원이었다. 오늘은 몇 명이 죽었는지 셀 수 있는 정도면 양호하다. 연홍 련은 느릿하게 제 손을 펼쳐본다.

‘아직은, 괜찮다. 주화입마까진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내공은 원활하게 흐르고 있다. 연홍은 내공 운용력과 남들보다 빠른 회복력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주화입마에 빠지기 쉬운 것이 단점이었다. 제 회복력을 믿고 폭주한다거나 피에 계속 노출되어 피 냄새가 달콤하다 느끼는 정도까지 오면 그때는 위험하니까. 연홍이 그래서 흥분을 늘 제어하려는 거겠지. 이따가 피 좀 빼내야 하나. 누워있던 연홍 련은 고개만 돌려 서랍 위에 올려진 주전부리를 본다.

‘아 저게 있었지. 잊고 있었네. 누가 줬었더라.’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인데 전장에도 나가고 본대에 쏟아지는 환자도 돌보고 하니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치료에 대한 보답으로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절해도 계속 받아달라래서 마지못해 받았지만 자세한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 받았었지. 상하진 않으려나. 연홍 련은 몸을 일으켜 서랍에 다가가 주전부리를 확인하고 있자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와.”

문이 열리자 두 쌍의 발이 들어온다. 느직한 걸음과 성큼 다가오는 발걸음이 연홍 련에게 다가온다. 그녀는 제 옆에 드리운 그림자에 고개를 든다. 연홍 련은 손수건을 꺼내 팔을 뻗으려니 고개를 숙인 청명과 시선이 마주친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낸 연홍 련은 다가온 당보에게도 고개를 기울인다.

“어서 오세요, 두 사람. 이제 온 거예요?”

“씻고 오려 했는데 도사 형님이 누님 먼저 봐야겠다 해서 말이오. 처소에 있다니까 얼굴 좀 살피어왔소.”

능청이며 손을 흔드는 당보와 허리를 일으킨 청명은 그녀가 보고 있던 주전부리에 시선을 준다. 시선을 알아차린 연홍 련은 당과를 하나 집어 청명에게 내민다.

“아. 배고프죠? 받았던 건데 괜찮으면 나누어 먹을래요?”

상하진 않은 거 같으니까. 방금 돌아오고 했으면 허기졌을 거 같은데. 팔짱을 낀 채 내려보던 청명은 고개 숙여 한 입 받아먹는다. 우물이는 청명은 맛을 보더니 몸을 돌린다.

“씻고 온다. 기다려.”

“누님, 저도 하나..에헤이 도사 형님 검집에 손! 손대는 거 아닙니다! 여기 누님 처소입니다?”

청명은 검집에 검을 손대나 싶더니 당보는 잽싸게 연홍 련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잡는다. 당보의 얼굴로 검집이 날아들자 연홍 련은 고개 들어 피한다. 익숙한 그녀는 뻗어낸 청명의 팔을 붙잡는다.

“자자, 두 사람. 여기서 힘 빼지 말고 갔다 오세요. 제 처소에서 더 피 냄새 풍기지 말고요.”

질리도록 맡아온 냄새지만 적어도 여기서까지 맡고 싶지 않으니까. 이 둘이 싸우면 금방 엉망이 될 텐데 그건 사양이다. 연홍 련의 말에 청명이 멈춘다. 가늘게 내려보던 청명은 혀를 차며 검집을 돌려 잡아 당보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수작 부리지 말고 따라와.”

“아, 도사 형님. 내 발로 나갈 수 있다니까. 저도 체면이 있는데.”

“네가?”

당보는 어이가 없는 얼굴로 청명을 보지만 그의 고개가 돌아가자 금방 방긋 웃는다. 번개처럼 다녀간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연홍 련은 고개를 젓는다. 저 철부지들이 돌아오기 전에 다과상이나 준비해야겠다.

**

“누님, 이거 누구한테 받았소?”

연홍 련이 차린 주전부리를 먹던 당보가 묻는다. 연홍 련은 고개를 기울여 당보가 먹던 걸 본다. 아까 청명에게 건넸던 당과였다.

“글쎄, 워낙 많은 얼굴을 보니까 말이다. 사내였던 건 기억한다.”

맹에 있는 사람을 전부 알아보는 건 아니어도 인사해 본 적 있는 사람이면 기억할 텐데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다. 애초에 이름도 모르고. 같이 먹고 있던 청명은 연홍 련이 집어 든 당과를 보다 손을 붙잡아 받아먹는다. 연홍 련은 제 손을 붙잡은 청명을 삐죽이며 본다.

