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무쟈쿠] Inside Joke

아메무라 라무다 X 진구지 쟈쿠라이 / inside joke; 자기들끼리만 아는 농담

Inside Joke

아메무라 라무다 X 진구지 쟈쿠라이

 

“쟈쿠라이, 안녕?”

“하아아….”

 

진구지 쟈쿠라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주치는 순간마다 인상을 편 적이 없었으면서 갑자기. 요점은 무슨 낯짝으로 이렇게 병원까지 찾아와 인사를 건네느냐는 생각이었다. 그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라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아, 반응을 보니 아직 ‘그때’가 아니구나? 하긴….”

“제가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십시오.”

“응, 응! 어차피 지금 말해줘도 이해 못 할 거고~. 초 천재 라무다 님만이 가능한 거라. 시간이 되면 어렴풋이 알아채지 않을까? 주절주절 설명해 주기에는 라무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말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쟈쿠라이, 시간 괜찮으면 라무다랑 놀래?”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다른 행동을 한다.’

쟈쿠라이의 머릿속에 순간 이 말이 떠올랐다. 그 또한 속설로 치부하는 말이라 하기에는 지금까지 병원에서 근무하며 지켜본 광경이 있기에 라무다의 언행을 무시할 수 없었다.

 

‘라무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말이야… 라.’

 

병원에서 흔히 말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라는 의미가 어떤 뜻으로 사용되는지 잘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눈앞의 아메무라 라무다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운뎃손가락을 망설임 없이 들어 보이던, 자신이 알고 있는 아메무라 라무다라고 어떻게 확신하겠는가.

 

“아직도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네~. 혹시 중왕구가 파놓은 함정이라고 생각해? 클론? 으음~. 그건 좀 끔찍한데. 지금까지 라무다가 너랑 배틀에서 몇 번 만났는지 말해줄래?”

“두 번 정도입니다.”

“엑. 두 번이면 관계가 풀어질 때도 되지 않았어?”

“표정 좀 봐. 아직 그 전인가 보네. 앗차차, 방금 말은 스포일러니까 잊어줘!”

 

혀를 내두른 라무다는 제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하다, 진구지 쟈쿠라이에게 되물었다.

 

“응,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쟈쿠라이, 다시 물어볼게? 시간 괜찮으면 라무다랑 놀래? 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안 일어나.”

“지금 일이 바빠서요.”

 

일이 바쁘다는 그의 말은 핑계가 아니었다. 애초에 아메무라 라무다가 그를 찾아온 곳이 병원 진료실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직접 자신을 찾아올 정도면 평소처럼 가벼운 농담 따먹기 하나 하기 위해 방문한 것은 아닐 터였다. 그래도 사뭇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기 환자 리스트에 ‘아메무라 라무다’ 이름이 떡하니 올라왔을 때는 눈을 의심했는데, 실제로 그를 만나게 되니 ‘드디어 미쳤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아메무라 라무다는 “이렇게 하면 만나주지 않으니까”라는 말로 얼추 말을 둘러대며 시간을 내어 주길 촉구했지만, 업무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는 마음대로 자리를 뜰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라무다를 대하고 있는 지금도 자신이 만나야 할 환자가 수십 명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네. 그럼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지? 네에~.”

 

무작정 조르는 것보다 그의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했는지, 라무다는 자기 말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진료실을 나갔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저녁 약속이 잡혀버린 쟈쿠라이는 한숨을 내쉬다가도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종종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즐겁게 지냈던 순간을 회상하다 보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일과도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확실히, 아메무라 라무다도 자신의 퇴근을 진심으로 바랐는지 회진 중 딱 한 번, 어디서 받은 건지 모를 어린이용 비타민 하나를 우물대며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만 포착되었을 뿐, 자신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방해라고 생각했던 걸까.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아~.”

 

아메무라는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네는 진구지 쟈쿠라이의 말을 따라 하며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는 그의 곁에 찰싹 붙어왔다.

 

“진료 끝?”

“네.”

