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표 탐정 에이미
월간 에바린 24년 3월호
"에이미, 그만 물어."
지친 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에이미라 불린 여자아이는 물고 있던 흰색의 기다란 털뭉치를 툭 뱉어냈다. 털뭉치는 아래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리저리 휙휙 움직였다. 몇 번 움직이던 털뭉치가 자연스럽게 다시 에이미의 입으로 향하자 남자가 가볍게 톡 쳐냈다.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에이미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춥지도 않잖아."
"에이미, 추워."
"안 추워."
남자는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차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서 에이미에게 둘러주었다. 귀까지 덮는 털모자에 빵빵한 양털 외투와 손모아 장갑, 두꺼운 솜바지에 아이젠을 낀 어그부츠까지. 누가 봐도 추위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옷차림이었다. 남자의 목도리가 에이미의 코와 입을 완전히 덮자, 에이미는 목도리를 낚아채서는 다시 남자의 어깨에 얹어주었다.
"갑갑해, 싫어."
"거봐. 그냥 꼬리를 무는 게 좋아서잖아."
"추워."
"안 춥다니깐. 자꾸 그렇게 물면 버릇 들어. 안 돼."
에이미의 꼬리가 아래로 축 쳐졌다.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길이며 나뭇가지며 온 사방에 눈 천지였다. 이따금 에이미는 나뭇가지의 눈을 일부러 털거나 눈 뭉치를 만들어 남자에게 던지곤 했다. 에이미가 흥분해서 내리막길에서 뛰어가려고 하거나 꼬리를 입에 물려고 할 때를 제외하면, 남자는 다소 지친 삼촌같은 표정을 지으며 에이미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사실 에이미를 데려오기로 한 것도 남자의 의지였다. 폭설이 잦아서 시기를 잘못 맞추면 고립되기 딱인 마을인데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러 가는 길이니, 누구라도 데려가지 않으면 죽거나 미치거나, 혹은 미쳐서 죽거나 할 게 뻔했다. 그렇다고 말 많고 말 안 듣는 보조 수사관을 데려가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 스튜 냄새."
다섯 번째로 내리막에서 남자에게 붙들린 에이미가 문득 코를 킁킁거렸다. 여느 고아들처럼 신전 밖에서 굶고있던 이 어린 설표 수인은, 수인답게 감각도 예민하고 호기심도 많은데다 체력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배우는 게 빨랐고 말리면 잘 듣는데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난 그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그리고 에이미는, 다시 한 번 남자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내리막을 달려 내려갔다.
"… 그러다 넘어지면 코 깨진다니까."
남자가 한숨을 푹 쉬고는 빠른 걸음으로 에이미의 뒤를 따라갔다.
워츠밀로Wurtmilo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외부인의 왕래가 적은 마을이었다. 마을의 유일한 출입로인 산길이 폭설에 묻히면서 외부인의 출입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시체가 발견되자마자 출입로를 봉쇄하여 도주로 역시 차단했다. 즉, 사체가 자살이 아니라면 범인은 마을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코로너(coroner, 왕실에서 파견한 특별 수사관 겸 집행관)."
에이미를 가까스로 붙든 남자를 맞이한 건 키가 크고 안경을 쓴 남자였다. 왕립 은행의 지점장이자 마을의 실세인 피츠제럴드 자작일 것이다. 자작의 뒤에 서있던 사용인들과, 에이미 또래의 한 소녀도 코로너를 향해 인사했다.
"그저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그래도 모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는데, 연휴를 방해한 기분이라 죄송하군요. 안 그렇습니까, 미스터?"
"괜찮습니다. 시체부터 보러 가시죠."
은근슬쩍 그의 이름을 묻는 자작의 말을 무시한 코로너는 앞장서라는 듯 자작을 바라보았다. 내내 올라가있던 자작의 입꼬리가 조금 내려갔으나, 여전히 호의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쪽으로, 같은 말을 하며 자작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코로너와 에이미는 그의 뒤를 따르고, 사용인들과 소녀 역시 일행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소녀가 에이미의 옆에 서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델피나 피츠제럴드라고 합니다."
