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천

먼지털이(1)

浪漫白鬼_태지천x명

*

 화려한 전각. 모두가 잠들었을 법한 깊은 밤. 밝은 달빛 아래, 전각의 금 장식들은 은은하게 빛을 내며 고고한 전각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치 황제라도 거처하는 듯한 화려하기 그지 없는 처소였다.

 

“이번 의뢰는 특별히 더 중요하다. 목표는 핵심 인물인 것 같으니 잠입에 쉽지 않을 게다. 주의하도록.”

 

 앞장 선 흑의인의 말이 끝나자 중심으로 그를 따르는 4명의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장을 넘었다. 담장 바로 아래의 풀 숲, 호법인들의 교대 시간이 되어 주의 깊은 경비가 들어오지 않아 아무도 그곳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 야밤엔 객을 들인 기억이 없는데, 귀하들께선 누구신지.”

 

 낯선 목소리에 전각의 인기척을 살피던 흑의인 무리들이 일동 멈추었다. 담장을 넘기 전, 담장 너머에도 자신들의 뒤에도 인기척이 없음을 확실하게 확인했던 이들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말이 없는가?”

 

 다시 한 번 낯선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듯한 그 낮은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매우 중압적이었다. 흑의인들은 고개를 돌려 낯선이를 견제 했다. 그림자 속에서 그의 얼굴은 확인 할 수 없었다. 검은 바탕에 붉은 용이 자수로 새겨진 차분하고도 화려한 그의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발목 언저리까지 내려온 흰 머리칼을 따라 시야를 올리면, 흰 턱 선에 검붉은 입술이 보인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기어 나온 것만 같은 그 흰 피부는 감히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그의 목에 비수가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낯선이는 그림자 속에서 붉은 입술을 찢어 웃으며 걸어 나왔다. 그의 모습은 그림자 속에서도 어렴풋 느껴졌지만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창백하게 흰 피부에 달빛처럼 빛나는 머리칼, 그 아래로 검붉은 눈가에 바래버린 피 빛 같은 그의 눈빛은 귀신과도 같았다.

 

“객인가 쥐새끼인가, 헷갈렸는데. 말이 없는 걸 보니 쥐새끼로구나.”

 

 섬뜩하게 웃는 검붉은 입술에서 나지막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혀 그렇지 않은 외모에, 그렇지 않은 살기를 내뿜으며 지독하게 다정하고 부드럽게 읊는 그 목소리는 흑의인들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옷 아래 있던 손을 들어올렸고, 흑의인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의 아래에 있어야 할 바닥이 위로 가 있었고, 그 바닥은 점점 가까이 그들의 위로 떨어졌다.

 

 툭.

 

“쥐새끼는 청소해야만 마땅하지.”

“교주님.”

 

 풀 숲 너머로 시중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와, 그에게 닦을 것을 내밀었다. ‘교주’라고 불린 그는 현재 중원에서 가장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마교(魔敎)의 주인.

‘천마신교(天魔神敎)’의 교주 ‘천마’, 태지천(太地天)이었다.

 밤하늘의 달처럼 창백하고 흰 외관에 피로 물든 눈. 사람 같지 않은 외관에 감히 어림 잡을 수 없는 무공의 경지. 세상 아래에 그가 모르는 이야기 또한 없어, 감히 그의 영역을 범할 수도 없는 완고함은 그야말로 천마신교가 따르는 그들의 신 ‘천마’에 어울리는 이였다.

세간에서 말하길 현재의 마교주 태지천은 자신의 수하에 든 것은 놓치는 일이 없으며, 빼앗기는것을 싫어해 그의 안에 든 모든 것은 지독히도 아낀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며, 밖으로는 마귀와도 같이 손속에 자비가 없고 탐이 많아 만물을 취하려드니. 그야말로 ‘마(魔)’ 그 자체인 존재가 그이다.

그리고 그의 평이 맞았는지 태지천은 자신의 구역에 숨어든 암살대를 순식간에 처리해버렸고, 마치 쓰레기를 치우라는 듯 바닥의 시신들을 발로 차고는 뒤돌아 걸어가며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해야할 일이 생겼구나.”

“준비하겠습니다.”

*

 이른 새벽 아침 해가 조금씩 밝아올 무렵, 태지천은 일찍이 눈을 떠 몸을 움직였다. 머리는 가볍게 빗어 흘려 내리고, 한결같이 검은 바탕에 붉은 용이 수놓아진 곡령포를 입고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가 처소에서 나와 움직인 곳은 지난 밤의 전각이었다. 자신의 화려하게 세운 전각 옆에 새로 지어올린 다른 화려한 처소. 그 곳엔 태지천 그가 사랑해마지않는 그의 정인, 명이가 머무는 곳이었다.

 태지천은 방 안으로 들었다. 그리곤 침상에 앉아 누워있는 명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그렇게 잠시 그의 모습을 눈에 담던 태지천은 그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이름을 부른다.

“명아.”

“...교주님?”

 

 태지천의 손길에 눈을 뜬 명이가 몸을 일으키려하자, 태지천은 그의 몸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눌러 다시 눕혔다.

 

“시간이 이르니 일어나지 말거라. 가기 전 얼굴을 잠시 비추러 온 것이니.”

“어디 가십니까?”

“오랜만에 청소를 해 볼 생각이다.”

“청소..요?”

“그래. 금방 돌아올 테니 쉬고 있거라.”

 

 태지천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명이에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자신과의 관계가, 본인의 위치가 부담과 불안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그의 작은 배려심이고 또한, 절대 위험에 관련해 두지 않겠다는 그의 고집이었다.

 태지천은 그저 따듯한 미소로 그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아침인사를 주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선 그가 대기시킨 홍파대(紅葩隊)의 대장 박희연이 태지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마를 뵙습니다. 홍파대 전원 대기중입니다.”

“목표는 은위단의 멸살이다. 전달 된 정보 그대로 은위단의 전원, 그리고 조금이라도 관련된 이들까지 모두 지워버린다.”

 

 은위단(隱胃團). 중원의 삼대 암살대 조직이다. 의뢰에 대한 계약이 확실하고, 그만큼 일처리 또한 깔끔하여 세력을 크게 키워 자리잡은 그림자 속의 거대한 단체다. 누군가가 은위단에 의뢰를 넣었고, 교성에 잠입한 암살대는 그대로 태지천에게 걸려 목표로 잡혀졌다.

 명령을 내리는 그의 얼굴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기가 넘치는 따스한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 무표정하게 감정 없는 가면같은 얼굴만이 섬뜩하게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 경고를 했거늘. 감히 간댕이가 부었구나.”

 

 태지천은 시중들이 가져온 병장기들 중 채찍을 집어 들었다. 위력이 있을까 싶을 만큼 얇고 긴 검은 채찍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짐승 놈들에겐 채찍질만한 게 없지.”

 

 손에 든 채찍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잔인하게도 아무 표정이 없는 그의 표정이 오히려 더 그의 살기와 위압감을 부각시켰다.

 

“의뢰를 넣은 놈들은 일체 건드리지 않는다. 나의 사람을 건드림에 대한 대가를. 그들에게 단단히 공포를 전해 주거라.”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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