“회진 끝?”

“네.”

“업무 끝?”

“네.”

 

라무다가 허리를 굽히며 쟈쿠라이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라무다를 위한 시간 시작?☆”

“……. 네.”

“대답 늦어!”

 

콩콩. 쟈쿠라이의 걸음을 앞서나간 라무다는 그를 에스코트하듯 병원 유리문을 잡았다. 그는 쟈쿠라이가 걸어 나올 동안 후드 주머니 속에 쑤셔져 있던 휴대폰을 꺼내 바쁘게 메모장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아~! 원래는 오후 종일을 투자해야 하는 계획이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저녁 이후의 일정밖에 없잖아.”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

“식사부터 하러 가시죠.”

“잉…, 몰라. 계획 다 틀어졌으니까, 쟈쿠라이 네 마음대로 해.”

 

쟈쿠라이는 자신이 자주 들리던 가정식 식당에 라무다를 데려갔다. 평소 달큰한 것들을 입에 물고 사는 라무다였기에, 쟈쿠라이는 라무다가 제 선택에 투정을 부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군말 없이 식사를 마쳤다. 오히려 그의 앞에 놓인 그릇들을 깨끗하게 비운 채였다.

 

“우와, 과식했다…. 다이스보다 많이 먹은 것 같아.”

통통 배를 두드리며 큰 숨을 내쉬는 라무다는 의자에 털썩, 등을 기대며 쟈쿠라이에게 물었다.

 

“다음 일정은?”

“없는데요.”

“아, 정말. 이러면 또 제자리걸음이라고. 그럼…. 음, 작업실로 갈까-!”

 

 

라무다의 작업실 앞.

 

“보면 안 돼~.”

삑삑삑삑.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는 현관문이 열리는-

 

삐삐삐-.

…열리는?

 

“에?”

 

삐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당황스러워하는 라무다의 모습에 더 당황한 쪽은 쟈쿠라이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있으면 비밀번호도 까먹는 건지. 쟈쿠라이가 물었다.

“비밀번호를 바꿨다면, 다른 번호겠죠.”

“라무다, 그렇게 바보는 아니거든?!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삑삑삑삑. 삐삐삐-.

“아, 이것도 아니야?”

삑삑삑삑. 삐삐삐-.

“아니, 대체….”

 

몇 번을 시도하고 나니, 한 번에 시도가 가능한 횟수도 초과했는지 30초가량 재입력 잠금 설정이 걸려 버렸다.

 

라무다는 벙찐 표정으로 쟈쿠라이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셔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만….”

“아니, 알고 있다고!”

 

그들은 그렇게 약 세 번 더 잠금이 걸리고 나서야 작업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이건 그대로네. 응, 응.”

 

한쪽에 소중하다는 듯 쌓여 있는 사탕. 쟈쿠라이는 그가 평소처럼 사탕 하나를 입에 물 것이라 생각했지만, 라무다는 쟈쿠라이와 제 몫의 컵 두 잔만 갖고 올 뿐, 사탕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 오늘 그가 사탕을 먹긴 했던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하루에 몇 번은 사탕을 입에 물고 있던 남자가….

“오늘은 사탕을 안 드시네요.”

“응, 이건 ‘지금’의 몫이니까.”

 

‘지금’의 몫? 말이 이상하지 않나…. 의아한 얼굴인 쟈쿠라이를 향해 쿡쿡 웃어댄 라무다가 말했다.

 

“왜 그런지 알고 싶어?”

“네.”

“곧 알게 될 텐데도?”

 

‘곧’? 오늘따라 이상한 말만 반복하는 라무다였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확실히, 지금 자신 앞에 마주 앉은 라무다는 며칠 전까지 봐왔던 그와는 달랐다. 더 여유가 넘치고, 너그럽게 굴고, 이해한다는 양 행동한다. 아, 그래. 마치 신처럼. 한낱 인간의 방황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신처럼 말이다.

 

라무다는 벽면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자정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나….’