"나, 에이미."
꼬리를 오물거리던 에이미가 황급히 꼬리를 입에서 뱉어내고 말했다. 델피나는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꾹 참고 다시 말을 걸었다.
"눈이 그쳐서 다행이네요. 오시는 데 불편한 건 없으셨나요?"
"추워. 배고파."
그래서 꼬리를 물고 있는건가, 델피나가 생각할 때쯤 자작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몇 걸음 앞, 엉성하게 줄을 쳐놓은 곳을 가리켰다.
"이 쪽입니다. 저희 저택의 사용인 숙소가 바로 근처입니다. 시신을 발견하자마자 바리케이드를 쳐뒀고, 숙소에 머물던 사용인들도 모두 불러뒀습니다."
코로너가 자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뿌듯한 듯한 미소를 짓는 자작의 속내는 얼핏 알 것도 같았지만, 왕실 관료와 연을 맺고 싶어하는 지방 귀족의 비위를 맞출 시간도 심적 여유도 말재주도 없었다. 빨리 끝난다면 식사 정도는 같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너는 엉성한 줄을 가볍게 넘어 시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체의 사인은 명확해보였다. 눈 속에 엎어진 채로 파묻힌 시체의 머리 주변으로 피가 흥건했다. 그가 들어오기 전까지, 바리케이드 안 쪽으로는 발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코로너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체의 바로 위에 가파른 설산이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눈이 내리는 날 산길을 헤매다 발을 헛디뎌서 그대로….
"율리, 율리."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코로너, 율리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샌가 따라 들어온 에이미가 시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율리를 부르고 있었다. 율리가 고개를 돌리자 에이미가 시체의 머리 쪽을 가리켰다.
"여기, 맞았어. 둔기."
에이미가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에이미의 말대로 시체의 뒤통수 쪽에 혹이 나 있었다. 율리는 가만히 생각했다. 위에서 떨어진 후 바닥에 부딪칠 때 난 혹이라면, 시체는 정면을 보고 있어야 한다. 떨어지는 중에 부딪쳤다면, 나뭇가지가 부러졌거나 하는 흔적이 있을 터였다. 그러나 시체 주변은, 눈 속에 파묻혔다는 걸 감안해도, 꽤나 깨끗한 편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개입을 알리고 싶지 않은 듯.
"피츠제럴드 자작."
율리가 바리케이드를 넘어 자작의 앞에 섰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혹시 하루 정도 묵을 방을 찾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작은 순순히 저택의 손님 방을 내주었다. 사용인들이 부산스럽게 손님 방을 청소하는 동안, 자작과 코로너, 에이미와 델피나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자작은 우아하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같이 오신 분은 조수인가요?"
자작이 에이미를 보며 물었다. 에이미는 서툴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으므로, 보호자 격인 율리가 대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신전에서 거둔 아이들 중 하나입니다. 조수같은 거 할 나이는 아닙니다."
"아~ 그래서 이렇게 경험삼아 데리고 다니시는군요. 때로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도 방학을 맞아서 왕성에서 내려왔는데, 집에서도 책만 읽어서 걱정입니다."
"책?"
내내 고개를 처박고 칼질을 하던 에이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있는 손도 고개와 동시에 들리면서, 소스가 앞으로 튀었다. 다행히 튄 소스가 맞은편의 자작이나 델피나에게까지 닿지는 않았다. 율리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면서, 에이미에게 식사 예절부터 다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미가 눈을 빛내며 자작을 바라보았다.
"나, 책, 원해. 어디서?"
"이렇게 보여도 책을 읽는 걸 좋아해서요."
율리가 에이미의 말을 해석해주었다. 자작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조금 전 보여준 뛰어난 추리는 이론과 경험의 완벽한 조화의 산물이군요. 우리 딸아이가 이번 방학 때 많은 걸 배워갈 수 있게 도와주시면 좋겠군요."
