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오토] Langue de chat
아마야도 레이 X 토호텐 오토메
Langue de chat
아마야도 레이 X 토호텐 오토메
홍차.
오토메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한 가지를 꼽자면 다분히 ‘아가씨’ 적인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어를 언급할 수 있겠다. 단연코 그녀가 가장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장밋빛으로 번지는 홍차. 흰 찻잔에 따르면 붉게 퍼져나가면서도 탁해지지 않는 투명함에 눈을 즐겁게 하는 맛이 있다. 확실히 그녀는 은은하게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취향으로 꼽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아마야도 레이가 토호텐 오토메를 만나왔던 연수는 어느새 열 손가락을 전부 사용해도 부족한 시간이 되었다. 강산도 한 번 바뀔 정도의 만남이 지속되니 그도 그녀의 취향만큼은 대강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파고들면, 방에 퍼진 홍차 향을 맡고서 어렴풋이 ‘오늘은 기분이 이렇군’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랄까. 취향을 알아서인지 대수롭지 않게 맞이하는 생일도 몇 번은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물한 적도 있을 터였다. 홍차야 맨날 마셔대니 말할 것도 없고.
돌아오는 일요일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애들 놀음처럼 캘린더에 ‘토호텐 생일’이라고 적어놓은 것은 아니고, 15년 정도 만나니 잊으려고 해도 ‘아, 이날이 생일이었지.’ 하며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시간을 투자해서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이왕 떠올린 김에 ‘옛다, 선물. 오다 주웠다.’의 느낌으로 생일 선물 하나 사게 되는 일이 루틴처럼 이어졌다.
생각난 김에 외출 좀 길게 할까. 아마야도 레이는 시원하게 도로를 달리고 있던 자동차 핸들을 사이드로 꺾어 백화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중왕구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 맡은 업무를 마치자마자 또 중왕구와 관련한 일을 생각해 내다니. 아무래도 연장 근무 수당을 요구해야 할 것 같은 저녁이었다.
레이는 식품관 한쪽에 자리 잡은 고급 찻잎 브랜드 앞에 멈춰 섰다. ‘역시 무난한 게 최고려나.’ 그는 선물을 고르려는 수고를 들이기보다 ‘가장 비싼 홍차로 하나 부탁합니다.’라며 지갑을 꺼냈다. 어차피 값비싼 게 장땡이야. 하지만 나름대로 신경 썼다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선물 포장을 요청하고는 휘파람을 불며 선물이 준비되길 기다렸다.
“손님, 이건 이번에 새로 나온 과자인데요, 랑그드샤라고…. 홍차랑 잘 어울려서 함께 넣어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구매를 마치고 다시 차로 돌아온 레이는 조수석에 그녀에게 줄 선물을 올려 두고 엑셀을 밟았다. ‘나 원, 과자 때문에 거창해 보이잖아. 이렇게 준비하는 건 적성이 아닌데.’ 선물이 담긴 쇼핑백의 무게가 제법 두둑해졌다. 신경 썼다는 것처럼 보이려나? 이 기회에 제법 부담감을 안겨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흠….
레이는 한 손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도로 위를 달렸다. 반응 상상 좀 그만해야 하는데. 하지만 누군들 선물을 전달해 주는 순간에는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오토메의 경우에는 제 기준보다 만족스럽다기보다 탐탁지 않았던 적이 많아 문제였지만 말이다. 직원이 담아준 랑그드샤 때문인가,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그의 기대감 또한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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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아….”
“‘아’는 무슨. 여기 애들은 사장님 생일도 몰라? 영 글렀네.”
‘부담밖에 더 되겠나요.’ 레이의 말이 자신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말임을 알고 있는 오토메였지만, 이럴 때만은 꼭 자신을 낮춰 당원들을 감싸곤 했다. ‘공과 사 뚜렷해서 좋으시겠어.’ 레이는 고개를 까딱이며 건네준 선물을 풀어 보길 권유했다. 포장지에 떡하니 영문자로 ‘TEA’가 박혀 있으니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 테지만, 전보다 든 게 조금 많아졌다고 내심 기대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포장된 리본이 풀리고 고급 브랜드답게 케이스 겉면에 양각이 새겨진 홍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떤 찻잎인지, 향은 어떤지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미리 인사를 건네는 오토메의 모습은 정말 예의만을 따지고 인사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선물을 품평하는 것이 결코 좋은 행동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이럴 때만은 품평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쓴 돈이 얼마야. 고르려는 노력은 안 했지만 돈 좀 꽤나 썼다고. 시판용 마트 녹차 아무거나 건네줘도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이 그녀답다가도 답답한 점이라는 거다.
“그으래. 마음에 들지? 네 생일 하나 챙기지 못하는 애들보다 훨씬 낫다고.”
레이가 말을 꺼내는 사이에 오토메가 쇼핑백에 마저 담겨 있었던 과자를 집어 들었다. 이번만큼은 오토메도 전보다 더 유해진 기색이었다. 포장재 겉면을 훑어본 오토메가 말했다.
“랑그드샤네요. 감사합니다.”
“보자마자 아네?”
“네, 선물 받은 적이 있어서요. 홍차와 잘 어울려서 좋아해요.
……. 잠시 티 타임이라도?”
“웬일이래.”
