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꿈

[더지게일더지]

발두게3 by 레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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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버게일봇 (@LoverOfWeave) 님의 거울상 (@NoWeaveNoLife) 계정에서 진행된 과부이벤트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02/15~20)
해당 이벤트를 보시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드므로 이벤트 트윗 확인 후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글을 써본 편이 아니라서 다소 끊어지는 느낌이 강한 점, 가독성이 안좋은 점 미리 안내드립니다. 특히 모바일에선 끔찍한 가독성입니다…

허상의 더지에게 부탁해 작성했습니다.


어느 위저드의 반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이야기는 단순하다. 영원히 행복할 것 같던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소드 코스트의 영웅이었으며, 그 명성이 워터딥에도 자자할 만큼 사이가 돈독했으나…*

—영웅 또한 불멸은 아니었다.
위저드의 반려는—

소드 코스트의 영웅이 된 이후에도, 위저드의 반려는 사람을 돕고자 했다, 자신의 몸을 내던져가면서까지. 위저드는 여러 번 제 반려를 앉혀두고 진심어린 우려의 말을 건냈으나, 반려는 그런 위저드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하겠다는 대답을 남길 뿐이었다.

“그러다 당신이 크게 다치거나, …죽을까봐 나는 너무 두려워.”

“걱정마, 게일. 내가 얼마나 강한지는 당신도 잘 알고있잖아. 조심할테니까, 응? 게일-”

걱정어린 그의 눈을 마주보며 반려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반려에게 차마 무어라 더 할 수 없다는 듯이 위저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반려를 껴안았다.

-하지만 반려가 위저드에게 내뱉지않은 마음 속 깊은 진심은 자기 자신의 죽음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반려는 누군가를 속이는 데에 익숙했고, 위저드 또한 반려의 기만을 눈치챌 수 없었다. 반려는 속마음을 숨겨낸 순간마다 진심으로 일리시드 올챙이를 제거했다는 데에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흐려진 기억 속의,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속죄의 대한 집착이었을지, 영원한 안식에 대한 집착이었을지는 반려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무모함 속에서 자신의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를, 자신이 사라져버리기를-

—위저드의 반려는 진심으로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원했다, 영원히.


그냥 길을 거닐어도 나와 동료들을 알아보고 영웅님들이라며 인사를 건네고, 칭송해오곤 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야 할거라고 게일이 속삭였으나, 영웅이라고 불리는 것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확연히 붉은 머리칼의 아이가 다가와 제 손을 붙잡으며 정말 고맙다고 인사했다. 고아원에서 자신과 제 친구들이 전부 죽을 뻔 했다며, 영웅님이 아니었더라면- 하지만 그 아이의 말 보다는 아이의 머리색에 집중했다.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듯한 색깔의- 아, 너무나 아름다운 색, 마치 피에 물든 것처럼 보이는 머리색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었다.

똑같은 머리색의 긴 머리카락, 눈 색만 다른 여자. 아이의 눈 색은 아마 제 아비의 것이었을테다. 그 여자는 아이에겐 저 뿐이라며, 자신이 없으면 영영 혼자가 되어버린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쉬어빠져가는 목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소리는 고통이나 공포에 찬 비명과 결이 달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거리에, 도시에, …대륙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있을까, 아니, 애도할 이도 남지 않은 경우도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영웅? 영웅이라고? 제 자신이 너무나 역겨워 구역질이 올라오는 듯 했다. 감사인사를 하던 아이의 표정에 명확히 당황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아, 티 내선 안돼… 피해자들을 속여내는 데에 사용해왔던 가면, 능숙한 기만으로 진심어린 기쁨을 연기했다. 너무나 능숙한 나 자신에 더욱이 소름이 끼쳤다. 다시 밝아지는 아이에게 가벼운 인사를 남기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 점차 빨라지려는 발걸음을 억지로 억눌렀다.


