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역사

위브와 함께 사라지다-카서스의 우행

알고 보면 그는 하나의 용감한 영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포가튼 렐름의 마법사라면, 혹은 마법의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포가튼 렐름의 마법과 지식의 여신 미스트라가 꽤나 많은 역경을 지나 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의 미스트라가 처음의 미스트라가 아니라는 것도, 그 미스트라 이전에 미스트릴이라는 여신이 있었다는 사실도요. 미스트릴은 수많은 마법사와 학자들의 신봉을 받았고 그 덕에 미스트릴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대신격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엥, 그럼 그 강력한 신이 왜 갑좍 세대를 거쳐 가며 미스트라가 된 건가요? 포렐 마법 짱이니까 마법으로 해결 보면 되는 일 아닌가요? 싶으실 수도 있으나 애석하게도 미스트릴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 바로 그 마법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오늘은 미스트릴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카서스의 우행(Karsus's folly)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네서릴과 페이림, 수십년의 전쟁

네서릴은 수천 년 동안 끝내주는 영향력을 행사했던, 페이룬의 고대 마도정치(magocratic) 인간 제국입니다. '마도정치'는 마법에 능한 자만이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부 형태로, 이러한 정부 형태에서부터 네서릴 제국이 어마어마한 마법 제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대한 마법과 철저한 신분 제도로 네서릴 제국은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고, 나중에는 미샬라라는 무언가를 개발해 공중 도시를 지어 올리는 데까지 이릅니다. 이러한 공중 도시의 발생 이후 네서릴은 대마법사들의 영향으로 화려한 삶을 이어나가는 하이 네서릴과, 공중 도시에 오르지 못한 자들이 살아가는 로우 네서릴로 나뉘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법의 남용은 네서릴 제국의 땅 아래에 살고 있는 페이림이라는 존재들을 자극했습니다. 네서림들이 공중 도시의 건설을 위해 만든 미살라는 와일드 매직을 흡수하고 조절하며 작동하고 있었는데, 페이림은 이 와일드 매직에 의존해 생존하고 번영해 오고 있었으니까요. 페이림들의 터전은 네서림들에 의해 파괴되고 황폐화되었고, 결과적으로 −461 DR부터 페이림들은 네서림들의 마법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그리고 어느정도는 보복을 위해-네서릴 제국의 땅과 공중 도시에서 생명을 앗아가는 강력한 마법을 개발해 사용하게 됩니다. 어느 한 쪽이 참혹하게 패배했다면 카서스의 우행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애석하게도 페이림과 네서림 둘 모두가 아주 강력한 세력이었기에 이 전쟁은 수십년을 이어졌습니다.

-450 DR 경부터는 에는 페이림의 영향력이 너무 막대해진 나머지 네서릴 제국의 사람들은 야만인 국경으로의 피신을 시작하게 됩니다. 특히 로우 네서릴의 사람들은 페이림의 공격에 더욱 취약했기 때문에 더 분주히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네서릴의 많은 비전술사들은 다른 마도정치 국가인 일루스크로 도망쳤고, 정치적 주체가 사라진 네서릴에서 내란이 멎는 날은 없었습니다. 제국은 지속되는 전쟁으로 평민들을 더 이상 보호해 주지 못했으며, 이에 지친 평민들은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고, 제국의 구석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지쳐버린 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전쟁이나 더 나은 경작지를 찾기 위한 전쟁 따위의 것들입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죠. −427 DR, 페이림은 강력한 마법으로 네서릴 제국의 거대한 공중 도시인 라오다와 티스 틸렌드로탈을 무너뜨렸고, 네서림들은 제국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보호막을 설치했습니다. 네서릴 제국은 페이림으로부터의 공격으로부터 계속해서 항쟁했으나 마법사 멜라틀라 등 여러 희생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와 더해, 네서릴은 페이림과의 전쟁 중 샤른이라는 기묘한 생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샤른의 주문은 페이림의 마법 흡수와 생명 흡수 주문에 닿으면 땅의 지형을 바꾸어 산을 구불구불한 언덕으로 바꾸거나 사막을 넓히는 등 지형을 변화시켰는데, 결과적으로 이 '도움'은 네서릴 제국의 땅을 더욱 빠르게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도시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땅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제국을 이끌던 마법사라는 작자들은 자꾸만 어디론가 도망치기 바쁩니다. 여기에 더해 대마법사 이올라움마저 네서릴을 버리고 빤스런을 치니 혼란은 더욱 가중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차갑게 식은 머리로 네서릴 제국을 구원하려 한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카서스!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카서스는 두 살 때부터 위브를 쳤어, 영재였지

−696 DR, 네서릴 제국에서 태어난 카서스는 아주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두 살 때 처음으로 주문을 시전하고, 22살이 되던 해에는 자신만의 공중 도시를 만들어낼 정도였으니 영민한 수준이 아닌 전설적 인물이라고 불릴 법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확연히 마법에 대한 재능은 있다지만, 그는 노력과 연구에 필요한 훈련이 부족해 꽤나 독특하고 급진적인 인물이었던 그는 자신의 영토에 마법 학교를 설립하고 급진적인 사상가들과 금기시되는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그림자 차원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던 로드 섀도우와 같은 이들-의 참석을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모로 비범한 인물이었음은 확실해 보이죠.

