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de(임시이미지)

Fade2

맥스가 잉게르의 방문을 여는 순간 번쩍! 하는 큰 빛이 깜빡였다. 맥스는 너무 놀라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몸을 한껏 움츠리고 가만히 있던 맥스가 조용한 낌새를 확인하고 슬쩍 눈을 떠 봤다.

잉게르가 손바닥만 한 수정 구슬을 들고 있었다.

“놀랐어요?”

“...뭐, 뭐야...?”

“방금 말 한 거 있잖아요, 이 얼굴 두고두고 보고 싶다고...”

“어... 그.. 그랬지..?”

“이거는 말이죠, 순간적으로 빛을 발산하는 수정구예요!”

“응... 그래..?”

“잘 들어봐요~! 최근에 우리 마법 의회 갔을 때~ 마력이 담긴 수정구를 양피지에 동기화시켜서, 마법식을 추출하는 기술을 발표한 애가 있었잖아요? 그거를 보고 생각난 게, 이 수정구에서 빛을 내고, 그 기술을 응용해서 빛이 닿은 부분과, 덜 닿은 부분을 각각 추출해내면...”

“잉게르, 우리말로 해!”

“어! 어어 그러니까, 제가 방금 만든 이 기술을 마법 의회에 가서 신고하고 등록하면, 빛마법 추출식을 응용해서 새로운 기술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에요!”

“...?”

“자, 일단 이거 봐요!”

잉게르는 작은 양피지 조각을 들이밀었다.

맥스가 받아든 그 손바닥 만 한 양피지에는 조금 전 잔뜩 움츠린 자신의 모습이 매우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너 드디어 사람 영혼이라도 수집하기 시작한 거야?!”

“아이 참~! 과장도! 헤헤..”

“이, 이런... 이런 거... 뭐야...?!”

“이 수정구에 맺힌 상을 양피지랑 펜에 연동해서 그대로 그려 낸 거 에요!”

“그.. …초상화? 초상화를 그리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거야...?”

“뭐... 비슷해요~! 맞아요! 그런 거에요~ 생각보다 이해가 빠르네요!”

“음...”

“맥스! 지금 하는 일 없죠?! 빨리 마법 의회에 가서 이거 등록해요!”

“등, 등록..?”

“이걸 의회에 등록하고 보고해야, 다른 녀석들이 이 기술을 쓰면서 저한테 기술료를 내죠! 아! 그리고 양피지 동기화를 발표한 애가 이걸 또 응용해서 다른 기술을 만들어낼 거에요!”

“음... 대충, 좋은 거 라는 건 이해했는데... 아까 빨래 돌려놔서...”

“아,그럼 빨래 마무리하고 갈까요? 저 정리 좀 하고 있을게요, 다 돌리면 같이 널어요~”

“응~”

맥스는 자그마한 초상화를 손에 들고 빨래 수조 앞으로 왔다. 정교하게 그려진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더니 잉게르가 다가왔다.

“오, 거의 다 돌아갔네요.”

“응..”

“저는 준비 다 해놨어요. 빨래 다 개고 가방만 들고 출발하면 되니까, 당신도 준비하고 와요~”

“응..”

맥스는 얼빠진듯한 목소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잉게르는 의아한 듯 뒷모습을 바라봤지만, 난생 처음 보는 사진이라는 도구에 놀랐겠거니 싶어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

잠시 뒤, 맥스가 외출복을 입고 작은 짐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때마침 빨래가 끝난 수조에선 물고기들이 작은 노래를 연주했다.

두 사람은 익숙하게 빨래를 꺼내고 집안에 줄을 걸어 빨래를 널었다.

잉게르는 집안의 문과 창문을 꼼꼼히 잠갔고, 맥스는 말린 레몬껍질을 모아둔 바구니를 꺼내서 빨래 주변에 놔뒀다.

마침내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

잉게르는 새로운 마법기술에 대해 조잘거렸고, 맥스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채 호응만 하며 산아래 마을을 지나 교차통로를 통해 마법 의회에 도착했다.

“맥스! 알죠?”

“응 걱정 마..”

맥스는 잉게르의 것과 닮은 가면을 꺼내 썼다. 작은 눈알이 왔다 갔다 했다. 잉게르의 뒤로 바짝 붙어서서 거대한 나무 속을 파 만든 건물로 들어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잉게르는 접수대에서 무어라 말을 걸었고, 계단을 올랐다. 맥스는 처음 가는 장소였다.

아마 안내원인 것 같은 엘프가 잉게르에게 수정구와 종이를 건넸고, 잉게르는 그것에 이것저것 천천히 기록했다.

맥스는 정신침입마법을 막아주는 가면 속에서 가능한 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상상을 했다. 잉게르가 뭔가 작성을 끝내고, 준비한 서류와 제출을 끝내는 것 까지 확인했다.

[이제 다 끝났어요. 가도 돼요.]

마스크 너머로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렸다.

[잉게르 나...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 있는데.]

[어? 여기서요?]

[예전에... 너랑 만나기 전에.. 같이 일했던 회복술사가 있는데... 혹시... 찾을 수 있을까..싶어서...]