델피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린 채 고개를 접시에 처박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낮추는 척하며 자랑할 기회만 엿보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띄워주려고 해도 정도가 있지! 관찰력이 좋았던 건 그저 수인의 신체 조건이 인간보다 뛰어나서일 뿐이고, 정작 용의자도 제대로 추려내지 못했는데. 책 이야기는 또 어떻고. 어눌한 수인의 발음으로 보아 그림책이나 제대로 읽으면 다행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델피나는 왕립 마법학교의 우등생이자 피츠제럴드 자작의 자랑스러운 맏딸이었으므로, 이내 표정을 가다듬은 채 고개를 들어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코로너께서 신문하시는 동안, 제가 에이미 양과 제 서재에서 대기하고 있을까요?"
식사 후에는 저택에서 일하는 모든 사용인들을 대상으로 신문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사망 추정 시각인 이틀 전 모두의 알리바이와 동선을 듣고 정리하여 허점을 찾아내야하는 골치아픈 작업이었다. 이미 폭설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사용인들의 기억이 희미해졌을 터였다. 최대한 빨리, 방해를 받지 않고 수사를 해야했다. 율리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미는 다시 한 번 포크를 흔들었다.
"서재, 좋아."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용인 명단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
자작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식사가 끝난 후 율리는 1층의 손님 방으로 향했고, 에이미는 델피나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향했다. 델피나의 방은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남동쪽에 위치한 델피나의 방은 밝은 색의 오리목 가구들로 채워져있었다. 열린 통창에 달린, 델피나의 머리색과 꼭 닮은 은빛 커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통창 너머 작은 발코니 난간에는 투명한 작은 큐브 장식같은 게 두어 개 올려져있었다. 햇빛이 닿지 않는 반대편 벽에는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서가가 놓여져있었다. 서가마다 책들이 빽빽히 꽂혀있었는데, 서가용 사다리나 발받침은 보이지 않았다. 에이미가 서가를 쳐다보는 사이 델피나가 말했다.
"혹시 좋아하는 책이 있으신가요? 어릴 때 읽던 그림책은 다 창고에 있어서요. 얘기해주시면 꺼내오라고 할게요."
친절한 체 이야기했지만, 그 속에 비웃음이나 깔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에이미가 알아들었다면 금새 발끈했을 것이다. 물론 에이미가 알아들으리라 생각했다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불쾌해하지도, 조롱하려들지도 않았겠지. 역시나 에이미는 문장 그대로 받아들인 듯, 꼬리를 문 채 책장을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꼬리를 툭 뱉고는 이야기했다.
"목공, 대장간, 칼, 보석."
예상과 다른 대답이 나오자 델피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델피나는 성큼 책장 앞에 다가가서 가장 높은 서가에 위치한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마력과 신성력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보석 세공 및 관리법]. 델피나 자신도 과제 때문에 샀다가 과제가 끝나자마자 처박아둔 책이었다. 그리고 에이미에게 건냈다.
"이런 책은 어떠세요?"
에이미는 책을 받아들고는 바로 페이지를 몇 장 넘겼다. 그럼 그렇지, 삽화라도 찾나보네, 델피나의 생각은 이내 완전히 무너졌다. 에이미는 목차와 머릿말을 건너뛰고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그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델피나는 허둥지둥, 책에 집중하려는 에이미를 일으켰다.
"바닥에 그렇게 앉으면 안돼요, 에이미."
"의자, 불편해."
"그러면 적어도 카펫 위로 올라오세요!"
한바탕 소동 후, 델피나의 방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델피나는 방 한 가운데의 티 테이블에 앉아서 간밤에 읽던 소설을 읽었다. 에이미는 베란다 앞에 깔린 카펫에 앉아서 꼬리를 물고 책을 읽었다. 분명 그랬는데, 어느 새 델피나의 발에 무언가가 부딪쳤다. 델피나가 고개를 돌리자, 테이블 아래 에이미와 눈이 마주쳤다. 델피나는 한숨을 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코로너 율리가 왜 그렇게 한숨이 많았는지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에이미, 벌써 세 번째에요. 카펫이 불편해도…."
"들려."
에이미가 델피나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대고는 바닥을 가리켰다. 델피나는 단번에 그 뜻을 이해했다.
손님방은 델피나의 방 바로 아래였다.
