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체의 우당탕탕 휴가
아빠! 엄마. 션! 마이. ...얀. 공주님~! 양~ _비아체 가족의!
비아체 유리는 의사다. 매일같이 병원에 출근해 매일같이 전쟁터를 누비는 것처럼 응급실을 누비며 환자를 본다. 하지만 그도 사람, 쉴 때가 필요했던 그는 며칠 전부터 계획했던 휴가를 냈다. 공휴일이 낀 연휴에 가족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아 잘 자고 있던 아내에게 입을 맞췄다.
"유리……."
"좋은 아침, 자기. 잘 잤어?"
이른 아침임에도 그의 아내, 아리에타는 피곤한 기색 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눈을 떴다. 벽에 달려있는 시계를 한 번, 남편인 유리를 한 번, 다시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4시인데. 아직."
"오, 4시. 숫자 4는- 사랑해의 사~지?"
"…앙큼한 짓 하기는. 우리 7시에 일어나기로 했잖아?"
이내 유리의 양 볼은 잡아 늘려져 붉게 물들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이들을 깨우기 싫었던 그는 작은 소리로 아따따, 아따따 아프다는 듯 엄살 부리면서도 반성의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설레서 그랬지. 우리 오늘 가족 여행 가는 날이잖아~"
"…설레?"
"응~ 자기야, 나 설레. 내 심장 소리 들려?"
아리에타는 잠시 유리를 응시하다가 유리의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단단한 가슴팍을 더듬거렸다. 유리는 당황한 듯 아리에타를 보며 말했다.
"자, 자기? 아리에타? 누나? 새벽부터 조금 화끈한 것 같은데……."
"심장 소리, 들어보라면서? 벗어."
"…나, 심장 터져서 죽을지도 몰라."
그런 가벼운 대화가 이어지기도 잠시, 어두운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 엉겨 붙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다시 까무룩 잠들었다가, 원래 기상 시간인 오전 7시. 그들의 셋째, 얀은 한참 전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고 있었다. 그 옆에서 김밥 꼬다리를 주워 먹으며 다리를 동당거리던 넷째, 릴리아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말했다.
"소풍~ 소풍~ 바다겠지?"
"바다겠지. 자, 형도."
얀은 이 상황이 퍽 익숙하다는 듯 제 형 입에 김밥을 넣어주며 말했다. 형, 마이 또한 익숙하게 그걸 먹고 갓난아이인 막내를 안고 달래고 있었다.
"누나는?"
"언니는 머리 감아~. 오빠, 나 햄 먹어도 돼?"
"엄마 아빠 깨우고 오면."
"아빠 안 잔다-."
유리는 언제 일어났는지 말끔한 모습으로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좋은 아침, 그런 인사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인사를 받은 얀은 고개 들어 유리를 바라본다.
"엄마는요?"
"샤워 중. 얀, 너는 준비 다 하고 하는 거야?"
"아, 아뇨. 이거만 말면 끝이니까 하고, 썰고…….."
"이런. 우리 아들 고생했네. 남은 건 아빠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마이는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냅다 유리의 품에 안겨줬다. 안정적으로 아기를 안은 유리가 마이를 보자 그는 그의 엄마와 닮은 평온한 눈빛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난 배탈 나고 싶지 않아."
"마이……. 이 아빠 못 믿어?!"
"응."
단칼에 대답한 마이는 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슬퍼하는 아버지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준비해."
"나 준비 금방 하는데……."
얀이 뭐라 더 말을 하기도 전에 김밥 하나를 그 입에 물린 마이가 말했다.
"준비해."
"…알았어. 손 조심하고."
"나 애 아냐."
"그렇긴 한데……."
"나 화장실 다 썼어~! 다음 쓰면 돼!"
"나 지금 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누나, 션의 목소리에 얀은 얼른 일어나 준비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마이는 그대로 얀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 어느 새 다가온 가족들에게 터진 김밥들을 하나하나 물려주고 괜찮은 것들은 도시락에 싸가며 마무리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여행 준비가 끝이 났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서, 흥겹게 노래도 부르고 멀미에 지쳐 자다 일어나기도 하던 그 여행길, 가족들은 목적지에 도착해 도시락도 먹고 해변가에서 바닷바람도 만끽하며 쉬고 있었다. 아기, 마레는 아리에타의 품에 안겨 방실방실 웃으며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웃고 떠들었다. 유리도 아이들과 뛰어 놀며 발을 담그고 물을 뿌리기도 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가롭게 놀다가 슬슬 지쳐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던 그 때.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가족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저 멀리 보트가 뒤집어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둘?"
