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모리안의 사랑이다.

-크로노스의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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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다.

아래로

깊숙히

침몰하여

모든 것이 사라진다.

'바다' 란 무엇인가

태풍이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허문 가운데 이제 바다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바다란 것은 그저 하늘의 부속품인가

차디찬 바닷물이 흐르고 들어오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재앙인가

-크로노스의 비정- 그 끔찍한 재해가 남긴 일종의 산물인가

혹은 두려움의 존재인가

물살을 가르며 헤어치는 범고래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이 아니다. 바다는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는-


그대,

도망친 이의 이야기를 아는가

선함과 별의 사이에서 태어난 어둠을 아는가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알지만 그것을 주지 못한 자의 이야기를 아는가

하늘에서 태어났지만 빛을 숨기며 땅에 몸을 숨겨야 했던 별의 이야기를 아는가

그렇다면 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그래. 그 별이 다시 떠오르게 된 까닭이다.

땅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무력과 공포로 쌓아올린 탑은 사람들을 짓누른다.

힘 없는 자들은 엎드리고 힘을 가진 자들이 그들을 다스린다.

재앙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유는 찾을 수도 없으며 평등은 폭풍에 휩쓸려 수몰된지 오래다.

닿을 수 없는 하늘

책 속에만 존재하는 미래

동화같은 꿈

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 그 위로 무너진 콘크리트 조각, 그 틈으로 솟아있는 철근

하늘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위태로운 그곳에서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현실을 직시하는 별은 이것이 현실임에 절망했다.

자유롭지 않고, 편히 쉴 수 없고, 편히 잠에 들 수 없는 세상에서 별은 빛을 낼 수 없었다.

새장 속에 갇힌 별은 빛을 잃는다.

고요하며,

어둡고,

외로우며,

침몰된다.

꺼져가는 별은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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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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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작은 별을 어두운 심해가 감싸안았다.


아아-

스스로의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스스로 나아온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곳은 밤하늘이었다.

길 잃은 별들의 집이고, 갈곳 없는 별들의 목적지며, 버려진 별들이 태어난 곳이었다.

그것은 심해에서 만들어진 윤슬이었다.

햇빛과 달빛의 도움 없이 별들의 반짝임만으로 이뤄낸 심해의 별하늘이었다.

아름답고도, 찬란하여, 눈이 부셨다.

작은 품은 따뜻했고, 어린 목소리들은 강인했다.

너무나도 다정하고 또 따스해서, 어두운 심해 속에서도 한줄 외로움조차 들지않았다.

아래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고래처럼, 폐쇄된 장소에서 닿는 작은 바람처럼,

사막 속 오아시스와도 같이, 모든 오물을 씻어주는 바다와도 같이.

그것은 희망이고 미래였다.

그래서 너희는 너희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


…바다는 우리의 집이다.

이것은 우리의 바다다.

바다는 하늘의 창이 아니다. 고작 하늘을 비춰 만든 거울이 아니다.

바다는 빛을 담는 그릇이다. 그 속에 주홍빛 태양이 떨어뜨린 푸른 조각을 고이 담아두고 있는 것 뿐이다.

바다는 포세이돈이며, 넵튠이고, 뇨르드이며, 용왕이다. 그것은 파괴적이고 풍요로우며 지혜롭고 또한 너그럽다.

바다는 모든 것의 어머니이며 아버지이다. 죽음도 삶도 행복도 슬픔도 그 앞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그리하여 결국 모든 것이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간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백조도,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범고래도. 살아가는 생명도, 죽어가는 운명도

바다는 넓고 일렁이는 물결은 따뜻하니까

그 속에서는 어떤 거짓말도, 욕망도, 욕심도, 혹은 슬픔마저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까

...그래, 마치 -크로노스의 비정- 같이

토해내라. 울부짖는 소리도 악에 받친 비명도 파도 소리보다 크지 않을테니

쏟아내라. 진득히 흘러나오는 감정을 휩쓴 바다는 다시 처음처럼 고요히 잠들테니

범람시켜라. 흘러내린 눈물마저 모든 것을 포용하듯 안아들테니

그것이 우리의 바다다.

그것이 모두를 감싸고 있는 바다다.

그것이 곧 지평선을 넘어버릴 바다이며 오로라를 삼킬 파도다.

눈부시고도 찬란하여 눈을 뗄 수 없는 별하늘이다.

그래, 그곳이 나의 하늘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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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 선 아이야

그리울 땐 바다의 소리를 들으렴

물은 모든 것을 기억하니까. 우리의 소리가 파도에 담겨 메아리칠테니까

소라에도, 조개껍질에도, 바다를 본딴 양초와 조각상에서도 울려퍼지는 바다의 고동이 담겨있으니까

그러니 그것을 귓가에 대어 바다가 웃는 소리를 들으렴

더이상 소라를 들지 않게 될때까지,

더이상 과거의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을때까지 모두가 그 너머에서 웃고있을 테니

바다가 결국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란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같은 집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같은 바다를 유영하는 범고래들이니까

같은 하늘과 바다를 아우르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자, 소원을 빌자.

모든 것이 찬란하도록,

모든 바다가 아름답도록,

그를 담은 이 바다가 모두를 감싸줄 수 있도록

그가 그랬듯이. 너희들이 그랬듯이.

바라노니,

이 바다가 끝없이 다정하고도 따뜻하기를


이것은, 모리안의 고백이다

그리고 남은 자에게 이어지는

올곧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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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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