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녀들

7화. 황제탄신일 (1)

1차 GL 자캐 CP 리엔세라 : 연재

떠들썩한 입학 사건으로부터 한 달 후. 황제 탄신일을 맞아 라흐벤시아 전역이 떠들썩한 흥분에 겨워 있는 오전. 라히안은 그답지 않게 무거운 고민에 빠져 있었다.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발데마인의 탄신제에 참석하게 된 참이었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황가의 일원으로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뿐인 일이었다.

그의 마음을 심란케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발데마인 고등부에 재학중인 그의 전 약혼자, 리엔시에. 발데마인에 가면 필연적으로 그녀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비록 리엔시에가 귀선유전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태중의 약혼은 파기되었지만, 어쨌거나 어렸을 적부터 교류가 있었던 사이다. 현재 따로 비 후보를 두고 있지 않은 그로서 부담이 될 만한 이야기인 건 사실이다.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날 이후 리엔을 보는 건 처음이군.’

그날의 헤어짐 이후로는 한 번도 교류가 없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지켜보거나 소식을 들었을 뿐.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리엔시에가 아는 체를 해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시를 하면 또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무시하지는 않아줬으면 하는데. 리엔시에의 성격을 생각하면 후자가 제일 가능성이 높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단... 채비를 끝내자.”

가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히안은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 옷 매무새를 마저 정돈하기 시작했다.

*

“리엔시에, 오늘 탄신제에서 고전마법학부 수석으로서 결계 마법을 시범한다면서요?”

“네.”

“영애는 좋겠어요. 차석에게는 기회가 없어서... 다음에는 저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베레니체가 붉은 눈동자에 열기를 더해 불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런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던 리엔시에는 대답하듯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탄신제 당일이라서 그런가. 신의 축복이 내려앉은 오늘의 날씨는 맑음이었다.

창가 근처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날이 정말 좋았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동하거나 휴식하는 풍경이 화창한 하늘 아래로 펼쳐졌다.

둘 중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리엔시에의 뺨 위를 비추던 햇살이 어깨 쪽으로 자리를 옮기려 할 즈음, 베레니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리엔시에. 이번 탄신제에 제5황손자 전하께서 황제 폐하의 대리인으로 참석하신대요.”

“...네. 알아요.”

“...영애는 괜찮아요?”

그 말의 뜻이 무슨 의미인지는, 리엔시에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그와 자신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야, 한때 약혼 관계였던 사이니까. 그러나 리엔시에는 그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뭇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말이다. 왜냐하면, 리엔시에는.

“괜찮고 안 괜찮고 할 게 어디있어요. 저는 황손자 전하께 관심 없답니다.”

“......”

“제 관심사는 오로지 성녀님 뿐이에요.”

조금 질린 표정으로 베레니체가 리엔시에의 안색을 살폈다. 꿈꾸는 듯한 표정, 살짝 어린 홍조. 생각만 해도 벅차다는 듯한 저 얼굴은 분명 사랑에 빠진 이의 것이다. 베레니체는 턱 끝까지 차오른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알다마다요. 영애가 성녀님 말고는 관심 없는 걸 이 학교의 모두가 아는걸요.”

화창한 날이었다. 탄신제 준비로 인해 학교의 복도는 점점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리엔시에와 베레니체는 자리를 떴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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