“굳이 제 걸 뺏어 먹어야겠어요, 오라버니? ”

“넌 단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심드렁한 청명은 연홍 련의 손에 묻은 가루를 핥아먹는다. 흐린 눈으로 보던 연홍 련은 잠시 움찔거리더니 청명의 입에 같이 묻은 가루를 털어낸다.

“많이 못 먹는 거지, 단 건 좋아해요. 맛은 볼 수 있잖아요.”

“그건 안 되겠습니다, 누님. 누님한텐 너무 달아서 못 먹겠네요. 제가 처리하겠소.”

당과를 든 상자를 닫아낸 당보는 자연스럽게 처소를 나선다. 한 입도 안주고 쏙 들고 가버리네. 문을 바라보던 연홍 련이 제 옆에 앉아있는 청명을 훑는다. 머리카락에 묻은 피와 깨끗해진 도복을 보니 아까보단 사람 몰골 같아졌다. 걱정되어 바로 얼굴 보러와 놓고 무뚝뚝한 표정의 청명을 보니 연홍 련은 부드럽게 웃는다.

“잘 다녀오신 거 같네요.”

“마교새끼 족치는 게 뭐 어렵다고.”

청명은 쉽게 말했지만 마교는 강하다. 그들은 생존 욕구가 결여된 광신도들이다. 손속도 잔인해 망설이는 순간 목에 구멍 날 수도, 형체를 못 알아볼 정도로 우그러뜨리는 건 기본이니까.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눈앞의 이 사람인데도 이렇게 사지 멀쩡히 찾아온 건 오랜만이었다. 연홍 련은 코웃음 치며 반박한다.

“당신 몸이 멀쩡한 날이 있어야지. 당보랑 같이 다니면 덜 다치겠지 싶었는데 둘이 더 사고치고. 내가 앓느니 죽지, 내가.”

하루는 시체가 걸어온 건가 싶게 엉망인 상태로 오지 않나. 본대에서 사파놈들 보인다 싶으면 눈 뒤집으며 두들겨 패지 않나. 두 사람이 사고치고 한 것들을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른다. 연홍 련의 반응에 청명은 피식 웃는다. 그녀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두툼한 엄지로 꾹 누른다.

“농담이라도 죽는다는 말 하지 마, 걱정되니까.”

“그럼 걱정하지 않게 몸 좀 사리던가. 종일 환자를 돌보는 와중에 자기 몸이 헝겊 인형인 줄 알고 넝마로 돌아오는 정인을 매번 마주해보세요. 욕이 안 나올 수가 있어야지!”

연홍 련은 화를 참기 위해 팔짱을 끼고 청명의 어깨에 기댄다. 화는 나면서 제게 기대고는 싶은 그녀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작게 웃은 청명은 둥근 어깨를 감싸 잡아 이마에 입을 붙이며 다독인다. 서툴지만 따뜻한 손길에 기분이 나아지는 거 같다. 가만히 다독임을 받던 연홍 련은 청명의 가슴팍을 손으로 짚는다.

“상처 확인해야 되니까 누워보세요. 붕대 맸어요?”

“됐어. 멀쩡해.”

“당신이 의원이야? 잔말 말고 벗어.”

가녀린 손이 거침없이 청명의 멱살을 틀어잡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낸 청명은 연홍 련의 시선을 피한다. 어째 날이 갈수록 애가 거칠어지는 거 같단 말이지. 청명의 시선이 가늘게 연홍 련을 흘기니 제게 들이민 얼굴은 굳게 다문 입으로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청명은 끙 앓는 소리를 내다 한숨을 내쉰다.

“..알았으니까 놔봐라. 말을 못하겠네.”

청명의 말에 연홍 련은 순순히 멱살을 놓는다. 구겨진 옷을 툭툭 터는 청명은 옷깃을 잡아 상반신을 드러내 보인다. 어깨에 베어진 흉터 자국과 가슴에 베인 칼자국, 그 밖의 무수한 상처를 살피는 연홍 련은 가장 짙은 자상부터 지그시 눌러 청명의 안색을 살핀다. 움찔인 거 같아도 고통스럽기보단 견딜만한 아픔이라는 반응에 연홍 련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회복은 잘되고 있지만, 흉은 남겠네. 시간만 충분했어도.’

확인을 끝낸 연홍 련은 상처에 금창약을 덧바른다. 그가 전장에 나타나기만 해도 전장의 분위기가 달라지니 절대 고수의 존재는 그만큼 크다는 걸 연홍 련도 알고 있다. 다만 흉이 안질만큼 회복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입이 쓸 뿐이었다. 만들어둔 연고로 화상자국에도 바르고 있자니 처소로 들어오는 인기척에 연홍 련이 시선을 던진다.