언제나 나를 삼켜버릴 듯이 바라보던 심연과 같이 칠흑같은 어두운 충동은 결국 사라져버렸고, 그 빈 자리는 핏빛으로 물들어버린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대신했다. 그 색은 나 자신의 흐린 기억, 무의식 어딘가에 남아있던 수많은 피해자들의 피로 이뤄진 것이리라. 차오르는 죄책감은 핏물 웅덩이 같았고, 머리 끝까지 차올라 언젠가 나를 익사시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지상에 발을 딛고 서있음에도, 물 속에 가라앉아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죄책감이 그려내는 환상, 끔찍한 환상은 내가 행복해야 마땅할 순간에 날 찾아오곤 했다. 당신과 푹신한 침대에 누워 단 둘이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환상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당신을 보여줬고, 손을 잡고 함께 길거리를 거닐을 때에는 손목만 남아버린 당신을 보여주곤 했다. 너는 행복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하는 듯이. 이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혹시나, 혹시나라도- 내가 당신을 해칠까봐 너무 무서워. 이게 환상이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게일, 나는…

아, 차라리 어둠 속임을 몰랐더라면. 계속 칠흑같은 어둠 속에 빛이 들지 않았더라면, 어둡다는 사실조차도 어둠 속인지도 모른 채 영원히 헤매일 수 있었을텐데. 또 다른 어둠을 찾아 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아무도 날 찾을 수 없는, 나도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깊고,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이 앞은 검게 칠해져있어 읽을 수 없다.)

점점 감기는 두 눈에 차오르는 어둠이 영원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렇게 어느 위저드의 반려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아니, 끝났었고- 끝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않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빛에 적응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날 바라보는 당신의 미소였다.
‘약간 피곤해보이는 눈이었으나, 날 바라보는 당신의 눈빛만큼은 눈 부신 햇살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잘 쉬었어, 여보? 몸은 좀 어때? 기분 괜찮아?”

걱정이 담긴 말 이후에 포근히 안아주고, 입맞춤해준 당신에게 나 또한 그렇게 해주고싶었으나, 움직이려 시도하는 제 몸이 무언가 뻣뻣하다는 생각이 들어 멈칫했다. 몸을 내려다봤지만 분명 내가 아는 모습 그대로였으나, 가볍게 움직여 본 손가락은 무언가 굳은 듯 잘 움직여지지않는 듯 했다.

“내 사랑… 며칠 심하게 앓았잖아. 혹시 아직 불편해서 그래? 일어설 수 있겠어?“

‘며칠 내리 고통스러웠던 지독한 몸살이 기억났다. 아, 그래서. 몇일 간 침대를 떠나지도 못한 채 누워있기만 해서 몸이 굳은 거였구나.‘

예전에는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아직도 징그럽고, 혐오스러우나 저주받은 바알의 자식으로써, 신체만은 튼튼하다고 여기던 자신이었다. 정말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일까? 그래서 일반적인 몸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다. 일반적인, 평범한- 누군가는 싫어하는 수식어일테지만, 너무나 사랑스럽고, 원하던 수식어. 당신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일반적인 연인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언젠가 너무 평범한 날들이 반복된다고 투정을 부려볼 수도 있는 걸까?


…무릎을 꿇은 당신의 모습은 내게 청혼하던 날이 떠오르게 했다. 드디어 진정한 가족을 가질 수 있겠네- 라는 나의 대답에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신께 감사인사를 올리는 당신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나를 닦아주는 당신은 너무나 조심스러워 -하지만 꼼꼼하게 신경썼다-무언가 경건한 행동을 하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성직자가 자신이 모시는 신의 조각상을 닦아주는 것처럼.

‘당신의 온기가 옮겨진 곳은 굳은 근육이 풀린 것처럼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의 입술이 맞닿은 자리처럼 가슴 속도 간질간질했다. 아, 다정한 사람. 올려다보는 당신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 사랑, 오늘은 집에서 보내자. 아직 몸도 다 안 나았잖아. 어차피 나도 집에…”

“-그런데, 게일. 오늘 수업은?”

“수업이라니? 내가… 그런 걸 했던가?”

“환영 마법은 말이야. 장난치기 위한 고양이 환영부터, 사람에게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환상을 구현하는 수준을 넘어 기억을 왜곡하거나, 마음속에 직접적으로 심상을 불어넣어 조종하는 것까지 가능해.”

-어째서 이 말이 생각나는 걸까? 어떤 학파를 선택해야할지 계속 고민하던 당신이 드디어 정했다면서…
…왜 그런 고민을 했었더라? 게일, 당신은-


수업시간을 맞이한 복도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인적 없이 비어있었다. 그런 복도는 고요하면서도, 양 쪽으로 나있는 문들을 통해 새어나온 웅성이는 소리들로 북적이는 느낌 또한 주어 보이지 않는 군중들에 둘러쌓여있는 것은 아닐까 장난스럽게 생각해보곤 했다.

