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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소병] 하고 싶었으면 알려주던가

어디서 오셨어요? / 님 머리 꼭대기에서요

2호땅굴 by 바삭바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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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공개(외전/후기 결제)

 

 

 

 

 

 


 

 

 

 

 

 

아주 덥지도 춥지도 않은 건조한 바람과 미지근한 기온. 높은곳에 위치한 지형 덕에 낮은 담벼락에만 올라도 손쉽게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화산의 일 년. 그중 초가을의 일이다. 평소라면 기껏해야 수련과 식사 메뉴에 대한 얘기나 빙빙 돌고있었을 담벼락 안의 입들이겠건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들떠있었다. 

 

 

“ 이야… 용기가 대단하시네 정말. ”

“ 그러니 말이다. 난 청명이놈 있는 곳에 신혼살림 차릴 생각은 꿈에도 못하겠던데 ”

“ 그럴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

 

 

곳곳에서 이어지는 혼인에 관한 간질간질한 대화들. 화산은 공식적으로 혼인을 허용하는 문파였지만 청명이라는 폭풍이 닥친 이후로 혼인은 무슨. 밥숟가락 뜨고 땀흘리고 잠드는 일상만이 반복되는지라 실질적으로 살림을 차린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떤 용기있는 제자 하나가 화산에서 살림을 차리겠다며 나온 것이었다. 당연스레 난리가 난 사람들과 술렁이는 분위기. 평소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던 주제이기에 너도나도 눈만 마주치면 서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물어보곤 했다. 평소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오늘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울 대화소재.

 

여기 절벽 아래가 훤히 보이는 담벼락 뒤. 그 분위기를 기회삼아 연모하던 상대를 쿡 찔러보는 구렁이가 한 마리 있었다. 

 

 


 

 

“ 자, 정산 끝! 앞으로도 받아먹은돈 한 푼도 남김없이 꼬박꼬박 보내라? 동전 한 닢이라도 빼먹으면… ”

“ 설마 이제와서 제가 도장을 등쳐먹으려 들겠습니까? 얼마를 들여 살려낸 목숨인데 차라리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말지 개수작 부릴 생각도 없습니다! ”

“ 자소단 한 알 받아먹자마자 이제 볼 장 다봤다며 얼굴빛 싸악 바꾼 새끼가 누구더라? ”

“ 그 언젯적 이야기를... ..쯧, 마음씨를 그렇게 옹졸하게 쓰니 온 천하에 이름을 날려봐야 좋다고 쫓아오는 처자 하나 없는겁니다. ”

“ 어쭈, 까분다? ”

 

 

이리저리 흩어진 녹채에서 보고된 정보들을 늘어놓고 회의하다보면 마무리는 항상 이리도 유치하게 끝났다. 내내 야박하게 굴며 구박하는 청명과 한번씩 발끈하며 찍찍대는 녹림왕. 이제는 뭐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니 기강도 잡을 겸 대가리를 한 대 쥐어박아주곤 다시 수련장으로 돌아가려던 때. 얼얼한 이마를 문지르던 임소병이 잡담을 걸어 청명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큼! 말이 나와서 얘긴데 도장은 혼인 생각 없습니까? 인기가 그렇게까지 없어요? ”

“ 없기는 무슨? 젊을땐 나 좋아 죽겠다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니가 봤어야 알지. 에휴, 말을 말자. 바빠 죽겠는데 뭔 혼인이야. ”

“ 지금도 젊어보이는데… ”

“ 시덥잖은소리 할거면 간다? ”

 

 

좀처럼 대화상대로 있어주지 않으려는 청명. 저 얼굴에 젊은시절을 말하는거면 뭐 걸음마 시절이라도 되는가? 생각하던 임소병은 기회를 놓칠세라 황급히 말을 이었다. 

 

 

“ 그래도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은가봅니다? 하도 돌같이 보길래 전 도장이 단수라도 되나 싶었습니다. ”

“ 시꺼먼 사내놈들 업고 노는 취미는 없어. ”

“ 뭐 사내라고 다 우락부락 시꺼멓답니까? 생전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 단정짓는 꼴이라니, 쯧쯔 ”

 

 

그 말을 듣는 청명의 눈이 가늘어진다. 임소병이 뭔가 목적이 있어 솥을 달구는 중이라는걸 눈치챘는지, 그는 반쯤 돌려두었던 몸을 담벼락에 툭 기대며 대꾸했다.