“보야, 거기 붕대 좀 가져오렴.”

돌아온 당보는 연홍 련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고 붕대를 가져와 건넨다. 자연스레 받아서 든 그녀는 청명의 몸에 붕대를 새로 감아낸다.

“외상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완전히 나은 건 아니니 이틀은 더 감고 있어요. 안 그래도 영약도 부족한데 무리하지 말아요. 아시겠어요?”

“잔소리.”

“한마디만 더하면 대침으로 입 꿰맬 줄 알아요.”

보수작업이긴 하지만 이것도 그나마 나아진 거다. 그 전엔 다치고도 치료는커녕 술이나 찾던 양반을 당보가 붙잡아와 이렇게 처소에서 치료하는 것도 최근이니까. 쉬어줘야 되는 상태임에도 본인이 자꾸 나서려 하니 돌아오면 제 눈으로 확인이라도 해야했다. 청명의 치료를 끝낸 연홍 련은 옆에 자리한 당보를 본다.

“너도 오라버니가 나서려 하면 좀 말리거라. 명색에 매화검존이신데 이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비상사태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잖으냐.”

“에이 누님, 저 말코도사가 말려지면 제가 이 고생을 하겠습니까? 말이 통해야 말려보기라도 하죠.”

“약해빠진 새끼가 말려봤자지.”

“이 형님이 또 왜 이러시나. 비도 박히지 않게 뒤통수 조심하쇼. 저 암존입니다?”

옷을 추스른 청명이 심드렁히 대꾸하니 핏대 세운 당보가 추혼비를 꺼내 던지는 시늉을 한다. 이 오라버니 주둥이도 문제지만 당보도 한 성격 있는 아이인데. 연홍 련은 두통이 몰려와 저절로 이마를 짚는다. 고개를 잠시 털어낸 그녀는 당보의 어깨를 짚고 내상에 대한 회복을 시작한다.

“두 사람 조용히 있어 주겠어요? 치료에 방해되어요.”

푸른 기운이 넘실이며 치료하는 연홍 련의 말에 당보는 장포에 손을 넣어 얌전히 가부좌를 튼다. 청아한 기운이 몸 속을 돌면서 내장에서부터 느껴지는 피 냄새가 날아가는 것 같다. 치료를 끝낸 연홍 련은 당보에게 손을 뗀다. 이렇게 자주 싸우면서 전장에선 어떻게 서로 등을 맡기는지. 당보는 몸을 돌려 연홍 련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춘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내상 치료는 누님을 못 따라가겠소? 말하면서 독기를 정화하는 게 쉬운 건 아닐 텐데.”

내공운용에 내로라하는 연홍이라지만 그녀만큼 빠르고 섬세하게 치료하려면 그녀의 혈육인 연홍 가주정도 되어야 될 것이다. 내력을 불어넣으며 말을 하는 건, 내력의 수발이 입신의 경지에 든 무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명의 발이 당보를 시원하게 걷어찬다. 청명은 연홍 련을 뒤에서 끌어안아 험상궂게 그를 노려본다. 제 것을 건드려 불쾌함을 가득 담은 사냥개의 눈이었다.

“어딜 주둥이를 붙여? 음흉한 뱀 새끼가.”

“아야야, 저 도사 형님 성질머리하곤.”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리하는 당보가 투덜 인다. 연홍 련은 청명의 허벅지를 붙잡아 제 뒤에 있는 그를 혼낸다.

“환자를 때리면 안 돼요, 청명 오라버니.”

“수작 부리는 새끼가 잘못한 거지. 내가 혼나야 되는 거야?”

청명은 불만스러운지 다리를 잡던 연홍 련의 손을 잡아 손가락으로 손등을 닦아낸다. 연홍 련은 못 말린단 듯이 비어있는 손으로 청명의 머리를 쓸어 만진다.

“그렇다고 폭력으로 정당화하면 못써요. 치료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치면 의원으로서 얼마나 맥 빠지는지 알아요?”

“시간 지나고선 괜찮나?”

“제 처소에서 또 싸우시면 내쫓을 거예요.”

어린 아이를 훈계하듯이 경고하는 연홍 련은 손을 빼려 하니 붙잡힌다. 가까워진 매화 색 눈에 순간 멈칫한다. 고개를 숙여낸 청명은 연홍 련의 목을 잘근 물어내자 몸을 움츠린 그녀는 청명의 머리를 붙잡는다. 당보도 있는데 갑자기 엄청 과감한 짓을 하고 있잖아!

“잠깐, 오라버니..!”

