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02

자캐커플

후지사키 소마는 고독한 남자를 사랑했다. 고독을 만드는 남자도 사랑했다. 소마는 그게 제 버릇이라고 생각했다. 보답받을 수 없는 사랑을 쏟는 버릇, 그런 의미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카도 이오리를 사랑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카도 이오리는 옆 자리에서 담배를 길게 피웠다 내뱉었다. 차의 속도가 조금 더 올라갔다. 이오리의 담배 연기가 창 밖으로 길게 그어졌다.

 

둘이 미카도의 본가로 향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미카도 가문의 당주가 살해당했고, 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오리가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이오리가 지목된 이유도 단순하다. 미카도 가문의 당주가 있던 곳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방으로 평소엔 잠궈두었기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

 

이유없는 각혈과 사망, 미카도 이오리를 제외하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막상 그 범인으로 몰린 미카도 이오리는 2주 째 유난히 힘든 임무에 투입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그가 죽을 위기를 몇 번이고 넘겼을 때 미카도 가문에서 살인사건 용의자로 그를 부른 건 정말 예의없는 짓이었다.

 

‘당신들 저주를 할 시간도 없었을 걸.’

 

속으로 소마가 생각 할때 이오리는 말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소마는 넌지시 한 마디 내뱉었다.

 

"가서 뭐라고 할 거예요?”

 

그는 시선을 차로에서 떼지 않고 물었다. 이오리는 느긋하게 담배를 한 번 더 빨아들이더니 웃었다.

 

"글쎄요. 할만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래도 도련님이 죽인 게 아니잖습니까."

"제가 죽였을 수도 있죠."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런 말 들으려고 4시간이나 운전하는거 아니니까."

 

피곤한 눈을 벅벅 문지르던 소마는 제법 짜증스레 말했다. 감정표현에 둔한 그 치고 나름 격한 반응이었다. 이오리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담배 에 한 번 더 불을 붙여 그의 입에 대어주었다. 알싸한 연기가 그의 담배 끝에서 피어올랐다. 소마가 담배에서 입을 떼고 허공에 숨을 내뱉자, 이오리는 그의 뺨에 입을 한 번 맞추어 주었다.

 

"하하."

 

이오리는 웃었다. 대충 넘어갈 의도가 다분한 그의 태도에 소마는 미간을 좁히고 한마디 더 덧붙이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미카도 가문의 집은 정말 화려했다. 정원이 일본식으로 차려져 있었고, 우물엔 커다란 금색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물레방아가 빙글빙글 돌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곳곳에 있는 나무들이 운치 좋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저택을 시간 맞춰 들어왔음에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후지사키는 이게 다분히 의도된 바임을 깨달았다. 첫번째로 이오리의 웃음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실상 그는 늘 웃고 있었기에 속을 알 수 없다고들 했지만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 그 상황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 10분을 서 있었을까, 사용인이 게다 소리를 내며 둘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급히 준비를 하느라 조금 늦어졌네요."

 

우아하고 화려한 기모노 차림의 사용인 한 명이 방 안에서 걸어나왔다. 소마도 모르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릴적부터 이오리를 봐온 만큼 그의 사용인을 아주 모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오리는 느긋하게 눈을 굴리다 웃어보였다. 네. 일찍 나오셨네요. 하고 대답했다. 소마는 잘은 몰라도 그가 교토식으로 말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무례한 대접은 처음이다' 정도의 의미였을까. 한 번 고민해봤다.

 

물론 이오리는 별 생각 없었다. 사용인에게 악의는 없단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이 조금 소란스러웠습니다. 당주님께서 급작스럽게 타계하셔서 다들 놀랐거든요. 그래도 도련님께서 일찍 와주신 덕분에 마음의 짐이 덜었네요. 옆에 있는 분은 친구 분이신가요?"

"아, 네. 가장 절친한 사람이죠."

"근사한 분이군요.”

 

화려한 유카타를 입은 사용인이 말허리를 늘려 중간에 소마의 목가에 살짝 들떠 있던 옷깃을 잡아 다듬었다. 그는 무심코 그녀의 눈길이 어째 약간 불온하다 느꼈다.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지만 웃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녀를 오래 봤지만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교토 사람이라 그런가. 이상한 편견어린 생각이나 한 번 해볼 뿐이었다.