 

 

“ 그런걸 다 해봐야 아나. 너도 나랑 얼싸안고 짝짜꿍하는 상상하면 소름끼치잖아 ”

 

 

혹시나 싶어 던져본 뻔하디 뻔한 미끼. 아니라면 질색할것이고 맞더라도 정리할 생각이면 척이라도 하겠지. 임소병은 그 말에 사뭇 진지하게 상상해보는 듯 이마를 짚다가 으쓱인다. 

 

 

“ 상상과 현실은 항상 예상치못한 차이가 나는 법입니다. 모르죠, 의외로 좋을지? ”

“ … …너 혹시 단수냐? ”

 

 

평소라면 이 반응에서 거부감을 느끼곤 물러났을 임소병. 사람 관계에선 할까 말까 싶을때에 그냥 하지않는게 낫다는게 평소 그의 지론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충동적으로 마음이 비죽인다. 보통은 즉답하는 질문에 답이 나오질 않으니 눈을 가늘게 뜨는 청명.

" ...너... "

서두르지 말자.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반쯤 내려묶은 머리카락을 딱 보기좋게 간질일때까지 기다리던 그는 한껏 경계하며 서있는 청명을 향해 폭탄을 던져보았다.

 

 

“ 글쎄요. 같이 알아보시렵니까? ”

 

 

 

 

 

“ … ”

“ … … … ”

 

 

쩍 벌어진 입과 크게 뜨인 눈. 민망한 정적…

 

말은 없었지만 그 반응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괜찮다. 설마 이럴 것을 예상 못했을거라고? 내가 누구냐. 녹림왕이다.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는 자가 아니란 말이다. 그는 폭탄을 던지는동안 청명의 반응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두었다. 

부채를 촤악 펼치곤 비스듬히 돌아선 임소병. 그는 제 입을 가리곤 뻔뻔히 말했다. 

 

 

“ …라는 제목의 서책을 찾고 있습니다. 날이 슬슬 추워지니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

“ 그런 책이 어딨어? ”

“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

“ 뭐야. 왜 수습하냐? 책 아니잖아? 아니잖아??? 너 이자식, 나를… ”

 

“ 아 그냥 그렇다고 치십쇼!! ”

 

 

타닷!

 

 

“ 어디 가!!! 야!!!!! ”

 

 

그래. 사실 답답한 마음에 대책 없이 저질렀다. 손이 점점 떨리더니 결국 식은땀에 젖은 부채를 청명에게 냅다 던지곤 죽어라 도망치는 임소병. 따라가 덜미를 잡으려던 청명은 순식간에 사라진 뒷모습에 이내 어안이 벙벙한표정으로 멈춰섰다. 

 

 

“ 허어… 살다살다 사파 수괴한테 고백을 받네… ”

 

 

잠시간 멍하니 서있다 정신을 차려 떨어진 부채를 주워들어 살피니 아마도 부채의 주인만이 볼 수 있을 손잡이에 자그마한 매화 문양이 새겨져있다. 

 

 

“ … ”

 

 

상당히 난감한 상황인데. 분명 그렇긴 한데... 

그 매화 문양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자니 어울리지도 않는 그의 감성이 엿보여 이상하게 웃음이 비져나온다. 생각하자. 저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그러한 소동이 있었던 날. 바로 그 날을 기점으로 말코새끼의 잔인한 괴롭힘은 시작되었다.  

 

분명 임소병은 청명이 아주 잔인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렇기에 어설프게라도 그냥 넘길 수 있을 빌미를 주고 청명에게 거절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 것 같았는데. 제가 사람을 잘못 판단한것인가? 청명이놈은 부담은 커녕 이 상황을 매우 즐기는 듯 보였다.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들. 

 

마주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 다들 빠져나갔을 끝물에 식당에 들어가니 자연스레 따라들어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왜 주변을 맴도냐며 시비를 걸지 않나, 그 정도 되는 고수가 제 기척을 몰랐을리도 없는데 굳이 모퉁이에서 불쑥 나타나 실수인척 몸뚱이를 슬쩍 부딪히고선 운명적인 만남인 척 수작부리지 말라고 성을 내질 않나.

