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미세먼지와 고양이와 너. 上

재맠

by 훠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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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만물이 생동감을 띠고 살아 숨 쉬는 봄의 시작.

 

청춘의 바람이 노랑 분홍색을 띠고 불어오는 캠퍼스에는 잔뜩 상기되어 발그스름해진 두 뺨을 여실히 드러내며 삐약대는 새내기들과 이제 막 4학년이 된 화석 이민형이 공존했다. 새내기들이 보송보송한 얼굴로 새로 산 꼬까옷을 나풀대며 다닐 때 그는 푸석푸석한 얼굴을 좆같은 미세먼지 탓으로 돌리며 시커먼 마스크로 얼굴의 3분의 2를 가리고 다녔다. 더럽게 무거운 전공책과 3키로에 육박하는 노트북이 든 백팩이 어깰 짓누르는 감각을 느끼고 있노라면 인상도 저절로 찌푸려졌다. 씨발, 자퇴할걸. 몇 년째 질리지도 않는 불평을 속으로 곱씹으며 발을 뗐다.

 

“민형아!”

 

동시에 뒤에서 잘생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런. 이민형은 걸음을 서서히 빨리했다. 난 못 들었어. 안 들려, 응. 귀신인가 보네. 거의 뜀박질이라 부를 수 있는 속도로 걷고 있었는데도 결국 붙잡혔다. 어깨 위로 따뜻한 손이 툭, 얹혔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리며 제 어깨를 빼내곤 상대를 쳐다봤다.

 

“누구……아, 재현아.”

 

정말 하나도 몰랐던 것처럼, 통행을 방해받아 기분이 나빠진 것처럼 눈을 세모꼴로 떴다가 동그랗게 풀면서 목소리 톤은 한 톤 낮추기. 철저하게 계획된 얼굴이 만들어진다. 연기점수, 만점. 행동점수, 만점. 이민형이 스스로에게 기특하다며 점수를 매기고 있을 때, 상대, 정재현은 이 뿌연 미세먼지의 세상 속에서 하이얗게 빛나는 웃음을 지으며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민형아, 왜 그렇게 빨리 갔어. 쫓아오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잖아.”

 

웃기지 마, 네가 이깟 거에 힘들 리가 없잖아… 그는 혀끝까지 밀려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며 마지못해 말하듯이 내가 원래 걸음이 쫌 빨라, 하고 중얼거렸다. 정재현은 아랑곳하지않고 민형의 어깨에 제팔을 걸치더니 해사한 얼굴로 물었다.

 

“다음에 수업 있어? 어디서 해?”

“나…”

 

이민형이 댕그란 눈동자를 굴려 눈치를 봤다. 구라를 칠까, 진실을 내뱉을까. 그런 고민이 다 무색하게 보조개를 푹 패며 웃고 있는 정재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냉큼 진실을 토해내게 됐다.

 

“나 지금 정보관 가야 해. 십 분 있다가 수업.”

 

너무 찐따같이 말했나. 어쩐지 좀 쪽팔려진 민형이 마스크를 부러 더 끌어 올리며 재현을 외면했다. 하지만 재현은 만만치 않았다. 저를 외면하는 사람에게 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나 경영관 가야 하는데. 바로 옆 건물이니까 같이 가면 되겠다.”

 

그제야 이민형은 퍼뜩 생각이 들었다. 아, 교양이라고 구라 칠걸. 밀려오는 늦은 후회에 속이 쓰렸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어차피 못 쳤을 구라다. 아까워하지 말자…. 어색한 듯 친밀하게 붙어 서로의 목적지로 걸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민형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 아싸 이민형에게 타의적 인싸 정재현은 꽤나 해로운 인간군상에 속하는 존재였다. 머리도 몸도 얼굴도 성격도, 그 어느 하나 빠지는 데 없는 완벽한 정재현. 그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이 캠퍼스에서 정재현을 모르는 사람은 갓 입학한 새내기와 편입생뿐일 거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정재현이 자신에게 친한 척을 한지도 벌써 5개월이 훌쩍 넘어가는 중이라는 게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아무리 머릴 굴려 봐도 정재현이 제게 친한 척을 할 이유가 없었다. 왜? 대체 왜? 자기 비하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접점이라곤 수강신청을 망해서 들었던 교양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팀플을 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연락처도 팀플 때 나눴던 카톡 프로필이 다였다. 팀원 한 명이 좀 좆같았지만 어쨌거나 정재현의 활약으로 나름 성공적인 마무리까지 해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기서 끝났어야 할 인연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이렇게나 된 거다.

