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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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바쁜 저녁 시간이 지나고 조금 한가해질 무렵,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오세요.’를 외치며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본 민준이 반가운 얼굴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손님들 몰래 손을 살짝 흔들면 들어온 남자는 고개만 끄덕일 뿐, 별말 없이 바 테이블에 앉아 민준의 동선을 따라 눈을 움직일 뿐이었다. 민준은 남자에게 오늘 들여온 고급
malheureux : 불행한 차갑고 음습한 바닥, 몸 위로 떨어지는 물과 비슷한 농도의 액체, 곧이어 달려오는 들개들. 아, 내 삶이 여기서 종료되는구나. 이 순간 생각나는 얼굴 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집을 나오기 전 네게 못 다한 말을 다 해줄 걸 그랬다. 다른 게 아니라 이게 후회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안다. 천천히 눈을
감기로 앓아누운 이후 며칠 더 찾아오던 너는 당분간은 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옷을 잘 챙겨입으라는 당부와 함께 자신이 잠든 새벽녘 조용히 떠났다. 잠든 사이 떠나간 네가 야속했지만 곧 몰아치는 시험과 과제에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와중에도 틈틈 네 생각을 했지만 너는 정말 바쁜 모양인지 코빼기 하나도 비추질 않았다. 가끔은 전화를 해볼까, 네 전화번호를
여름보단 가을에 가까워진 날씨,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하교할 시간이 되어서도 내리고 있어 살짝 마른 우산을 펴 진흙밭인 운동장을 조심스레 헤치고 걸어갔다. 오늘은 야간자율학습도 없었고, 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미 하교한 상태라 고요한 교정을 걷고 있으니 으슬으슬 춥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날엔 기사님이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을 괜히 거절했나 후회도 들었지만
Main. 소고기미역죽, 검은깨죽 sub. 홍시 한동안은 일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이런 일상의 장점은 내가 평소에는 누리지 못할 희귀한 것이지만, 반대로 단점 또한 명확하다. 이 꿈같은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것. 그래도 첫눈이 온다고 즐거워하는 너를 보니 아주 조금만 더 안주해보기로 한다. 두껍게 입으라고 말해도 말 안 듣고 얇은 점퍼 하나만
Main, 소불고기와 메추리알 조림 Sub, 아욱국 한동안 방문이 뜸하던 두일이 오랜만에, 그것도 환한 대낮에 찾아왔다. 두일은 기약을 정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이기에 두일이 나타나기 전까지 휑하던 민준의 냉장고는 요근래 언제나 두일을 대접할 수 있도록 가득 차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 두일과 마주
“가자, 칼국수 먹으러.” 재하는 이곳에 와서 만난 또래였다. 물론 또래라기엔 나보다 대여섯쯤 더 먹은 것 같았지만 형이라 부르라는 말이 없기에 그냥 서로 편하게 부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두일의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열 살 많은 두일은 가끔 불편한 티를 내기도 했지만 호칭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까. 여기 와서 만나게 된 거다. 호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