어제는 심지어 탈의중인 제 처소에 불쑥 들어오더니 느닷없이 머리를 쓰다듬고선 내가 이러면 설레냐는 별 개X같은 말을 내뱉고 나가기까지 했다. 

혹시나 어색하게 굴면 분위기가 굳어질까봐 배려하는것이란 마지막 가설을 꿋꿋하게 밀고있던 임소병은 슬슬 한계에 다다렀다. 여기까진 어떻게든 좋게좋게 해석해 보았지만 더 이상의 조롱은 참을 수 없었다. 사람 마음갖고 장난치는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행패인가? 나름 순수하게 좋아했던 마음마저 공격받는 기분이었다.

임소병은 오늘도 농락하러 온다면 진지하게 화라도 내볼 생각으로 할 말을 잔뜩 장전하고 있었다. 여긴 청명이 자주 지나다니는 골목이니 분명 한번은 마주치겠지. 그런 생각으로 어슬렁 걷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참 가깝다. 일반적인 산보다도 월등히 높은 곳이라 그런가 이곳에서 어딜 보든 다 트여있는 기분이었다. 

청명 도장은 이런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생각하다 보니 뒤숭숭해지는 마음. 조금 더 그늘진곳으로 옮길까 싶어 발걸음을 떼려니 바로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이야, 이게 누구야. 나 좋아하는 녹림왕 아냐? ”

“ …! ”

 

 

이 정도까지 접근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 임소병. 잽싸게 뒤를 돌아보니 청명의 얼굴이 보임과 동시에 임소병의 뺨에 무언가 쿡. 닿았다. 

작고 약간 거칠하고 단 냄새가 나는… 

 

 

“ 먹어. ”

“ … … ”

 

 

월병. 청명이 입이 심심할때면 늘상 물고다니던 팥이 든 과자였다. 임소병은 당과 따위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기습적으로 뺨에 기름기가 닿아 슬쩍 짜증이 밀려왔다. 

 

 

“ 됐습니다. 입맛 없습니다. ”

“ 왜? 나 때문에 마음고생 심해서 배고플텐데 좀 먹지않고. 짝사랑은 잘 되어가냐? ”

“ 아, 사람이 진짜 좀…! ”

 

 

히죽대는 면상에 욱하는 마음이 순간 터져나온다. 툭. 임소병은 청명이 계속 뺨에 찔러대는 월병을 신경질적으로 쳐내 바닥으로 떨구었다. 

 

 

“ 그만 좀 하십쇼 도장! 아니, 사파고 뭐고간에 저도 사람이고 감정이 있는데 너무하지 않습니까? 사람 놀려먹는것도 유분수지. 이딴거 줘도 안먹습니다! ”

 

 

어지간히 열이 올랐는지 그래도 청명 앞에서는 나름 조신히 감춰온 성질머리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임소병. 그가 건넨 것을 패대기쳐 흙투성이로 만드니 화내면서도 내심 걱정이 들지만, 답답했던 속이 나름 시원하다. 건넸던 월병이 먼지를 뒤집어쓴걸 본 청명은 그대로 서 눈을 껌뻑이더니 뭔 행패냐는 듯 임소병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본다. 참으로 흉흉하기 짝이 없는 더러운 눈매였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다. 

 

 

“ 뭐요, 뭐. 팰거면 실컷 두들기다 가십쇼. 계속 이따위로 나오면 저도 못 참습니다. 에라이, 퉷! 잠시나마 좋아했던게 아주 쪽이 팔립니다. ”

 

 

모처럼 용기내어 쏟아낸 속사포 진심. 말하다 보니 속이 타서 그가 아끼고 아끼는 화산 바닥에 침까지 뱉었다. 이제 결과를 맞이해야겠지. 어디서 큰소리냐고 난리치며 달려들 청명을 상상하며 그를 쳐다보니 예상 외로 평온해보이는 표정이다.