 

“쟈쿠라이,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지? 나도 꽤 있거든. 우리 스무고개 할까? 딱 한 시간만.”

“…먼저 시작하시죠.”

“응, 응! 쟈쿠라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그건 스무고개에 대한 질문이 아닌데요.”

“이렇게 시작하는 거 아니야? 음, 그럼 그냥 질문 주고받기로 말을 바꿀래. 나를 어떻게 생각해?”

 

별안간 갑자기 건네는 질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니.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한다고 생각한 쟈쿠라이였다. 여기서 어떻게 답변해 줘야 할까. 유치하게 감정 숨기기 할 나이는 아닌데 말이다.

 

“흥미로운 사람이에요~.”

“흥미로운 사람이죠.”

쟈쿠라이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린 라무다가 그의 말을 유추해 똑같은 문장을 읊조렸다.

 

“고리타분한 답변이야.”

 

“…그게 정말 끝이야?”

라무다는 팔자 눈썹을 하고 쟈쿠라이를 바라보았다.

 

“그 전에, 애초부터 왜 제게 접근했는지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그야, 무시무시한 누나들이 그렇게 시켰으니까.♪”

“저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요?”

“그건 스스로가 더 잘 알지 않아?”

 

라무다는 마이크를 쥐는 시늉을 하며 자신의 입에 손을 바짝 붙였다. 이윽고 손을 쟈쿠라이의 쪽에 향하도록 하며 물었다.

“다른 질문?”

 

“이제는 제게 접근할 이유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중왕구로부터 자유로워졌을 텐데.”

“지금의 쟈쿠라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미래에 우리 둘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굳이 짚고 넘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당신은 이 시간대의 아메무라 군이 아니군요.”

“특급 비밀이라 내 입으로는 말 못 하지.”

 

쉿, 누가 듣고 있을지도 몰라. 이제 라무다는 검지 손가락을 들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어차피 주변에는 아무도 없으니 일종의 장난이었겠지만 그가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 이상 쟈쿠라이에게 장난으로 다가올 리도 없었다.

 

“제가 말하는 건 상관없나 보네요.”

“역시 똑똑해. 곤란하게 만들지 않아 줘서 고맙네.”

 

“중왕구에게 쫓기고 있습니까?”

“매번 쫓기는 신세인걸. 빈도수의 문제긴 하지만.”

 

“생명을 위협받고 있습니까?”

“이제 진짜 스무고개 같다!”

“저는 진지한데요….”

“진지한 분위기로 눈물 콧물 흘리면서 마무리하기는 싫거든.”

 

아, 그게 아메무라 라무다였지.

“네, 그럼….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저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요.”

“편하게 하라며? 이런 질문은 전~혀 편하지 않은데? 헤어진 남자 친구가 애인에게 찾아온 이유가 뭐냐고 묻는 꼴이잖아.”

“…….”

“장난이야. 그냥, 보고 싶어서. 훗날의 쟈쿠라이는 너무…. 좀 그래. 응.”

 

애늙은이 같거든…. 라무다가 쟈쿠라이에게 속삭였다. 라무다가 시선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쟈쿠라이의 굳는 얼굴을 그대로 볼 수 있었던 희귀한 순간이었다.

 

“아니, 그래도. 소중한 기회가 생기면 며칠 전에 있었던 순간보다는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가는 편이 더 즐겁지 않겠어? 물론, 내가 가려던 순간은 지금보다 더 전이긴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얼굴 보고 이야기하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네.”

 

라무다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자정까지 십 분을 남긴 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 딱 하나만 받고 마무리할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진구지 쟈쿠라이는 고민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알고 싶은 것들을 추리고, 그런 궁금증을 포괄해 질문할 수 있는 문장을 뽑으려고 애썼다. 겉으로는 평온한 기색이었지만, 아마 속에서는 꼬인 말들을 풀어내기 위해 한참을 궁리했을 터였다. 확신이 선 듯 쟈쿠라이가 라무다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에 라무다가 싱긋 웃으며 화답했다. 마치 더티 독, 그 당시의 라무다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마 그가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던 ‘훨씬 이전’은, 더티 독으로 활동했던 그때를 말하는 거려나.

