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쟈쿠] 트라우마 드라이 클리닉

아메무라 라무다 X 진구지 쟈쿠라이, 날조 O

트라우마 드라이 클리닉

아메무라 라무다 X 진구지 쟈쿠라이

 

 

“쟈쿠라이, 머리 말려 줘.”

 

목욕을 끝낸 라무다가 막 욕실을 나온 참이었다. ‘흐흥, 흥.’ 그는 따뜻한 물로 몸을 씻어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옷이라고는 하체에 걸쳐진 수건 하나와 머리카락을 감싼 다른 수건 하나뿐이었던지라, 쟈쿠라이는 ‘옷부터 입으세요.’라며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그의 부탁에 대한 거절의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다.

 

라무다가 옷장으로 걸어가는 소리는 미처 흡수되지 않은 발바닥의 물기가 바닥과 닿아 내는 작은 마찰음에서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라도 떨어질라 재빠르게 움직이는 행동거지는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을 때까지 이어졌다. 뽀송뽀송한 몸과 달리, 수건으로 감싼 머리카락은 그의 몸짓 한 번 한 번마다 뚝, 뚝 물방울을 떨어뜨렸기에 아무리 빠르게 옷을 입어도 동그란 물방울은 바닥에 튀겨지기 마련이었다. ‘아~...’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을 확인했는지 아쉬운 감탄사를 내뱉은 라무다는 자신을 둘러싸고 떨어진 물방울에 쓱 발을 문대고 쟈쿠라이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분명 섬유 유연제 향을 폴폴 풍기며 완벽하게 건조된 잠옷을 입은 그였지만,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 때문에 어깨 부근은 다시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옷이 다 젖었잖아요, 라무다 군. 수건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다 입었어. 됐지? 머리 말려 줘.’라며 털썩 그의 무릎 앞에 앉은 라무다는 그의 다리 사이로 자신의 몸을 집어 넣으며 요구했다. 쟈쿠라이는 군말 없이 그가 옷을 입을 때 꺼내 온 드라이기의 코드를 콘센트에 꽂고서 한 손에 수건을 얹었다. 쟈쿠라이의 손길은 자신이 머리를 말릴 때보다 더 섬세하게 라무다의 머리카락을 다루고 있었다. 위이잉거리며 시끄럽게 돌아가는 드라이기 소음이 적막을 채우는 유일한 소리였던지라 라무다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리모컨 버튼 하나를 눌러 TV를 틀었다. 귓가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기계 소리가 더 컸기에, 프로그램에 나온 패널들이 무어라 입을 뻥끗거려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기 가득해 축축했던 머리카락도 시간이 지나자 차차 말라가기 시작했다. 굵은 가닥으로 뭉쳐졌던 머리카락은 사각거리며 얇은 모로 나뉘어지고, 사랑스럽다고 불리는 그 특유의 곱슬머리도 점점 제 형태를 찾아갔다. 머리카락이 다 마를 때까지 드라이기를 사용하는 쟈쿠라이의 습관 때문에, 라무다 또한 머리를 전부 말리는 데에는 비슷한 기장을 가진 다른 사람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가 애초에 수건으로 물기를 흡수하는 과정을 생략했기에 더더욱 그랬지만 말이다.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말 한 번 하지 않는 둘이었지만, 어차피 시끄러운 바람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상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떠오르는 감정, 상대의 손길을 받으며 드는 느낌 모두. 그러다 쟈쿠라이가 헤어 드라이기의 전원을 끄면, 출발 신호라도 울린 것처럼 찰나에 생각했던 이야기를 우수수 쏟아놓곤 했다.

 

“다 됐어요.”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풍으로 설정된 헤어 드라이기의 조절기가 0으로 맞춰졌다.

 

“앞서 물어봤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어볼까 하는데.”

 

리모컨 옆에 드라이기를 가지런히 정리해 올려놓은 쟈쿠라이는 라무다의 쪽으로 몸을 숙였다. 이야기를 쏟아낼 시간이었다. 그가 라무다의 대답을 듣기 위해 양 손가락을 겹쳐 턱을 괴는 모습은 병원에서 환자를 대할 때의 행동과 유사했다. 정작 질문의 당사자는 유치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말이다.

 

“이래야 머리를 오래 말릴 수 있으니까?”

“…….”

“아하하! 알았어.”

 

“준비할 게 하나 있어서. 내 심신 안정용으로. 잠시만-.”

 

라무다는 양해를 구하며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나왔다. 무엇을 위해 방에 들어간 건지 모를 정도로, 문지방을 넘었다가 돌아온 수준이었다.

 

‘짠.’ 라무다가 효과음까지 넣어 가며 손에 들린 사탕을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아무래도 필요해서 말이야.”

 

왜인지는 상대도 알겠거니 싶어 이 정도로 말을 끝내고, 다시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찾아갔다. ‘양치한 보람이 없네~.’ 그가 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왜 그랬게? 당연히 본심은 다르지. 설마 진짜로 ‘머리를 오래 말리기 위해’라는 답변을 믿은 건 아니길 바라. … 의사가 쓸 만한 단어를 골라보면 ‘트라우마 극복’이라고 말해볼 수 있으려나?”

 

“우음, 시끄러웠거든. 내가 있었던 통 말이야. 처음 눈을 떴을 때, 통 밖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입만 뻥끗하는데, 나한테는 위이잉거리는 기계 소리밖에 안 들렸어.”

 

라무다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드라이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드라이기 소리랑 비슷해. 귓가 바로 옆에서 울려서 그런지 이게 조금 더 시끄럽지만.”

 

“눈을 뜨고 주변을 얼추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어. 내가 태어난 곳이 실험실이라는 건 얼마 안 가서 알아챌 수 있었지. 사태 파악을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는지 답답한 통도 열렸어.”

 

“잠겨 있었던 액체는 바닥의 배수구를 타고 전부 흘러내렸는데, 아직 온몸은 축축했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이 수건으로 몸을 덮어 줬는데, 머리카락 말리는 법을 몰랐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머리카락이 알아서 마를 때까지,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려도 몸을 감싼 채 덜덜 떨 수밖에 없었어.”

그가 물고 있던 사탕을 까득 깨물었다.

“다이스가 그러더라. 자기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일찍 집에 오시는 날이면 유모 대신 어머니가 머리를 말려 주셨대. 머리를 다 말린 후에는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빗겨주고, 그러면서 차마 못 했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뭐어…. 나도 해 보고 싶었어.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명목도 진짜고.”

“하지만 괜찮지? 내가 너한테서까지 ‘다이스의 엄마’처럼 가족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진 않잖아? 머리만 말려달라는 것뿐인 걸.”

 

라무다는 위로 고개를 꺾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쟈쿠라이와 눈을 맞췄다. 물기 한 점 없이 전부 말라 윤기를 띠는 머리카락이 그의 무릎을 간지럽혔다.

“그래도 어쩌면, 가족의 형태가 이런 것일까- 생각해보게 돼.”

 

라무다가 팔을 들어 쟈쿠라이의 뺨을 쓸었다. 신생아가 부모의 피부를 매만지고 싶어하는 욕구를 보이듯, 그는 손가락을 타고 전해지는 쟈쿠라이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피부 위로 느껴지는 온기보다 더 뜨거운 열감의 눈물이 라무다의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쟈쿠라이도 차암~…. 그렇게 울면 머리 다시 말려줘야 해.”

 

가볍게 대꾸한 라무다였지만 그 또한 일렁이는 감정에 이내 말을 멈췄다.

그저 쟈쿠라이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눈가를 매만져줄 뿐이었다.

 

 

트라우마 드라이 클리닉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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