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임 차 마시러 가자

그리스로, 혹은 아컴으로

F:ash by 점멸

 

곧 폭풍이 오겠어.

특별할 것도 없긴 하지만.

 

 

*

 

루크 잭슨은 오인 사격을 고백한 노먼 베이츠를 뒤쫓으며 생각했다.

그는 정말 우리와 그리스에 가고 싶을까?

경쟁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청소년기를 지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반짝임을 찾는 게 즐거움이 된 성년의 루크는 노먼을 직접 만난 날, 그가 특출난 사람이라는 걸 대번에 깨달았다. 고학력자 정도는 자문을 구하기 위해 숱하게 만나온 루크의 눈에도 노먼은 총명하고 남달랐다. 되돌이켜보건대, 자신을 잡아끈 건 노먼의 남다름은 그의 지적 호기심이었으리라.

학자라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지만 노먼의 물음표는 달랐다. 그는 다른 학자들처럼 세상을 궁금해했으나, 흥미를 쫓는 선별 기준과 집요함은 기자와 같았다. 그러나 노먼은 에디처럼 퍽퍽하지도 않았고─대학원생 신분과 노먼을 비교하기엔 에디에게 너무한 일이긴 했다─ 저처럼 무작정 흥미로운 사건에 발을 들이밀지도 않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보다도 그게 일어난 경위에 관심을 가졌다. 루크가 사실을 전해야 하는 기자의 직업 의무로서 진실을 쫓는다면 노먼은 그게 진실이기에 쫓았다. 그럴때면 루크는 노먼이 꼭 아컴을 쫓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아컴은 그들이 사는 도시였고, 루크는 글을 쓰는 기자였으나 노먼이 쫓는 무언가에는 아컴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노먼의 지적 호기심은 아컴을 향해 있다. 그건 루크가 그에게 이끌린 매력이었다.

그러니 시체와 악몽이 거듭될수록 그것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노먼을, 루크가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때때로 루크는 사무소에서 죽음의 색깔을 보았다. 반쯤은 관념적인 표현이었다. 생사의 경계를 건너오며 짙어진 그늘로 살아온 삶을 가늠하게 만드는 크로웰. 누적된 과로로 정말 죽어간다는 말이 어울리는 에디. 그리고 그냥 노먼. 그 조합을 보고도 퀴퀴하고, 텁텁한. 울적하고 퀭한 것을, 죽음이란 표현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신기한 일일 테다. 크로웰은 이런 곳을 항상 밝은색의 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당신이기에 섞일 수 있는 거라 말한 적 있다. 그러나 루크는 자신의 타고난 머릿빛보다도 그들이 정말로 죽음과 가깝지 않기에 저가 드나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로웰은 죽음을 점지하는 까마귀보다도 쉽게 녹슬지 않는 은색빛 플뢰레에 가까웠고, 과로로 죽어가는 에디에게는 항상 피자─그리고 졸업─라는 희망이 항상 작게나마 피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노먼. 그에게는 아컴을 쫓는다는 지적 호기심이 있었으니. 루크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노먼은 인간이었다. 분명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래야만 했는데.

에브너 웍과의 첫 만남은 그간 루크가 느낀 수많은 노먼의 특이함 중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루크는 그 만남에서 처음으로 노먼과 자신의 거리가 한 번도 좁혀진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시체를 보았느냐 묻는 노먼에게 루크 역시 묻고 싶었다.

노먼, 자네는 어디에 서 있는 거지?

내가 보고 있는 자네의 시체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때문에 의문점은 되돌아간다.

노먼은 정말 우리와 함께 그리스에 가고 싶었을까?

 

그날은 분명히 날씨가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죽음을 글로 담고, 또 취재하며 루크는 최후에 대해 상당히 무뎌졌다고 생각했다. 펜과 수첩을 잡아 온 나날들이 길어지고, 총기를 곁에 두고 피 보는 게 익숙해지며 루크는 죽음이란 가급적 피하고 싶되 겁나지는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퀴퀴하고 텁텁한. 울적하고 퀭한 느낌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루크는 그 무엇보다도 강한 공포를 느꼈다. 감각으로 인지된 기억은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하수구에서 맡았던 썩은 냄새와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곳에 노먼이 있었다.

