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있는 거

(가제) 비밀을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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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by 마닥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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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 푸른 하늘에는 새하얀 구름이 덩어리진 채로 유유자적하게 표류하고 있다. 구름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태양은 구름보다도 하얗게 빛나고 있다. 햇빛을 머금은 초원에는 틈틈이 작은 들꽃들이 자수처럼 박혀있으나, 자존심이 강한 잔디는 그런 꽃을 숨기려 애를 쓴다.

그런 초원의 서쪽에는 완만한 언덕이 하나 있다. 작은 언덕에서도 꽃들은 빛과 만나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언덕 정상에는 녹슬어 버린 철도가 길게 이어져 있다. 고독하게 자리 잡은 철도의 외로움을 달래주려는 것처럼, 한 남자가 그 곁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남자는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만나 턱으로 흘려내려, 이윽고 땅으로 툭 떨어져 버렸다. 그는 땀에 젖어 찝찝한 턱을 손등으로 훔쳤다.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목에 걸려 묵직하게 매달려 있는 카메라의 줄을 꽉 붙잡고 있었다.

“휴…….”

말없이 걷고 있던 그가 드디어 내뱉은 한 마디는 바로 한숨이었다.

그가 이 땡볕 아래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남자는 잠시 멈추어 섰다.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눈가에 가져갔다. 눈을 찡그려야만 보였던 시야가 이제는 제법 잘 보였다.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아까와 비교했을 때보다 제법 서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략 출발한 지 3시간은 지났을 것이다.

이쯤 되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한평생 이렇게 고독한 산책은 해본 적이 없었다. 찌르는 듯 파고드는 열기와 욱신거리는 다리에 이기지 못한 남자는 결국 머리를 흔들며 몸을 틀어버렸다. 빠른 걸음으로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그는 속으로 빠르게 계산해보았다. 앞으로 몇 분, 몇 시간을 더 걸어야만 마을이 나오는 것일까? 아니, 마을이 나오기는 할까? 그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는 있을까?

언덕 중간까지 내려왔을 때였다. 남자를 측은하게 여긴 구름은 보다 못해 태양을 잠시 가려주었다. 눈을 편하게 뜰 수 있는 그는 얼른 주저앉았다. 금상첨화로 바람까지 선선하게 불어오자, 그의 걱정거리는 바람과 함께 지나갔다. 휴식을 즐기기 위해 그는 아예 자신의 다리를 쭉 폈다. 그리고 양팔을 뒤로 뻗어 상체를 뒤로 젖혔다.

피로가 약간 사라지기 시작하자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길을 알려주며 들려준 조언을 떠올렸다.

‘넌 네 공간인지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어. 누누이 말하지만 넌 길치라고. 가기 전에, 판단하기 전에 꼭 생각 좀 해라!’

그는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무리 걸어도 길이 나오지 않는 건 자신이 길치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길을 잘못 알려준 친구 탓이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이지도 않는 이에게 웃어 보였다.

곧 이런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남자는 고개를 숙이다가, 그만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저 멀리 초원 위에 새까만 점 같은 것이 지나간 것을 본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점을 단순한 동물 정도로 여겼을 터였다. 그러나 그에겐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남자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 점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크기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카메라를 통해 그 점을 바라보았다. 작은 차이밖에 생기지 않았으나 그에게는 물체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보였다.

긴 목과 휘날리는 갈기, 그리고 다섯 이상은 되어 보이는 다리. 적어도 말이 두 마리는 된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그 말 두 마리는 뒤에 커다란 상자 같은 무언가를 끌고 있었다. 상자를 끌고 있는 말.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그건 마차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그곳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빨리하여 마차가 가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마차는 마을 내에서나 볼 수 있었다. 마차가 밖을 드나들 때가 있어도, 고작 옆 마을 가는 정도였다. 그런 마차가 이런 마을 밖 초원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가까이에 마을이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즉, 그는 저 마차를 쫓아가면 필시 자신의 목적지 나온다고 추리한 것이었다.

남자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이 초원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곤 그의 목적지, 사이드마운틴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의 친구는 녹슨 철도의 끝에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마차가 가고 있는 곳은 철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남자는 자신이 길치라는 소리에 충분히 자존심이 상해있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러 마차의 뒤를 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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