 

이민형은 좀 조용히 살고 싶었다. 불필요하게 주목받는 게 진짜 정말로 너무나 싫었다. 정재현은 그렇게 싫지 않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게 싫었다. 재현과 몇 번 밥을 먹었다고, 길을 가던 제게 재현이 아는 척을 좀 했다고. 모르는 사람들 입에서 이민형? 그래서 걔가 누군데? 하고 오르내리는 건 정말로 기분이 썩 좋진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재현에게 틈만 나면 이제 아는척을 하지 말하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일이 영 쉽게 풀리질 않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저기…재현아.”

 

결국 이민형은 걸음을 딱 멈추고 지금이라도 정재현에게 이제 아는 척하지 말아 줄래? 라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좀 심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마음의 불편함은 잠시일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심호흡까지 내쉬었다.

 

이번에도 말 못 하면, 나는 똘추다.

 

“응? 왜 민형아?”

“…아니야……”

 

나는, 똘추다.

 

잘생기고 매끈한 얼굴이 저를 돌아보자 결국 얼빠 이민형은 오늘도 똘추빡추가 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떻게 이 얼굴에다가 내가, 감히. 자신이 뱉을 말 때문에 일그러질 재현의 표정을 떠올리니 천하의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았다. 항상 저놈의 얼굴 때문에 일이 계속 어그러졌다. 젠장, 젠장, 젠장. 그새 눈앞에는 목적지였던 정보관이 우뚝 서 있었다. 재현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벌써 도착했네. 잘 들어가 민형아. 수업 잘 듣구.”

“어…어어, 그래. 재현이 너도 잘 들어가…”

 

이민형은 체크 남방이 넘실대는 공대 건물로 잽싸게 들어갔다. 등 뒤에 따갑게 꽂히는 시선이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쟤는…쟤는 왜 대체 날 저렇게 보지? 남들이 보면 진짜 애틋한 사인 줄 알겠네.

 

“형, 사귀면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기.”

 

그래, 이 자식처럼. 이민형이 못 들은 척 죽은 눈을 하고 개깝싸는 후배 이동혁을 지나쳤다. 그러다 우뚝 서서 되돌아왔다. 당황한 이동혁이 왜, 왜요, 하고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는데 이민형이 진지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꽉 붙잡고 말했다.

 

“동혁아.”

“네?”

“너가 봐도 정재현 좀 이상하지? 나한테 관심, 뭐, 그런 거 있는 것 같고.”

“…실환가…… 내가 정재현이었으면 화병 나서 죽었다.”

“화병은 내가 나야 하는 거고.”

 

걔는 남자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뒷말을 꾹 삼킨다. 정재현이 여자를 좋아하는 건 지나가던 고양이도 알았다.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세상만사 관심 없는 이민형도 정재현이 여러 번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일단 정재현은 여자친구가 생기면 개랑만 다녔고, 경영관과 정보관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여자친구와 함께 있는 정재현을 종종 마주쳤다. 설령 직접 보지 못했더라도 에타 비밀게시판만 들어가면 바로 근황을 알 수 있기도 했다.

 

뭐, 요즘엔 좀 잠잠한가 싶긴 한데……. 어쨌거나 보고 들은 게 있는 이민형은 정재현의 행동을 완전히 무시하며, 저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반응 따윈 코웃음을 치고 넘기기 바빴다. 제 게이 인생을 전부 걸고서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정재현은 남자를 안 좋아한다.

 

“…하여튼 걔랑은 그럴 일 없어.”

 

어이없단 표정을 짓는 이동혁을 뒤로한 채 바삐 걸음을 옮겼다. 조만간 진짜 정재현이랑 담판을 지어야겠다. 아무리 제가 얼빠라지만, 멀쩡한 헤남과 밥 먹듯이 오해를 받는 일은 좀. 오반 것 같았다.

 

 

***

 

 

시발, 이게 뭐야. 술을 깬다는 명목으로 삼십 분이나 밖에서 나돌고 들어온 이민형은 개판인 풍경을 잠깐 돌아보다가 눈앞이 새카매지는 걸 느꼈다. 동기며 후배들은 이미 인사불성이었고, 살아남은 건 생글생글, 빤질빤질한 얼굴로 저 건너편에서 웃고 있는 정재현 뿐.