 

 

“ 잠시나마? 뭐야, 벌써 포기했냐? ”

“ …아, 예. 어떤건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개같더라고요. 이제 만족합니까? ”

“ 에이, 성격도 참 급하네. 한두번 찌른 것 갖고 난리치긴... 기다려봐. 진짜 줄 거 있으니까 ”

 

 

청명은 자신의 옷자락 안을 뒤적이다 제가 지난번 떨어뜨린 부채를 꺼낸다. 그러더니 받을 의지도 없던 손을 억지로 펼쳐 턱하니 쥐여주었다. 

" ... "

그다지 비싸지도 않은거 뭐하러 여태 들고다녔나, 찾아준건 고맙긴 한데 말이다. 괜히 민망스러운 맘에 바로 소매에 넣으려 하니 무언가 걸리적대는게 닿았다. 시선을 내리깔아 보니 본래 밋밋하던 부채 손잡이에 걸려있는 붉은 매듭 장식. 설마 도장이 달았나? 임소병은 눈을 꿈뻑이다 청명을 보았다. 

 

 

“ …이건 뭡니까? ”

“ 하, 이게 참 원래는 그냥 버릴까 싶었는데 매화 붙인거 보니 나름 귀여운 맛이 있는것도 같고… ”

“ … … ”

 

 

부채 얘기가 아니라는건 그다지 식견이 없어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뭔가 대꾸하고 싶은데 풀이라도 붙었는지 꿈질거리기만 하는 요 주둥이. 아까와는 짐짓 달라진 분위기에 조금 다른 의미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 미리 말하면 아직 좋아하는건 아니거든. 그니까 어떻게 네가 잘 꼬셔봐 ”

“ 예?? 도장, 제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습니까? ”

“ 다 알면서 떠보는거 진짜 나쁜 버릇인데. ”

 

 

부채를 양손으로 꾹 잡곤 애타게 쳐다보는 눈빛에 결국 청명이 누그러졌다. 살면서 해본 적 없는 말이라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 나름 적당한 말을 찾았다.

 

 

“ 니 말마따나 혹시 좋을수도 있으니 한번 만나보자고. 됐지? ”

 

 

합산하면 백 년은 살아왔을건데 이런 간지러운 말들이 아직도 어색한건 그냥 천성인가보다. 뒷목을 긁적이며 말한 청명은 임소병이 뭐라 하기 전에 어깨를 두드리곤 급히 자리를 떴다. 싱겁기 짝이 없고, 어찌보면 고전적이기까지 하지만 이것이 그들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 낙엽 따위가 쌓이던 담벼락에 흰 눈이 소복히 내려앉았다. 누가 치운건지 인적 드문 이 담벼락 구석까지 눈이 잘 치워진 모습이 썩 보기 좋았다. 같은 장소에서 그때와 같이 마주본 두 사람. 그들에게는 나름 간질간질한 마음 확인의 순간도 있었고 그새 질렸다 하기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갔었다. 그런데도 내려앉아있는 이 싸늘한 공기는 어째서인가. 

 

 

“ 추워 죽겠는데 용건이 뭐야? ”

 

 

청명의 부름이면 언제나 재깍재깍 답하던 임소병은 세 번째 물음에도 대꾸하지 않고 꾸물거리다 심각한 표정으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 도장. 우리가 연을 맺은지도 벌써 한 계절입니다. ”

“ 벌써 그렇게 됐나? 나이먹으니 시간 가는게 참 빠르네 ”

“ 뭔 나이를… 아니, 됐습니다. ”

 

 

얇은 옷차림으로 불려나와 추위에 발끝을 달달대는 청명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 그리 춥다니 용건만 말해드리죠. "

" 음. "

" ...우리 그만 헤어지는게 좋겠습니다. ”

“ 그래. 나 먼저 들어간다? ”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헤어짐의 말. 청명은 그 말을 듣곤 마치 오늘의 날씨정보라도 들은듯한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섰다. 아, 혼자 마음 썩는 시간은 그렇게 길었건만 이별의 순간이란 이렇게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인가. 

 

“ … ”

 

 

아니, 뭐지 이 전개는? 너무 담담한거 아닌가? 감성에 젖을새도 없이 명쾌히 돌아서는 뒷통수 꼬랑지를 보니 아차 싶던 임소병이 황급히 청명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 도, 도장!!! 뭐 더 안물어보십니까?! ”

 

 

그러니 순순히 몸을 돌려준 청명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다. 

