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 드림] 매화연(梅花燕)
유료

[화산귀환/검존드림] 매화연(梅花燕)

12. 치료

* 적폐 / 날조 / 캐해석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매화연 유료 분량의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 두 사람의 꽁냥을 이어 볼 수 있습니다. (유료입장)

“..그래서, 생각해보셨습니까? 청문진인?”

매화향이 짙은 화산의 전각. 청문의 처소에 세 명의 인물이 모였다. 연홍세가의 가주 연홍 화와 소가주인 연홍 련, 화산의 장문인 청문. 청문은 진중한 얼굴로 자신에게 묻는 연홍 화를 본다. 그는 침음을 흘리더니 마지못해 입을 연다.

“하아... 알겠습니다. 가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겠소.”

청문의 대답에 연홍 화는 고아하게 웃는다.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매화꽃이 잔 속에서 찰랑인다.

“다음에 뵐 땐 맹이 모이는 자리에서 인사 드리겠군요. 청문진인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연홍에서 최선을 다하지요.”

연홍 련 역시 연홍 화의 옆에서 차를 마시며 둘을 본다. 둘 사이에 얼마나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청문진인이 제 언니에게 휘말렸다는 건 알 수 있다. 저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까. 비슷한 위치와 나이대임에도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구나. 겉보기로는 언니가 이립으로 보여도 자신과 띠동갑 차이니까. 청문은 수염을 매만지며 끙 앓고 있는 사이 눈꼬리를 휘며 즐거워하던 연홍 화의 시선이 연홍 련을 본다.

“그럼 소가주, 의약당주에게 가서 필요한 약재에 관해 물어보고 지원해주거라. 마화에 관한 대응책도 알려줘야 되니 네 역활이 크겠구나.”

“네. 말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연홍 련은 그녀에게 인사한 뒤, 처소를 나간다. 방문을 닫아낸 연홍 련은 얼마 안 가 제 앞에 닿는 온기에 멈춘다. 연홍 련은 자신을 안고 있는 이를 바라보다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든다. 청진이 다가오자 연홍 련은 머쓱하게 웃으며 묻는다.

“..죄송합니다, 청진 도장. 아이가 곤란하게 했나요?”

“아닙니다. 애들이랑 어울려보라곤 했지만 도통 안가더군요. 제 옆에 붙어있더니 소가주님께 바로 가는 게 어지간히 따르나 봅니다.”

머리를 긁던 청진은 연홍 련에게 안겨있는 아이를 본다. 제 또래들보다 어른을 더 편애하는 신기한 아이였다. 먼저 다가온 걸 봐선 낯은 안 가리지만 이상하게 계속 따라오더니 그 나이답지 않게 얌전히 앉아 지켜본다. 신경 쓰여 아이가 읽을만한 책자를 하나 꺼내주긴 했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몇 장 넘기더니 문 열리는 소리에 바로 이리 튀어나올 줄은. 청진의 말에 연홍 련은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얌전히 기다리겠단 약속 때문에 그러니? 아직 일이 남아있어서 조금 더 있어야 될 텐데.”

“기다릴게. 매화 보면서.”

아이의 손이 매화나무를 가리킨다. 본래 이 아이는 사파의 손에서 자랐다. 구파일방에 관한 특징을 사파들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 날 내 머리에 장식된 매화참 때문에 화산파로 착각했지. 중상자였던 아이는 영단 때문인지 어려서 그런지 회복속도가 빨랐다. 화산에 간다는 말에 따라오고 했지만 관심이 있는 걸까. 연고가 없는 아이라 지금은 연홍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 연홍 련은 청진에게 고개를 돌린다.

“바쁘신 분께 죄송하지만 조금 더 아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에... 뭐, 괜찮습니다. 저보단 제 사형들이 바쁘니까요.”

연홍 련은 눈을 깜박인다. 청명이 안 보인다 싶더니 토벌을 가신 건가. 그 날 청명을 만난 건 당보가 그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지만 그도 바쁜 사람이지. 새삼스럽게 느낀 사실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연홍 련의 눈이 가라앉는다. 연홍 련의 반응에 청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가주님. 사형이 명줄이 질기기도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니까요. 괜히 매화검존이겠습니까?”

청진의 말에 연홍 련은 그저 웃는다. 그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등을 맡겼기도 한 만큼 청명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당보가 제때 치료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 때문에 신경 쓰인다. 