 

애초에 왜 이 자리에 정재현이 있게 되었느냐 하면, 또 사연이 길었다. 과실 지박령들끼리 심심한 채로 앉아 있다가 농구나 할까. 라는 누군가의 한 마디에 다들 우르르 몰려나가서 신나게 공을 튀기던 게 오후 네 시 즈음이었다. 그러다가 평소 좀 나대던 동기 놈이 지나가던 정재현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 재현이네. 너도 낄래? 정재현은 배시시 웃으며 손사래를 치고 지나갈 양 하더니, 문득 저와 눈이 마주치고는 그럼 한 판만 할까. 하고 메고 있던 크로스백을 내려놨다.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는 감히 추측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뉴페이스까지 껴서 기분 좋게 몇 판을 뛰다가 만족스럽게 파하는 분위기가 됐다. 그런데 갑자기 정재현이 이렇게 헤어지는 것도 아쉬운데, 한잔하러 갈래? 하고 운을 뗐고, 또 우르르 술집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 꼴이 났다. 슬금슬금 빠지는 저를 붙잡은 새끼는 지금 정재현의 앞자리에서 죽어있었다.

 

“하…….”

“민형아, 왜 이렇게 늦었어. 나 너랑 할 말 있는데.”

“아니……”

 

왜 너는 멀쩡한데. 테이블 밑에 쌓여있는 수많은 초록 병에 제가 다 질식할 것 같았다. 일단 애들부터 보내고 얘기하자. 정재현은 실실 웃는 얼굴로 계산을 마치고 오더니 익숙하게 그어어, 그어어. 좀비마냥 웅얼대는 멍청이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3월인데도 아직 밤공기가 찼다. 마지막 좀비를 보내고 나니 정재현과 단둘이었다. 아, 어색해. 얘랑 무슨 얘길 하지? 그런 이민형의 상태를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정재현이 가볍게 웃으며 나직이 물었다.

 

“있잖아, 우리 좀 걸을까?”

 

침침한 가로등 아래서 주황빛으로 물든 정재현에게 풍기는 알싸한 술 냄새가 어쩐지 좀 달큰하게 느껴졌다. 이민형은 대답 대신 거리를 조금 좁혀 한 발자국을 뗐다. 그것만으로도 됐다는 듯 정재현도 속도를 맞춰 걷기 시작했다. 딱히 목적지를 두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캠퍼스를 산책하게 됐지만 어쩐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한 거리로 켜져 있는 불빛이 은은했고, 봄의 시작을 알아챈 꽃망울이 한둘씩 터지고 있었다.

 

“얼마나 마신 거야?”

 

꽤 운치 있는 분위기 덕에 경계가 한층 누그러진 이민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정재현은 조금 놀랍다는 듯 저를 바라보다, 보조개가 푹 패게 웃음을 지었다. 하얀 얼굴이 달빛에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얼마 안 마셨어.”

“내가 바보냐?”

 

솔직하게 말해 봐. 아까 병 개수 세어 보니까 스무 병 좀 넘어가던데. 음, 그런 건 언제 또 봤지? 낮은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얘는 왜 목소리까지 잘생겼냐.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스쳐 지나듯 조그만 목소릴 놓칠 뻔했다.

 

“아직 이 정도는 괜찮아.”

“아.”

 

엠티에서 학과장 이겼단 소문이 진짜였군. 새삼 팩트 체크를 하게 된 이민형이 떨떠름하게 웃었다. 정재현은 아기처럼 방긋방긋 웃더니 저를 빤히 바라봤다. 뭐야, 왜 이렇게 봐. 사람 떨리게. 뱉지 못하는 주접들을 꿀꺽 삼키곤 겨우 무심한 척 왜, 왜 봐. 하고 말을 툭 던졌다. 어두워서 다행이다. 조명이 주황빛이라 다행이야. 뒷목이 조금 빨개진 것 같지만, 민형은 열심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민형이 너는 얼마나 마셔?”

“나? 한 병은 안 될걸.”

“지금은 얼마나 마셨는데?”

“너 집에 안 갈 거야?”

 

대답을 피하며 마냥 웃기만 하는 재현을 툭툭 쳤다. 야아.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로 푸스스 웃음을 흘리는 정재현을 째려보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곤 답했다.

 

“애초에 반병도 안 마셨어. 그리고 돌아다니다가 술 깼고.”

“으응.”

“이제 네가 답 해. 집에 안 가도 되냐니깐.”

“…아, 고양이다. 쟤 이름이 뽀또래.”

