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커미션 작업본 | 가비지타임 전영중x성준수
너 나 좋아하긴 해?
좋아하니까 사귀는 거지.
근데 왜 난 그걸 모르겠지. 말로 해주면 안 되는 거야?
말로 해서야만 알아?
오우 클라이막스. 영중이 팝콘을 와작 씹었다. 준수야 어떻게 생각해. 뭘. 얌전히 영중에게 무릎을 반납한 채 같이 드라마를 시청하던 준수가 영중의 손에 들린 팝콘을 빼내어 제 입에 넣었다.
"내가 너한테 좋아한다고 안 하면."
"너 나 좋아하잖아."
"아니 좋아하지.. 근데 안 하면."
"했잖아."
"... 됐다 말을 말자. 그치 내가 준수 좋아하지.“
다시 고개를 휙 돌려 드라마로 시선을 돌렸다. 그 짧은 사이에 또 화해했나 보다. 격하시네. 더 들었다간 거북할 정도의 키스신이 나왔다. 준수가 조용히 저를 내려다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영중은 드라마에 집중한 채였다. 역시 드라마는 금방 싸우고 금방 화해하는구나. 해피하네. 11화 END. 결국 끝까지 본 영중이 채널을 돌렸다. 준수가 잠시 입을 뻐끔거린다. 전영중. 부르려던 이름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제 영화 볼까?“
올려다보는 고개에 준수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가.“
익숙하게 등교 준비를 같이 해놓고 꼭 준수는 저를 떼어놓고 먼저 학교로 향했다. 어떻게 맞춘 시간표인데 하나도 쓸모가 없다. 영중도 나름 같이 등교하면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 손에 들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로망 아닌 로망이 있었다. 준수는 뭐가 그렇게 바쁠까. 심통은 나도 불만은 없었다. 어찌보면 연애하는 것만도 감지덕지다. 룸메이트가 되어준 것까지. 욕심은 한 번 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걸 아니까. 한 잔에 천오백원 하는 커피를 손에 든 영중이 빨대를 쪽 빨았다. 얼른 준수 보고 싶다. 룸메이트가 하기에 적절한 생각은 아니었다.
”야 영중아 오늘 저녁에 뭐 하냐? 회식 한 번 해야지.“
”에이 선배 저희가 무슨 회식이에요. 그냥 가볍게 술자리 갖자는 거죠?“
”술자리라 하면 성준수 안 올까봐. 너가 데려와야 돼. 걔 알아? 민지. 민지가 성준수 좋아한댄다.“
”... 아 진짜요.“
”어. 내가 선배된 도리로 우리 학과에 어디 한 번 CC 만들어줄까, 싶어서.“
개소리하지마세요, 선배. 턱끝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삼키며 영중이 웃었다. 물어는 볼게요.
”갈게.“
”뭐?“
”간다고.“
”아니, 너, 술자리 같은 거 싫어하잖아.“
”어차피 너도 가는 거 아니야?“
”그건 맞지.“
그럼 됐어. 유일하게 단 하나 갈린 교양을 들으러 준수가 먼저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나섰다. 어디서 하는지 보내놔. 기왕이면 너 가는 시간도 같이. 그 소리를 뱉으며 멀어지는 뒷모습에 영중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핫. 아, 진짜. 계속해서 웃음이 실실 샜다. 진짜 성준수 귀여워 죽겠네. 민지고 나발이고, 성준수가 전영중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뭔 소용이야. 그 민지, 민지는 힘내고. 영중이 눈물을 닦는 시늉까지 했다. 오랜만에 준수랑 같이 술 마시는 건데 예쁘게 입고 가야지. 저녁까지 빈 시간에 영중이 급하게 자취방으로 향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영중이 준수의 옷을 입고 회식 자리로 나타났다. 영중을 발견한 준수의 표정이 언뜻 굳었다. 뭐지. 그 짧은 사이의 표정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챘지만 그게 무슨 이유인지까지 알아내기엔 시간이 짧았다.