정기적으로 구휼을 하고 진료를 다녀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 다치는 사람은 하루가 지날수록 늘어났고 움켜쥔 주먹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사각지대에 죽어가는 이는 점점 늘어난다. 그 과정에서 제가 알던 이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그때마다 느끼는 무력감에 짓눌리지 않도록 각 문파에 방문해 약재와 영단을 지원하고, 마화에 대한 대응을 의약당주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보다 더 많은 이가 살아남을 수 있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진 도장. 그럼 아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의 미소 짓던 연홍 련은 아이를 청진에게 맡기고 의약당으로 걸어간다. 필요한 약재는 문파마다 차이는 있긴 하겠지만 금창약은 충분히 있어야 될 텐데. 연홍에서도 틈틈이 만들고 있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바닥이 드러날 테니까. 의약당에 도착한 연홍 련은 문을 두드린다. 반응이 없자 조금 더 크게 두드리려니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뭐지? 연홍 련은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야 이 미친놈아 가만 있어 봐. 붕대 감아야 된다니까!”

“아 무인이 다치고 할 수도 있는 거지, 뭘 이리 호들갑은!…”

청명의 허리를 붙잡는 의약당주와 윽박지르는 청명이 씨름하고 있다. 그는 상의를 덜 갖춰 입은 채 도복 사이로 덜 감긴 붕대와 붕대 사이로 핏자국이 울렁인다. 연홍 련의 얼굴이 굳어진다. 처음 그의 몸을 봤을 때만 해도 저렇게 상처가 많지 않았다. 오래된 상처부터 흉터 자국까지 붕대가 감기지 않은 부분에도 손만큼이나 상처투성이였다. 청명은 뜻하지 않게 연홍 련을 발견하자 당황도 잠시 어색하게 인사한다.

“어……와있었네?”

청명은 끈질기게 붙잡는 의약당주를 밀어내려 했다. 이것보다 더 심하게 다쳤을 때도 자신은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이 정도 상처는 술 마시고 자고 나면 낫는 건데 의원들은 하나같이 호들갑이다. 귀주에 있을 애가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야? 청명의 손이 슬그머니 뒤로 빠진다. 굳어있던 연홍 련은 성큼성큼 청명에게 다가간다. 청명은 뒤로 물러나 덜컹 침상에 앉는다. 제비꽃 눈동자가 번득이며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청명의 앞까지 다가온 연홍 련은 한쪽 무릎을 침상에 걸쳐 청명의 어깨를 잡는다. 기세에 압도된 청명은 흠칫하며 연홍 련을 올려보니 비수라도 꽂아낼 것처럼 차가운 시선이 내리꽂힌다. 이제 보니 도관에서 화낸 건 화낸 것도 아녔다. 꼬맹이가 혼내봤자 얼마나 무섭겠나 싶었지만 정정한다. 장문사형만큼이나 화내게 해선 안되겠다고. 연홍 련의 낮은 목소리가 유독 가라앉아 날이 서 있다.

“환자가 얌전히 치료 받아야지,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검존 목숨은 두 개라도 됩니까?”

시선만으로 쏘아붙이니 청명은 입이 바싹 마른다. 그녀를 무시하다 큰코다친 상황이 민망한지 청명의 목이 움츠려진다.

“이 정도는..”

“닥치고 치료받아. 입에 대침 박고 싶으면 더 지껄이고.”

고개를 기울여 낮게 욕하는 연홍 련의 손에 기다란 대침이 청명의 입가에 겨눠진다. 깨끗이 손질된 대침이 불빛에 반사되니 유독 날카로워 보인다. 입을 다문 청명을 내려보는 연홍 련은 어깨를 잡은 손을 꾹 잡는다. 침상에 청명을 밀어 눕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의약당주 본다.

“..의약당주님이시지요? 실례가 안된다면 검존의 치료를 제가 거들어도 되겠습니까?”

좀 전에 청명에게 지었던 살벌한 표정이 아닌 사근사근한 미소를 짓는다. 기백은 여전한지 연홍 련의 기세에 압도된 의약당주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저 미친놈을 제압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순간 자신이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그러기엔 저 미친놈의 반응이 처음 보는 반응이었다. 연홍 련은 미소로 화답하여 작게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당주님.”

대침을 정리한 연홍 련은 청명에게 시선을 돌린다. 우선 붕대부터 제대로 해야겠다. 연홍 련은 그의 몸에서 덜렁이는 붕대를 먼저 잡는다.

“숨 내뱉으세요, 검존.”

연홍 련은 청명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피가 울렁이는 부분을 좀 더 꽉 매어낸다. 윽하는 낮은 신음과 함께 청명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어째 감정이 들어간 행위 같았는데. 청명은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흘긴다.

“야이... 이렇게까지 꽉 매면 갑갑한데.”

“지혈해야 하니까 당연하죠. 얌전히 계세요.”