연홍 련이 밀어내자 청명의 머리가 흐트러졌지만 그는 개이치않고 시선을 내려본다. 가느다란 목에 잇자국이 생긴걸 내려본 청명은 씩 웃는다.

“…쉬고 있어. 넌 따라 나와라.”

머리를 톡톡 다독인 청명은 당보에게 시선을 준다. 턱짓으로 문을 가리키는 청명의 말에 당보는 순순히 따라나선다. 나가기 전 고개를 돌린 당보는 목을 가리키며 능청스레 웃는다.

“형님 말대로 쉬는 게 좋겠소, 누님. 좋은 꿈 꾸쇼.”

당보까지 나가며 문이 닫히자 연홍 련은 황당함도 잠시 목을 문지르며 뒤늦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다.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이상하네. 청명도 그렇고 당보도 휴식을 권하는 걸 보니 둘이서 뭔가 작당이라도 하려는 건가? 수상함을 느낀 연홍 련은 곧 피곤함에 머리를 잠시 흔든다. 궁금하긴 하지만 따라갔다 골치 아픈 일에 엮이는 건 싫다. 저 둘이 사고 치기라도 하면 맹에서 부를 테니 지금은 쉬기로 하자.

**

당보가 발출한 비도가 섬전처럼 허공을 갈랐다. 바쁘게 움직이던 그는 어디선가 날아오는 머리통을 고개를 기울여 피한다. 자세가 무너져 쓰러진 마교도의 시체에서 비도를 회수한 당보는 전방을 살핀다. 마교도들이 시커멓게 밀려들고 있다. 보기에도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살기 속에 보라색 검기가 흩날린다. 검이 춤 출 때마다 마교도의 목에 세차게 피가 솟구친다.

“커헉!”

“불신자를! 처…단…….”

마교도가 하나둘, 썩은 짚단처럼 쌓인다. 가라앉은 제비꽃 눈동자의 눈이 혈광을 뿜는 마교도와 마주친다. 거무튀튀한 손이 날아드는 검을 막아 가녀린 목줄을 뜯어내기 위해 거침없이 손을 뻗는다. 연홍 련의 검이 마교도의 손에 맞닿기 직전, 손목을 꺾어 칼끝이 기울여진다. 미끄러지듯이 마교도의 겨드랑이까지 침투한 검이 유려한 선을 그린다.

촤아악!

질긴 고무 같은 마교도의 팔과 목이 잘려 나가 피를 흩뿌린다. 또 하나의 검이 날아가는 마교도의 머리를 세로로 잘라내니 낙과처럼 바닥에 철퍽 인다. 마지막 마교도의 심장을 찌르자, 연홍 련의 어깨너머로 칼날이 뻗어 나온다. 고개를 들려 하자 연홍 련의 뒤로 기다란 손이 그녀의 눈을 가린다.

“누님. 이제 괜찮소.”

“…보야, 시야 가리지 마.”

쉼 없이 쏟아지는 저주와 살을 저밀 듯 쏟아지는 살기에 겨우 숨이 트였다. 주변을 감싸는 검은 기운이 물러나자 연홍 련은 작게 타박한다. 당보의 눈이 연홍 련을 내려보며 상태를 살핀다. 검은 무복에 붉은 피가 여기저기 묻어있다. 마지막에 죽은 놈이 단마수를 그녀에게 주입했는지 검을 잡은 손이 검붉게 물들어있다. 연홍 련의 손을 감싼 당보는 마교도에게 꽂힌 검을 빼낸다.

“손이 찹니다. 저한테 기대세요.”

“알았으니까 네 손부터 치워봐. 검 들고 있는데 위험하게.”

“누가 누굴 걱정합니까? 저랑 도사 형님이 있는데.”

당보의 팔이 연홍 련의 허리를 감싸 뒤로 물린다. 연홍 련이 물러난 걸 확인한 청명은 축 늘어진 마교도의 몸을 걷어찬다. 매화검을 털어 검집에 정리한 청명이 연홍 련에게 다가가자 당보의 손이 그녀를 풀어준다. 가로막힌 시야가 밝아지니 연홍 련은 제 앞에 다가온 청명을 올려본다. 서늘한 표정으로 내려보던 청명은 손등으로 연홍 련의 뺨에 튀어진 피를 닦는다.

“여긴 왜 왔어. 위험하게.”

“사천까지 와서 사고 친 게 누구인데 지금 그 소리가 나와요?”

