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아무말해요

나쁜 오렌지 나무

내가 왜 나쁘냐? 죽고 싶냐?_라임의

사람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에겐 행복할 수도, 누군가에겐 불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임에게는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기억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기다려, 그 한마디 때문에 라임은 그 여름을 잊을 수 없다.

*

…때는 어느 여름. 하루에도 수십명, 수백명이 서로를 지나치는 그런 큰 거리. 라임은 그 거리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미지근한 오렌지주스를 들고 있던 라임은 무언가를 한참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얘, 너 누구 기다려?”

지나치는 수십명의 사람 중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라임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라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길 잃었어. 저기 공원 옆에 큰 교회 가고 싶어.”

“거기서 누구 만나기로 했니?”

“오빠~. 기다리면 올거야.”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데려다 줄게.”

“길만 알려줘! 혼자 갈래.”

“혼자 갈 수 있어?”

라임은 그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친절했던 그 사람은 한번 더 길을 알려주고 나서야 가던 길을 다시 걸었다. 라임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참 미지근해진 음료수 뚜껑을 열고 마셨다.

“…맛없어.”

다 비어버린 병을 주변의 아무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 꼴을 무언가에 빗대어 보기라도 했는지 라임은 사납게 미간을 구기면서 괜히 쓰레기통을 노려봤다가 공원 옆의 교회로 향했다. 그 곳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받아주는 고아원이 있었다. 그 곳에 있으면 적어도 굶을 걱정은 없겠지. 라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파를 헤치고 계속해서 걸어간다. 다행스럽게도 그 교회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라임은 어렵지 않게 그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라임은 그 대문의 기둥에 기대어 발끝을 바라봤다. 들어갈까, 말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였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저들끼리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끝났다!! 넌 집에 가서 뭐 할 거야?”

“나? 아빠가 기다려서~ 집에 얼른 가야 해! 맨날 아닌 척해도 다 들킨다니까?”

“맞아! 엄마 아빠는 우릴 좋아하니까!”

활기찬 목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라임은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옷가지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고 집으로 향했다. 그의 만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오빠는 나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데 두고 어디론가 갈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 어두워져서 길을 헤매긴 했지만 라임은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낡은 아파트, 그 무거운 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그저 싸늘한 풍경일뿐이었다.

“뭐야, 아직 안 왔나?”

게으름뱅이, 길치, 바보! 제가 아는 모든 나쁜 말들을 모아 말하고는 정리되지 않은 이불을 돌돌 감고 누웠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돌아오겠지. 그의 오빠는 종종 그렇게 자리를 비울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뭐냐? 이거 밖에 안 되는 놈이 덤빈 거냐?”

올해 스물 여섯이 되는 라임은 자신보다 훨씬 큰 장정들을 때려 눕힌 채 당당히 서 있었다. 여기저기 앓는 사람 투성이에 피까지 흐르고 있는데도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하고 기어코 일어나서 달려드는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다시 쓰러뜨리는 것이다. 라임은 그 사람들의 산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귀찮구만……. 그러니까 왜 나한테 덤벼드냐? 다들 죽고 싶어서 환장한거냐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라임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행동했다. 혀를 찬다거나, 몸을 일으켜 칼을 쥔 사람의 손을 무자비하게 밟는다거나 해서 말이다.

“한 번 만 더 내 집 앞에서 헛짓거리 해봐라! 네놈들 때문에 내 오빠가 오다가도 도망가게 생겼잖냐!”

오빠는 나약한 겁쟁이라고! 라임은 쓰러진 사람을 상대로 한참을 화풀이 하다가 무언가 느낀 듯 고개를 휙 돌려 골목길 저 끝자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그 시선의 끝에서부터 검은 머리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라임은 바닥에 떨어진 나이프를 들었다.

“저놈은 좀 재미있어 보이는 구만.”

머리도 잘 돌아가 보이니 물어보고 헛소리하면 때려죽일테다. 라임은 사납게 웃으며 남자를 마주했다. 그 일 이후로 그녀를 만난 사람은 없었다. 후에 그녀를 애타게 찾는 남자가 있었지만, 그 또한 영영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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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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