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
균 님 시시바 익사상애 3000자
침몰하는 마음.
폐부 끝 해저 이만리.
시시바 씨, 사람이 바다에서 살 순 없겠죠? 그가 의미심장한 물음을 내던졌다.
맡겨진 의뢰가 끝난 뒤에 바다는 잠잠하고 고요하다. 날씨는 더없이 우중충했는데, 햇볕이 들지 않고… 먹구름이 지독하게 끼어있었다. 하늘이 새카매서, 반사된 바다의 색도 거뭇하게 얼룩져 있었다. 날씨 죽이네. 시시바는 암울한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읊조렸다. 그 뒤로 따라오는 거구의 사내가 살랑살랑 따라오며 웃었다. 오늘 날씨가 좋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일기예보에서 들은 바 있다는 말을 덧붙이자, 시시바가 대답했다. 맞나…. 두 사람의 수륜은 먹구름의 색을 한껏 머금은 칙칙한 바다로 향했다. 이왕 이렇게 일찍 끝난 거, 조금 걷다가 갈까요~. 필립이 가벼운 성음으로 장난스럽게 물으면, 시시바가 고개를 삐딱하게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바다의 모래사장을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귓전에는 파도가 철썩이며 저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잡란하게 들려왔다. 바위에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습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쾌하게 몸에 달라붙는다. 머리카락이 한 번씩 스쳐올 때마다, 시시바는 옆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무심하게 넘겼다. 곧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돌연 들었다.
…시시바 씨.
듣고 있다.
시시바 씨는, 바다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무슨 헛소리가.
시시바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앞서 걷고 있던 필립을 흘긴다. 곧 필립이 가볍게 돌아서, 시시바를 바라봤다. 뒤로 걸으면서, 공상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저는 한 번쯤… 바다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거든요. 수족관 물고기 같은 거 말고, 진짜 바다에서 사는 생물처럼. 자유롭잖아요? 딱 보기에도. 시시바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필립의 모습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따금 자유를 갈망하는 것 같은 그의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를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그 모습 자체에 이끌린 것이리라. 멋대로 붙어오고, 멋대로 거리를 두는 제멋대로에 얄미운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전부 차치하고서라도 좋을 만큼, 그의 전부가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미운 정도 정이지 않나?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시시바는 갑작스레 엄습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킬러의 감은 본디 예민한 게 맞지만…. 과연, 지금은 어떨까. 어느새 필립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달라져 있었다. 우중충한 바다 쪽으로, 필립이 발을 뻗고 있었던 것이다. 신발도 벗지 않고, 바지를 걷지 않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홀린 듯이.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본능에 따라서…. 시시바 씨, 인간은 반드시 지상에서 살아가야 할까요? 해저낙원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느새 시시바의 발끝도 필립과 바다를 향해 있었다. 충동적 호기심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건, 바로….
✝
행동력. 필립이 알아듣질 못할 말들 끝에 한 가지의 단어를 읊조리며 곧 시시바의 수악을 쥐었다. 시시바 씨, 밑바닥 심해에도 낙원은 존재할까요? 답 없는 질문이 시시바의 뇌 내를 꽉 채웠고, 기어코 두 사람은 바다로 빠졌다. 윤슬이 없고, 유백색 포말만이 바다에 넘실대는 곳으로, 두 사람은 넋을 놓은 채 빠졌다. 풍덩! 요란스러운 소리가 공간을 메웠고, 어느새 두 사람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해저 이만리, 바다 깊은 곳에는 자유가 있을까? 말도 안 되는 공상에서 비롯된 질문. 필립은 공상적 인물이다. 모든 감정이 그의 앞에서는 무용해지고 마는 것이다. 진실된 사랑도, 찰나의 꿈들도 전부 무용해진다. 사랑이 맞받아쳐 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안일한 짓이다. …필립은, 애당초,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몸을 맞붙여온 사람일지라도. 그리고 지금, 이 바다로 함께 빠져드는 사람일지어도. 숨을 침범하는 물결에 두 사람의 손이 부들, 떨려온다. 맞잡은 손 사이로 공기와 물이 차올라, 기어코 두 사람의 손이 떨어질 즈음, 시시바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폐부에 차오를 것처럼 파고드는 바닷물은 짜고, 텁텁하다. 아. 그래, 죽는 건 역시 싫네…. 사람은, 바다에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왜 있는지 알겠어. 해저에 낙원이 없는 이유가 있었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시시바보다 깊게 가라앉는 필립은 발버둥이 무용해졌음을 깨달았다. 어둡다. 시야가 새카맣게 암전할 것만 같다. 정말이지, 이놈의 호기심은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시시바 씨는 즐거웠을까? 아니, 역시 그 표정은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겠지. 제 앞에만 있으면 세상 모든 불안과 불행을 떠안은 듯한 표정을 짓던 사람이다. 사랑이 가짜임을 알아서. 애시당초 누릴 수 있는 사랑도, 나눌 수 있는 감정도 없었음을 알아서. 시시바 씨, 당신의 마음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그게, 내가 바라고 초래한 일이니까.
기어코 숨구멍을 찾아 벌려진 아가리 안으로 바닷물이 스민다. 폐부에 물이 차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차라리 칼에 맞아 죽는 게 낫겠네. …바다는, 전혀 상냥하지 않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포용력 있어 보여도, 결국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 자신처럼. 그리고 그 안에서 숨 막히는 자신의 기분이, 곧 시시바의 기분이었으리라. 죽기 직전에서야 나는 당신을 알아가는구나. 당신은 영영 나를 알지 못할 텐데.
…프하! 시시바는 겨우겨우 수면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는 것은 아직이었다. 아직 해야 할 일들도, 끝내지 못한 일들도 차고 넘친다. 그러니까, 아직은…. 곧 시시바가 고개를 돌리면, 그 공간엔 자신뿐이었다. 요컨대, 수면 위로 올라와, 제대로 살아남은 것은 오직 자신. 시시바의 수륜이 일순 흔들렸다. …필립? 밑을 내려다보았지만, 이미 그의 인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주아주 깊은 바다에 그는 파고들어 갔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다정함으로 착각해서 파고들었다. 시시바는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했다. 이미 시간이 적지 않게 흐른 뒤였다. 자신도 당장에 숨이 막혀 죽을 뻔하기 직전에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립은, 이미…. 시시바는 바다로 말미암은 한기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그 한가운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니,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해서. 이 불안감이 진짜일 거라고는.
……그럼 나는, 이제 어떡하지?
남겨진 감정이 맥박치며 발을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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