태연히 맞받아치는 연홍 련은 붕대를 감아내기 시작한다. 침상에 반쯤 걸쳐 앉은 연홍 련의 손이 청명의 허리를 감싸낸다. 품에서 금창약을 꺼낸 그녀는 붕대 위로 드러나진 상처들을 손끝으로 바른다. 청명은 치료에 집중하는 연홍 련을 힐긋 이며 지켜본다. 어쩐지 서안에서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이렇게 치료하곤 했었는데. 다른 거라면 손바닥이 아닌 제 상반신이 되니 심히 민망하지만. 시선을 내리 깐 제비꽃 눈동자가 익숙하다.

‘전보다 말라진 거 같은데. 밥은 제대로 먹나 이 녀석.’

안그래도 가벼운 녀석인데. 저번에 안았을 때 어땠더라. 검을 차고 있는 게 이젠 이 녀석도 검수라는 걸까. 손끝은 여전히 부드럽다. 익숙해지면 자신과 손이 비슷해지려나. 그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놓게 할 생각은 없지만 궁금하기도 하다. 무희가 아닌 검수로서의 그녀라. 금창약까지 발라낸 연홍 련은 침상에서 나와 이불로 청명의 목까지 덮어낸다.

“치료는 끝냈지만 상처가 다시 재발하면 안되니 사흘은 금주하고 푹 쉬세요.”

연홍 련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청명은 눈을 부릅뜬다. 영단을 먹이면 보다 빨리 회복하겠지만 이 사람의 몸에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다. 이 정도로 상처가 많으면 움직였다 동시다발로 상처가 재발하면 내상까지 갈 것 없이 외상만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 자가 치료가 가능하다고 제 몸을 막 쓰다가 객사하기 딱 좋은 전형적인 유형이지 않은가. 사흘도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기간이다.

“몸에 곰팡이가 피겠는데.”

“사람 몸은 재정비를 위해선 휴식이 꼭 필요하답니다. 말 들으세요, 검존.”

제 속도 모르고 투덜이는 청명의 말에 연홍 련은 옅게 욱한다. 잠시 소동이 있었지만 용건은 이게 아니었는데. 치료를 마친 연홍 련은 고개 돌려 의약당주를 본다.

“후우... 실례가 많았습니다, 당주님. 다름이 아니라 의약당에 필요한 약재와 영단을 파악하고 싶어 들렸습니다만. 마화에 관해서 얘기 드릴 것도 있고요.”

“예에. 물론입니다, 소가주님. 여기 장부를 보시면..”

의약당주는 장부를 가져와 연홍 련에게 내민다. 연홍 련은 장부를 살펴 의약당주에게 필요한 정보를 듣는다. 청명은 침상에 기대앉아 옷을 추슬러 연홍 련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저렇게 보면 참 성실하고 참한 여인인데 왜 자신이랑 있으면 요망하고 짓궃은지 희한한 일이었다. 누워만 있기엔 찌뿌둥한데. 얘기가 오래 걸리나. 의약당주와 얘기하는 연홍 련이 안심한 듯이 미소 짓는다.

“-그럼 검존이 사흘간 쉬어도 무리는 없겠군요.”

“저 놈이 규격 외라서 그렇지 다른 청자 배도 어디 가서 맞을 인간들은 아니니까요. 어지간한 놈들은 그놈들 선에서 해결될 거니 사흘이라면 문제 없지…만…”

의약당주는 말을 하다 애써 무시하고 있던 시선이 점점 강렬해지니 슬쩍 연홍 련 너머를 흘겨본다. 인상을 팍팍 구기는 게 아주 심술이 잔뜩 나 있다. 화 맞기 전에 도망쳐야 되는데. 저 미친놈을 술을 안 먹이고 붙잡아 두려면 장문인이 나서야 될 텐데. 하다못해 당과라도 있었으면. 소가주를 여기 두고 도망가도 되나. 그렇지만 좀 전에 소가주가 붕대를 감으니 놀랍도록 얌전하던 녀석이였으니 괜찮을 것도 같고. 빠르게 판단한 의약당주는 연홍 련에게 포권한다.

“그... 그럼 말씀 주신대로 시도해보겠습니다, 소가주님. 전 이만 바빠서!”

빠르게 의약당을 나가 문을 닫아낸 의약당주의 뒷모습에 연홍 련은 닫힌 문을 얼빠지게 본다. 아니 나간다면 내가 나가야지 당신이 나가면 어떡해. 전시 상황엔 의원이 바쁘게 움직여야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연홍 련은 찜찜함을 누르고 몸을 돌려 청명을 본다. 좀 전의 인상 쓰던 얼굴과는 다르게 청명은 무심한 얼굴로 연홍 련을 지긋이 본다. 연홍 련 역시 평온한 얼굴로 청명에게 다가가 침상 근처 의자에 자리한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분위기에 청명이 못 견뎌 입을 열려니 연홍 련이 먼저 말했다.

“미안해요.”

뜬금없는 사과였다. 청명은 의아하게 연홍 련을 보니 그녀는 조금 피로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낸다.