"아니, 셋."
마이와 아리에타는 시선조차도 교환하지 않고 빠르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마치 매일 짝을 지어 훈련한 군인처럼 바다를 헤엄쳐 사람들을 구해냈다. 어른 하나, 아이 둘, 두 사람은 무사했지만 아이 한 명은 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얕은 바다, 의식을 잃은 아이를 안고 나온 마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비를 찾았다. 유리는 이미 신고를 마치고 나들이용으로 가져왔던 돗자리 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숨……."
"얼른 눕혀. 션! AED옆에 두고 두 사람 확인 한 번 부탁할게."
"네!"
유리의 지시를 받은 첫째, 션이 푹 젖어 떨고 있는 그들을 다독거리면서 상황이나 불편한 점들을 살폈고, 얀은 아이를 안고 여기저기 바삐 뛰어다니면서 그들에게 덮어 줄만한 담요나 이불을 찾아 헤맸다. 두 사람은 체온이 조금 낮아지고 타박상을 입긴 했지만 위중 하진 않았다. 하지만.
"애기야, 애기야. 정신 차려 보자. 애기야?"
아이 한 명이 기어코 숨을 쉬지 않았다. 유리는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흉부를 압박하고 인공호흡을 하고, 놀란 가족들을 션이 달랬다. 괜찮을 거라고, 너무 걱정 말라고. 이내 그 역할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넘긴 션은 유리를 도와 기도를 확보하고 제세동기를 세팅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가득 먹었던 물을 토해내고, 구급차 또한 사고가 난 지 5분 만에 도착했다. 유리는 구급대원의 옆에 붙어 상황을 설명했다.
"사고 난지 대략 5분에서 10분 정도 됐습니다. 보트 타다 넘어간 상황이고, 세 명 모두 가족입니다. 두 분은 저체온증과 타박상 있으시고, 지금 누워 있는 애기. 아, 네 맞습니다. 그 친구. 애기는 심정지가 한 번 왔으니까. 최대한 빨리 이송 부탁 드립니다. 아, 혹시 어디 병원으로 가십니까?"
"지금 20분 거리에 있는 응급실은 베드가 다 찼다고 해서, 다른 병원 수배할 예정입니다."
"그럼, 잠시……."
유리가 주머니를 뒤지면서 핸드폰을 찾았다. 혹시 잃어버릴까 막내는 등에 업고 넷째는 품에 안은 얀이 유리에게 다가갔다.
"자. 아빠 핸드폰 드리자."
"아빠~ 공주님이 핸드폰 드릴게~."
"고마워, 공주님~ 얀도 잘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아이들을 한번씩 쓰다듬어준 그는 익숙하니 손을 놀려 전화를 걸었다.
"어, 휴가라더니 왠 전화야? 반납하려고? 됐어.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아~ 그래? 내 전화 받을 만큼 한가한가 보다? 근데 이걸 어쩌나. 환자 추가야. 삼십 분 뒤에 익수자 세 명 갈 거야. 한 명은 심정지 왔었으니까 부탁한다?"
"야, 넌 휴가 때 무슨 일을."
"아, 나 우리 애들이 부른다. 수고!"
냅다 전화를 끊은 유리는 구급대원에게 응급실을 수배했다는 걸 말해주고 세 사람을 얼른 이송시켰다. 구급차가 저 멀리 사라지고 그제야 유리는 일이 끝났다는 듯 돗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힘들었다. 그렇게 말하자 잔뜩 긴장을 했던 가족들도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며 그 주위에 앉거나 드러누웠다. 다들 땀이며 모래, 바닷물 때문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점심 먹기 전에… 펜션에서 좀 씻어야겠다."
"동감."
"저도요…."
"난 배고파."
"…형, 김밥 줘?"
"얀 오빠~ 릴리아도~!"
"양~ 양~ 마마~."
아기의 웃는 소리가 퍼지고 담요를 빌려줬던 사람들에게 멋지다며 박수도 받는다. 참, 정신없는 휴가다- 하고 유리는 생각했다. 유리와 그 가족들은 소문 낼 것 없다며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지만, 사람의 입소문이라는 게 또 발을 타고 나르는 법이라. 어느 대학교 응급실 교수와 레지던트, 전직 현직 수영 국가대표 선수들이 속한 가족들이 사람을 구했다는 기사가 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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