연홍 련은 청명이 하던 것처럼 칼에 묻은 피를 털어 한 쌍의 검을 정리한다. 이들은 원래 본대에 돌아가야 했으나 사천에 마교가 나타났다는 말에 연홍 련은 이탈한 두 존을 데리러 온 역활이었다. 마교도의 수가 꽤 많아 손이 필요하겠다 싶어 나서게 됐지만 결과적으론 셋 다 무사했다. 별동대를 찾아 박살 내기까지 했으니 적어도 남쪽으로는 한동안 이들이 침범하진 못할 테니까.

“싸가지없게 명령질이나 하니 그렇지.”

한숨을 쉬는 연홍 련이 관자놀이를 짚는다. 반로환동하면 정신나이도 멈추는 것도 아니고. 어린 놈이 명령한다고 그걸 무시하고 들쑤시는 이 사람이나 그걸 따라가는 당보 놈이나 제정신이 아니다. 이 두 미친놈을 어찌해야 할지. 당보는 연홍 련의 옆을 기울이면서 큭큭 웃는다.

“누님도 지휘부가 반대 했을 텐데 오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된 거 축하주 어떻습니까 두 분?”

술잔을 기울이는 시늉을 하는 당보의 말에 두 사람의 반응은 상이했다. 청명은 피식 웃는 반면, 연홍 련은 표정을 구긴다.

“지금 술 얘기가 나와? 당신들 뒷수습은 이제 내 담당이지 아주.”

마교는 제압했지만 할 일은 늘어났다. 사상자를 추려 장례를 치르고 치료를 해야 했다. 돌아가면 보고도 올리게 생겼고. 원치 않은 추가업무지만 어쩌겠나. 전쟁에서는 이런 일이 부지기수다. 아무리 하루가 멀다하고 죽은 사람이 나오지만 사람의 도리는 해야 했고 자신은 의원이다. 시체를 돌아보지 않고 갈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남은 이를 챙겨야 하는 건 자신이니까. 청명은 불만스러운지 연홍 련의 손을 잡아 이끈다.

“그걸 왜 네가 다 해.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으니까 순찰대 불러와.”

“에이, 누님한테만 일을 다 맡기겠소? 셋이서 마신 지도 꽤 됐는데 이왕 이탈한 거 누님도 어울립시다.”

연홍 련은 얄미운 듯이 둘을 보다 한숨을 내쉰다. 말은 달라도 결론은 둘이 똑같다. 이 둘이랑 있으니 자신도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다. 두 사람과 걷던 연홍 련은 비어있는 손으로 당보를 붙잡는다. 시선이 모이자 연홍 련은 싱긋 웃는다.

“은근슬쩍 빠지려 하지 말아요, 두 사람. 수습할 거면 당신들이 해결해야지 어딜 도망가. 술은 그 이후야.”

“...예, 그럼요. 누님.”

마지못해 대답한 당보와 머리를 긁적이는 청명은 연홍 련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다. 이를 본 사람들의 시선이 힐긋 이며 덩치 큰 두 사내를 끌고 가는 여인이 세간에 자자한 명의이자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접혈귀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

“그럼 이제 누님도 별호가 생긴 겁니까? 꽤 살벌한 별호던데.”

“…마음에 안 들지만 말이지.”

연홍 련의 우측에 앉은 당보가 삼베로 비도를 닦고 있다. 피를 씻어낸 연홍 련은 표정을 구기면서 술을 기울이고 있다. 접혈귀. 협상행 이후로 사파가 합류하면서 그들끼리 통용되는 별호였다. 무희로도 지내봤고 했으니 별호는 별 감흥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들으니 너무 살인마 같은 별호라 유쾌하지 않다. 좌측에 앉은 청명은 연홍 련에게 술을 따라준다.

“왜, 덕분에 귀찮게 굴 새끼들도 없고 좋잖아.”

“없기는요. 이상한 오해가 생겨서 더 곤란하다고요.”

대게는 두 가지의 반응이었다.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호승심을 못 이겨 자신에게 덤비거나. 그전까지는 어려워하는 건 있어도 겁먹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이젠 눈치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탈한 소식도 언니에게 알려졌을 텐데 예상보다 조용한 것도 그 탓일까.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자니 순찰대도 뒤늦게 도착했다. 나머지는 그들에게 인수인계했으니 지금은 쉬어도 괜찮겠지. 청명의 손이 연홍 련의 뺨을 매만진다.

“뭐야, 그럼 내가 해결해줘?”

“더 오해를 만들 생각이에요? 오라버니는 안 다치는 게 절 위하는 일이니까 무리나 하지 말아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당보는 비도에 날을 갈아내고 기름을 바르고서야 의아한 얼굴로 연홍 련을 본다.

“둘이 정인 사이인 거 알 사람은 다 알 텐데 상관없지 않소?”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