목적지였던 강의실의 앞에 도착해 조심스레 뒷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꽤나 넓은 강의실이었음에도 뒷문과 제일 가까운 단 하나의 빈 자리를 제외하고 학생들로 가득차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공간을 채운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을 당신의 목소리였다. 그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였으며 -이따금 자신의 강의를 내가 찾아올 수 있도록 게일이 수강인원을 한 명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최대한 방해않고 조심스레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있으면, 뒤를 돌아본 당신이 날 발견하곤 언제나처럼 햇살보다 따듯한 미소로 나를 반겨줄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괴물.”

-환상은 내가 제일 행복할 순간에 나를 찾아오곤 했다.

강의실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놀라 주변을 돌아보자, 강의실 안의 모든 사람이 나를 돌아보고있었다. 몇몇의 몸은 머리가, 가슴이, 팔, 다리가 절단된 듯이 갈라지며 피를 흘려대기 시작했고, 남은 이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로 나를 저주하는 말들을 뱉어냈다. 당신은-

“—차라리 당신이 죽어버렸다면 좋았을텐데.”

-당신은 내게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또 다시 환상을 보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진짜였더라도 환상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난… 당장이라도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싶었다, 뛰쳐나가고싶었다. 하지만 당신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진짜 당신이 날 발견하기 전이었기를 간절히 빌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강의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을 돌리고 걸어나가는 사이에도 환상 속 존재들의 비명소리가 내 정신을 찢어발기는 듯 했다-


…테라스에서 밖을 바라보니, 소중한 추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보여주던, 나에게 자신을 알려주던 사랑스러운 당신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보여줬던 것은 아름다운 노을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였으나, 이젠 내게 더 익숙해진 아침을 맞이하고 바라보는 바다였다. 절대 질리지않을-

익숙한 느낌의 위브가 하늘을, 바다를 가로막겠다는 듯이 테라스를 중심으로 둘러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전을 위해서? 몇 번이고 당신과 이 테라스에서 같이 바다를 바라봤으나, 위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파장을 향해 손을 뻗어보자,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듯이 막혀있었다. 대체 왜?


-입을, 코를 통해서 끊임없이 몸 속에, 폐 속에 쏟아져 들어오는 이 바닷물이 너무나 반갑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물살에 몸을 맡긴 채 가라앉아버리면, 먼 바다로 떠내려가버려서 당신이 날 찾지 못한다면 끝낼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신은 천재였다, 절망적이게도.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있을 자신이었다. 서서히 떠올라 수면과 가까워지는 제 시야가 나의 또 다른 실패를 알렸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익숙한 위브. 당신이 다루는 위브. 어떻게 이 색상을, 느낌을 잊을 수 있을까? 위저드가 들으면 위브에는 색상이 없다며 비웃음을 칠 수도 있을 말이었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우리의 시작부터, 여정 속에서도 앞길을 밝혀내주던 찬란한 그 색상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아주 옅지만,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당신의 색깔.

계속해서 떠오르는 질문. 어째서? 어째서 이질감이 드는 걸까. 당신의 애정속에서 잊었던 이 뻣뻣한 몸의 감각이, 찬란하게 빛나야 할 색채가 왜 라는 의문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나는 정말 아프기 전의 내가 맞는 거야?”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당신은 거짓말따위는 하고있지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당신은 너무나 알아보기 쉬웠으니까.

위화감- 해소되지않은 의문이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명확하지않은 정신은 충동에 휩싸여 통제되지않던 시절이 생각나 질색이었다. 다시 그 순간에 떨어진 것만 같다. 눈을 뜨면, 피와 내장이 쏟아진 채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익숙한 얼굴의 시체가 눈 앞에 있고, 내 손은 피범벅인 채 일 것 같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시체의 산 위에서 웃고 있는 내가 있을 것만 같았다. 또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당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내가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싶었다. 누구보다 끔찍한 나로부터.

