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01

명일방주 리 드림 커미션

먼저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

당신은 진자 운동에 대해 알고 있는가?

푸코니 방정식이니 자잘한 이야기를 사전에 많이 알아둬야하지만, 실험을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이건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다.

설계 장치 속 진자에 작용하는 힘은 오로지 중력, 그리고 실의 장력 뿐이므로 일정한 진동면을 유지해야하지만 -공기의 저항은 제외한다- 이 진자를 장시간 진동시키면 자전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된다.

이는 지면이 회전한다, 곧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

또 누군가 사미의 바다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으슥한 바다란 곳은 관광지로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재앙 같은 세상엔 자살을 하려는 사람만 온다. 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따금 바다에서 죽은 사람의 유족들이 자신을 찾아올 때마다 ‘곤란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애가 아니었다니까요, 정말...." 

지금 눈 앞에 있는 아들의 어머님도 그랬다. 하나같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었다. 죽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데도 그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죽은 이들을 조종한 것이 있는 것마냥 말했다. 리가 매뉴얼에 맞추어 최근에 힘들었던 일이 있었거나 나쁜 친구와 어울렸느냐고 묻는다면 또 다시 침묵을 약 몇초간 이어갔다. 아무래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리는 속으로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재앙에 휩쓸린게 분명해요.”

“하지만 저항흔이 조금도 없었어요.”

“그럼 감염자들같은 치들이 이성을 잃고 저지른 거 아닌가요??”

탐정 사무소에 의뢰를 맡기러 온 사람치고는 제법 생소한 발언이었다. 감염자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굳이 사람을 해치는 이들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리는 다시 한 번 의뢰인의 이력서로 받아온 것을 가볍게 읽어내렸다. 옆에서 함께 읽던 아나스타시아는 으엑, 하는 소리를 간신히 참아냈다. 

이동도시를 떠돌며 살아가는 집의 신원도 없는 맏아들, 이력서라고 해봐야 몇가지 특이사항이 적혀 있는게 전부였다.

"그래도 자살을 할 애가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의뢰인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잠시 리와 아나스타시아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제발, 의심가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찾아주시면 안될까요?" 

리는 평범한 사람의 착잡한 목소리나 말투를 차마 못 본 척 할 수 없는 이였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박애가 가득한 평화주의자였다. 결국 그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고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

리는 멀리서 찾아와준 아나스타시아에게 유감을 표했다. 아나스타시아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사레 쳤다. 

 "박사님도 함께 가시겠습니까? 사미의 바다." 

"아, 그래도 되나? 나쁘지 않지." 

아나스타시아는 흔쾌히 승낙했다. 데이트라면 데이트인가. 사람이 죽은 곳에서 데이트라.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나스타시아는 실없이 웃었다. 가벼운 웃음소리가 바람에 스쳤다.

“살해 도구는 손에 들려 있던 권총, 머리에 구멍이 하나, 주변에 다른 사람은 지나가지 않았던걸로 보인다…”

“자살은 아니라고 하니까요.”

아나스타시아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사망 시각은 8시 정각, 주변 사람들은 그를 봤다고 말했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던 남자는 혼자 휘청휘청 구석진 해안가로 걸어갔고, 그 이후에 총 소리가 한 번 났다고 했다.

아나스타시아는 시체를 살펴보다 그의 손에 구겨져 있는 종이를 펼쳤다. 리는 눈을 반짝였다.

“아무리 봐도 자살 같은데. 여기 유서도 있잖아.”

사미는 내전 중이라 외부인은 쉽게 들어올 수 없었다. 아나스타시아는 구겨진 종이를 펼쳐 보고  표정을 찡그렸다. 리는 경찰조차 회수하지 않은 시체를 살펴보았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라고 적혀 있어.”

아나스타시아가 들어올린 종이와 머리에 뚫린 두 개의 구멍을 보고 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도시에서 이런 글을 쓸만한 사람이라면, 아니지. 쓸만한 병에 걸렸다면? 리는 버릇처럼 제 머리를 쓸어내리고 말했다.

"이 사람이 실종된 이유를 먼저 알아야겠네요. 적어도 의뢰인이 납득할 만한 자살 사유는 알아가야할테니까."

“이 남자가 왜 실종됐다고 생각하는데?”

“광석병 환자는 감염된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을테니까요.”

아나스타시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조용해진다. 그래, 이런 내용을 적을 이유는 그것 밖에 없긴 했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면 뇌가 감염됐을테고, 그럼 기억이 없는 것도 설명이 된다. 리는 그 이후의 상황을 떠올리려는 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여전히 죽은 이유는 설명이 안되는데.”

“사실 죽은 이유도, 종이를 구겨 쥔 이유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왜 저런 내용을 적어놓은지도요.”

“사미의 바다로 온 이유는?”

“그것도 모르겠네요….”

리는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소금기 섞인 짠 바람이 밀려왔다. 아나스타시아는 검정색 바다를 바라보는 리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시간의 정적 후에 말을 이었다.

“천천히 알아보지. 이 남자가 숙박한 곳부터 시작해서 찾아나가면 되잖아.”

“그럽시다. 충분히 알 수 있을거예요.”