 

 

“ 뭘… 더 물어봐? 헤어지자며? ”

“ 보통은 이유를 물어보지 않습니까? 제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예? ”

“ 아니 물어봐서 뭘 어쩌게. 애초에 니가 좋아해서 시작한건데 싫어졌다면 가야지 뭐. ”

" 뭐... 뭔... "

 

 

얄미운 주둥아리에서 나오는 제법 타당한 말. 근데 전제가 틀려먹었다. 즉각 대답이 나오질 않으니 다시 자리를 뜨려는 청명. 좀처럼 잡던 분위기도 날려버리고 절박하게 그의 어깨를 잡아 늘어진 임소병은 말했다.

 

 

“ 싫어진거 아닙니다, 아니에요! 것 보십시오 이유를 안물어보니 오해가 쌓이지 않습니까? 우리 대화 좀 합시다. 예?! ”

“ 아 옷 다 늘어난다!! 놓고 말해. 놓고 ”

 

 

어깨를 잡아당기던 손에서 반쯤 힘이 빠진다. 간신히 다시 가라앉힌 분위기. 

 

 

“ 참 봐도봐도 모르겠네. 싫어진것도 아니면 헤어지려는 이유가 뭔데? ”

“ …도장, 잘 생각해보십쇼. 지금껏 만나며 우리가 뭘 한 적이 있습니까? ”

 

 

그 말에 청명은 생각하는 듯 눈알을 굴렸다. 그리 어렵지 않게 나오는 대답.

 

 

“ 별거 없었지? ”

“ 그래요. 그 많은 기회동안 손 한번 잡고 걸은적이 없습니다. 정략결혼을 해도 최소한 눈 마주보고 얘기하는 시간은 있는법인데 고작 손 한번 잡은적이 없다고요. ”

“ 잡고싶었음 먼저 잡아도 됐잖아? ”

“ 잡으니 대가리를 후려깠잖습니까! 대가리를! 고작 손잡는걸로 그렇게 거북해하고, 평상시엔 뭐 소 닭만도 못하게 쳐다보는데 제가 뭐 그리 용감하다고 더 들이밀겠습니까? ...어휴... 팔자야. ”

 

 

아, 그랬었지. 분명 그런적이 있었다. 월병사건이 지난 다음날엔가 저녀석이 수상쩍게 다가와 냅다 손을 붙잡으니 놀라서 팬 적이 있었더랬지. 떠오르는 기억에 조금 미안했는지 청명이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 ...내가 그게 당연한건지 뭔지 뭘 알고 그랬나. 해본적 없어서 그랬어. 아니, 생각하니 열받네? 그럼 혼자 삽질이나 쳐하지 말고 알려주던가! ”

 

 

말을 하다보니 사파새끼한테 뭐 그리 잘못했다고 빌빌대나 생각이 들어 잠시 누그러졌던 기세가 한 문장만에 원상복귀되었다. 그러니 방금까진 억울해 죽을 것 같던 임소병이 눈을 샐쭉히 뜨고 사람을 분석하듯 훑어본다. 

 

 

" ... ...해본적이 없다? "

" 그래. "

“ …확실히 그 성질머리에 붙어먹은 사람도 없을 것 같고. ”

“ 뭐? ”

흠. 턱을 만지작대며 청명을 위아래로 훑던 임소병. 그 시선이 뭔가 더러워 미간을 찡그리니 두어번 헛기침을 한다.

“ 알려주면 따라올 자신은 있습니까? 저도 괜히 대가리 깨지기 싫습니다. ”

“ 사람을 뭘로 보고… 그래. 알려줘보던가. ”

 

 

나랑 뭘 하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임소병의 시선이 반짝 빛났다. 마치 목표물을 덫에 걸어올리기 직전인 사냥꾼의 눈처럼.

