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청할배가 한없이 넋두리만 하는 짧은 글

*1600화까지 읽은 상태로 쓰는 글입니다. 최신화와 캐해석이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가끔 생각이 난다는 듯이 물었지.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는데 나는 너 없이 살 수 있냐고. 그 흰소리에 내가 뭐라고 대답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너는 네 멋대로 토라지거나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웃었지. 잊을 만 하면 묻고 또 물었지. 너 없이 살 수 있느냐고. 내게 물음을 던진 것도 구박을 받은 것도 다 잊었다는 듯이. 매번 처음 묻는 것처럼. 어쩌면 너는 내 말이 아니라 내 생각을 원했던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겠지. 지금도 그렇잖아. 너는 없고 나는 해괴한 조화로 여기 있으니. 이게 살아있는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이야. 멀쩡히 숨을 쉬고 움직이는 육신을 두고 죽었다 할 수는 없으니 난 너 없이도 살아갈 줄 안다 해야겠지.

그런데 그걸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희로애락은 마치 그림자 같아, 생전의 기억과 습관을 이어가는 꼭두각시 같아, 세상 그 무엇을 보아도 치열하던 그 시절처럼 마음을 울리지는 않는구나. 처음 보았던 그 마음이 피어나지는 않는구나. 늙음이란 이렇듯 사람을 허깨비로 만든다. 있음과 없음은 그 시절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데 사무쳐하는 법을 잃었으니 이를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냐. 내가 정말로 살아있는 것이냐. 삶의 찰나에 목매는 사람인 것이냐.

아직도 내가 사람인 것이냐.

때때로 허공을 딛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세상의 수레바퀴에 끼어 함께 돌아가면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이곳이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나. 생이 멀고 세상이 아득하다. 아니, 아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 도리어 그랬으면 익숙해졌을 것을. 너는 알지. 이 낯섦이 내게는 오래된 친구인 것을. 세상에 나 같은 것은 나 하나뿐인 세월 내내 그래왔던 것을.

그러나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고, 해가 저물면 잠을 자고, 누군가를 찾고 누군가의 부름을 듣는 한가운데서 돌연히 절벽이 나타난다. 발디딜 곳이 없어 꼴사납게 허우적거리면, 평생을 화산에서 보낸 내가 길을 찾을 수 없는 깎아지른 공허가 드러난다. 뺨을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가, 어떻게든 내 한 몸 있을 자리를 찾아보려 애를 쓰다가, 종내는 웃고 만다. 또 이것이로구나.

운무 위의 절벽 같은 그 공허는 나의 고향이기도 하지. 나는 거기서 나고 자란 것이나 다름없으니. 네가 오기 전까지 나는 세상을 낯설어하지 않는 법을 몰랐지. 삶이란 본래 이렇게 아뜩하고 곁붙일 것 없는 것인가 보다, 했는데.

너는 나를 추락시켰지.

기가 모이면 생이고 흩어지면 사이니, 있음과 없음은 유별하지 않고 모든 것이 혼원 같은 그 노을구름 속에서, 그 아름다운 허무에서 나는 언제나 힘껏 날갯짓하는 수밖에 없었지. 깃들 횃대를 본 적이 없으니 그게 무언지도 몰랐지. 그런데 네가 나를 끌어내렸잖아. 나를 땅으로 메다꽂았잖아. 내게 족쇄가 되어 땅을 디디게 했잖아.

보(步).

네가 나를 떨구어 날지 못하게 했으니 나는 걷는 수밖에 없었지. 걸음 아래 무언가가 있는 감각을 가르쳤지. 나의 무게, 생의 무게에 어깨가 내려앉고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라는 걸 알려주었지. 너와 함께 걸으면서, 뛰어다니면서, 온 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느껴 보고서야 나는 세상을 오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 그때 모든 것이 찬연했었지.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것마냥 신기하고 새로워서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자주 숨이 막혔지. 그때 나는 사람이었지.

그때야말로 사람이었지.

네가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바람에 나는 그만 낯섦을 낯설어하게 되었지. 공(空)을 두려워하게 되었지. 공을 두려워하는 도사라니, 우습지 않으냐. 이래가지고는 정말이지 말코 소리를 면할 수 없지 않으냐. 보, 나의 보야.

보야.

내가 이렇게 부르면 너는 이번엔 무슨 나쁜 꾀가 생긴 거냐 물었지. 그렇게 불러도 이것은 안 된다, 저것은 안 된다 어깃장을 놓았지. 나쁜 꾀는 네게도 많았고 안 된다 안 된다 투덜거리면서도 내게 휘말려주었지. 그게 너의 수줍음이고 두려움인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지. 보야. 너도 그게 나의 서투른 다정을 다 그러모은 것임을 나중에는 알았더냐. 내가 서툴러 두려웠더냐. 나는 너 없이 살 수 있어도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서 나보다 먼저 가기로 했던 것이냐.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

보야,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믿어서 나를 남겨두고 갔느냐. 그럴 수 있다 여겨서 여기 나를 혼자 두느냐. 혼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나에게 온갖 것을 다 가르쳐 놓고. 홍진(紅塵)의 물만 흠뻑 들여 놓고 흩어져 무가 되었느냐. 홀로 살 수 있는 나여서 이 낯설고 허망한 세상에 또다시 던져진 것이냐. 삶의 흉내가 익숙한 나여서 불려나온 것이냐. 할 일이 있었으니 이리되었겠지. 쓰임이 있으니 남겨두었겠지. 그러면,

그러면 나만큼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러니 보야, 있음과 없음에 이유 같은 게 있겠느냐. 없는 것을 찾는 일만큼 허무한 것이 있겠느냐. 그저 걸어가는 수밖에.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파도가 치면 발을 적시면서. 이유 없이 생겨났으니 이유 없이 사라질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하면서. 네가 가르쳐준 대로 오감을 세상에 부딪혀 살아가야지.

나의 보야.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있음과 없음이 매한가지라면 너 하나 정도는 있었어도 되었을 텐데. 대라천은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으니 네가 깜빡이며 살아있는 것 따위야 신선들에게는 티끌만한 차이도 못 되었을 텐데. 보야, 그때 너는 왜 그렇게 끈덕지게도 물었던 것이냐.

내가 너 없이…….

네가 없는 세상 속 나를 근심했더냐. 내가 휘청거릴 것을 알았느냐. 내가 생각해보기를 바랐더냐. 소용없는 일이다. 물을 수 있었을 때는 묻지 않았고 이제는 물을 수도 없으나, 일찍이 알아 마음을 도사려 먹고 홀로 살아갈 준비를 했더래도 나는 비틀거렸을 것이다. 무를 견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 무가 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실체임을 알겠느냐. 네가 안겨준 없음이 생의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아, 나의 보야.

없음이 사무쳐 절절하다면 도리어 그 절절함으로 너는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니냐. 이 사무침은 네가 있다는 증명이 아니냐. 내가 살아있는 한 네 존재는 지워지지 않을 것이 아니더냐. 보야, 내가 너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내가 살아가는 한 너는 결코 무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보야, 네가 사람으로 만든 나는 여전히 사람이더냐?

나의 보야, 나는 살아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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