카서스는 3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가며 페이림과의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네서림들을 두 눈으로 지켜보아 왔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이올라움과 함께 네서릴의 두 기둥 중 하나처럼 살아왔던 카서스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했고, 마법과 지식을 동원해 네서릴을 지키고자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345 DR, 아신돌이라는 자가 에일리아나, 카서스의 공중 도시에 나타나 마법의 여신 미스트릴이 네서릴에게 전례 없는 시련을 안겨줄 것이라 경고합니다. 이 위기는 네더릴이 지금껏 마법을 섬겨 왔던 방식과 마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 모두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요.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올라움의 빤스런까지 닥쳐 오자 카서스는 하루아침에 불안한 네서릴 제국의 운명과 국민들의 삶을 어깨에 냅다 짊어지게 됩니다.

사실 완전히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로부터 70년 전, 카서스는 이미 카서스의 아바타라는 위대한 주문을 완성시킨 상태였으니까요. 카서스의 아바타는 시전자, 즉 카서스가 지목한 신의 힘을 아주 잠시 강탈해 시전자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레벨 주문입니다. 주문의 힘이 거대한 만큼 시전에 드는 재료와 시간, 정성 역시 어마어마합니다. 돌로 가득 찬 금룡의 아가미를 타라스크의 피와 12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 담즙 혼합물에 섞는 등의 복잡한 재료 준비 과정과 6시간의 영창이 필요할 정도였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거대한 신격의 힘을 강탈하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무시무시한 일입니다-카서스 스스로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10년동안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만든 주문을 70년에 이르는 오랜 시간동안 봉인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카서스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카서스는 신의 힘을 향한 야망이 아닌 네서릴을 다시 한 번 통합하고 이 위기를 극복해내기 위해 카서스의 아바타를 시전하기로 합니다.

위브의 어머니이자 위브 그 자체인 미스트릴에게요.

위브의 붕괴, 카서스의 우행

−340 DR, 카서스가 미스트릴의 힘을 강탈한 해입니다. 주문을 시전한 카서스의 몸에는 신적인 힘이 가득 흘러 들어왔고, 그 뇌 속에는 형용할 수 없는 지식이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힘으로 잔뜩 온 몸이 부풀어버린 카서스는 자신이 아주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본디 신격을 부여하고 그 정수를 옮겨담는 일에는 호환성과 제대로 된 절차가 필요하며, 그 과정을 한 번도 밟지 않은 채 급격히 신성을 강탈하는 필멸자에게 남은 운명은 파멸 뿐입니다. 애석하게도 그 당시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자는 Ao와 같은 극소수 뿐이었고, 카서스는 불운하게도 이 주문의 시전을 성공시켜 파멸 그 이상의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카서스의 몸에 흘러 들어온 위브는 말 그대로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네서릴 제국과 페이림들의 마법 전쟁은 위브를 아주 제대로 엉키게 만들어 두었고, 그 미스트릴마저 겨우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폭주하고 있었으니까요. 카서스가 미스트릴의 힘을 앗아 오며 미스트릴은 위브의 통제권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대마법사라 한들 대신격의 휘하 아래에서 관리되고 있던 전세계의 위브를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카서스가 위브의 통제를 시도하기도 전, 위브는 말 그대로 고삐 풀린 말처럼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토릴의 마법이 요동치고, 기수 없는 말이 된 위브는 제멋대로 변화하며 세계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선택은 무슨, 통제권마저 잃은 카서스와는 달리 미스트릴에게는 마지막 수가 남아 있었습니다-자신을 희생시켜 모든 위브를 차단시키는 것, 그로 하여금 카서스의 아바타가 지속되는 것을 막는 일이었습니다. 위브를 빼앗겨 쇠약해진 미스트릴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힘과 번뜩이는 최후의 지성으로 자신을 희생시킴과 동시에 후대 마법의 여신이 될 자-평범하지만 대마법사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던 소녀를 그릇으로 삼아 미스트라로의 환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카서스의 우행은 끝이 났고, 온 세상의 마법은 맥이 끊겼으며, 세상은 위대한 대마법사와 마법의 여신, 그리고 위대한 제국을 잃었습니다.