“네-! 기다렸어! 마지막 질문은?”

“미래의 우리는, 지금보다 행복합니까?”

“음……!”

 

“확실히 마지막 질문이라 가시가 있네~.”

라무다가 말을 흐렸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쟈쿠라이. 그가 고민한 만큼 대답을 고민한 라무다였지만 딱히 좋은 말거리를 찾지 못했다.

“‘우리’에는 누가 포함되려나. 너와 나? 아니면, 칸나비까지?”

“…….”

“아하하. 행복했던 시간이었지.”

“과거형을 쓰시네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즐거운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니까, 전부 과거가 되어 버려. 돌이켜보면 하나같이 즐거웠던 기억들이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 시간 거의 다 됐다.”

 

라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현재로부터 떠날 채비를 했다.

 

“시간이 다 됐다니, 그럼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특급 비밀이라 말 못 한대도.”

 

쟈쿠라이의 낯빛이 단숨에 어두워지는 것을 목격한 라무다가 깔깔 웃었다.

 

“하하!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어? 흠….”

 

“마시멜로 이야기 알지? 쟈쿠라이. 마지막으로 게임 하나만 더 하자.”

“마지막까지 장난인가요.”

“이건 스무고개와는 달라. 농담이 아니야. 라무다도 이 게임의 규칙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걸.”

 

“쟈쿠라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내가 완전히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마주한 라무다에게 말하면, 마시멜로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으면, 마시멜로 하나는 남을 수 있겠지.”

 

“원래는 마시멜로 하나를 더 줘야 하는데…. 내 말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이 세상에 다른 라무다가 두 명이면 조금… 그렇잖아? 가짜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라무다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 사이의 일을 현재의 라무다에게 말하지 마.’

 

“만약 말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저 미래의 일을 알려주는 것뿐이잖습니까.”

“지금의 라무다가? 응, 발상은 좋은데, 역시 할아버지다운 생각이네. 한번 말해 봐. 정신이 붕괴하는 것밖에 더 있겠어?”

 

말했잖아, 특급 비밀이라고. 라무다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는 자신이 낮잠 침대로 애용하던 소파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이내 쟈쿠라이를 바라볼 수 있도록 몸을 돌리고는, 두 손을 모아 눈을 감을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즐거웠어. 그래도 음…. 내 마지막 식사가 낫토 정식이라니. 최악. 그건 좀 고치지 그래?”

“만나서 즐거웠다, 고요.”

 

그저 몇 시간에 그친 만남이었다. 식사를 하고, 작업실에 앉아 이야기만 나눈 몇 시간. 하지만 아메무라 라무다는 그것을 ‘즐겁다’고 평했다. 과거형의 이야기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 나에게는 마지막 만남이었으니까. 인사 정도는 해주지 그래?”

“……. 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다행이야. 하암~. 나 이제 졸려서…. 안녕. 현재의 나로 다시 만나자.”

 

라무다는 눈을 감았다. 마치 죽은 것처럼 미동 하나 없었다. 가까이 귀를 갖다 대면 들리는 심장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가 일어나기도 전에 응급실로 라무다를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듯 콩콩 심장 박동 소리를 내며 숨 쉬고 있었다.

 

 

“……. 너, 왜 그런 표정 짓는 거야? 징그러워.”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뜬 아메무라 라무다는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시계는 정확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눈을 뜬 ‘그’는 ‘그’였지만, ‘그’가 아니었다. 진구지 쟈쿠라이가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분침과 시침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동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아메무라 라무다는 미래의 라무다가 말한 ‘지금’의 라무다였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중요하겠느냐먄, 그래. 막상 떠나보내니 남는 것이 미련이라니. 이렇게 가만히 앉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려야 할까. 과거를 회고하며 언제 돌아올지 모를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가슴이 미어졌다.

