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지천

먼지털이(2)

浪漫白鬼_태지천x명

*

“흐으...으흐윽...”

“조용히 하거라. 감상에 방해 된다.”

 태지천은 손에 채찍을 쥐어 들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홍파대에 의해 은위단의 조직원들이 모두 처참히 썰려 나가는 끔찍한 장면을. 

 그의 얼굴엔 어느 감정도 없었다. 자신의 사람을 건드림에 대한 분노도, 살업에 미친 자의 즐거움도. 여느 때처럼 푸르게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채찍의 끝엔 한 남성이 감겨 태지천이 발치에 엎드려 발발 떨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죽어 나가는 은위단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일상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는 태지천을 향한 공포심만이 가득했다.

 그에게 벗어나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앞의 이는 강함이 우선시 되는 마교(摩教)에서 정점에 오른 ‘천마(天磨)’였을 뿐더러, 그의 다리뼈는 이미 태지천에 의해 가루가 되어 더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은위단이 홍파대에 의해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가 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원이 많았는가? 그렇지 않다. 인원이라면 오히려 은위단의 쪽이 훨씬 우세했다.

 마교의 ‘홍파대(紅葩隊)’.

 그들은 어떤 이들인가? 이들은 마교주 태지천이 인정한 인재만 직접 모아 이룬 24명의 소집단이다. 교주가 모든 일에 번거로이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오직 그만의 손발이자 검이다. 교주의 수족답게 그의 말에만 따라 움직이며, 일 처리 또한 그와 매우 유사하다.

 이들의 이름은 마교주, 태지천이 붙여주지 않았다.  홍파대의 손속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홍파대원들은 모두 아름답고 깔끔한 무위를 보이며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깔끔하게 잘려 나간 시체들의 혈흔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데, 이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곳은 붉은 꽃이 만개한 동산이니. 모두 넋이 나가 감탄을 자아낸다.

 마치 봄의 꽃망울이 만개한 것 마냥 화려하게 펼쳐진 그들의 참혹한 흔적은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무위의 절정이었다.

“교주님, 은위단장 조인의입니다.”

 반쯤 죽어가 의식이 없는 사내가 홍파대장 박희연의 손에 머리채가 붙잡혀 바닥에 끌려왔다. 태지천은 박희연의 손에 붙잡힌 조인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조금은 살살하지 그랬더냐. 이러면 대화를 어찌하느냐.”

“소신이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되었다. 잘못을 묻는 게 아니거늘.”

 조인의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태지천은 자신의 채찍에 감겨 상체만을 버둥거리고 있는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곤 부드럽게 미소 지어주며 그의 시선 앞으로 몸을 낮춰 앉았다.

“동현아, 은동현. 교를 나갔으면 조용히 지냈어야지 쓸데없는 재롱을 부리는구나.”

“흐…!으으!”

“네 놈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있었겠느냐. 네가 마교에서 성을 다해 일 한 대가로 내가 자비를 베풀어 명을 이어나가고 있었음을.”

 태지천에게 은동현이라 불린 이 사내는 그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바람 같은 신음만 낼 뿐이었다.

 은동현, 그는 본래 마교에서 첩자로 활동하던 호위단의 말단 무사로 5년 전에 죽음을 위장해 마교에서 탈출한 이였다. 그리고 은위단에 직접 의뢰를 넣은 장본인으로 원래대로였다면 태지천에 명에 의해 멀리서 은위단의 전멸 소식만 들었어야했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었는지 은동현. 그는 은위단에 다시 찾아왔고,  결국 태지천에 시야에 들어온 그는 두 다리뼈가 모두 바스러지고 성대를 뜯겨 소리도 낼 수 없게 된 채로 바닥에 구르게 되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바닥에 엎어져 공포를 누르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태지천을 노려보는 것 뿐이었다.

“그나저나 네놈이라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터. 무슨 바람이 들었더냐?”

“......”

“말하지 않을 것인가?”

 잠시 차갑게 은동현을 바라보던 태지천은 금방 다시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마(魔)와 같은 붉은 눈빛에 짙은 어둠과도 같은 붉은 입술이 찢어지며 감정없이 보여주는 저 미소는 언제봐도 섬뜩하다고 느껴졌다.

“상관없다. 곧 알게 될 터.”

 태지천이 은동현의 숨을 거두려 손을 뻗는 차였다.

“교주님!”

 박희연의 다급한 외침이 있었고.

채앵-!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 손을 거두어라.”

 그리고 이 곳에 없었던 또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그는 태지천의 등 뒤로 칼을 겨누며 뛰어왔고, 이를 느낀 박희연이 사내의 검을 막아섰다.

 사내는 태지천이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않자, 박희연과 맞붙은 검에 힘을 주었다. 박희연이 사내의 힘에 밀리는 것을 느낀 태지천이 흥미롭다는 듯 손을 거두고 일어섰다.

“세상엔 내가 놓치지 못한 고수가 없다 여겼거늘.”

 섬뜩한 웃음을 담은 그의 눈이 앞의 사내를 바라본다.

 태지천이 손짓하자 박희연이 물러선다. 그리고 사내의 검이 틈으로 매섭게 찌르고 들어왔다.

쩌엉-!

 사내가 찌르고 들어온 검을 태지천이 손가락으로 튕겨내자 강렬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푹.

 태지천이 쳐낸 사내의 검날이 날아가 바닥에 꽂혔다. 

“그렇게 검을 찌르고 들어오면 위험하네.”

“천마신교 천마, 태지천. 네 놈의 악행으로 강호에 피바람이 멈추질 않으니. 오늘 이 자리에서  네 녀석의 명을 끊을 것이다.”

“감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태지천이 자신의 목에 날이 날아간 검을 겨눈 사내를 보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

 사내가 부러진 그의 검을 태지천을 향해 날렸고, 태지천은 날아오는 벌레를 쫓듯 손으로 쳐냈다. 뒤이어 품에서 단도를 꺼내든 사내가 검에 강기를 두르고 앞으로 들어왔다. 태지천이 손을 뻗었고, 사내가 찔러 들어온 검이 태지천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이건.”

 새하얀 그의 얼굴에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미소가 지워진 태지천은 뻗었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산공독(散功毒).’

“여전히 내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태지천 그의 내력이 모두 흩어져있었다.

 사내가 그에게 하독했을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미 진즉에 그가 독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뜻. 태지천은 자신이 어디서 중독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본교의 성. 성 내엔 태지천이 여흥거리로 건들지 않았던 온갖 첩자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지 않고 있었던 태지천은 평소 수많은 독에 노출되며 자주 의약당에 들락거렸다. 이번 산공독 또한 그중 하나였을 터.

 태지천은 사내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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