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골목길에서.
싸우자!/그러고 싶진 않은데_
둔탁한 충격이 복부를 강타해 온다. 플리베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쥔 채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그는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은 채 거리를 벌리는 것이다. 싸움이라면 퍽 자신 있었는데 이렇게나 밀리다니, 자신의 형님들이 안다면 혼쭐이 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하냐. 벌써 항복이냐?”
킥, 앳되고 짧은 웃음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눈앞에 있는 이는 아직 졸업은 했을까 싶은 학생. 이런 애한테 두들겨 맞아 자존심이 상한다기엔 상대가 좋지 않았다. 이미 부하들 또한 바닥을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한강 수온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구만…….”
플리베는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뿌연 연기 사이로 이 빌어먹을 상황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아릿하게 떠올랐다.
…그래, 시작은 이 골목길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부하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꼬마 하나가 시비를 걸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손대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뒤 혹시나 손속이 심할까 싶어 자신도 서둘러 이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목격한 것은 이미 두들겨 맞아 바닥을 구르고 있는 부하들과 당당히 서 있는 소녀였다.
“허? 이게 무슨.”
“아, 아저씨가 이 사람들 머리야?”
“머리는 아니지만— 음, 그래. 간단하게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하지. 하나 묻자. 아가씨가 이 친구들을 때려눕힌 거야?”
“엉. 내 구역에서 함부로 굴어서—.”
킥, 짧은 웃음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그 날쌘 몸놀림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 아닌가. 그렇게 플리베와 소녀, 라임은 여러 번의 주먹을 맞대며 지금 이 상황까지 몰려왔다. 물론 아예 상처를 입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라임에게도 아까보단 많은 양의 먼지가 옷에 붙어있었고, 저, 저 봐라. 뱉은 침에 피가 섞여 있지 않은가. 플리베는 담배 연기와 함께 상념을 지우며 말했다.
“아, 그래. 항복이야. 아가씨. 내 친구들이 좀 무례했던 것 같은데.”
“좀?”
“아, 아니. 주먹 좀 내려놓지? 알겠다니까. 좀 많이. 그래. 서로 이쯤에서 그만하자, 아니, 그 각목도 내려놓고. 그건 어디서 난 거야?”
“아저씨 발밑에 굴러다니는 놈이 들고 다니던데.”
“…어휴, 이 새끼는. 애한테 그런 걸 휘두르고 난리야.”
발밑에 기절한 부하를 발로 툭툭 친 플리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그래. 갑자기 날벼락을 맞아서 놀란 것도 있지만 피차 피해 입은 것도 있으니 이제 그만…….”
“내가 먼저 시비 건 건데?”
“…왜?”
“길을 막고 귀찮게 굴잖냐!”
어쩜 이렇게 제멋대로 군단 말인가. 아, 하지만 이 싸움 실력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영입을 하는 편이 더 이득일지도. 그러나 소녀와 시간은 그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작은 벨 소리가 적막한 골목을 울렸다. 그 소리의 근원은 소녀의 주머니였다.
“어, 여보세요? …아니? 나 한바탕 하는 중인데.”
라임은 수화기 너머에서 잔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핸드폰에서 귀를 멀리했다가 잠잠해질 때 쯤 다시 귀에 대었다.
“아, 이겼으면 됐잖아! 깐깐하게 구네, 진짜… 나 배고파. 지금 갈 거니까 밥 해놔. 아, 아저씨 안녕. 당신은 좀 싸울 맛 나네, 재미있었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주변에 널브러진 와이셔츠를 툭툭 털고 플리베를 지나치는 것이다. 플리베는 벌써 멀찍이 사라진 라임의 뒤를 바라보면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툭, 떨어뜨렸다.
“나 참… 저런 말괄량이 아가씨는 또 처음 보네.”
이건 또 어떻게 처리하고 수습한담……. 플리베는 골목 안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웃음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우선은 한번 쥐 잡듯 잡아야지. 그리고 형님들한텐… 비밀로 해야겠다. 그리고 다음에 보면…….
“과자라도 사 줘야지.”
그렇게 어둑어둑한 골목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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