 

언제쯤 다시… 방금의 관계처럼 웃고 떠들 수 있을까. 가능은 한 걸까. 진구지 쟈쿠라이에게는 희망 고문이었다. 라무다가 자신을 만나는 동안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했는가’에 대한 언질이 없었다는 것도 그에게는 불안의 축이 되었지만, 그는 나아가야 했다. 미래의 라무다가 바라는 것도 이것이겠지.

 

‘즐거운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니까.’

 

그래, 그가 말한 것처럼 현실에 충실해야 했다. 한편의 꿈 같은 시간을 잠시 잊어두고, 미래를 위한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이 ‘현재’에 머무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진구지 쟈쿠라이, 대답 안 해? 내 작업실에는 언제 들어온 거야?”

“아메무라 군,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상태가 괜찮은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볼게요.”

“웩…. 일어나자마자 진구지 얼굴을 보니 속이 메스꺼워졌어.”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잠드세요. 그럼, 이만.”

“배웅 안 할 거야.”

 

쟈쿠라이를 보낸 라무다는 습관적으로 사탕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잔이 왜 두 개나 꺼내져 있대.”

 

마주 보는 자리에 나란히 놓인 컵 두 개를 씻으며 의아함을 해결할 수 없었던 라무다가 불현듯 이날을 상기하게 된 건,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에필로그

 

미래의 라무다가 떠난 지 몇 년은 족히 지난 시간. 그 사건도 처음에만 강렬했을 뿐, 시간이 지나며 미화되고 퇴색되었다. 당시 라무다가 지나가듯 언급했던 ‘화해’, ‘배틀’, ‘칸나비’ 등, 키워드와 관련된 일이 진구지 쟈쿠라이에게 벌어질 때마다 종종 그가 말해주었던 내용을 회상하곤 했지만 이제는 큰 감정 기복이 생기기보다 ‘아, 그랬었지.’ 하며 넘길 수 있는 사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라무다의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은연한 그의 생각처럼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던 쟈쿠라이였던지라 사건의 중요도가 하락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보다 크나큰 사건을 마주한 경우가 더 많이 생겨서였을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평화로운 신주쿠, 평화로운 시부야. 평화로운 도쿄. 쟈쿠라이는 문득 생각했다. ‘미래의 그가 마주한 광경과는 다른 모습이었을까?’라고.

 

“쟈쿠라이, 저녁 뭐 먹을까?”

병원 일을 마무리하고 함께 퇴근하는 길. 최근 크게 열린 ‘Empty Candy’의 컬렉션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아메무라 라무다는 바쁜 일이 끝나 시간이 남는지 종종 퇴근 시간이 되면 병원으로 찾아오곤 했다.

 

“음, 근처에 식사할 만한 곳이…. 가정식 식당이 하나 있는데요.”

“엑…. 그때 이후로 낫토 정식은 안 먹어.”

 

‘그때’?

 

진구지 쟈쿠라이는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라무다가 웃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본 미소 중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씨익 올라간 입꼬리와 잔뜩 휘어진 눈. 진구지 쟈쿠라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미래의 라무다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일 것이라고.

 

“기억이 돌아온 건가요.”

“응. 아마 이 순간이 그 ‘미래’와의 연결점이었나 보네.”

 

“전 남자 친구 얼굴 보기 쉽지 않아, 그렇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라무다는 자연스럽게 쟈쿠라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작업실로 가자. 이번에는 비밀번호 틀리지 않을 자신 있으니까.”

“자정이 지나면 또 사라지실 겁니까?”

“신데렐라도 아니고, 이제 됐어~. 마법은 안 풀려.”

 

“…안 갈 거야?”

“그럼, 저녁은….”

“그러니까! 낫토는 안…….”

 

 

라무다와 쟈쿠라이는 어김없이 티격태격 대화를 주고받으며 작업실로 향했다.

항상 걸어가는 똑같은 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같은 거리를 같은 보폭으로 걸으며, 비로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Inside Joke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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