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쿠코]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닥 님께 드린 이치쿠코 단편글입니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야마다 이치로 X 하라이 쿠코
"크리스마스 때 뭐 하냐?"
쿠코의 말에 응? 하고 되물은 이치로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티가 역력했다. 제 무릎을 베고 누운 채 게임기만 만지작거리는 남자애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으니까. 분위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지금, 소파에 누워 각자 할 일을 하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넌 크리스마스 때 뭐 하냐는 말을 이럴 때 하냐."
"그래서 뭐 하냐고."
"계획 없는데."
"그럴 것 같았어."
뭐야. 끝이야? 이어지는 말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자, 이치로는 대답 대신 어이없다는 듯 한숨 아닌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왜 물어본 건데. 이런 맥락이라면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 거리라도 함께 돌아다니자…. 같은 류의 제안이 따라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매년 함께 보냈으니, 이번 크리스마스도 암묵적으로 함께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쿠코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러니 이런 미적지근한 반응이 돌아오면 심술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야, 쿠코. 일정에 차질이라도 생길까 출장 건은 전부 크리스마스 전으로 몰아넣었다고. 동생들이 걱정할 정도라니까.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생각을 꾹 참은 채 머릿속에서만 간직하고 있자니, 약간의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게임에 열중하는 쿠코의 얼굴을 제 손바닥으로 꾹 눌러버렸다. 평소 같으면 고양이처럼 손바닥을 깨물고 치우라며 발버둥 쳤을 쿠코지만, 킬킬거리며 지금까지 자신이 응시했던 게임기 액정을 보여주는 쿠코의 모습에서 그의 장난에 단단히 걸려버렸다 직감한 이치로였다.
'ㅋㅋ. 야. 같이 보내자고 말 안 해서 삐졌냐?'
게임 채팅창에 미리 입력된 쿠코의 메시지. 그러니까, 게임에 집중하는 척 액정 너머로 흘끔흘끔 내 감정 변화를 살폈다 이거지. 사람 속 썩이는 데 재능을 둬서 뭐 하려고. 이치로의 반응을 기대하는 쿠코의 눈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처럼 반짝거렸다. 야, 이런 장난 치지 말라고…?!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와락 이치로를 껴안은 쿠코는 행여 이치로가 자신보다 먼저 말을 꺼낼까 곧바로 그에게 속삭였다.
"알지. 그냥, 놀려보고 싶었어. 매년 함께 보내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러니까 느슨한 기념일에 긴장감을 더한다는-."
"그래, 알지."
술술 말해주다니 전세 역전이다. 이제 장난의 방향은 쿠코를 향했다. 자신의 몸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그와는 달리, 두 손이 자유로운 이치로는 덮고 있던 담요와 함께 쿠코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놀린 값은 톡톡히 받아야지. 그게 해결사 보수 원칙이거든. 평소처럼 돌아와 내려달라며 캬악대는 쿠코를 무시한 채, 이치로는 산타클로스처럼 자신만의 선물을 들고 침실로 향했다. 우리 너무 오래 만났나.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그의 얼굴은 자신을 놀리던 쿠코처럼 웃음기로 가득했다. 이치로가 말했다.
"긴장감 더하러 가야지.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다, 쿠코."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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