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바린

보라빛 향수鄕愁

월간 에바린 24년 2월호

짐마차 한 대가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덜커덩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하늘을 가리는 먹구름 사이로 이따금 오묘한 보랏빛 하늘과 주홍빛 빛이 일렁였다. 짐과 함께 실린 밝은 베이지색 머리의 소녀는 짐과 함께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주변에 건물도 사람도 짐승도 보이지 않아 언뜻 평화로운 시골길 풍경처럼 보였다.

그러나 짐마차에 실려있는 소녀, 리아트리스 오키드의 표정은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그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고, 이따금 짐마차가 크게 덜컹거려 짐들에 부딪칠 때마다 더욱 크게 인상을 썼다. 제 몸통만한 가죽 가방을 끌어안은 리아트리스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속으로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프레데릭, 이 나쁜 놈. 돌아가기만 해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물론 리아트리스가 할 줄 아는 욕은 '나쁜 놈', '못된 녀석' 정도였지만, 진심으로 저주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이 고된 여정의 시작이 프레데릭, 저보다 세 살 많은 오라비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오빠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정확히는, 서재에 둘이 있을 때 문을 잠그는 일이 더 잦아졌다. 그 전에는 언제 서재에 들어가도 웃으면서 맞아주던 아버지였는데. 그러더니 조금씩 상단의 규모를 줄이고, 재산을 처분하고, 급기야는 자신도 지식의 탑으로 유학을 빌미로 내쫓아버렸다. 리아트리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물론 지식의 탑으로의 유학은 예전부터,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상단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공부한 약초학과 연금술에 재능이 있음을 부모님 모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입학 허가를 받았을 때도 뛸듯이 기뻤다. 하지만 호위 기사도 시녀도 없이 무섭게 생긴 마부가 모는 낡은 짐마차에 올라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리아트리스는 이 모든 게 프레데릭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습니다."

덜컹거리는 바퀴소리와 말발굽소리를 뚫고 마부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알아요, 아까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던 리아트리스가 대꾸하려다 그만두었다.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서 상대에게 무례하게 구는 건 옳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쳤다. 몇 번 말을 고른 리아트리스는 큰 소리로, 하지만 고함치거나 짜증내는 것처럼 들리지 않게 노력하며 말을 걸었다.

"그럼 어디에서 쉬나요?"

"앞에 마을이 있습니다."

마부의 말에 리아트리스는 품 안에 끼고있던 가방을 조심스럽게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켜 천장을 꽉 잡고 고개를 위로 쭉 쳐들었다.

마부의 말대로 멀지 않은 곳에 여러 채의 민가가 보였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여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높게 걸린 건물이 보였다. 보통의 시골 마을이 그렇듯, 이 곳 역시 여명교의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듯했다.

마을 입구에 가까워지자 마부는 마차를 멈춰세우고는 보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리아트리스는 다시 짐마차로 내려와 가방을 끌어안았다. 앞으로 적어도 2주 정도는 이렇게 불편한 여행을 계속해야만 했다. 마차 너머, 보초가 누군가를(아마도 마부일 것이다.)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들뜬 목소리로 환영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리아트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마침 잘 왔어요, 세뇨르, 세뇨리따. 이제 막 타파스를 먹으려던 차였어요."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여관에 발을 딛자마자 주인이 리아트리스에게 말을 건냈다. 외부인의 왕래가 많은 동네가 아니다보니, 정식 여관이라기보단 손님방이 딸린 주점에 가까웠다. 로비 대신 길게 늘어진 바와 큼직큼직한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짐은 이리 줘요, 우리가 방에 올려둘게요."

주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리아트리스가 들고 있는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리아트리스는 움찔하며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좀 더 자연스럽게,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텐데.

"괘, 괜찮습니다. 제가…."