-정말 괜찮아? 라며 물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당신이 사랑스럽게 느껴져야할텐데, 아무것도 알려주지않는 당신이 야속해 화가 났다. 무엇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처음 느낀 이상한 점이라도 확인하고자 거울을 보고싶다고 당신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모습도 아주 사랑스러우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거울 앞으로 이끌어주었다.

어째선지 뿌연 거울에는 병을 얻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비쳤다. 옆에 같이 비춰지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를 보듯 보고있었다. 언제나처럼 멀끔하게 정돈 된 수염, 정성스레 빗어낸 머리카락. 내가 사랑하던 당신인 채로.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친 당신은 수줍은 듯 미소 짓고 뺨에 입을 맞춰줬다.

“다시 침실로 갈까, 여보. 돌아다니니까 그래도 덜 찌뿌둥하지?”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 하나도 모르겠어, 게일. 왜 이렇게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왜 이렇게 슬픈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정리되지않는 머릿속과 감정들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 앞에 위치한 거울을 향해 무심코 주먹을 내질렀고- 날카롭게 깨진 채 추락했다. 거울이 아닌, 반지가. 반으로 갈라진 채 초라하게 추락하는 반지를 보고있으니, 무언가 떠오르는 듯 했다. 분명히 잊은 것이 있는데, 나는 뭘 잊어버린거지? 게일, 제발-


생전의 마지막 기억은 당연하게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그토록 죽음을 바라며 몸을 내던져대곤 했었으나, 우습게도 원인은 사고였다. 뭐, ‘사고’로 위장된 일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웅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있다면 그 반대도 마땅히 존재해야 맞는 것이겠지. 심지어 그뿐인가, 제 아버지를 배반한 자라며 비난조차 받는 존재였기에. 물론, 바알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인적은 드물었고, 거리의 건물들은 낡아있었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붕괴되기 시작한 건물의 파편들은 나를 향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고, 반사적으로 몸을 옮겼음에도 모든 파편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충격에 엎어지듯이 넘어지자, 파편들은 몸 위로 내려앉았고 그대로 깔린 모양새가 되었다. 기침과 함께 입으로부터 쏟아져나온 핏물이 중요 장기 중 하나가 망가져버렸다는 사실과, 죽음이 다가오고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아, 이런식으로 죽을 거라곤 생각한 적 없었는데. 멀어져가는 감각과 점멸해가는 흐릿한 시야. 그 흐릿한 시야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반지, 우리의 결혼반지.

흥분을 억누른다고 노력은 했으나 눈에 선하게 보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워터딥에서는 이렇게 반지를 맞춘다며 설명하던 당신이 떠올랐다. 우리는 워터딥의 거의 모든 악세사리 샵을 방문해가며 -솔직히, 나는 좀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당신의 그 빛나는 눈동자에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성심성의껏 각자의 반지를 골랐고, 반으로 나뉘어졌다 새로 이어붙여진 반지는 온전히 우리만의 반지가 되었다. 조심스레 반지를 끼워주곤 당신은 반지 위로 입을 맞췄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걸.”

“게일, 아직 밖이잖아.”

“그치만 진심인걸-”

떨어진 파편 중 하나가 제 손과 반지 위로 떨어졌었던 것일까, 반으로 갈라져 두 개로 다시 나뉘어진 반지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다시 두 개가 되어버린 반지는 더 이상 우리만의 반지라고 하기엔 어려워보였다. 최대한 손을 뻗어 반지조각들을 주워 꽉 쥐어보았다. 나뉘어진 반지, 헤어질 우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가려져있던 사실이 이제야 떠올랐다. 아, 게일. 우리도 이렇게 헤어지게 되겠지, 영원히-

당신이 상처받지 않기를 원해. 한없이 이기적인 나로 인해서 상처받지 않기를 원해. 이미 애진작에 내던져버린 신들을 향해 기도했다. 최대한 당신이 덜 고통스럽기를, 당신만은 살아가기를.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어서 미안해.