레이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매년 주는 선물이었지만 ‘차 한잔하고 가라’는 형식적인 물음 한 번 들은 적 없었으니까. 이것도 공과 사의 구분이라기보다는, 음…., 깊이 생각하면 상처받을 것 같으니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럼, 거절 않고 앉아 볼까.’ 오토메는 준비된 다기로 그에게서 선물 받은 홍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매일 갖는 티 타임인 만큼, 준비에서도 능숙한 행동거지였다.
오토메는 차가 우러나는 동안 다과를 준비하기 위해 랑그드샤가 담겨 있는 과자통을 열었다. 워낙 얇은 과자이기에 집게로 집어 그릇으로 옮겨내는 행동도 더욱 조심스러웠다. 한 손은 집게를 집은 손을 받치고, 한 손은 조심스럽게 힘을 가해 과자를 집어내니, 랑그드샤가 하나하나 옮겨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레이의 속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 툭, 하고. 떨어진 랑그드샤가 반 토막이 되어 테이블보 위로 떨어졌다.
“어이쿠.”
레이는 안 그래도 답답한 그녀의 행동거지가 더욱 조심스럽게 될까 봐, 떨어진 랑그드샤를 처리하는 일을 스스로 자처하기로 했다. 방법은 쉬웠다. 그냥 입에 쏙 넣으면 된다. 깔끔한 테이블보 위에 떨어졌으니 위생이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마침 반으로 갈라졌으니, 하나는 내 입에, 하나는 네 입에.
“아, 해.”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걸 알기에 레이는 오토메의 입가에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까지 과자를 가져갔다. 이렇게 나오면 내뺄 수 없지. 봐…. 작게 벌려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과자를 쏙, 밀어 넣고는 작은 입술 위로 가볍게 엄지를 눌렀다. 그러고는 남은 랑그드샤를 재빠르게 제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레이는 과자 파삭거리는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오물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꼭 고양이 같다고.
“랑그드샤 말이야. 프랑스 언어로 ‘고양이 혀’라는 의미래.”
“각설탕은 필요하신 만큼 집어넣으세요.”
“당신과 닮았단 말이지.”
레이의 말에 오토메가 행동을 멈췄다. 짧은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 고양이가요?”
“그럼 개랑 닮았다고 해?”
“한 번도 못 들어본 말이라서요.”
“그럼, 간덩이가 붓지 않은 이상 네 면전에 대고는 말 못 하지.”
“흥미가 생겼어요. 어느 부분이 닮았는지 의견을 묻고 싶은데요.”
의외의 수확이었다. 과자 하나로 이렇게 말을 이어 간다고? 매년 선물 한 번 주면 끝나는 만남이었는데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점원에게 팁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디, 귀중한 기회를 얻었으니 입맛에 맞게 구워삶아 볼까. 레이는 여유롭게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하는 척 연기했다. 그렇다고 거창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입만 열면 술술 나오는 게 내 능력인데 뭘. 그러니 이 찰나는 그녀의 애간장을 태우는 -실제로 타든 말든 별 상관은 없지만- 그런 시간인 거다. 자, 이제 술술 불어 보실까.
“음, 일단. 톡 쏘아붙이는 게 고양이 같지.”
오토메는 대꾸하지 않고 자신의 잔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제 말에 상처 입은 사람이 떠나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
“누구나 그러겠죠.”
“내가 떠나도 그런 말 해줄 거야?”
“예외도 있는 법이고요.”
“이런 면이 고양이 같다는 거야.”
“더 있어요?”
“행동이 매번 조심스러워. 하지만 궁금한 점도 많고. 노묘(老猫)의 특징인가?”
“허.”
그녀를 놀리는 데 점점 재미를 붙여가는 레이가 접시 위에 올려진 랑그드샤 하나를 집어 먹었다. 까끌거리는 과자의 표면이 혀에 닿자마자 사르륵 녹는다. 그러다 퍼뜩, 기막힌 말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가 질색할 만한 구석에서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니. 누가 보면 나잇값 못 한다고 말하겠지만, 어쩌라고?
그녀의 반응을 가장 편한 모습으로 감상하기 위해 레이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푹신한 퍼 코트가 가장 편안한 자세를 받쳐줄 수 있도록 등을 기대고, 팔 하나를 등받이에 걸친 채 다리를 꼬았다. 비로소 마음에 드는 자세가 나오자 그가 입을 열었다.
“있지. 당신과 고양이의 차이점 하나를 막 발견했는데.”
“말씀하세요.”
“랑그드샤가 ‘고양이 혀’라며.”
“그렇죠.”
“당신 혀는 이렇게 안 까끌거리잖아?”
“…….”
“오히려 매끈하지.”
레이는 오토메의 표정을 살피며 킬킬 웃어댔다. 음, 단 음식은 별로 안 좋아해도, 이 과자는 먹을 만하네. 호평을 해주마. 그는 적막 속에서도 불편한 기색 없이 랑그드샤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꼭 그 직원에게 팁 몇만 원은 쥐여주고 와야겠다고.
아마야도 레이는 여전히 웃는 낯빛을 한 채 그녀가 좋아하는 홍차를 몇 모금 마셨다. 홍차에 과자를 몇 번 곁들여 먹으니 확실히 그녀가 이 조합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안하게도, 앞으로는 시도하지 않을 조합으로 남겠지만.
…이런. 그러고 보니 내 생각만 하느라 상대방의 의사를 못 들었다. ‘오토메,’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른 남자는 목이 탔는지 절반 넘게 비워진 그녀의 찻잔에 홍차를 따라 주며 물었다.
“왜, 아니야? 확인 한 번 해봐도 돼?”
Langue de chat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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