 

 


 

 

사람이 손을 꼭 포개어 맞잡게되면 알게되는 것이 있다. 분명 절맥은 치료가 되었을텐데도 임소병은 대체로 몸이 차다는 것. 그리고 남자인데도 생각보다 살이 맞닿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 청명은 묘한 간지러움이 목 뒤를 타오르는걸 느끼며 바람에 식은 임소병의 얼굴을 보았다. 사람 손을 탄건가 이정도는 그닥 어색하지 않은지 평소와 거의 같은 표정.

 

“ 도장. 저 보면 하고싶던 것 없으십니까? 뭐든 좋습니다. ”

 

 

우선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시작해본 손잡기였다. 청명은 아까보다 가깝게 붙은 거리에 눈을 내리깔아 그를 보았다. 

" ... "

나름 두껍게 입었지만 품이 넉넉하게 남아 유독 얇게 보이는 몸선. 그러고보니 임소병이 근처에 올때면 늘 잘 말려진 기분좋은 향이 나던 그 큼직한 천쪼가리 속 몸을 안아보고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었지.

 

 

“ 음… 안아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

“ 나쁘지 않네요. 오십쇼 ”

 

 

잡고있던 손을 놓곤 임소병이 양 팔을 벌린다. 그걸 보던 청명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주 안아오지만... 너무나도 건전하기 짝이 없게 놓인 손. 완전히 밀착되진 않도록 살짝 여유를 둔 상체에서는 진득한 동료애마저 느껴진다. 그야말로 무인답기 짝이 없어서 임소병은 크흡, 헛기침을 했다. 

 

 

“ 손을 좀 더 자유롭게 두는건 어떠시겠습니까. ”

“ …어디다? ”

 

 

그 고약하기 짝이 없는 말코가 평소답지 않게 고분고분 따르려는 모습이 기분을 슬쩍 띄워준다. 임소병은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상체를 보다 밀착시키곤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 마음대로요. 머리나 어깨를 감싸도 좋고 그냥 등을 받쳐도 좋습니다. 뭐 이도저도 심심하면 변태 영감처럼 엉덩이라도 주무르시던지요. ”

 

 

어쭈? 하는 표정으로 내려본 청명은 잠시 고민하더니 한 손은 판판한 등에 얹곤 한 손을 쭉 내리더니 둔부 위쪽에 아주 노골적으로 턱하니 얹는다. 흠칫, 잠시 몸을 움츠리더니 기대던 고개를 떼어내곤 빤히 쳐다보는 임소병.

 

 

“ … ”

“ 잡으라길래 기대했는데 뭐가 많이 없네. ”

 

 

이거 왠지 당하는 것 같은데.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임소병의 시선을 무시하곤 청명이 물었다. 

 

 

“ 이 다음은? ”

“ 아직 기분 괜찮으십니까? 요 다음은 조금 거북할수도 있을텐데요 ”

 

 

조금 자신 없다는 듯 보는 임소병. 청명은 장난스레 움켜쥐고있던 손을 떼어내곤 그의 허리를 감싸 펑퍼짐한 옷 안쪽 얇은 허리까지 닿도록 조금 힘주어 안았다. 그러니 옷 안의 공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며 체향 사이 평소엔 잘 맡아지지 않던 인위적인 향 또한 함께 느껴졌다. 

...

역시, 이 성격에 다 예상하고 왔구만. 쓰지도 않는 향 따위를 고심해서 골랐을 임소병을 생각하니 답지않게 귀여운 생각이 든다.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는 청명.

 

“ …생각보다 괜찮은데? 더 해보고 싶어 ”

“ … … ”

 

 

뭘 알아챈건지 히죽이는 청명이놈을 보는 눈에 기대와 의심, 불안 등이 뒤섞인다. 임소병은 손을 그의 어깨에 올리곤 잠시간 눈치를 보았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자칫 기분 이상하면 대가리가 날아갈 것 같단 말이지. 조심성 많은 그는 차마 초장에 입술을 노리진 못하고 추위에 쌀쌀해진 뺨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쪽, 제법 귀여운 소리가 나며 바람이라도 지나가듯 빠르게 떨어지는 입술. 청명은 눈을 꿈뻑였다.

 

 

“ 보통 입에다 하지 않냐? ”

“ 오, 그정도는 알고 계십니까? ”

 

 

전 또 도장이 무슨 변태짓거리냐며 펄펄 뛰실 줄이나 알았죠. 