"아유,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좀 들어요. 손님들 오면 바빠서 신경도 못써줘~"

바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주인은 여전히 웃으면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리아트리스는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주인에게 내밀고는, 주인이 빼주는 바 쪽 의자에 앉았다. 두어 자리 떨어진 자리에 마부가 앉았다. 바 안 쪽의 요리사(아마도 이 여관 겸 식당의 안주인일듯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타파스 몇 개가 담긴 접시와 와인 한 잔씩을 손님들의 앞에 탁 내려두었다.

"많이 먹어요, 사양 말고, 돈 걱정은 더더욱 말고. 숙박하러 온 사람한테 돈 뜯어내지는 않을거니까."

"감사히 먹겠습니다."

마부가 인사를 하고는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리아트리스 역시 서둘러 기도를 시작했다. 전능하신 아벨이시여, 오늘도 우리에게 몸 누일 곳과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벨의 빛 아래 환대받을 마을을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된 여정길에 마물을 만나지 않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한 입 크기로 썰어낸 부드러운 빵 위에 하몽이며, 올리브며, 새우며, 치즈며, 다양한 재료들이 올라와있었다. 이걸 그냥 먹는건가? 포크 없이? 리아트리스는 곁눈질로 마부를 보았다. 마부는 벌써 제 몫의 접시를 다 비운 채 마지막 타파스를 집어들어 입 안에 넣고 있었다.

"입에 안 맞아요?"

마부에게 새 접시를 내주던 요리사가 리아트리스의 접시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리아트리스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유, 무리해서 먹지는 마요. 먹다가 체하면 그게 더 손해야~ 정 그러면 와인부터 마셔요. 오늘 막 받아온거라 맛이 괜찮을거야."

리아트리스가 조심스럽게 잔을 들었다. 재엽栽曄군에는 옛 아벨로스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시오들의 마을이 많다고 들었다. 마을마다 양조장을 하나씩 공동 소유하는데, 같은 쉐리 와인이어도 양조장마다 독특한 맛이 난다고 했다. 이 와인같은 경우는….

"올라, 쥴리! 바깥에서 손님이 왔다면서?"

가게의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한 무리라고 하기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가게로 우루루 들어왔다.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테이블이며 바며 자리를 하나씩 잡았다. 마부와 리아트리스의 양 옆에도 손님이 앉았다. 낯선 사람이 가까이 앉자 리아트리스는 반사적으로 움츠렸다. 손을 아래로 뻗어 제 가방을 찾다가, 조금 전 주인에게 가방을 맡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아트리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사람들, 단체로 무슨 짓을 꾸미는 건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면? 어쩐지 너무 쉽게 방을 내준다 했어. 이렇게 마부와 나를 납치해서 본가에 돈을 요구하나? 본가에서는 당연히 돈을 내지 않을텐데, 그럼 나는 이제 죽는건가? 아니면 소영부의 삼류 서커스단에 팔릴지도 몰라. 어쩌면….

"아가씨."

익숙한 목소리가 생각의 꼬리를 잘랐다. 리아트리스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 새 자리를 바꿨는지 낯선 마을 사람 대신 마부가 앉아있었다.

"인상 펴십쇼. 위험한 마을은 아닙니다."

그리고는 뒤편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주인 부부는 타파스와 와인을 끊임없이 내고 있었다. 음식을 먹기 시작한 사람들은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큰지 내기라도 하듯이 경쟁적으로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바 안으로 돌아온 요리사가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어휴, 정말. 다들 반가워서 저러는 거에요. 외지인을 환영한다는 건 핑계고, 건수 잡아서 술 퍼마시고 놀 생각에 신난 거지만."

"어이, J.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알콜중독자 한량 무리로 보일 거 아냐."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거든?"

리아트리스 오른쪽에 앉아있던 한 여자가 끼어들었다. 요리사, '쥴리'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맞는 말이잖아.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데리고 오지도 않으면서."

"그치만 정이라는 게 있잖아~ 그러니까 너도 오늘은 반값이라고 한 거 아냐?"