점점 감기는 두 눈에 차오르는 어둠이 영원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당신이 골랐던 쪽의 반지를 주워 살펴보자, 한 번 깨졌던 것을 억지로 이어붙이려고 시도한 듯 짓눌린 흔적이 있었다. 우리만의 반지가 되었던 그 순간은 전문가의 솜씨로 깔끔한 새 반지가 되었기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누군가가 한 것이겠지.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당신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한 번 갈라졌던 반지는 또 갈라지기 쉬웠을 것이다. 떨어졌던 그 자리 그대로…

‘당신은 혼란스럽고 절박한 표정으로 바닥을 기어 남은 반쪽을 찾아 주워냈다. 주운 반 쪽의 반지를 꽉 쥐며 당신은 남은 반지 조각을 달라며 간청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이 물기 젖은 눈에서는 눈물이 아닌 당신이라는 사람의 영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여보, 제발…… 제발. 다시 끼우게 해 줘. 반지가 이래선 안 되잖아. 내 것처럼 온전해야 되잖아……”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당신을 붙잡고 물었다. 내가 아팠던 게 맞는건지, 아프기 전에 내가 맞는 건지, 어째서 테라스가 가로막혀있는 것인지, 왜 집 전체에 환영을 모사하는 위브의 흔적이 가득한 것인지, 반지는 왜 깨진 흔적이 있는 것인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거야, 게일 데카리오스. 제발-”

제발 모든 걸 말해줘.

‘당신은 모르겠다는 말의 끝맺음과 동시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다급히 당신을 붙잡았다.’
붙잡은 당신은 초점을 잃고 떨기 시작했다. 안쓰러운 모습에 당신을 끌어안으니 차가운 내 몸에 당신의 체온이 서서히 옮겨오는 듯 했다. 아니, 오는 것은 체온 뿐만이 아니었다. 파도가 밀려 들어오듯이, 저 너머에 가려지고, 숨겨져있었던 기억들이 내게 밀려들어왔다.


-언젠가의 나는 당신과 나란히 앉아 바라보던, 햇빛을 받아 찬란히 빛나던 저 바닷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언젠가의 나는 가장 날카로운 거울 파편을 집어들고 내 몸을 찔렀다.
-언젠가의 나는 창고의 환영 너머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당신을 추궁하고, 또…
-언젠가의 나는…
-언젠가의 나는…

—몇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시도들의 기억 속에서 당신은 점점 늙어갔다. 별빛을, 햇빛을 담은 듯 총명하게 빛나던 당신의 갈색 눈은 빛을 잃은 지 오래된 듯 잿빛으로 탁해져있었고, 윤기가 흐르던 머리카락은 건초처럼 푸석해졌으며, 그 갈색 머리칼은 절망에 침식당한 당신의 심정을 대변하듯이 수많은 새치들로 점점 뒤덮혀갔다. 힘든 여정 속에도 깔끔하게 정리되던 수염은 길이만 간신히 맞춰낸 듯 했다.

모든 기억속에서 같은 것은 죽기 전으로 돌아간 채 멈춰버린 듯한 나 자신의 모습과, 장례식을 끝마치지 못한 듯한 당신의 검은 옷들이었다.

가끔 어질러져있어 잔소리를 하긴 했으나, 먼지는 허용되지않았던 깔끔한 당신, 아니, 우리의 탑은 벽에 금이 가고 구석에는 그 파편들과 먼지들로 가득했다. 당신은 특히나 먼지와 냄새를 못 견뎌하던 사람이었다. 나를 신경써 언제나 포근한 온도를 유지해주던 마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영혼마저 시리다고 느낄 듯한 차가운 냉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차라리 그림자 저주에 물든 땅이 따듯했으리라. 그런 당신이 이 폐허가 되어버린 탑에서 지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 또한 황폐하게 만드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나라는 사실이 또 다시 이미 멈춰버렸을 심장이 쑤셔오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아까와는 달라진, 훨씬 늙고 연약해진 모습으로 당신은 나를 껴안은채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떠나지 말아 줘…… 너를 사랑해……”

아, 나 또한 그러했다. 나 또한 당신을 사랑했다. 나에게 있어서 당신이 가장 큰 기쁨이었음에도, 당신의 곁에서 행복하고 싶었음에도.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도망치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나의 이기심으로 당신에게 몇 번의 절망을 겪게한걸까?

어째서 이 환상 속에서도 나는 그저 당신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행복해 질 수 없었던걸까?

…당신은 몇 번을 더 나로 인해서 절망하게 될까?

몇 번째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수 십년은 늦어버린 후회의 눈물을 또 다시 흘리며, 다시 차오르는 환상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아,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이번에는 긴 꿈을 꿀 수 있기를, 깨어나지 못할 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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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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