“정재현.”

 

대답 안 할 거야? 정재현은 들은 체도 않았다. 쭈그려 앉아 쪼쪼쪼, 하고 고양이를 불렀다. 토실토실 살이 찐 고양이, 뽀또는 먀, 하고 작게 울음소릴 내더니 살갑게 다가와 재현 주위를 몇 번 돌다가 이민형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온몸을 비벼댔다.

 

“네가 좋나 봐.”

“…”

 

이민형은 몸을 숙여 보송보송한 털을 몇 번 쓰다듬었다. 정재현은 어느새 제 코앞에 쭈그려 앉아 정착한 고양이를 정갈한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이없게도 참 예뻐서, 민형은 저도 모르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뽀또야?”

“응, 으슥한 데서 뽀뽀만 하면 또 나타났다고 해서 뽀또래.”

“누가 이름 지었는지 진짜 구리게 지었다.”

“그래도 귀엽잖아.”

 

그리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야밤에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서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하염없이 쓰다듬고만 있었다. 그렇게 말랑말랑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재현이었다.

 

“내가 싫어?”

 

짙은 밤색의 눈동자가 조금은 애처로웠다. 응? 민형아, 너는 내가 싫어? 단단한 줄만 알았던 목소리에 어쩐지 균열이 느껴졌다. 먀아. 고양이는 저를 쓰다듬던 손이 멈추자 미약한 불평을 내뱉더니 이내 도도한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이민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재현을 응시했다. 동그란 눈동자에 당혹스러움이 일렁였다. 싫어하냐고? 글쎄, 일단 잘생겼고, 솔직히 익숙지 않은 다정함에 부담스럽고 낯설었던 건 사실이지만, 진짜로.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해. 정재현은 입술만 달싹이는 민형을 가만 쳐다보더니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갈까? 데려다줄게. 난 좀 더 걷다가 가려고. 좀 지친 것 같았다. 왜? 네가 왜?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이민형을 정재현이 억지로 일으켰다. 가자. 늦었다.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인간관계가 서툰 이민형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말주변이라곤 죽었다 깨나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널 싫어하는 건 아닌데 네 주변이 너무 부담스럽고, 어쩌고. 이런 날것의 진심을 어떻게 좀 더, 돌려서 말할 수 있을지를 작은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던 중 익숙한 골목 앞에 다다르자 걸음이 뚝 멈춘다. 민형이 우두커니 서자 재현도 아, 하고 걸음을 멈추더니 머쓱하게 손을 흔들었다. 잘 들어가. 그리고는 미련 없이 걸음을 돌리려는 정재현을 보는데,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이 속에서 들끓었다. 다 깬 줄 알았던 술이 이제야 도는 건지, 아니면 그냥 미친 건지.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충동과도 같은 외침이 뇌리에 꽂혔다.

 

“재, 재현아.”

“응.”

 

다급하게 재현을 붙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됐다. 내가 이렇게 말을 못 했나? 그런 우스운 꼴에도 정재현은 그냥 다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괜찮아, 들어가서 쉬어.”

 

뭐? 뭘 들어가. 암만 둔탱이라도 이 상황에서 정재현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 하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민형은 어쩔 수 없이 생각을 포기하고 그냥 되는대로 말을 지껄였다.

 

“너, 나 자취하는 거 알아?”

“어?”

“우리 집에 술 있으니까, 더 마시고 가.”

 

정재현은 잔뜩 비장한 눈빛을 지은 민형을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나 정말 괜찮아 민형아. 학교에서 보면 인사하자. 미안함을 담은 장난쯤으로 여긴 것 같았다. 그래도 목소리가 조금은 풀려있었다. 마음은 놓였지만 이민형은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암만 뼈헤남이라도 그렇지, 나한테 그렇게 다정했으면서 이렇게 칼같이 돌아선다고? 이대로 홀로 집으로 들어갔다간 현관에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쪽팔림에 문에다 머리를 쾅쾅 찧을 것 같았다.

 

“그럼 민형아, 잘,”

“재현아!”

 

민형은 두 손을 황급히 뻗어 멀어지려는 재현의 어깨를 덥석 쥐었다. 재현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붙잡힌 자신의 어깨와 민형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이 와중에 당황한 얼굴도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러면서 어떻게 얘랑 멀어질 생각을 했지? 새롭게 깨달음을 얻은 이민형이 잔뜩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재현아, 나 진짜로 너 안 싫어해.”

“…”

“그러니까…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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