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쟈쿠] 우는 ■■ 사탕 뺏기

 우는 ■■ 사탕 뺏기

아메무라 라무다 X 진구지 쟈쿠라이, TDD 시점, 날조O

 

 

우는 아이에게서 사탕 뺏기는 불가능하다.

 

아메무라 라무다는 욕심이 많았다. 손에 쥐어진 것을 놓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편이 좋겠다. 제 손에 쥐어진 것만으로도 모자라 남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빼앗고, 갖지 못하면 부숴버렸다. 천성이라 말하기에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 ■■였으니까, 이것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입력된 값이라 보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 테다.

 

■■에게 결함이 있다면 불행하게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간부들도 그를 구성할 때 '감정'이라는 요소의 필요성에 대해 그 무엇보다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한다. 당시 열띤 토론에 소요된 시간에 비해, 그가 감정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가름은 이제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감정에 대해 궁금해하는 ■■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니까. 그들의 결정이 '필요'로 결론지어졌다 확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감정이라는 게, ■■에게는 입력값으로도 판별하기 어려운 복잡한 코드로 구성되어 있어 ■■는 자신의 행동과 감정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했다. ‘감정은 성장하면서 다채로워진다’며, 흰 가운을 걸친 과학자들은 그리 일렀지만, 눈을 뜬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학습한 감정을 따라잡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유가 네게 필요한가? 그냥 그렇게 살아.”

 

부러 상처 입히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는다 해도 자기 딴에는 감정이 있는 ■■이라고, "왜 이런 심정이 들지?"라며 까닭을 찾고자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주변에 이유 따위를 설명해 줄 사람이 있을 리가. 설령 말해준다 한들 항상 ‘너는 사람이 아니잖아?’라며 말을 덧붙이니, ■■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관념만이 머릿속에 다시 돌아와 꽂힐 뿐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가 어떻게 사람과 동급이 될 수 있겠어. 설령 그렇다 한들, 양철 심장의 나무꾼처럼 기계가 인간을 꿈꾼다는 뻔한 클리셰의 반복이었다.

 

이게 당연한 거니까, 이게 맞는 거니까. ■■는 이유를 물어도 똑같은 말만 반복하며 정당의 이념을 주입하기 바쁜 중왕구를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방법을 택했다. 방법은 쉬웠다. 자신이 꾸역꾸역 물어보았던 질문을 삼키는 것. 값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만두기만 하면 되었다. 왜 이런 답이 나왔는지에 대한 풀이 과정을 건너뛰고, ‘답’만 도출할 수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삶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길.

 

중왕구는 그의 행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그를 세상에 방출할 일자를 확정 지었다. 한 가지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사고할 수 있는 ■■이기에 중왕구가 알려준 방법을 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라무다는 세상에 발을 딛을 때 이해하고 싶은 감정을 추렸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들에 순위를 매겼다. 예를 들면, 사랑과 증오…. 애증? 그런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을 어떻게 동시에 느낄 수 있겠어.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다.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할 리가 없잖아.

 

“진구지 쟈쿠라이, 네가 접근해야 할 남자 중 한 명이다. 야마다 이치로, 아오히츠기 사마토키보다 이쪽을 더 우선순위로 두도록. 우리 중왕구에 중요한 인물이니까.”

“네엥.”

 

첫 지령을 받은 라무다는 건네받은 종이에 빼곡하게 적겨진 남자의 프로필을 읽어나갔다. 인생에서 재미있는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남자였다. 비명이 난무하는 곳에서 남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멍청이. 나라면 절대 안 그럴 텐데. ■■의 뇌에 입력된 '공식'은 이미 대면하지도 않은 쟈쿠라이의 모습을 멋대로 판별하고 있었다.


“라무다 군, 이 편이 더 나은 방향 같은데요.”

“쟈쿠라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답을 내놓네?”

