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쟈쿠] 실의 첫 매듭부터 잘못되었다

날 반드시 구하겠다고 했잖아

실의 첫 매듭부터 잘못되었다

아메무라 라무다 X 진구지 쟈쿠라이

 

시작과 끝을 논하자면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었다. 하지만 누구도 마침표를 찍으려 들지 않은 관계였다. 웃기지 않은가? 누구보다 끝을 바랐던 서로였는데, 약속이라도 한 마냥. 미련이라 부르기엔 볼품없고, 변화를 바란다면 거창하다. 언제 눈을 뜰지도 미지수인 한 명의 목숨을 담보로 균형 잡기를 하는 것처럼, 서로의 실을 얽어메고 양쪽으로 잡아당길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둘의 관계는 ‘실타래’ 놀이와 같았다. 이어져 있는 끈은 하나인데, 자신이 원하는 모양새를 낼 때까지 붉은색 실을 꼬다 엉망인 모양새가 되어 버리면 그대로 손을 빼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시작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얽혀 버린 실타래는 미련 없이 버리면 되지만, 둘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이 단순한 실 뭉텅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 못하고, 뿌리치고 싶지만 뿌리치지 못하는 실. 외면한다면 분명 주홍 글씨가 되어 업보로 돌아올 것이 뻔했다. 가책에 찔려 스스로를 갉아먹을 업보로.

 

먼저 실을 놓은 쪽은 누구였더라. 이제 와서 누가 먼저 손을 놓았느니 논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겠냐만, 쟈쿠라이는 사실관계에 대한 명제를 필요로 했고 라무다는 거북한 감정의 원인을 찾고자 했다. 이성과 감성, 상반되는 두 명이 얼굴은 마주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담론의 결론을 짓고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것. 남을 대할 때와 다르게 라무다에게 오냐오냐하지 못하는 성격의 쟈쿠라이도 오늘만큼은 제 감정을 자제하고 있었다. 라무다 또한 비아냥대던 평소와 다르게, 제 앞에 놓인 뜨거운 핫초코만 홀짝일 뿐이었고. 아마도 둘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분위기에서 엄습하는 불안이었을 거다. 그들은 정말로 마침표를 찍고자 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둘을 옭아맸던 ‘空寂 폿세’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제는 空寂이 아니라 公敵, 자신의 세계에서 공공의 적으로 남겠지만.

 

다른 이들이 흔히 이별을 고하는 카페나 바가 아닌 자택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라무다는 쟈쿠라이와 눈을 마주치려는 시도도 없이, 혼자만의 생각을 골똘히 간직한 채 이곳저곳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덤덤한 척했지만 그는 괴로웠다. 어느 곳으로 시선을 옮겨도 둘이 함께한 순간들이 떠올랐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과 함께, 이어지는 대화와 행동의 기억 또한 자제할 틈 없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버린다. 이런 것도 추억이라니. 라무다는 실감 나지 않는 현실에, 문득 마침표를 찍은 미래를 상상했다. 이렇게 마주하는 상황도 한때의 기억으로 남겨지겠지. 추억이라 부르기에는 가슴 아린 순간이다. 지금이 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그만 덜컥 자존심을 버리고 진심을 고백해 버리고 싶은 억지가 든다. 하지만 어째서? 썩 내키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의견을 바꿔 버리면 ‘역시 가벼운 사람’이라고 판단할 게 뻔했다. 매번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느꼈으니까. 그렇기에 더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옳다고 믿었다. 편의를 따라 입맛대로 신념을 바꾸는 사람이 되기보다 고집이 세도 가치관이 확고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우리 사이가 틀어지게 된 건 여기서부터일까. 내가 괜한 자존심을 부려서? 아니면 네 눈빛이, 전혀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는 시선이어서?

 

그토록 싫어하던 눈을 마주할 차례였다. 그가 라무다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꿰뚫어 본 것처럼 굴래. 그가 다 아는 것처럼 구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의 입에서 이별이 고해지기까지, 찰나만 참으면 끝이 날 터였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이 집을 나오면 된다. 하지만 왜, 그러니까 왜. 자기합리화도 얼마 안 가 무너져버릴 정도로, 예상하는 시나리오와 다른 결과가 나왔으면 싶은 걸까. 아무래도 말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꼬인 호흡, 다급하게, 첫 숨을 내뱉었던 때처럼. 라무다가 말했다.

 

“날 반드시 구하겠다고 했잖아.”

실의 첫 매듭부터 잘못되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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