쥴리는 대답 대신 와인 한 잔을 여자에게 퉁명스럽게 내밀었다. 여자는 낄낄거리면서 리아트리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데 정말이야. 우리 마을에 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거든.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오면 엄청 기대되고 재밌어. 이 사람은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하면서 말야."

"저, 저는…."

"아, 맞다!"

리아트리스의 말을 끊고 여자가 손뼉을 짝, 쳤다.

"나는 페트라야. 그냥 P라고 불러도 돼. 너는?"

"오키드 가문의…."

"아이, 그런 딱딱한 거 말고~"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페트라가 리아트리스의 잔에 자신의 잔을 짠 부딪쳤다. 리아트리스는 얼떨결에 그를 따라 잔을 들고 와인을 마셨다. 그 다음 페트라가 리아트리스의 입에 타파스를 넣어주었다.

"술만 마시면 속이 쓰려서 안 돼."

"애 좀 그만 괴롭혀, P."

"그치만 귀엽잖아~ 그래서, 이름이 뭐야?"

"… 리아, 트리스요."

리아트리스는 조금 울고싶어졌다. 도움을 청하듯 마부를 바라봤지만, 마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 새 와인잔이 도착했다.

"리아트리스, 리아, 엄청 귀여운 이름이야. 라 비올루즈La Violuz에 온 걸 환영해! 아, 이 참에 다른 사람들도 소개시켜줄까?"

"아뇨, 괜…."

"이봐, 이리 와서 리아랑 인사해~"

페트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왔다. 알렉스, 셀리아, 카를로스, 알론소, 잠깐, 알론소가 한 명 더 있어, 점이 있어서 알푼토(punto:점)라고 해, 그리고 에스더, 피나, 사츠키, 얘는 소영에서 온 휴고의 아내야, 프랑, 아비게일, 발레리아…. 한 명 씩 인사할 때마다 잔을 부딪치고, 리아트리스의 긴장 역시 조금씩 풀렸다.

밤이 깊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왔다. 더 이상 가게에 손님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가게 뒤편의 넓은 정원에 테이블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마을 잔치가 열리는 모양새가 되었고 요리를 돕기 위해 주방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생겼다. 커다란 오크 통 앞에 늠름하게 선 페트라는 한 손에는 국자, 한 손에는 잔을 들고 모두에게 와인을 나누어주었다. 알푼토라고 불렸던, 코 옆에 큰 점이 있는 남자는 잠깐 사라졌다가 기타를 들고 나타났다.

알푼토는 정원의 가장 큰 나무에 기대서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흥이 오른 몇몇은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리아트리스는 비로소 시오의 마을에 왔음을 실감했다. 기타 반주와 목소리뿐이었지만,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보다도 풍부하고 아름다웠다. 우아하면서도 발랄하고,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새어나온 달빛 때문에 정원 이 곳 저 곳이 반짝였다. 시원한 밤바람이 리아트리스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리아트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깔깔 웃었다. 이렇게 크게 웃은 것도 오랜만이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와인통에 토를 하기 전까지.

"리아, 괜찮아?"

페트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끝으로 의식이 끊겼다. 그러면서 기억도 사라진다면 좋았을텐데.

리아트리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기억은 사라지기는 커녕 지독한 수치심과 두통을 함께 데려왔다. 문 밖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페트라와 쥴리였다. 분명 배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지, 당장 가진 돈은 없는데 어떡하지? 지식의 탑에 낸 학자금을 빼와야하나, 그 때까지 기다려줄 리가 없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중에 돈이 될만한 것도 없고. 그나마 값이 나갈만한 건 가방 안에 들어있는 어머니의 유품인데, 그것만은….

"리아, 들어갈게."

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아는 뭐라도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잠긴 목을 풀기 위해 헛기침을 두어 번 하자 문이 열렸다. 리아트리스는 몸을 일으켰지만 쥴리와 페트라가 그를 말렸다.

"아냐, 더 누워있어."

"죄송합니다. 즐거운 연회를 망쳐서…."

