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쟈쿠] Prêt à porter는 가치가 떨어지니까
Prêt à porter는 가치가 떨어지니까
아메무라 라무다 X 진구지 쟈쿠라이, TDD 해체 직전 시점
Hute couture(오트쿠튀르). 라무다가 Empty Candy에서 의상을 제작할 때마다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이었다. 시부야에 가장 어울릴 법한 옷이면서도, 아무나 걸칠 수 없는 의상을 만드는 것. 어려운 주문이지만 라무다의 신념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하라주쿠와 시부야를 거닐 때마다 느껴지는 독특함. 저절로 통통 튀는 발걸음이 이어지는 팝스러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지역의 색이 묻어나오는 옷을 만드는 것이 그의 로망이었으니. 시대가 거듭되어도, 자신의 가치가 퇴색되어도 의류의 흐름은 영원하길. 패션은 시대를 거듭되어도 돌고 돌아오니까. 라무다 또한 유행에 한 획을 그으면, 이름 하나는 영원히 불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물론 오트쿠튀르라 하면 세계를 주름잡는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지만, 시부야에 있어 라무다의 Empty Candy는 마니아들의 오트쿠튀르이자 부티크였다. 하지만 유명한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답게, 평론가의 재단에 그의 디자인이 오르내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몇몇 디자이너는 라무다의 옷을 보며 ‘메종(오트쿠튀르 매장을 뜻한다.)’과는 다른 성격의 브랜드라며, 앞으로의 운영을 위해서라면 프레타 포르테(Prêt-à-porter, 기성복)로의 전환을 피할 수 없다 논했다.
“이 멍청이들! 프레타 포르테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희소성이 있으니까 가치가 있는 건데.”
바쁘게 마우스를 움직이며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Empty Candy W/W 뉴 컬렉션’의 비평을 읽어보는 라무다는 비평 아래에 마련된 공감‧비공감 아이콘 중 엄지가 아래로 향한 비공감 이모지를 꾹 누르며 궁시렁댔다. 패션 감각이 없는 놈들이 더 이런다니까. 삐죽 나온 입과 오똑한 코 사이에 끼워진 연필을 다시 잡고서, 기분 전환도 할 겸 멈췄던 스케치를 계속했다. 그가 디자인하고 있는 옷은 지금까지 만들어온 옷과는 사뭇 다른,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의 색이 조합된 옷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시도해 본 적 없는 스타일이기에 마땅한 디자인이 생각나지 않는지, 책상 위에는 이미 스케치가 끝났지만 재단도 시작하지 못할 러프만 서너 장이 쌓여 있었다. 이번 의상의 주인공이 원하는 스타일이나 분위기를 알려주지 않아 더욱 방향성을 잡기 어려운 탓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깜짝선물이었으니까.
“옷에 이런저런 프릴이나 리본을 달아도 귀여울 텐데. 영 안 어울릴 것 같단 말이지.”
쟈쿠라이가 그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니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혀를 내두르는 라무다였다. 아, 도통 감이 안 잡히네. 이번에도 쓰레기통에 들어갈 의미 없는 디자인을 휙 치워 버리고, 그는 전화기를 들어 의상의 주인공이 될 남자에게 전화했다. 쟈쿠라이. 잠깐 시간 돼? 자주 만나던 곳에서 잠깐 얼굴 좀 볼까. 예전 같았으면 소소한 변명거리라도 둘러댔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이 단순히 ‘보고 싶어서’라는 말로 얼버무리면 된다는 사실에 시간이 참 오래도 흘렀다 싶다. 퇴색된다고 해야 하나. 얼굴 좀 많이 봤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이 무뎌진다니 아이러니다. 그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고깝게 느껴지는 그였다.
…그러니까 프레타 포트테가 싫다니까. 새로움이 없잖아.
기성복이기에 누구나 입을 수 있고, 얼마든지 다른 옷에 레이어드 해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대중적이기에 자신만의 색이 없다. 유행의 흐름 또한 없고 이미 다 특별함이 퇴색된 의류이기에 파격적인 새로움 또한 주지 않는다…. 그 뜻은 프레타 포르테에서는 ‘아메무라 라무다’라는 이름 하나 남길 수 있는 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자신이 시부야를 좋아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시부야에서 몇 정거장만 지나면 사는 세계가 바뀐 듯 무채색의 풍경이 펼쳐졌다. 흰 셔츠에 검은 재킷. 검은 정장 구두에 검은 슬랙스. 비슷한 층수의 건물로 빼곡한 거리. 신주쿠는 라무다가 태어난 그 ‘공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복제품의 연속이었다. 그는 일렬로 줄을 선 것마냥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자신이 프레타 포르테라면? 복제된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간 ‘프레타 포르테’가 동일한 ‘내’ 행세를 하면, 사람들이 지금의 나와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디자이너가 아닌 라무다, 시부야에서 활동하지 않는 라무다, 어쩌면 쓰레기통 옆에서 마네킹 행세를 할 수도…. 그가 있는 곳이 어디든 땅을 밟고 있는 곳에 레이어드 돼 평범한 인간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섞여 ‘내’ 빛은 퇴색된다…. 아니지, 오히려 더해지려나?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색은 더해질수록 검정이 된다. 마치 이곳처럼.
특별함 하나 주지 못하는 인간이 되겠지. 라무다가 쟈쿠라이에게 나름의 선물을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신주쿠의 중심, 그것도 프레타 포르테 한복판에 있는 그만큼은 거리 사이에서도, 조금이나마 더 반짝였으면 하니까. 가능하다면 자신만의 색으로 말이다. 평론가들이 손가락 움직이며 나불대던 ‘오트쿠튀르’와는 거리가 멀다 해도, 세상에서 내 이름이 영원히 불리지 않아도. 그의 작은 세계에 내가 개입하는 것이다. 과분한 색의 덧칠 없이, 칙칙한 회색빛 도시에 묻어진 노란 점 하나. 별 같고 좋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할걸? 매일 재미 없는 기성복만 돌려 입는 너 말이야. 그러면서 용케 나에게서 ‘흥미’를 찾았네. 내가 좀 독특하지. 발걸음도 통통 튀고, 팝하고, 중독되는 단맛만 물고 사니까. 이제부터는 더 재미있어질 거야. 이유 없이 전화하면 안 될 사이가 될 거고, 감정도 휘몰아치게 변할걸. 프레타 포르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얼굴 보기가 귀해질 거야. 왜 이런 말을 하냐고? 글쎄, 라무다는 네 세계에 매번 돌아오는 유행이 될 거거든.
“역시 리본은 안 달래.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서는 신주쿠에도 Empty Candy의 마니아가 필요한 법이니까.”
Prêt à porter는 가치가 떨어지니까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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