“라무다 군의 의견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렇게 행동하는 게 바람직한 편이죠. 상대는 이렇게 생각할 테고요. 자세한 설명보다는 그의 눈높이에 맞게 하나하나 이유를 설명해 주는 쟈쿠라이는 라무다의 돌발행동을 수습하면서도 그에게 까닭을 들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라무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상명하복이라고, 중왕구에서는 복종의 문제였는데. 이유 따위 물어볼 수 없는 구조에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입력값 말이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달랐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대방이 직접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자신만의 결론을 내놓을 수 있게끔, 때로는 쟈쿠라이가 생각하는 어드바이스를 더해서. 라무다의 공식은 서서히 그의 풀이 과정을 따라가고 있었다. 깨닫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의문점이 있을 때, 라무다는 항상 그를 찾아가 물었다. ‘왜?’

 

“쟈쿠라이. 애증이라는 감정, 무슨 의미야? 어떨 때 느껴?”

“사랑 애(愛), 미워할 증(憎).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는 이중적인 감정입니다. 아직 저도 누군가에게 ‘애증’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왜?”

“의지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니까요.”

“아아~. 그런가. 재미없네.”

 

쟈쿠라이의 감정 표현이 유려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까. 그의 반응에 구태여 라무다는 자신이 그 ‘애증’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퍽 특별함이 없어 보이는 남자였지만 그렇기에 뇌에 입력된 값도 천천히 변화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아니 예상보다 훨씬 낫잖아? 만나는 일자가 늘어날수록 그의 첫인상에 대한 값은 조금씩 수정되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과 감정 또한 자신의 이해와 동화되었다. 중왕구가 내린 명령 중 하나로 ‘진구지 쟈쿠라이와 지속적인 관계 유지’라는 시답지도 않은 항목이 있긴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굳이 그 이유를 끼워 넣은 까닭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는 한 번에 많은 정보를 받아버리면 과부하가 걸려 버리니까, 네가 그토록 연구실에서 갈구했던 ‘감정’이라는 항목은 진구지 쟈쿠라이에게서 학습하라는 뜻이었던 거지?

 

신주쿠에서 ‘선생’ 칭호를 꼬박 듣는 쟈쿠라이였지만, 라무다에게서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 하지만 라무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서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 해서 라무다의 생각마저 그와 동기화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오면 입력된 값을 유지하면서도 그의 관점을 복기해 타인을 이해하고자 했다. 덕분에 입력값에 맞게 움직이기만 하던 남자는 모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의 감정을 흉내 내며 인간으로서 완전해져 갔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응, 그래서 라무다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네 생각은 어때.”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고,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대의 감정을 '쟈쿠라이'의 입장에서 해석하길 요청하는 것. 이제는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횟수가 증가할수록, 쟈쿠라이는 구태여 입밖으로 꺼내지 않은, 라무다의 현 상태에 대해 짐작하는 부분을 확신으로 바꾸어 나갔다. 그저 단순하게 자란 이가 아니라는 것, 마치 어린아이가 이유를 납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쪽에서 꿈틀대는 직감이, 지금부터 그를 완전히 바로잡지 못하면 완전히 뒤틀려버릴 것임을 사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를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진구지 쟈쿠라이의 명백한 오답이었다.

 

사람도 천성을 못 고친다는데, 어찌 명의라 한들 본성을 거느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라무다가 손에 쥔 유일한 것, 한편으로는 그의 전부라고 칭할 수 있는 사탕을 빼앗는 행동이었다. ■■라 해도 그동안 학습된 기록이 있는 법이고, 이는 ■■의 입장에서 틀린 점 하나 없는 진리였으니까. 이를 뒤집는다는 것은 결국 ■■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행동을 같이한다 해도 결마저 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진구지 쟈쿠라이는 간과했을 뿐이다. 그도 사람과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고. ■■라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우리와 별다르지 않다고.

 

모든 근원은 그의 본질이 중왕구에서 생성된 ■■였다는 것인데도.

아메무라 라무다는 진구지 쟈쿠라이를 모방하고 있을 뿐이라는 값이 분명했는데도.

 


진구지 쟈쿠라이는 그에게 감정을 알려주던 방식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의견을 묻는 방식에서, 그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값을 입력하도록 하는 것. 한 마디로, 은은한 강압이었다. 라무다의 설정값에 오류가 나기 시작했던 때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풀이 과정에 대한 이해보다 값을 암기하길 강요받은 그 시점부터 말이다. 마치 중왕구에서 라무다가 스스로 ‘과정’을 생략했던 그때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서 비롯된 것이 문제였지만.

