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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머리맡에는 늘 가방을 준비해둔다. 생수 두 병, 에너지바나 비스킷 같은 유통기한이 길고 열량이 높은 비상식량, 통신용 라디오, 구조요청에 쓸 호루라기, 사이즈와는 타협한-아무래도 정말 밝은 건 부피가 가방 삼 분의 일을 차지하는 건 감수해야 했다-손전등과 혹시나를 대비한 배터리 한 팩, 비상용 담요가 제자리에 다 있는지를 확인한다. 전부 다 있다면 침대에 눕는다. 침대는 무너져내릴 때의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꽤 낮은 것을 골랐다.

카시와다니는 사고 당시 불특정 다수와 옹기종기 임시 숙소-라고 쓰고 체육관에 돗자리와 천막 친 수준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데다, 굳이 이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퍼스널 스페이스를 존중받고 싶은 현대인이므로 문을 닫고 자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 정도는 존재한다. 하지만 문을 닫았다가 사고가 난다면 탈출에 지장이 생긴다. 카시와다니는 맨주먹으로 방문을 부수고 나갈 정도의 근력은 없다. 마냥 비실비실한 건 아니니 도구가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머리맡에 소방 도끼까지 두기는 조금 번거롭다. 또한 방 안의 흉기는 재난 상황에서 ‘나’를 돕기는커녕 ‘나’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압박붕대도 챙겨놓아야 하는 필요성이 커짐은 물론이며 압박붕대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손익계산을 해보면 손해다. 문을 닫지 않고 자는 게 가장 나았다.

휴대폰은 항상 방전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보조 배터리는 충전된 것이 언제나 한 개는 있도록 한다. (이는 최소 두 개는 준비해뒀다는 뜻이다. 충전 확인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네 개가 있다) 과민한 신경은 사소한 외부 자극에도 반응하므로, 카시와다니는 그날 이후 꾸준한 불면에 시달렸다. 예전의 그 집은 아니지만, 창문에 커튼을 달 수 있는 새 보금자리를 찾은 뒤에도 그랬다. 커튼을 쳐도, 눈꺼풀 아래가 아른거렸다. 안대를 끼자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게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기어올랐다. 커튼을 암막으로 바꾸기엔 바깥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목조 건물 특유의 필연적인 소음이 거슬렸다. 귀를 막자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가 늦어지는 게 무서웠다. 와중에 휴대폰은 무음으로 맞췄다. 사소한 진동에도 건물이 흔들리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착각이다. 병원에서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뭔갈 적는 소리가 빨라지고 약이 추가되고 그랬다. 참고로 이 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원래도 살짝 나사가 빠져있었는데 사회가 제구실을 못 하면서 몽키스패너로 두세 번 두드린 거 같은 꼴이 됐다. 환자는 많은데 감당을 못 하는 사회에서 카시와다니는 새삼 우울해진다. 약이 다 떨어졌다는 뜻이다. 카시와다니는 ‘조금 더 심각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 비하자면 우선순위에 들 수 없다.

메신저 등의 알림이 뜰 때마다 휴대폰이 밝아지면 또 그것 때문에 잠 못 이루었다. 재난 알림인지, 누군가의 부고 소식인지, 어딘가에 사고가 났는지를 찾아보고 아무 일 없어야만 잠들 수 있었다. 이건 좀 다행인 것이, 카시와다니에게 굳이 한밤중에 연락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는 거다. 사람 사귀는 거 싫어하는 인생이 낳은 몇 안 되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질구질하고 사소하고 확실한 불운이 뒤섞인 백그라운드를 설명한다면 그런 거 좋아하던 또래 친구들은 그날 사고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가족은 무사한데 친구는 안 무사했다. 물론 안 죽은 친구도 있는데 이런 일 겪고서 전처럼 사이좋게 하하 호호 지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다. 물론, 이는 일반화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가능한 사람은 가능하다. 근데 카시와다니가 속한 그룹은 아니었다. 그리고 카시와다니는 ‘불행 중 다행으로’ 친구는 몇 잃었어도 가족은 무사한 거지, 자기 혼자 살아남은 애들은 여기서 자력구생하기 어렵다. 그런 열일곱 빌어먹을 인생들은 친척들한테 가거나 시설로 가거나…아무튼 그런 식으로 또 멀어졌고, 똑같은 일 겪어도 그 불행의 수준은 의외로 그다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친구로는 못 지내는 그 시절 우정답게 멀어진 게 또 절반이다. 이게 우정인지, 후후 불면 날아가 버리는 민들레 홀씨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산다는 게 원래 좀 좆같기도 하고 목숨은 건졌으면 반은 간 거고 이래서 00년대 전에 태어났어야 한다고 말하기엔 버블의 여파가 안 가셨거나…어쩌고의 역사적 개최악 사건들은 대충 삼사십 년 주기로 반복됐으니 언제 태어났어도 사는 건 좆같았을 거다.