그럼 사양 말고. 꽁꽁 얼어가는 청명의 귀를 양 손으로 덮어준 임소병은 눈을 감곤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얇은 입술을 포개었다. 틈새로 나오던 축축한 입김이 멎곤 얇디 얇은 피부가 포개진 틈으로 데워진다. 

분명 처음 해보는 접문일텐데 청명은 예상외로 담담히 서 받아주는 듯 했다. 마음같아선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 실눈이라도 떠 보고싶지만 이게 대체 누가 누굴 가르치는건지. 다른놈도 아닌 청명이랑 입술을 맞대고 있다는 생각에 태연한 척 하던 심장이 요동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것만 같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과 행복. 들뜨는 기분에 잠시 맞추었던 입술을 떼어내고 눈을 뜨니 곧장 눈이 마주친다. 

기분이 나쁘긴 커녕 저 못지않게 달아보이는 눈가. 그걸 확인하자마자 재차 입술을 맞췄다. 좀 더 깊이 파고들고픈 욕망에 입술 틈새를 벌려 뻐끔대듯 자신보다 조금 도톰한 그의 아랫입술을 물고 늘어지니 청명이 잠시 몸을 움찔하더니 가만 내려보며 입을 열어주었다. 다시 눈을 감더니 그 틈으로 조심스레 붉은 혀를 밀어넣는 임소병. 그 때였다. 

 

 

“ …읏! ”

 

 

놀란 듯 고개를 휙 돌려 약간 떨어지는 청명과 당황한채 엉거주춤 서있는 임소병. 곧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린다. 

 

 

“ 이 자식이 대낮에 바깥에서 무슨 변태짓거리야! ” 

“ 아잇, 조용. 조용! 여기가 무슨 산 속이나 되는 줄 아십니까!? ”

“ 아니 남의 입안에 뭘 집어넣어? 혹시 혀 밑에 독이라도 숨겼냐? 독살하게?? ”

“ 도… 독… 원래 이렇게 하는겁니다…! ”

 

 

당장이라도 억울해 쓰러질것만 같은 표정. 임소병은 엉거주춤한 자세를 수습하지도 못하고 항변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개인의 취향을 강요하기라도 했다는 듯 의심스럽게 경계하는 모습에 무너지는 억장. 

 

 

“ 접문이라는게 원래 입만 붙이고 끝나는게 아니라 이렇게 혀를 섞기도 하는겁니다. 아니, 이상한거 아니라고요! ”

“ …아, 이거 왜이렇게 못미덥지. 이걸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하고 다닌다고? ”

“ 예! 이것만 하는 줄 아십니까? 더한것도, 더더더한것도 아주 당연스레 하면서 삽니다 다들 ”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은듯한 눈초리다. 답답한지 꽉 막힌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열을 식히는 임소병.

 

 

“ …에잇, 이상하잖아. 이건 나중에 확인해볼거니까 넘어가고 다음거 하자 ”

“ 다음… 다음이라고 했습니까? 입도 못벌리면서 이 다음은 대체 어떻게 하려 그러십니까 ”

“ 몰라. 아까 안고있는건 좋았는데 그거나 계속 하면 안되냐? ”

 

 

말하며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안으려드는 청명. 임소병은 뭔 앙탈이라도 부리듯 어깨를 털어내며 청명을 밀쳐냈다. 

 

 

“ 분위기도 다 깨졌구만 무슨. 됐습니다! 다음에 알아보고나 와서 다시 하던가 말던가 합시다. ”

 

 

뭐 정말 제가 첫 경험이라면 당황할법한 촉감이기는 했다. 허나 딱 기분좋은 순간에 더러운 취급을 받으며 내던져진 기분이 좋지 않았던것도 사실. 냉정하게 상황을 보면 저 의심많은 말코가 자신과 닿는것에 그닥 거부감이 없다는걸 알아냈단것도 좋은 수확이었다. 

아무튼 흥이 깨진 임소병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청명을 뒤로하고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정확하게는 옮기려고 했다.

 

 

툭.

 

 

아주 민첩하게도 갈 길을 가로막는 다리. 가뜩이나 좁은 길에 청명이 태산같이 버티고 서서는 비켜주질 않는다. 