 

당시의 라무다는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밤낮으로 걸려 오는 중왕구의 전화와 묘하게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쟈쿠라이.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콕 짚어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라무다가 느끼는 감정으로서는 분명 짜증이라는 감정이었다. 여기에 더해, 놀리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자신의 뒤를 캐고 다니며 대놓고 거슬리는 짓을 하고 있는 사람. 칸나비 요츠츠지.

 

“짜증 나네. ■■가 봐주고 있는 것도 모르고.”

 

눈을 뜨자마자 마이크를 집은 어느 날이었을 거다. 아마 ■■ 내부에서 악성 코드 하나가 띄워진 것이 분명했다. 머릿속에서는 영화에서만 보았던 경고음이 윙윙 울려대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 나갔던 날이었을 거다. 라무다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아, 과부하구나. 올 것이 왔구나. 중왕구도 쉽사리 고치지 못하는 ■■ 결함.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 처분된다는 괴담이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그렇다면 쓸모를 입증해야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의 발악을 보여줘야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건은 끝났다. 한 손에 마이크를 쥔 ■■은 마이크의 부작용을 버티기 힘든지 가쁜 숨소리를 내뱉었다. 중왕구의 지령도 수행했고, 거슬리던 남자도 처리했는데 왜 이러지. 올바른 값을 수행했으니 이런 시끄러운 경고음도 멈추고 몸도 예전처럼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역시, 지금까지 기록된 값이 문제였던 걸까. 라무다는 여전히 머리에서 윙윙 울려대는 경고음을 듣고 싶지 않아 귀를 막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무용지물인 것을 알면서도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의 행동이었다.

 

쟈쿠라이는 망연자실한 채 칸나비를 안아 들었다. 답지 않게 그의 표정에서는 한 번도 확인할 수 없었던 증오가 보였다. 안타까운 점은 그 감정의 화살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표정 지어본 적 없는 것처럼 굴었잖아. 라무다의 가슴 한편이 시큰해졌다. ■■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하면 너는 비웃을까? 정말 뻔한 클리셰였다. 양철 나무꾼이 심장을 얻어 버렸다고 하는, 그런 흔한 장면이었다. 사람이 저지르면 감정에서 원인을 찾고, ■■가 저지르면 기술의 오류라며 손가락질하는 그런 결말….

 

라무다는 문득 자신이 감정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아, 중왕구의 뜻이라 하면, 과부하를 방지하기 위해 감정의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인 내게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었구나. 진구지 쟈쿠라이에게서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던 내 행동이, 미처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오차였구나.

 

그간 쌓아 올린 값을 망쳐버린 그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망할 상대가 필요했다. 라무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슬픔이었다. 중왕구에서 나와 첫발을 내디뎠던 ‘완벽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 그때로 돌아간다고 가정한들, 나는 지금의 값을 전부 버리고 돌아갈 수 있을까? 확언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기록이 아까워지는 순간이 오다니, 그 스스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사랑이겠지.

 

경고음 소리가 커질수록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 이상 과부하가 걸린다면 자폭이었다. 라무다는 복잡한 생각을 단순한 프로세스로 축소했다.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려 하지 않았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진구지 쟈쿠라이가 알려 주었던 사람 대 사람의 예의는 까맣게 잊어 버리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싶었다. 이게 내 입력값의 결과라고, 이게 내 결론이라고. 소중하게 쥐었던 사탕을 건네 보여주고 싶었다. 라무다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보았다. 한껏 비소를 띤 채 말이다. 이것은 그만의 값이었다.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본성, 본심, 사탕.

 

그 순간 라무다는 깨달았다. 진구지 쟈쿠라이도 몰랐던 감정, 자신이 그토록 이상하다고 느꼈던 감정.

 

아, 알았다.

이게 애증이라는 거구나.

 

“하하! 이제는 내가 ‘선생’이네….”

 

시끄럽게 울려댔던 경고음 소리가 멈췄다. 스스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메무라 라무다, ■■에서 벗어난, 사람으로서의 시작이었다.

 

우는 ■■ 사탕 뺏기 完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