 

그쯤 되어선 이오리가 이만 아버님의 방으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걸음을 돌렸다.

 

당주의 방은 별채처럼 따로 위치해 있었다. 한적하고 소담하다 할 법한 분위기의 문이었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한 기운이 훅 끼쳤다. 아직 시체를 치우지 않아 배설물 냄새와 피냄새가 섞여 불쾌한 시체 냄새를 잔뜩 풍겼다. 물론 사용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보다시피, 피를 제물로 바쳐 피로 화를 입히는 방법의 저주는 도련님만 쓸 수 있는 저주입니다. 미카도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아주 훌륭한 방식이지요."

 

이오리는 방을 둘러보았다. 대충 한 번 훑어보던 그는 가면같은 웃는 얼굴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차기 당주는 내가 되는겁니까?”

"네에. 이미 집안 어른들 사이에서 그렇게 결론이 났답니다."

 

이오리는 제 입가의 점을 톡톡 두드렸다.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삼남은 어디 있나요?”

"자신의 방에 있답니다. 아무래도 착잡할만 하겠지요. 어리니까요."

 

착잡해하려나. 미카도 가문의 당주가 그의 아들들과 친했을지 고민해보았다. 이오리가 자신의 동생에게 형노릇을 잘 해주지도 않는데 그의 아버지가 다정하게 굴어줬을지 의문스러울 뿐이었다.

 

"그럼 됐어. 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그럼 느긋하게 쉬고 가시길."

 

두 사람은 별채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안내받고 짐을 풀었다. 다행히 이오리의 방은 개인용 방이라기엔 괜찮은 리조트 방 수준으로 넓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방에선 이오리 특유의 녹차 향기가 났다. 아무래도 두 명이 묵기엔 충분해보였다. 소마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대자로 드러누워서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교토사람은 못되겠어요.”

"...별로 교토다운 말은 안했는데요? 다들 친절하시고.”

"그것도 교토식 화법입니까?"

"아니요. 진심인데."

 

이오리는 의뭉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소마는 그의 얼굴을 보다 속을 파헤치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머리 부근에 무릎을 꿇고 앉은 이오리는 그의 머리를 제 허벅지 위에 올렸다. 소마는 눈을 내려감았다.

 

"상냥하시네요, 미카도 씨."

"별 말씀을요, 후지사키 씨."

 

괜한 문답을 한 번 해보고는 이오리는 느긋하게 소마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가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였다. 길다란 후지사키 소마의 머리카락을 길게 매만지는 것. 소마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삼남은 왜 범인으로 지목당하지 않은겁니까?”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고는 들었습니다.”

“같이 있던 삼남이 당신보다 훨씬 당주를 죽이기 쉬웠을텐데요. 왜 그보다 당신이 먼저 살해 장소를 봐야했냐는 말입니다.”

“저주는 물리적 거리를 가리지 않으니까-..?”

 

이오리는 말 끝을 늘렸다. 또 다시 유순한 웃음을 띈 그는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소마는 결국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었다. 그냥 해본 생각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밤이 제법 늦지도 않았는데 졸음이 밀려왔다. 하염없이 깊은 잠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소마가 다시 일어난 건 이른 새벽이었다. 1시는 되었을까, 그는 귓가에서 들린 발 걸음 소리를 듣고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눈 앞에서 제게 걸어오는 발은 피에 젖어 있었는데, 어디선가에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퍼뜩 몸을 일으켰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그의 눈 앞에 있는 발의 주인은 미카도 이오리였다. 그는 발에 피를 가득 묻힌 채로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뭡니까?”

“설명은… 차에 타서 할까요. 잠은 충분히 잤죠? 갈까요. 저는 이 집이 싫어요. 너무 따분하거든요. 사람이 죽어나는 집에 있어봤자 재밌는 것도 없을 것 같아요."