 

 

“ ... …성질 부리지 마쇼. 아, 다음에 하자니까요 ”

 

 

몸을 옆으로 돌려 비집고 들어가려 하니 또다시 따라와 가로막는다. 그렇게 와리가리 반복하기를 몇 번. 가만 뒷짐진 청명이 표정을 굳히더니 제법 묵직한 기세로 위압하기 시작한다. 그 압박감에 주춤대며 뒷걸음질치는 임소병.

 

 

“ 왜… 왜요? 뭐요?! ”

“ … … … ”

 

 

툭. 툭. 

 

 

청명이 그대로 앞으로 걸어와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틈을 비집고 나가려하면 다리로 몸을 툭툭 밀쳐가며 말이다. 영락없이 고양이에게 물려가는 생쥐꼴이 된 임소병. 

뭐요, 뭔데요?! 여유로운 척이라도 하던 얼굴은 어디가고 식은땀을 흘리며 뭘 하려는거냐 되묻지만 대답없는 청명은 계속해서 그를 인적 드문 어둑한곳으로 몰아갈 뿐이었다. 그러다 임소병의 등이 골목 끝 막힌곳에 부딪혔을 때. 둘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 도, 도장…? 엇, 웁, ”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 어딘가 낯선 표정으로 마주보던 청명은 임소병의 어깨를 밀어 벽에 붙이더니 균형을 잃어 입이 벌어지는 틈에 입을 맞춰버린다. 자연스럽게 꺾이는 고개, 입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정신없는 내부를 진득하니 헤집어대는 혀. 등 뒤의 벽을 부수기라도 할 듯 밀착하는 몸에 순간 숨이 턱 막혀서 입을 떼어내니 다시 따라와 입김 하나 나갈틈도 없이 파고든다. 혀를 질척하게 엮어 빨아대는 소리. 그저 접문일 뿐인데 상당히 과하게 느껴지는 성감에 발끝이 움찔거린다. 이건 정말 경우에도 없던 상황인지라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뭘 할새도 없이 시작된 행위에 가까스로 청명의 어깨를 꽉 쥐고있으니 몸에 비해 큼지막한 손이 제 둔부를 꽉 쥐어오는게 느껴졌다.

 

 

“ …! …!!! ”

 

 

너무 놀라 한쪽 다리가 허공에 떴는데도 쥐어 터뜨릴 듯 주무르는 손아귀 힘은 풀릴 생각을 않고. 저 좋을대로 입안을 쓸며 누르는 혀에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온다. 아, 죽겠다. 호흡이 너무 부족하다. 이 인간 처음이라던거 죄다 거짓말이었나? 혼란에 빠진 임소병. 거의 옷 속으로 들어오려하는 청명의 손을 양손으로 쥐어뜯어 간신히 멈춰내니 그제서야 입술이 떨어지며 입 안으로 찬 공기가 들어온다. 

 

 

“ …으핫! …. …헉, 헉... 아니… 이게 무슨… ”

 

 

잔뜩 벌개진 얼굴과 입가를 타고 흐르는 타액이 임소병의 당황스러움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그와 달리 얼굴색 하나 달라지지 않고 소매로 입가를 슥슥 문지른 청명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네 말이 맞아. "

" ... ... ...예? "

" 해보니까 괜찮네. 내일은 그 다음것도 알려주는거다? ”

 

 

손도 잡아본적 없다며. 접문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며? 청명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하루이틀도 아니라지만 지금 임소병을 보고있는 무심한 얼굴은 마치 전혀 다른사람 같은 느낌이 풍겼다. 첫 접문의 수줍음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고 마치... 자소단을 빌미로 노예계약을 체결했을때처럼 경쾌하게 보이는 얼굴. 

순식간에 주도권을 송두리째 뺏긴 벙찐 임소병이 쉽사리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자 그는 머리를 한번 헝클어주곤 뒷짐을 진 채 어슬렁 떠난다. 

툭. 마른 몸이 눈밭에 주저앉는 소리. 방심하고 있었다. 암만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온들 그는 뭐 하나 쉽사리 주는법이 없는 청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짧은 외전+후기 

*검존 과거날조 + 청명모브(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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