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돗포 / 호노돗] 메아리
논 CP 쌍방혐관
메아리
케이토인 호노보노 X 칸논자카 돗포
“어머. 환영식을 거창하게 해 주는데?”
낮게 내리깐 눈, 평소의 표정과 상반되게 내려간 입꼬리. 예의라는 개념은 안중에도 없는 여자. 온몸의 장기가 뒤틀리는 느낌이다…. 닦아내면 그만일 작은 핏방울도, 누구도 아닌 내 피라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그저 장갑에 묻어 ‘더러워졌다’라고 생각할 뿐인 건지. 어차피 검은색이라 눈에 띄지도 않을 텐데. 호노보노는 ‘쯧’ 소리와 함께 그의 피가 튀긴 장갑을 빼 보란 듯 돗포의 발치 앞에 세게 던져 버렸다.
마이크까지 꺼내 입가에 갖다 댄 돗포와 다르게, 그녀는 마이크를 꺼낼 생각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가 위협을 가하든 행동을 취하든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양 굴었다. 하지만 이는 지금 상황에서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손에 들린 장치 때문인지, 그는 마이크를 사용해도 그녀에게 작은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는 배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피를 한껏 쏟아내고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땅에 붙였다.
“이곳에 네가 왜….”
“음, 누구보다 먼저 돗포 군을 보고 싶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는 입가에 가득 묻어 굳어가기 시작하는 피를 닦았다. 생각보다 얼굴 주변을 세게 문질렀는지 재킷 안에 겹쳐 입었던 셔츠 소매에도 짙고 붉은 피가 번졌다. 아…. 이거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히후미가 알게 되면 어디서 이런 피를 묻혀 왔냐며 뭐라 할 게 뻔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해야 하나. 아니면 야근에 시달리다 코피가 터졌다고 해야 하나. 적당히 둘러대면 ‘핏자국은 손빨래해야 한다’고 투덜대겠지.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닌데…. 이렇게 된 이상 내일 연차를 쓰더라도, 자신이 쓰러지더라도 그녀가 지금 머릿속에서 하는 생각을 저지해야 하는 게 맞았다. 그게 무엇이든. …지는 게임이더라도 해봐야겠지. 그는 손에 쥐어진 마이크를 꽉 쥐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기. 칸논자카 군. 아냐, 돗포 군? 오랜만에 보니 호칭 정리가 어렵네. 무슨 생각 해?”
“이름 부르지 마.”
“그냥 마음대로 부를게?”
원래였다면 이 시각, 칸논자카 돗포는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간 집에서 죽은 듯이 잠자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불청객과의 만남이었다. 얼마 만에 마주하는 거지. 어쩌면 평생 만나고 싶지 않았던 여자.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케이토인 호노보노, 사람의 인생을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여자. …회사의 꼭두각시로 사는 내가 할 말은 아닌가. 하지만 결이 다르다. 정말 최악이라고. 최악의 시나리오야. 무슨 생각으로 평소에 이끌던 사람들은 놓아두고, 혈혈단신으로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혈혈단신도 내 쪽에 더 가까운가….
돗포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해답에 그대로 마이크를 쥔 채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내 탓이야…, 내 탓이야….’ 애초에 이 길로 와서는 안 됐는데. 막차가 끊겨 유일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돌아왔던 게 화근이었다. 골목길에서 그녀가 걸어 나올 게 뭐람. 그냥 택시 타고 갈 걸. 아닌가,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기분이 나빠진 그녀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네에, 네에. 돗포 군. 우리 시답잖은 장난은 그만하고, 재미있는 스무고개 하나 할까?”
“돗포 군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하나였는데. 내가 돗포 군을 만나기 전까지 누굴 보고 왔을까요~?”
그녀의 말에 돗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빛을 보자마자 상대가 생각하고 있는 가설이 정답임을 알아챈 호노보노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응, 응! 그 표정을 보고 싶었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고. ♡’ 어찌나 상기된 웃음소리였는지, 목소리에 녹아든 희열감을 넘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녀는 진심을 다해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하하, 딩~동~댕! 정답!”
고개를 끄덕이며 호노보노는 돗포의 반응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까지 붉혀댔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 없지 않아? 나, 히후미랑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도. ♡”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돗포는 그녀에게서 도망치듯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이제 돗포의 고려 대상은 호노보노가 아니었다. 호노보노도 그를 놓아주길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에서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깔깔 웃어댔다. 애초부터 눈치채지 못하다니 낭패다. 이미 쑥대밭이 됐을 텐데도, 그녀가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틀린 판단이었다. 피로 범벅이 된 옷을 입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헛숨을 삼켰다. 하지만 돗포에게까지 들릴 리는 만무했다. 헉헉거리며 꼬인 호흡 사이로, 돗포는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만 계속해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 계속 좋아하고 있었어. 돗포 군의 그런 표정. 히후미 군도, 돗포 군도 모두 내 거야. 평생 소꿉놀이하지 않을래?”
메아리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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