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현종의 권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현종 + 청명

. by 마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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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이 장문인의 명령이라면 죽어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인 걸 몰랐던 시절이 보고 싶음.

청명은 그날도 어김없이 장문인에게 혼나고 있었음. 죄목은 '사숙과 사형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패버림'이었지. 청명의 무도한 행태에 분노를 참지못한 현종은 버럭 소리 질렀음. 

"당장 돌아가거라! 네가 무얼 잘못했는지 깨우칠 때까지 처소에서 나올 생각하지 마라!"

회초리로 종아리를 얻어맞는 것보다 더 싫은 생각의방 형벌이었음. 청명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음. 발버둥치기 전에 윤종과 백천에게 양팔을 잡혀 처소로 질질 끌려갔음.

"아악 장문인!! 이러시는 게 어딨어요!"

현종은 익숙한 듯 흐린눈하며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음.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제발 반성이라는 것을 하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지. 현종은 딱히 시간을 지정해주지 않았음. 사실 청명이 사형제들을 패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때 되었다 싶을 때 알아서 나오겠다 싶었지. 현종의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곧 청명에게 벌을 준 사실도 까먹었음. 그런데 다음날 청명이 보이지 않았음.

식당에도 수련장에도 청명이 나타나지 않자, 현종은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아 물었음.

"청명이가 어딜 갔느냐?"

"그…… 어제 처소에 끌려간 이후로 저희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벌을 주었던 걸 떠올렸음. 지금 삐졌다고 얼굴도 안 비추는 건가? 하여튼 간에 이 망둥이! 곱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괜히 달려가서 얼굴 보면 한참을 어르고 달래줘야 할 테니 일단 청명을 냅두기로 했음. 설마 청명이가 밥 못 챙겨먹어서 굶고 있겠나 처박혀서 술이나 진탕 퍼마시고 있겠지. 혀를 끌끌 찼음. 그럼에도 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에 청명이 머무르는 처소 앞으로 가 기웃거리겠지. 멀뚱히 매화나무를 바라보는 척 멈춰서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데, 분명 인기척은 느껴지지만 너무나도 조용했음. 청명이 장문인의 기척을 못 읽을 아이도 아니고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벌 받은 일에 억울함을 호소할줄 알았는데.

"청명아."

"……."

"청명아?"

"예, 장문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음.

'역시 안에 있던 게로구나. 그런데 이 자식이! 장문인이 왔으면 퍼뜩 튀어나와야지 뭘 하고 있길래 미적대고 있느냐! 수련에도 안 나오고!' 청명과 함께 살며 꼰대력이 옮겨 붙은 현종이었음.

방 문을 열자 어두운 구석에서 무릎 꿇고 앉아 벽을 바라보는 청명이 보였음. 항상 소란스럽게 날뛰는 아이가 벽을 마주본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니 기괴했음.

"……청명아? 무얼 하고 있는게냐?"

"제 잘못을 깨우칠 때까지 벽 보고 있으라고 하셨잖아요."

뚱한 대답이 튀어나왔음. 그제야 현종은 아이의 다리가 체중에 짓눌려 시뻘개진 것을, 추운 방안에서 벌 받느라 코와 손끝이 얼어붙은 것을 보았음. 유난히 추위에 약한 청명은 밀려오는 한기에 오소소 떨면서도 절대 자세를 풀지 않았음.

"아니, 그걸… 왜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

"그만하라고 말씀 안 하셨잖아요."

너는 적당히란 게 없는 거냐. 현종은 헛웃음을 흘렸음. 청명이니 모두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을 때 슬그머니 기어나올 줄 알았는데, 이 어린 아이가 장문인의 명이라고 사람들 눈이 없는 곳에서도 벌을 받고 있던 거임. 위아래가 없고 예의도 모르는 주제에 장문인의 명에는 지나칠 정도로 순종적인 아이가.

현종은 아이의 어깨를 그러쥐었음. 몸이 차갑게 식어서 가슴이 섬뜩했음.

"그만되었다. 청명아 일어나거라."

"정말요? 이제 화 안 내시는 거죠?"

"그래."

청명은 벌떡 일어나려다가 비명을 지르며 다시 엎어졌음. 오랫동안 무릎 꿇느라 다리에 쥐가 난 게 분명했음. 칼에 찔리고 베어도 아픈 내색 하나 보이지 않더니 다리에 쥐가 난 건 그렇게도 아프더냐. 그리 생각하면서도 저 아이가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알아서 현종은 말없이 아이의 다리를 주물러줬음. 청명은 깜짝 놀라 손사래쳤음.

"장문인! 이러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괜찮다. 내가 그러고 싶어 하는 것이니."

청명은 입을 꾹 다물고 어색한 얼굴로 현종의 눈치를 살폈음. 아직도 현종의 화가 풀리지 않았나 싶어서 괜히 눈치를 보는 것이었음.

"화산파의 장문인이 제자의 쥐 난 다리를 주무르는 게 잘못된 일이더냐?"

당장이라도 네, 라고 대답하려던 청명의 입을 움켜쥐었음. 삐쭉 튀어나온 입이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며 겨우 원하던 답이 흘러나왔음.

"아니이…… 뭐 장문인이 원하신다면 하시는 거죠. 일개 삼대제자가 장문인의 권한을 넘보겠습니까."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폴폴 냈지만, 우물쭈물거리며 손가락을 더듬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렇다는 걸 알았음. 시선이 마주치자 청명의 히 하고 웃어 보였음. 순박한 미소에 절로 웃음이 나왔음. 오래 가지 않았지만.

"아니, 근데요 장문인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그렇게 잘못한 것 같지는 않……"

"입! 이 놈아 이 입 좀 다물어라!"

"끄응"

풀려난 청명은 이미 불 꺼진 식당으로 잽싸게 달려갔음. 이틀을 내리 굶었으니 남아 있는 밥이라도 주워 먹을 셈이었음. 현종은 정중하게 포권한 뒤 멀어지는 청명을 한참 바라보았음.

강박에 가까운 순종이로구나.

천하제일기재에 화산의 실질적인 중심이었으니 어깨가 높이 치솟을만 한데도, 아이는 절대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 단순히 권위에 복종한다고 생각하기에는 비틀린 애정을 느꼈음. 종아리를 주무르며 어찌하여 우리를 따르는 거냐 물었을 때 청명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음. 당신께서 화산의 장문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공손한 눈빛이었음.

아이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음. 어쩌면 그것은 순종이라는 이름의 헌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음. 절대적인 복종은 현종이 생각하는 이상이 아니었음. 기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서는 스스로를 물건으로 여기는 듯한 차가움이 느껴졌음.

'청명아. 이 어리석은 녀석아. 너는 검이 아니다. 우리의 소중한 제자라는 걸 왜 여즉 모르는 것이냐.'

그러나 오직 헌신만이 전부인 아이에게는 닿지 않을 말이었음. 그러니 천천히 알려주어야 했음. 너는 검이 아니라는 걸. 우리의 화산에는 절대적인 복종 따위 필요 없다는 걸. 넌 우리의 소중한 제자이니 부디 몸을 소중히 여기라는 걸. 하나하나.

* 소림의 방장이든 무당의 장로든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아이가 현종에게는 끝없이 자신을 낮추겠지. 현종은 권위는 그런식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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