“청명 오라버니는 저랑 다르니까. 강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모두가 말한다. 매화검존은 강하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은 그가 늘 걱정이었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늘 나를 구해줬으니까. 붕대 위로 새어 나오는 피가 시선을 잡았다. 항상 구기던 표정에서 고통에 반응하는 미간에 절로 화가 났다. 분노나 고통엔 솔직한 사람이 제 앞에서 상처를 숨기려 한 점이 제 신경을 건드렸다. 그건 분노와 동시에 자기혐오였다.

‘내게 치료는 고통을 줄이는 행위지 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니까.’

그건 자신에게 해당하는 행동이지 다른 사람은 다르다. 자신에게 회복은 시간만 주어지면 되었다. 청명에게서 제 모습을 보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부터 냈지만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기도 했다. 좀 더 정갈하게 얘기했어야 했는데. 흥분하는 걸 제 언니가 봤다면 아직 부족하다고 했을 거다. 연홍 련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좀 더 몸조심해주세요. 약속해주세요.”

평소의 사근사근한 목소리 아래 청명을 보는 눈은 감정을 삭히고 있는지 다물어진 입이 무거워 보인다. 청명은 장난스러운 모습과 달리 진지한 모습에 민망한 듯이 작게 뺨을 긁적인다.

“…미안.”

연홍 련의 눈이 여전히 가라앉아있다. 청명은 난감해졌다. 의약당에 들어오고부터 제게 웃지 않으니 애가 탔다. 저번에는 꽃이라도 주었지만 지금은 꽃도 없다. 침상에서 나왔다간 정말 대침이라도 들이밀 거 같고. 여인을 달래본 경험이라곤 있을 리가 없는 도사 청명은 고민 끝에 느리게 손을 뻗어 연홍 련의 뺨을 감싸낸다.

“...좀 야윈 거 같은데.”

연홍 련은 느리게 눈 감는다. 긴 속눈썹이 감긴 채 고개 기울여 뺨을 쥔 청명의 손에 얼굴을 기댄다.

“전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하나가 의원이니까요. 전 그들을 이끄는 소가주고요.”

크고 따뜻하다. 굳은살이 관자놀이와 입가에 닿고 하지만 그래도 좋다. 청명의 손에 기대있으니 서늘하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다. 연홍 련은 보일 듯 말 듯 옅게 미소 짓는다. 가만히 지켜보던 청명 역시 피식 웃는다.

‘이제야 웃어주네.’

청명의 손가락이 눈가를 쓸어본다. 기분 탓인가 싶었지만 무리했던 거겠지. 저 작은 어깨에 청문처럼 책임지는 이들을 이끄느라 애쓰는 걸 보니 안쓰럽기도 하지만 이젠 안다. 이 여인이 소가주로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청명은 그녀의 성실함이 싫지 않았다.

“..그거 기특하네.”

드물게 청명이 칭찬하자 감겨있던 연홍 련의 눈이 청명을 본다. 제비꽃 눈동자가 깜박이며 놀라는 것도 잠시, 눈꼬리를 휘며 청명에게 말한다.

“칭찬해주실 거면 다른 걸로 해주면 안 돼요?”

청명은 게슴츠레 눈을 흐린다. 침울해 있던 걸 달래줬더니 평소의 그녀로 돌아왔다. 괜히 칭찬해줬나.

“이게 또 까부네. 환자는 쉬라면서.”

“사흘간은 금주시니까 대신 써주셔도 되는데, 이거.”

연홍 련의 가느다란 검지가 자신의 입을 톡 건들이다. 휘어진 눈꼬리 아래 짓궂은 미소가 청명을 바라본다.

“청명 오라버니한테만 허락해주는 건데, 필요 없으세요?”

청명은 허, 하면서 짧게 헛웃음 짓는다. 여전히 제 손에 기대있는 연홍 련은 대답을 기다리듯이 자신을 본다.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저 미소가 얄밉도록 사랑스럽다. 언제봐도 적응되지 않는 앙큼함이다. 뺨을 감싸던 손에서 청명은 연홍 련의 귀를 쓸어 머리를 감싸 잡는다.

“다른 새끼한테 허락하면 너부터 각오해야 될 텐데.”

감당 할 수 있겠어? 라고 묻는 듯이 청명은 연홍 련을 노려본다. 목울대에 진동을 주어 낮게 그르릉이는 목소리 아래 얼굴을 들이미니 숨이 닿을 듯이 가깝다. 연홍 련은 청명의 그림자에 드리워진 와중에 제게 꽂혀있는 매화 색 눈동자에 시선을 떼지 않는다. 두어번 눈을 깜박이던 그녀는 고개를 기울여 청명에게 먼저 접문한다. 청명의 눈이 커지니 접문한 연홍 련은 여전히 청명을 바라보다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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