루크는 악몽을 꾼 크로웰에게 악몽 속 세실 헌터와 나눈 대화를 묻는 노먼을 보며 그가 그곳에서 영영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특별히 노먼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적은 없었다. 제대로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이해하고 있었다 생각했을뿐더러, 평범한 자신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노먼의 모습이야말로 그에게 이끌렸던 특출함이었다. 그러나 서류를 찾으러 헤매고, 그 불행과 가까워질수록 루크는 노먼이 아컴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컴이 노먼을 집어삼킨 걸지도 몰랐다. 마치 자신이 어둠에서 완전히 고립되었을 때, 그들과 함께였던 것처럼…….

“루크, 괜찮아요?”

저도 모르게 헐떡인 숨을 몰아 쉬었다. 상태를 살피러 와준 건 크로웰이었다. 무릎을 짚은 루크는 손만 들어 보여 괜찮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녀가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하다는 것을 알아도 루크는 그녀의 앞에서는 신사이기를 고수했다. 단지 알 수 없는 것은 숨이 차도록 뛰어도 저 앞에 있는 노먼이었다.

비록 부상으로 은퇴했다고 한들, 한때 육상 선수로 뛰었던 자신으로부터 노먼은 어떻게 도망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아니다. 노먼을 잡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루크가 그간 치러온 경쟁의 세계에서는 이기려면 누구보다 빠르고 단단해야 했다. 그다지 단단하지는 못한 노먼은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아컴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루크는 노먼의 노력을 믿고 싶었다. 노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며, 노력이야말로 인간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루크는 노먼을 지지했고, 그를 진심으로 믿었다.

“루크 씨, 괜찮으세요?”

두 번째로 묻는 건 에디였다. 때마침 하늘은 어두웠다. 밤이 찾아온 것이다. 노인이 예고했던 태풍은 이미 지나간 뒤였다. 문득 루크는 그럼에도 자신이 아직도 미스카토닉 대학 도서관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게 물들은 하늘 밑에서, 딛고 서 있는 도서관조차 화재로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루크는 이미 경험해본 적 있는 어둠이었다. 그것은 하늘로 솟고 있었으나 지하로 빨려 들어갔다. 루크는 평생을 함께 해야할 악취로부터 격렬하게 도망치고 싶었고, 동시에 자신을 마중 나온 하늘에게 경건히 무릎 꿇고 싶었으며, 다음에는 한순간이나마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 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늘에서는 악취 같은 건 나지 않았다.

“루크, 괜찮나?”

루크, 루크. 안위를 묻는 세 번째 부름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그 목소리는 크로웰이기도 했고, 에디이기도 했으며 노먼, 노먼이었다. 그건 노먼이었다. 크로웰과 에디와 달리 노먼이 그 안에 분명히 존재했다.

“벌써 내 시체를 보고 있는 건가, 루크?”

노먼은 그안에서 살아있었다! 그는 살아있던 것이다!!

차오르는 경외감 속에서 루크는 노력하지 않은 그를 비난하고 싶었다. 자신은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세실 헌터도 그랬을 것이다. 찰스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에디도, 크로웰도. 심지어는 할런드 교수까지도! 그래, 전부 노먼의 잘못이다. 그런데 노먼은 살아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생기 넘치게 살아있었고, 누구보다 먼저 죽어있었다. 노먼은 죽어있었다. 살아있지 않은 노먼. 그러나 생기넘치는 노먼. 마침내 찾은 그의 시체를 앞두고 루크는 비로소 깨닫는다. 노먼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죽어 있던 것이다. 자신은 존재해서는 안 될 것으로 이루어진 뱃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이곳에 존재하는 노먼을, 고작 노먼 같은 인간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루크는 더 이상 그와 함께 그리스로 떠나려 하지 않았다.

커피와 차, 그레이엄 토스트, 애플 소스와 졸인 프룬, 크림치즈 파인애플 파르페, 아스파라거스 오믈렛.

루크는 영원히 아컴과 함께였다.

#

 

네? 농담도 참! 이렇게 날이 맑은데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