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03

자캐커플

모프는 종이에 적힌 목록과 컴퓨터에 나온 표를 대조해보다 표정을 찡그렸다. 벌써 이게 5번째인가, 상부에 깨질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맞지가 않네."

옥사나는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렸다. 안타깝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프는 그런 옥사나 쪽을 향해 한 번 더 말했다.

"맞지가 않아~..."

들으란 듯이 내뱉은 말에 결국 옥사나는 더 이상 못 들은 체 할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기다렸다는 듯 모프는 씩 웃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옥사나는 그의 표정에 '걸렸다' 싶었다만, 티 내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저번 주에 약을 빼돌리는 놈 하나를 발견해서 죽였다는 이야기는 했지?"

"했소. 드디어 잡았다면서 신나서 돌아왔던 기억이 나는군."

"그래, 그래. 근데 그 놈이 분명히 잡혔고 더 이상 약을 빼돌리는 놈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숫자가 안 맞아."

모프의 조직에선 마약을 100그램에 한 개로 센다. 헷갈릴 일이 꽤 많지만 -적어도, 숫자계산과 같이 따분한 일과 맞지 않는 모프로선- 그래도 지난 몇 년간 익숙해진 뒤로는 크게 헷갈리거나 어려워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입이 들어오고 난 뒤부터 마약의 숫자가 계속 맞지 않았다. 모프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 계속 엑셀과 수기로 쓴 표를 대조해보았지만 영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분명 바다 너머에서 온 마약의 갯수는 그대로에 표도 맞았는데 막상 세어보면 그람 수가 맞지 않았다.

"보고하는 이 중 빼돌리는 사람이 또 있는 것 아니오? 신입이 들어온 이후라면 그 신임 때문이라든지."

"그런가? 누군지는 몰라도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마약 빼돌리던 놈이 죽은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모프는 기지개를 쭉 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끝에 투덜거리듯 몇 마디가 내뱉어졌다.

"직접 발로 뛰어야하나~.. 왜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열심히 해줘야하는거야. 시킨 일도 아닌데~ 거기다 항구는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배 아래는 어둡고, 습하고, 약만 가득 쌓여 있는데~..."

모프는 옥사나를 한 번 봤다. 옥사나도 모프를 봤다.

"심심할텐데~"

결국 옥사나는 꽤나 명확한 수동적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같이 가달라는 말이오?

옥사나의 말에 모프는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겨 딱 하는 소리를 내었다. 정답! 그리 말하기라도 하는 행동에 옥사나는 목 뒤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같이 가주지 않을 이유도 없거니와 신변보호가 필요하다면 본인을 데려가주는 게 썩 기꺼웠다. 그는 모프와 함께 행동하는 걸 좋아했으니까. 굳이 이렇게 돌려말하지 않았어도 모프와 동행하길 원했을 것이다. 옥사나는 항상 모프가 자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모습도 나름 '귀엽다' 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내버려두었다.

***

항구로 나오자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났다. 배가 다 들어온 다음 물류를 확인하려는 속셈으로 늦게 나왔는데, 오랜만에 보는 바다가 날이 어두워서인지 새까맣게 넘실거리는 게 제법 으슥했다. -물론 마약 거래용 항구가 야시장처럼 밝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모프는 바다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며 바다쪽으로 걷는 옥사나를 받쳐주었다.

곧 마약이 탄 배에 도착했는지 모프는 배 쪽으로 폴짝 뛰어내려 물류 창고를 확인했다.

"이봐, 스톨렌. 오늘 배가 10시에 출발하니까 그 전에는 나와."

옆을 지나가던 물류 창고 관리자가 지나가듯 소리쳤다. 모프는 알았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휘 내젓고는 걸음을 옮겼다. 옆에 있던 옥사나는 관리자에게 우직하게도 꾸벅, 인사하더니 모프의 옆을 쫓아갔다.

"첫번째 날. 1000개가 들어왔고. 두번째 날, 150개가 들어왔고. 세번째 날, 200개가 들어옴."

창고에 들어온 모프는 쌓여 있는 상자를 하나씩 세어보았다. 하지만 결국 표정을 구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3000그람이나 모자라지? 숫자는 맞는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옥사나는 잠시 생각해보다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하나당 무게를 세보았소?"

응? 모프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하나당 100그램이 맞는지 세 보았냐는 말이오. 1000개가 들어온 게 사실이라도 '하나' 안에서 조금씩 빼돌린다면 티가 나지 않을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모프는 그 말을 듣더니 오,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 귀찮은 일을 할 사람이 있을거라고 전혀 생각 못했어. 머리 좋다!"

모프의 말에 옥사나는 짧게 웃었다. 나름대로 고맙단 의미였다. 모프는 마약 상자 하나를 주워다 무게를 재보았다. 100그람. 바램과 다르게 정확한 숫자가 나왔다. 모프는 숫자를 보고 흠. 하고 다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1000개 중에 100개 정도를 3그람 씩 빼돌렸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잡아내기 힘들 것 같은데."

"맞는 말이오. 1000개를 전부 저울에 올리는 것도 일이거니와 그렇게 부족한 마약 상자를 찾아내도 범인을 찾아내는 건 어려울 것 같군."

