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e dame i arriveth for thou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갈 때, 그는 그 앞을 지키고 선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든 피를 뒤집어 쓴 채 경찰을 만나는 상황은 피하고 싶을 테지만 그는 마치 이곳이 대로 한 복판이고, 직전 어떤 참극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경찰에게 짧게 목례를 해보일 뿐이었다. 그 자약함에 경찰은 오히려 당황한 성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모를 피로 젖은 채 몹시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는 청년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사이 그는 경찰을 미끄러지듯 지나쳐 배 안쪽으로 들어섰다. 아직 가쁜 호흡과 가시지 않은 혼란스러움, 두려움을 가다듬기 위해 구태여 좁고 그늘진  복도와 선실에서 등을 맞댄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 모여 있었다. 그는 잠시 계단참에 멈추어 서고는 고개를 치켜올렸다. 꼭 냄새를 가볍게 맡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채 식지 않은 땀, 아직 덜 고른 호흡, 바닷물의 짠내만 날 뿐 백합 향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예상한 바라는 듯이 미련 없이 돌아섰다. 굳이 서성거리며 익숙한 얼굴들을 찾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를 두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경찰을 지나쳐 다시 갑판 위로 올라올 즘에 해경이 겨우 한마디를 건넸다. “혹시 필요한 것이라도?”

그는 그 질문이 지금 이 상황에 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직접 찾기 전에는 의미가 없을 터였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직전 짧게 답했다.

“그 여자요.”

 

갑판 뒤쪽으로 나서자 사람의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저들에게 일어난 일을 돌이켜보려 무의미하게 애쓰는 듯한 사람들이 제각기, 띄엄띄엄 암초처럼 거리를 두고 레일에 기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유일하게 두렵고 불안한 낯을 하지 않은 한 사람. 차가운 백합 향이 해풍에 실려왔다. 향에 온도가 있다면,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손 끝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려오게 차가울 터였다. 그러나 동시에 손 끝을 가져다 댈 수 밖에 없을 터였다. 감각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 마력적이고 완전한 요소가 그 향에 있었다. 비록 그녀는 그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고 서 있었으나 그는 그 호리호리한 뒷모습만 보고도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끝없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흰 머리칼과 숄이 한데 뒤엉켜 휘날렸다. 앞으로 쏟아지는 머리칼을 걷어내는 흰 손 또한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없을 것을 알면서도) 눈으로 손목 뼈가 불거진 곳에 남은 손자국 모양의 멍이 있는지 살폈다.

그는 입을 열었고, 다음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어딘가 잠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으로 수없이 찾은 끝에, 그는 이것이 막이 오른 뒤로 처음으로 여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 상대역의 심정이 그나마 빗댈 만하다고 낙점했다.

 

“당신을 데리러 왔어요.”

 

마치 제 서랍 속에 두었던 보물, 혹은 정묘한 크리스털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발견한 것처럼 차분한 환희가 그 목소리에 배어있었다. 드디어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얼음의 표면을 닮은 청백색 눈. 그는 역시나 습관적으로 그 성에 낀 눈동자에서 저를 향한 경멸을 찾아 살피면서도 말을 이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을 꼭 찾으러 가겠다고....”

 

이제 그는 한 걸음을 그녀에게로 옮겼다. 한 치도 깜빡이지 않는 왼쪽 눈과 영원히 빈 무덤 같은 구멍만 남을 오른쪽 눈두덩이의 부조화가 불온해 보일지언정, 그리고 어렵게 찾은 영원한 미지이자 난제를 영원히 제 속에 간직해 두겠다는 마음이 실로 과욕일지언정. 그는 그 순간만큼은 제가 순수하게 기쁨을 체화했다고 믿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켰어요. 함께 있어요.”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