당연하지만 이건 카시와다니에게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땐,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센치해져서는 아니고 그냥 현대인들 평균이 그렇다. 카시와다니는 사실상 불면증 환자이니-‘사실상’이라는 건 필요한 표현일까? 원래 불안 공포 회피 강박 기타 등등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불면과 과수면은 1+1 행사 상품처럼 붙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카시와다니는 불면증 환자라 볼 수 있다-거의 매일 밤 휴대폰을 붙잡고 있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90% 이하로 떨어지면 강박에 시달리는 인간이 살기에 전기 민영화의 국가는 끔찍했다. (특히나 사고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금전적 여유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휴대폰을 잡고 있는다 해서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었다. 카시와다니가 뭔…웹소설을 보겠나, 니코동이나 유튜브를 보겠는가. 수면 asmr은 고민해봤는데 ‘실수’로 배터리 연결하고 자는 걸 까먹으면 일어났을 때 배터리가 20% 미만일 거라는 확신에 그만뒀다. 무엇보다 카시와다니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재난, 생존, 생존자 인터뷰, 건물 붕괴, 이런 걸로 점철되어 있어서 자칫 잘못 눌렀다가는 트리거 눌려서 이틀 밤새우기에 딱 좋았다. (키즈락을 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 더는 갱신되지 않는 라인도 살펴본다. 죽은 애들이 있는 방을 삭제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가, 백업을 고민했다가, 기기를 바꾸면 저 방들도 날아가겠지 하는 생각에 캡쳐를 했다가, 답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뭔갈 보내놓을까 하다 보면 시간 금방 간다. 가끔은 확인을 답장 보내는 걸 깜빡한 좀 멀어진 친구들-대개 타지로 떠나버린-연락에 답변도 보냈다. (걔네도 사정 비슷한지 금방 답장 돌아왔다) 이렇게까지 유난을 떠는 걸 보면 카시와다니가 언제는 친구들과 아주 각별했나 싶기도 한데,

그냥…이제와서는 걔네들이 정말 좋았는지는 알 수 없다. 원래 그 나이대 친구라는 게 지독한 우정으로 엮인다기보단 사교활동적 맥락으로 어영부영 사귀는 것도 있고 안 본 지 좀 됐다고 벌써 까먹어버린 부분이 꽤 많아서다. 얘가 주머니에 삔 꽂고 다니는 애였던가, 쟤가 18번으로 뽕짝 부르는 애였던가, 아이돌을 좋아하던 게 걔였던가 쟤였던가…아, 그 아이돌 센터 얼마 전에 죽었는데 걔가 좋아하던 게 그 센터였나, 옆의 그나마 상판 멀쩡한 애였던가. 확실하게 기억나는 거 하나 없다. 그런 사이였는데도, 당장 조금 전까지 얼굴 보던 애들이랑 한 마지막 메신저가 읽씹이거나 읽지도 않음인 건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영 알 수 없는 감각인 거다. 그건 정말 좋지 않았다. 농담으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침대에 누워있고, 휴대폰은 완전히 충전되어 있으며, 커튼은 두껍고, 주변은 조용하다. 수도꼭지는 아주 ‘단단하게’ 잠겼고, 새벽 세 시가 넘어가며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이 아예 없어졌으며(최근의 치안을 고려했을 때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라 간주해도 좋다. 무슨 변명을 하겠는가? 당연하게도 사고의 오류지만, 원래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멀쩡한 생각을 못 한다.), 비가 오지 않았고, 부모님이 일찍 잠드셨는지 화장실 따위를 다녀오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카시와다니는 필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잠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눈을 감으면, 그때처럼 천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카시와다니는 건물이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철근과 콘트리트, 사이를 채우는 이런저런 부산물들. 토목건축은 중간에서 해 처먹기 쉬운 사업이라, 건축되던 시기의 법이나 회사나 하는 걸 잘 따져봐야 한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 듣기는 그보다 어릴 적에도 들었을 수는 있다. 어른들이 언제는 애들 들으라고 그런 얘기를 하던가. 그냥 그 시기의 카시와다니는, 그게 남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가난에 시달리지 않는 사회 보편적 기준으로 ‘평범’으로 분류되는 열일곱 어린애는 외벽에 금이 가거나 천장이 무너지거나 하는 ‘만약’을 가정하지 않는다. 카시와다니는 그것을 ‘만약’의 가정이 아닌 현실로 경험했다.

고로, 내 머리 위에 있는 것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걸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무엇을 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눈을 감으면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카시와다니는 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처음에는 어둡기만 했는데, 어둠에 적응하는 데엔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벽지가 발린 천장. 곰팡이 따위로 뜬 구석도 없고, 스프링클러가 달린, 평범하고 평범한 그냥 천장.

하지만 카시와다니는 심장 박동과 같은 간격으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곳은 새로운 보금자리는 될 수 있어도 새로운 ‘집’은 될 수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카시와다니는 집을 생각했다. 무너지지도 무언가를 짓누르지도 않을….

그가 다시는 되찾지 못할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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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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