리는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아나스타시아는 항상 그의 웃음만큼 불합리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그 웃음을 보면 항상 기적같이 모두 괜찮을 것 같았다. 어떤 불합리한 일도 쉽게 해결될 것 같은 마법이라니, 그만큼 말도 안되는게 어딨겠는가.

 괘종시계가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

내전중인 사미의 바닷가 근처 숙소는 최근 불경기를 맞이해 사람이라곤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아나스타시아와 리는 2인실을 하나 잡았다. 작은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이었다. 

"여기서 하루 묶었다는거지?"

"네. 그리고 다음 날 바닷가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숙소 직원도 그렇게 말했고요."

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가야하는데 영 일이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면 범인은 누구이며, 동기는 대체 무엇이고... 

"숙소 직원이 그 남자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대. 그래도 그날 묵은 사람이 한 명 뿐이었다니까, 그 남자겠지."

"좋아요... 쉬고 계세요. 어차피 내일 또 이것저것 조사하려면 피곤할테니까요."

아나스타시아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졸음과 피곤이 밀려왔다. 옆에 리가 있는데 잠들 수 있을까, 싶었지만 리가 돌아누운걸 보니 허탈함과 동시에 잠이 쏟아졌다.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상대라는건가...'

아나스타시아는 잠에 빠져들며 조용히 생각했다. 리는 한참 뒤에 아나스타시아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걸 반복하게 되자 그제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나스타시아를 한 번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착잡한 숨을 들이킨 그는 방에서 나갔다.

"...?"

방에서 나오자 그가 마주친건 아까 본 시체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신장도, 몸도 비슷했다. 리는 잠시 그에게 시선을 뺏길 뻔했으나 가까스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와 반대로 15걸음 걸은 뒤 그가 가는 쪽으로 향했다.

남자는 바닷가로 가고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 아들이지?'

제대로 얼굴을 본 적 없는 탓에 그의 얼굴을 몰랐다. 리는 표정을 찌푸리며 그의 뒤를 밟았다. 그때였다.

"왜 쫓아오는거야?"

남자가 멈춰서서 말했다. 정확히 시체 앞이었다. 리는 뒤를 밟는 게 들켰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해 제법 예리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물은 거나 대답해."

그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더니 리에게 겨누었다. 리는 이크, 하는 소리를 내며 양 손을 들어보였다. 싸울 마음은 없었다.

"시체와 똑같은 인상착의를 하고 있어서 쫓아왔습니다. 그 시체의 어머니가 찾고 있어요."

"... ...그럼 어머니한테 전해. 아들은 이미 죽었다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남자는 차분하게 눈을 굴렸다.

"광석병에 걸려서 감염자가 된 이상 차별받고 싶지 않아. 어머니한테 그런 아들을 책임지게 만들기도 싫고."

남자는 차분하게 대답하고 시체로 시선을 내렸다. 싸늘하게 식은 시체, 죽은 시간은 오후 8시였다. 지금 시간이 정확히 오후 8시 쯤. 살해 도구는 총 하나. 지금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 당신…”

리는 입을 열었다.

“감염자입니까?”

“조용히 해.”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탕, 총성이 울려퍼졌다. 남자는 뒤를 돌아 달려나가려다 자신의 팔을 단단히 붙들렸다. 리는 그의 얼굴을 확인해보고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아나스타시아였다.

"우리가 사람 죽인 꼴이 될 뻔했네." 

리는 아나스타시아가 여유롭게 그의 팔을 돌려잡고 녹음기를 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돌아가는 게 낫겠죠? 살인자로 몰리면 박사님도 이래저래 곤란할테니까요." 

이래저래 곤란하겠지. 그런 말로 해결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나스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거야? 쟤는 아들이야?”

“아들이 맞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자신으로 위장하려 한 사람이겠죠.”

아나스타시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데, 왜? 죽은 신분이 필요한거지? 그리 묻는 듯한 아나스타시아의 눈길에 리는 잠시 말을 골랐다.

“감염됐으니까요.”

“...겨우 그런 이유로?”

겨우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하하. 리는 웃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시아는 겨우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애타게 찾고 있는 착한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 죽은 사람을 본인과 비슷하게 위장시키고, 자신은 모든 신분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리는 그런 아나스타시아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진정하길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한참 후에 경찰이 왔다. 그들은 리가 붙들고 있던 남자를 데리고 갔다. 모든 일은 잘 해결될 것이다. 잘될 것이다. 아마도. 

***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리’는 어느 순간부터 사무소에 들어오는 감염자들이란 진자 운동과 닮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진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움직이는 시계 추, 괘종시계의 우는 소리, 뻐꾸기 시계의 뻐꾹 소리를 떠나서 말이다.-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으로 움직이게 되는 점이나, 관성의 법칙처럼 나아갔을 뿐인데 원치 않는 일로 흘러가는 것이나, 이 화려하고 우아한 움직임이 모두 다른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참으로…. 어떤 사건들과 닮지 않았던가? 

물론 이런 상념은 죄다 리가 멍하니 흔들리는 괘종시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하게 된 것이었다. 

시계는 생각 없이 잘도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에 길게 달린 추를 유연하게 움직여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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