"들을래?"
"아뇨, 괜찮아요."
델피나가 고개를 저었다. 범인을 잡는 일은 코로너, 아니면 그의 조수격인 에이미의 일이었다. 에이미가 조금이라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게 델피나의 일이라면 일이었다. 델피나는 책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카펫 위에 올려져있던 슬리퍼를 신고 베란다에 발을 딛자마자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델피나의 몸을 가득 채웠다. 방 쪽을 돌아보자, 바닥에 엎드려서 귀를 바짝 재고 있는 에이미가 보였다. 신문에는 영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나 걸리려나,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델피나는 다시 바깥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 곳에서는 사체가 보이지 않았다. 사체가 있는 곳은 북쪽에 있는 사용인 숙소에서도 조금 더 걸어야하는 곳이었다. 대신 델피나의 눈에는 눈에 덮인 정원과 분수대, 산책로, 그리고 입구의 길이며 산책로의 눈을 쓰느라 분주한 사용인들이 보였다. 정원사들 역시 수레에 눈을 퍼담아 정원의 식물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신문에 불려간 사용인들의 것인지, 군데군데 나무에 걸린 정원 가위나 눈밭에 묻힌 삽같은 것들이 보였다. 살인일지도 모를 사건이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풍경이었다.
… 잠깐만.
델피나가 다시 고개를 돌려서, 주인을 기다리는 도구들을 바라보았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이걸 말해야할까? 별 것도 아닌 걸로 시간을 뺏었다고 하면 어떡하지? 델피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에이미와 눈이 마주쳤다.
"저, 알 것같아요."
"…나, 알았어."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용인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쌍둥이였으니까요. 어느 누구라도 몰랐을 겁니다."
코로너, 율리가 이야기했다. 그의 손에는 밧줄이 들려있었고, 밧줄의 끝에는 한 남자가 묶여있었다. 남자의 입에도 밧줄과 천이 물려있었다.
"시체의 얼굴을 보기라도 했다면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작께서는 법대로 하셨잖습니까. 게다가 시체를 얼리고 나무에 매달아서 사망 시간도 속이려고 했으니, 설령 보더라도 뭔가 알아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긴 하죠. 그런 악랄한 수법을 간파하고 금방 범인을 찾아 다행입니다. 걸음을 빨리하시면 왕성의 신년 축제에 늦지 않으시겠군요."
"하하…."
자작의 말에 율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퍼레이드와 불꽃놀이 따위를 보느니, 지하 감옥에서 범죄자들과 침묵의 송년회를 보내는 게 나았다.
"그나저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자가 범인인지."
"자작 영애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델피나요?"
자작이 놀람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델피나를 바라보았다. 델피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저 에이미 양의 이야기를 전해줬을 뿐입니다."
"에이미, 델피, 같이."
율리의 옆에서 에이미가 끼어들었다. 자작의 고개가 다시 에이미를 향해 돌아간 사이, 델피나는 에이미를 보고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쉿, 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에이미는 눈을 깜빡였고, 자작은 탄성을 뱉었다.
"아, 정말 겸손하시고 또 상냥하시지. 생각없이 눈밭에 던져둔 삽이나, 저택 안에서 헤매는 발소리같은 건 아무나 발견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저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딸아이가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시니 기쁘기 그지없군요."
"자작께서는 축제에 가지 않으십니까?"
율리가 아무 말이나 뱉었다. 이대로 자작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간 밤새도록 홀에 서있어야할지도 몰랐다.
"저희는 매년 새해를 조촐히 맞곤 했습니다. 뒷산에서 첫 해돋이를 보고 내려와서 빵과 케이크를 먹곤 했죠. 올해도 그럴까 했는데…."
"델피. 축제, 같이?"
에이미가 율리의 팔을 툭 치고는 물어봤다. 자작이 입을 열기 전에 델피나가 선수를 쳤다.
"축제는 괜찮아요. 대신, 개학하고 왕성에 가면 찾아갈게요. 일주일 후에요."
"일주일. … 좋아. 다시 봐."
에이미가 웃으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양 팔은 책 한 권을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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