 

소마는 이런 상황에도 차분한 이오리의 태도에 잠시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그가 항상 이런 태도였단 걸 기억해냈다. 분명 악의는 없을 것이다. 그래야한다... 그리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오리를 믿고 싶었다. 그는 대충 짐을 챙겨 미카도 집 대문에서 나왔다. 미카도에서 나온 것 만으로 숨을 쉬는 게 쉬워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차기 당주는 당신이 되는겁니까?"

"그렇겠지요."

"당주가 되고 싶습니까?”

“뭐… 떠밀리듯이 됐잖아요. 지금. 할 일은 해야겠지요.”

 

어, 정말? 소마는 바보같이 그렇게 물을 뻔했다. 이오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그만 좀 노리라고 하고 싶었거든요. …이번만 해도 몇 번을 죽을 뻔했는지 모르겠네요.”

"...무슨 소리예요?”

"당주를 죽인 건 제가 아닙니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뭐라고요? 라고 말해버렸다. 이오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제가 여기로 발 걸음 하는 게 미카도의 목적이었을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4시간 동안 운전한 후지사키가 제법 화낼만한 상황이었다.

 

“최근 악마가 힘을 얻고 있죠. 두려워할수록 힘이 강해지는건 악마뿐만 아니라 저주도 그럽니다. 저주와 악마는 아주 닮았죠. 힘을 쓰면 댓가를 본인이 치러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요?”

“미카도의 당주가 죽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함으로서 제게 힘을 실어주려는겁니다. 미카도의 차기 당주는 저니까요.”

“…고작 그런 이유로?”

“음양사 가문 중에서도 대표격인 미카도에 살을 날리는 잡다한 가문들에 미카도도 제법 짜증난 게 아닐까요. 그러니 ‘용의자’, 다르게 말하면 ‘차기 당주’로서 자리를 지키러 오라 한걸테고.”

 

소마는 핸들을 잡고 커브를 돌았다. 도쿄로 돌아가려면 다시 4시간을 달려야했다. 가로등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밤길은 차의 불빛을 제외하곤 한치 앞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피를 잔뜩 묻히고 온거야? …누구 피야?”

“삼남이요.”

 

이오리는 짧게 대답했다 설명이 더 필요할 것을 깨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당주를 죽이고 그가 저를 저주하면 제 퇴근이 계속 늦어지겠죠. 그럼 곤란해요. 그래서 삼남한테 부탁을 했어요. 지금까지 받은 저주 좀 되받아쳐달라고요.”

“왜 진작 그러지 않은거야? 그럴 수 있다면 진즉에 말하지.”

“그건 너무 힘든 일인데다… 전화는 도청당할 수 있으니까? 직접 말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다.

 

“그리고 집에 당신 얼굴을 비추려는 것도 있었어요.”

“왜?”

“내년 봄에 당신과 결혼을 하려면 미리 얼굴을 보여야할테니까요.”

 

소마는 그의 대답이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최악인 프러포즈 1순위에 들어갈 것을 짐작한다. 소마는 한숨을 푹 내뱉고 대꾸했다. 정-..말 로맨틱하시네요. 이오리는 대답한다. 그런 편이지요.

 

이오리는 그 모든 게 저주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훌륭한 일이었다. 내년에는 미카도 집안에서 혼인식을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마가 모는 차의 차창에 기대어 느리게 눈을 감고는 웃었다. 두려움이 클 수록 악마는 강해지고 경계할 수록 저주는 쉽게 먹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가엾다고 생각했다. 가문의 사람들은 미카도 이오리를 두려워한다. 단순히 그의 저주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고독을, 그의 차분함을, 그의 알 수 없는 속내를, 그러나 단순하고 다정한 인간적인 면모를, 소마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무서워했다.

 

후지사키 소마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말했다.

 

“제 겉옷 안 주머니에 상자가 하나 있을거예요.”

“네. 있네요. 무슨 상자인가요?”

“열어봐요.”

 

이오리는 상자를 열고 안에 있는 반지를 발견했다. 후지사키 소마의 투명한 푸른빛을 닮은 보석이 반지에 박혀 있었다. 본 순간 이오리의 웃음이 풋, 하고 터져나왔다. 로맨틱하시네요. 그의 말에 소마는 어깨를 으쓱이곤 그의 말을 따라했다. 그런 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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