네서릴 제국의 추락, 그 이후

미스트릴의 자살은 모든 마법의 중단을 초래했습니다. 마법으로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던 수많은 마법사들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카서스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는 미스트릴의 힘으로 인해 아주 천천히 석화되며 죽어갔습니다. 신의 권능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빛을 내던 돌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담은 것은 네서릴의 도시들이 산산조각나는 모습입니다. 그의 우행이 고향과 가족, 친구, 동족을 멸망시켰다는 사실에 슬퍼할 시간도 없이 필멸자의 우행은 참혹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리 죽음을 맞이한 그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신은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여 그가 신 없이 푸가 차원을 떠돌 수 있었던 것 역시 아니었기에, 그의 영혼은 물질계에 베스티지라는 이차원의 정신체 형태로 묶이게 되었습니다. 그 덕택인지 계약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은 그의 흔적을 불러낼 수 있는데, 이 흔적은 석화된 그의 형상이 떨어진 숲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거대한 핏빛 바위로 나타나고는 합니다. 카서스는 자신을 소환한 자들에게 마법 능력의 향상이라는 선물을 주었으나 동시에 그 특유의 오만함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카서스의 사후, 고대 네서릴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한순간 미스트라로 환생한 미스트릴의 힘은 네서릴의 마지막 남은 세 공중 도시-아나우리아, 아스람, 흘론다스를 구하고 그 곳에 남아 있던 네서림들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때 살아남은 이들 중 몇은 할루아를 건국했고, 다른 몇은 델조운 왕국으로 피신하여 삶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평민들은 일루스크와 다른 땅에 정착한 후 앙가르트, 렝가르트로 발전하거나 우스가르트 야만인 부족과 섞여 북방으로 흩어져 자신의 고향이라고 할 것을 잃은 채 살아갔습니다. 이후 네서릴 제국의 후계 국가들이 세워지기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붕괴하기를 반복했으니 사실상의 멸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미스트라는 다시는, 누구도 이런 우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마법 사용에 제한을 두기 시작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포가튼 렐름의 모든 마법사들은 특정 수준 이상(10레벨 이상)의 마법을 구사할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의 클레릭과 사제들의 꿈에 친히 방문한 미스트라는 카서스의 우행에 대해 알리며 너희는이런짓하지마라의 가르침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스트라는 조금 더 질서정연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마법과 위브를 관리했으며 카서스의 아바타와 관련된 유산을 몰수하여 우주의 저편으로 날려보내 같은 역사의 반복을 막으려 노력했습니다. 덕택에 미스트라는 타임 오브 트러블이 닥치기 전까지는 아주 평화로이 위브의 조정자이자 마법의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을지도?

사족으로, 카서스의 우행이 아주 불운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앞서 카서스의 제자 중 하나로 언급되었던 로드 섀도우를 기억하시나요? 그 자-텔라몬트 탄툴은 카서스의 우행이 일어나기 단 며칠 전, 그림자 차원으로 네서릴 제국의 공중 도시이자 자신의 영토인 툴탄타르 전체를 그림자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카서스의 우행으로 인해 위브가 삭제되었다가 돌아오는 그 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만약 탄툴이 그림자 차원으로의 이주를 완벽하게 성공시킨 뒤 카서스에게 그 방법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면 카서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탄툴이 네서릴으로 귀환했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이미 완전히 멸망해버린 조국과 땅 뿐이었습니다.

탄툴은 자신이 부재중일 때 일어나버린 이 끔찍한 재앙이 자신들의 숙적인 페이림 때문이라고 여기고, 그들에게 대적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네서릴의 마법사들과 그림자 차원에 남기로 결심하고, 언젠가는 토릴로 돌아가 마법 제국을 재건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페이림은 네서릴 제국의 땅을 황폐한 아나우로크 사막으로 변질시켰으나, 그 땅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페이림은 샤른에게 패배해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샤른 벽에 의해 격리되어 차후 탄툴과 그가 이끄는 샤도바르의 사람들에게 완전히 박멸당하게 됩니다.

마치며

카서스의 우행은 그 명성과는 달리 아주 순식간에 끝난 사건이나, 그 영향은 마법의 체계와 규율 자체를 바꿀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일을 한순간에 제국을 멸망시킨 우행이자 신의 힘을 탐한 어리석은 필멸자의 예견된 추락이라 평하기도 하지만 그 내막에는 제국을 위해 자신을 바친 대마법사의 최후가 있었습니다. 카서스는 자신의 제국을 되살리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 것이고, 실제로 그 직접적인 피해자인 네서릴의 주민들-혹은 그들의 유령 역시 그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를 옹호하기도 하였으니 이 일을 단순한 오만의 결과라 이야기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카서스의 행동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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