[음... 너무 광범위한데...]

[그, 누구한테 고용됐었는지랑.. 종족이랑... 이름이랑... 다 기억하고 있어.]

[아 그럼 찾을 수 있어요. 저 따라와요~]

잉게르는 가벼운 걸음으로 맥스를 이끌고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한편 마법 의회의 기술관리층은 굉장한 난감함을 표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마법기술을 새로 등록할 땐 해당 마법이 담긴 수정구를 아브락사스의 나무에 등록한다.

그러면 아브락사스의 나무가 이를 승인하고, 이 마법을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마법사들을 점지한다. 이 마법사들에게 하나하나 편지를 써서 새로운 마법기술을 응용하여 연구에 참고하라고 알려주는것이 기술관리직의 일이다.

여태까진 평균적으로 약 10명가량을 넘지 않았고, 이를 능가하는 마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

조금 전 다녀간 정 5급 마법사 잉게르가 제출한 마법기술에선 쉴 새 없이 많은 분야의 마법사를 불러대고 있었다.

“....”

“...어...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일단...소장님 부르고... 이거 다.. 갯수 세서.... 편지 보내야지..!”

“흐아아아...!”

“알바들 다 오라고 해!”

“네..!”


“아~! 잉게르님! 전의 호위무사님도 같이 오셨군요~”

“...”

마법의회 나무의 꼭대기 층엔 의회에 등록된 마법사를 찾을 수 있는 색인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잉게르가 싫어하는 하얀 뱀 이라는 불청객도 있었다.

“아~ 색인을 이용하시려는 거군요~! 물론! 저는 다 썼답니다~”

하얀뱀은 실크햇 아래로 느물느물 웃으며 꼬리를 움직여 자리를 비켰다.

잉게르는 그 모습을 불쾌한 듯 응시했지만, 하얀 뱀은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색인 방을 나갔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더이상 인기척은 없었다.

잉게르는 짜증 난 듯 신경질적으로 색인목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아아... 좋아, 이름이 뭐에요?]

[모어.]

[전문치유사였어요? 치유마법을 병행하는 일반마법사?]

[아마... 치유만 전문으로 했을 거야.]

[같이 고용된 게 언제고, 고용주가 누구예요?]

[한 3년 전 여름이었고.. 고용주이름은...]

잉게르는 차례차례 정보를 입력했고, 점점 결과의 범위가 좁아졌다.

[아, 나왔다. 하피종족에 전문치유사, 이름은 모어. 오~ 진짜 비싼 사람이네요?]

[나왔어? 지금 어디 있는지도?]

[네! 마침 의회에서 준 의뢰를 하느라 장소도 뜨네요.]

[어디인데?]

[여기가.... 풋..!]

[왜, 왜웃어..?]

[맥스 여기...]

[......푸흣...!]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정보를 털어낸 두 사람은 작은 실소를 연달아 내뱉었다.

익숙한 마을 이름.

맥스의 고향이었다.


“야, 저거 뭐냐?”

“뭐가?”

“저거 나비 같은 거.”

“응? 나비 편지 같은데?”

“누나가 보냈나?”

“그런가 봐. 내가 열게.”

차콜은 집으로 날아드는 종이나비를 덥석 집어들었고, 이상야릇한 마력에 놀라 소름이 돋았다.

차콜의 쌍둥이 남동생 도지가 뒤에서 기웃거렸다.

차콜은 편지를 열어 내용을 읽어봤다.

“야! 언니 온대!”

“뭐?!”

“아빠아아아아~~!!!!”

“왜..왜 소리를 지르니~!”

“아빠, 누나 온대.”

“뭐? 맥스가?”

“응.”

“어..언제..?”

“한 서너 시간 걸린대.”

“아..아아... 어쩌지... 집을 좀... 어..”

“뭘 허둥대~”

“아이... 너도 알잖니, 너희 누나...”

“아빠!”

“응? 왜? 누나 뭐?”

“아... 넌 모르면 됐어.”

“뭐야? 나 왜 왕따 시켜?!”

“됐어~! 모르는 게 나으니까! 아빠, 딴 거 할 필요 없어. 그냥 평소처럼 해 두자.”

“그...그래..!”

맥스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들 중 여자애 쪽인 차콜은 집안을 둘러봤다.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없던 언니가 여행을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났다. 이따금 돌아왔지만 잠깐 머무를 뿐 곧장 떠났다.

뭘 하면서 돌아다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언니가 모아둔 생활비는 남아있었고, 가끔 아버지가 바느질을 한다든지 저와 남동생이 아르바이트하며 근근이 모으기도 했다.

하루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식식거리며 차려둔 밥을 먹고,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얼굴로 뭐라고 떠들어대고, 술을 마시고. 가끔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가 통했지만, 보통은 별다른 대화 없이 거대한 짐승에게 밥을 주는듯한 미미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 언니가 여행을 떠났을 때, 솔직히 후련했다.

언니는 우릴 사랑했고, 우린 언니를 사랑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목줄이었다.

한참이나 얼굴이 마주치지 않고서야,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더는 밤마다 언니가 베개에 대고 쏟아내는 갖은 감정을 맡고싶지 않았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여기까지 나를 몰아세웠다.’