"어머, 연회라고 불릴 만큼 거창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마을 사람들끼리 놀던 거니까. 그보다…."

"그, 배상은…."

"배상?"

쥴리가 어리둥절하다는 듯 리아를 바라보았다. 페트라 역시 얼빠진 눈으로 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리아, 어제 일 때문이라면 신경 안써도 돼. 그 정도는 마법으로 어떻게든 되니까."

"마법이요?"

"어머, 이래봬도 시오야, 우리. 설마 J 말대로 하루종일 술 퍼마시는 한량인 줄 안거야? 서운해~"

"그만 놀려, P."

"알았어, 알았어. 어쨋든 네 몸이나 신경 써. 술이 약하면 거절을 했어야지~"

"몰랐어요…. 늘 식전 와인 한 잔만 마셔서…."

"다음부터는 무턱대고 마시지 말고 정신 바싹 차려야해요. 알았죠? 특히 P같은 애들은 더더욱."

"내가 뭐 어쨌다고."

"네가 리아를 하루종일 붙들고 괴롭혀서 그런거 아냐. 아무튼 리아, 약이랑 스프에요. 원래는 가스파초를 하려고 했는데 속에서 안 받을것같아서 스프로 끓였어."

투덜거리는 페트라를 무시하고 쥴리가 탁상 옆에 스프 그릇과 작은 환 서너개를 올려두었다.

"숙취해소용 약이에요. 옛날부터 내려오던 민간요법인데 의외로 효과가 좋아, 맛은 없지만."

"가, 감사합니다…."

"일정이 밀려서 어쩌면 좋아. 그래도 무리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푹 쉬어요."

가자, 쥴리가 페트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페트라는 리아의 이불을 바로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졸리면 좀 자고 이따 먹어도 돼. 푹 쉬어."

두 사람이 나가고 방문이 닫혔다. 머리맡의 창문으로 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창문을 열면 그 바람도 시원하겠지. 리아트리스는 눈을 감았다.

리아트리스는 들판에 서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입에서 작은 기포 방울들이 뽀르르 올라왔다. 그럼에도 숨을 쉬거나 움직이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잃어버렸던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했다. 기포 방울들은 사라지지 않고 하나로 합쳐져 수면 위의 빛을 받아 오묘한 보라빛을 띄고 있었다. 물 속에서 리아트리스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춤을 추고 헤엄치며 노래를 불렀다. 더 많은 기포 방울이 생겨나 반짝이다가 길을 만들었다. 반짝임을 따라 헤엄치던 리아트리스는 멀리 희미한 건축물을 발견했다. 거대한 성벽과 그 위로 솟아오른 궁전. 그리고 들려오는 기타 소리와 합창.

리아트리스는 눈을 떴다. 여전히 싸구려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찬란한 보라빛이나 웅장한 성벽은 보이지 않았다. 리아트리스는 꿈에서 보았던 풍경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곳이라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쉬었다 가도 되는데."

페트라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리아트리스가 짐마차에 오르기 쉽게 손을 잡아주었다. 리아트리스가 웃으며 물었다.

"이틀이나 지났는걸요. 서두르지 않으면 안돼요."

"어쩔 수 없지. 또 놀러 와. 이번엔 약한 술로 준비… 아야, 아파!"

"술 좀 줄이라니까!"

쥴리와 페트라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리아트리스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의 마부가 나직히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쥴리, 페트라, 저 이제 가요!"

리아트리스가 대답 대신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페트라와 쥴리 뒤에 나타났다.

"다음엔 더 오래 있다 가~"

"또 오면 기타 치는 법 알려줄게!"

"돼지도 한 마리 잡아줄테니까 배 비우고 오라구!"

시골 마을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도 시끌벅적했다. 짐마차가 천천히 출발하자 리아트리스는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짐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따라 짐마차가 덜컹거리며 달렸다. 구름이 완전히 걷힌 하늘은 밝고 청량한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리아트리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마음 속에 새길 '그리워할 곳'을 더 많이, 더 자세히 느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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