모프는 상자를 다시 마약 더미 위에 올려두었다.

"원초적으로 접근해본다면 조금 더 도움이 될지 모르오. 혹시 이 배에 있는 약을 유통해오는 거래상들이 빼돌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소."

"업계에서 숫자로 장난질 쳤다간 조직 싸움으로 번질걸. 이런 쫌생이 같은 짓을 하는 건 말단들 밖에 없어."

"그럼 말단들을 잡아보면 되는 것 아니오?"

"이거 받아서 오는 애들은 그날그날 바뀌는 편이라 그것도 잡기 어려워."

옥사나는 턱에 손을 짚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주로 누가 나가오?"

"메리, 일레나, 유토, 가끔은 토미오랑 데릭."

"많군. 그 중 약을 하는 인원은 몇 정도 되오?"

"다들 안하는 걸로 알아. 요즘엔 약 하는 말단이 적더라고. 굳이 따지자면 일레나? 예전에 마약 중독이었는데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관둔걸로 알아. 얘가 아까 말한 신입이긴 한데 굳이 약을 빼돌려서 돈벌이 할 정도로 도벽이 있는 걸로 보이지도 않고. 건실해보여서."

과연 건실한 청년이 이런 음습한 일을 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되겠냐만은, 옥사나는 믿자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사건은 다시 원점이군.... 생각하던 중 옥사나는 손목 시계를 확인해보았다.

"곧 10시군. 이만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래야겠네~... 맞아, N구역에 일레나랑 같은 팀이지?"

"그렇소."

"만약에 N구역에 오늘 호출이 있으면 일레나한테 아직도 약중독 부작용이 있는지 좀 봐줄 수 있어?"

옥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프는 고맙다는 듯 그에게 환하게 웃어보였다. 옥사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숙여 볼에 입을 맞추었다. 모프는 그 행동을 가만히 보다 옥사나의 입술 위로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히죽 웃었다. 고맙다는 인사로 키스를 하는건, 제가 본인을 그만큼 좋아한단 걸 알고 있는걸까? 꽤 재밌는 사실이다. 80년대 고전 영화에 나올법한 행동이지만 실제로 받아보니 왜 그 행동에 사람들이 넘어가는지 이해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옥사나는 따라나섰다.

***

"약이요? 요즘은 안해요! 비싸기도 비싸고, 제 돈으로 살 수 있는 종류가 워낙 적기도 하고요. 차라리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가서 고급 마약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구요."

옥사나는 정직하게 상황 설명 후 일레나에게 약을 하고 있는지 물었고, 일레나는 정직하게 대답해주었다. 과연 건실하다 할 정도로 밝고 티 없는 청년이었다. 모프가 굳이 '걔가 빼돌릴 것 같지 않다'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약은 왜요? 한 번 시도해보시려고요?"

옥사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레나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보통 11시에 배가 나가거든요. 같이 나가보는 건 어때요? 그리고 상자에 제대로 100그람씩 들어있는지 확인해보는건?"

"번거로울 것 같소."

옥사나가 딱 잘라 말하자 일레나는 너무하다고 투덜거리며 사탕을 입에 하나 넣었다. 옥사나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배가 11시에 나가오?"

"음? 네. 10시 반쯤에 준비해서 11시에 출발해요."

아, 그렇다면 빼돌릴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이렇게 쉽게 나올 문제인 걸 왜 몰랐을까? 옥사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프에게 무전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옥사나?"

"창고 관리인이 10시에 배가 출발한다고 했지?"

"기억 안나는데, 아마?"

옥사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그냥 말하기로 했다.

"창고 관리인이 범인이 아닌가 싶군."

***

창고 관리인이 범인이 맞다는 사실은 어이없지만 그날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날 10시엔 배가 뜨지 않는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아내도 있고 자식들도 있던 사람인데, 아쉽게 됐네."

그런 한 마디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가정이 있든말든 상관 안하는 게 이 바닥 룰이라지만, 한마디 정도 해주는 게 그래도 '일이 끝났다' 보기에 좋았으므로 모프는 가볍게 한 마디 정도 해주었다.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다면 떳떳하지 않을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이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며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건 역시 이해가 되지 않소."

"나름 사정이 있었지 않았을까? 급하게 돈이 필요했다든지."

옥사나는 판 땅에 관리인의 시체를 던져 넣으며 모프를 바라보았다.

"내가 모프와 결혼을 했다면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오."

모프는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어라? 하고 생각하다 얼굴이 홧홧해지는 걸 느끼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프로포즈야? 엄청 갑작스러운데?"

"아니, 프로포즈는 아닌 것 같군. 그냥 만약에를 상정한 말이오."

"그러니 당신의 '만약'의 미래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거지?"

모프는 입꼬리가 끌어올려져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옥사나는 삽으로 땅을 다지고는 삽 손잡이 위에 턱을 괴었다.

"당연한 것 이라고 생각했소. 모프는?"

"뭐, 나도 당연히."

모프는 가볍게 대답하고는 옥사나의 손을 잡았다. 별이 총총히 뜬 밤에, 시체를 묻으러 온 두 사람. 전혀 무드 없는 상황이었지만 기분 좋게 로맨틱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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