언니에게 우린 자신을 학대로 몰아갈 이유였다, 자신이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변명거리였다.

이젠 저 사람이 우리에게서 독립하고, 해방됐으면 좋겠다.

우린 우리끼리도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

“...야 이거 공용어였네?”

“어? 응..”

“누구 같이 온다는데?”

“뭐...”

“여기...”

“....진짜네..”

“누나가 설마...”

“빚쟁이는... 아니겠지..?”

“...혹시 몰라... 누나 좀 바보 같은 면이 있잖아..”

“그걸 바보같이 집에 초대하겠냐?”

“음...”

“에휴... 언니 방 청소해두고, 이불도 하나 깔지 뭐... 너 이불 남는 거 있냐?”

“아빠 방에 하나 있을 거야.”

“... 엄마 이불?”

“응.”

“......”

“좀 아닌가?”

“......”

“음 무리수였나 보다.”

“니 이불 가져갈게.”

“아~! 알았어!! 여름 이불 남는 거 있어~!”

“그래그래”


한편 잉게르와 맥스는 사이좋게 교차통로를 걸으며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자주 가는 격투장도 우리 마을 가까이에 있는데...”

“거긴 별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데..”

“그, 그런데 서만 찾을 수 있는 정보도 꽤 많다고....”

“맥스, 지금 거기 가고 싶은 거죠?”

“아, 아, 아니.. 그...”

“....”

잉게르는 가면 너머로 맥스를 노려봤다.

맥스는 제 모든 것을 꿰뚫리는 것 같아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잉게르...”

“맥스. 그런 살인 격투장을 떠올렸을 때 심장이 막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초조하고 불안하죠?”

“어, 어, 어, 어떻게.. 아, 알았어..?”

“그야 딱 봐도 당신이 거기 중독된 게 보이니까 그렇죠!”

“주, 중독이라니... 너랑 있는 몇 달 동안.. 하, 한 번도... 안 갔는걸...”

“맥스... 제가 봤을 때 당신이요... 그냥 폭력에 미친 사람이에요.”

“내..내가...? 너.. 너한테 혹시 뭐.. 한 적이라도... 이, 있는 거야..?”

“저한테 뭘 하긴…! 전 분명 제가 놔둔 덫에 걸린 토끼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무슨 거대한 늑대를 잡아오질 않나..”

“그, 그야..! 네가 전에... 느, 늑대는...쓸모가 많다고 했으니까...”

“필요할 때 잡아야 쓸모가 있는 거죠! 그리고 제가 분명 얼음 열매만 따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사스콰치랑 싸우다가 빈사로 돌아왔잖아요!”

“그.. 그건..! 그게 먼저.. 공격했...”

“얼음 열매 나무는 사스콰치 서식처랑 정 반대편에 있다고요! 그리고 사스콰치는 먼저 공격 안 해요!”

“... ... “

“...맥스, 평소엔 괜찮으면서... 가끔씩..이상하리만치 폭력적으로 굴잖아요. 게다가 그게 뭘 죽이기 전에는 끝나질 않으니까.. 걱정돼서 죽겠다고요.”

“..미안...”

“저한테 미안해하지 말고요... 자기 자신한테 미안해해야죠... 왜 자꾸 당신을 사지로 몰아가요..”

“...”

“...좀 노골적으로 말해 줄까요..? 당신 지금 다른 사람이던 동물이던 해치면서 엄청 흥분하는 쾌락살인마 되기 일보 직전이에요. 게다가 스스로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쾌락을 느끼고 있고요. 저 그런 변태랑은 살고 싶지 않아요.”

“... ... ...”

“...이제 좀 마음을 바꿔먹을 생각이 들어요?”

“...잠깐만, 내가 느끼는게 흥분인지 불안인지 공포인지 네가 어떻게 다 알아서 구분을 해?”

“....”

“너... 내 머리에다가 뭐 심어뒀냐?”

“... ... ... ... ...”

“야 이 변태야.”

“....제,제,제, 제말에대답이나하세요!”

“으음... 질문이 뭐였지?”

“그, 그, 그, 그. 그...! 아, 아무튼...! 사, 살인중독..자살중독...그만하라고요...!”

“아...”

“이... 일단..! 그... 크흠..! 당신 집... 에 오랜만에 가잖아요...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야죠... 그런.. 이상한 격투장 같은데 가지 말고... 지..집에 있으라고요...”

“....”

“저, 전... 얌전히.. 있을게요...”

“... ...알겠..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굴었나? 맥스는 슬쩍 잉게르의 손을 잡았다.

잉게르는 그 손을 꼭 잡고 간질였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손 잘 잡아요. 곧 터널 끝이니까.”

“응...”

두사람은 손을 잡고 긴 통로를 빠져나왔다.

맥스가 사는 마을의 옆 동네였다.

“조금만 걸으면 되겠네.”

“헤헤. 같이 산책하니까 좋네요..”

“배는 안 고파?”

“네!”

“그럼 조금만 서둘러서 빨리 집에 가자. 치유술사는 짐부터 풀고 마을에서 찾으면 될 것 같으니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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