”진짜 둘 다 왔네! 야 수고했다. 어, 준수는 여기로 앉고. 영중이는 그 저, 어디냐.“
”... 저 여기 앉으라고요?“
”왜, 싫어?“
아 씹. 누군가의 단말마가 들린다. 술자리 싸해지기 삼 초 전이라는 신호였다. 싫냐고. 되물었다. 영중이 입을 열었다.
”아이 형, 준수 술 잘 못하는 거 알잖아요. 안쪽 말고 바깥쪽으로 앉혀요. 화장실 오 분에 한 번 갈 걸?“
”아, 그런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호탕하게 웃은 선배가 자리를 비켜앉았다. 끝자리가 빈다. 영중이 쿡 준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너랑 다른 테이블로 가라고? 마주친 눈이 그렇게 말하는 기분이었다. 야야 준수야. 선배 이러다 큰일나. 딱보니까 이미 한 잔 걸친 것 같은데. 영중이 고개를 가까이 붙이며 작게 속삭였다. 금방 선배가 말한 영중의 자리로 향한다. 네 명이 앉을 테이블에 세 명의 자리가 차 있었다. 여자 둘과 남자 둘. 너무 적나라한데.
”아, 영중아!“
”야 석호야 뭐 얼마나 마신 거냐.“
”딱 한 병 했다. 어? 날 뭘로 보는 거야.“
”됐고.. 안녕. 어우 이렇게 인사하니까 되게 어색하다. 우리 학과.. 아니지? 선배한테 들어보니까 뭐 동아리 애들도 싹 다 긁었다고 하던데.“
”아, 응. 나는 경행 허민지라고 해.“
민지? ... 뭐 동명이인 같은 건가 보지. 영중이 옅게 웃었다. 그래 민지야, 반가워.
준수의 시선이 영중에게 고정된다. 준수 잔 안 받냐? 선배가 한마디 하면 그 짧은 새에만 선배를 바라보고 잔을 채웠다. 자, 짠짠! 술잔이 엉망으로 부딪히고 안주 위로 소주가 흐르든 말든 그런 건 준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시선은 한 곳을 향해있었다.
”영중아 나 사실 너 고등학교 경기부터 봐왔어.“
”뭐? 와 좀 감동인데.“
”잘 하더라.“
”그럼. 내가 다 그렇게 우리 대학에 온건데.“
민지가 웃으며 영중의 잔을 채웠다. 천천히 먹어. 작은 목소리가 영중에게 속달거렸다. 민지야, 너나 조금씩 마셔. 나 흑기사 자신 있진 않단 말이야. 하하 우스갯소리를 뱉었다.
”혹시 더워? 얼굴이 좀 많이 빨개진 것 같은데.“
”어? 아 아니야. 그냥.. 술 마셔서 그래.“
어색하게 웃은 민지가 물을 들이켰다. 못 마시면 마시지 말라니까.. 영중이 느리게 민지의 잔을 거뒀다. 그나저나 우리 준수한테 관심 있는 민지는 누구지. 고개를 돌려 준수 쪽을 바라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 왜 화났지?
”선배 저 갈게요.“
”뭐 벌써?“
”네 속이 안 좋아서 토 존나 할 것 같아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준수가 걸음을 재촉했다. 어, 야 준수야. 제옆을 빠르게 스쳐가는 준수를 붙잡지도 못했다. 영중이 멍청하게 준수야? 하고 이름만 다시 한 번 부를 뿐이었다. 민지가 뭔 짓 했나. 내 옆자리 민지는 괜찮은 애 같던데. 힐끗 바라보자 이쪽도 눈이 마주쳤다. 민지가 급하게 시선을 돌린다. 너무 쳐다봤나. 영중도 물을 한 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마안.“
말을 늘이며 웃고 준수가 두고간 겉옷을 챙겼다. 이상하게 이런 쪽에서만 칠칠맞지.
급하게 나간 것 치고 준수는 바로 앞에 있었다. 딱봐도 나 화났소 하는 표정이다. 영중이 뻘쭘하게 겉옷을 건넨다.
”무슨 일 있었어? 개우혁이 또 헛소리 해?“
”어. 존나 헛소리하는데 자꾸 들어줄 수가 없더라고.“
”아이고... 누구 좋으라고 걔는 널지 옆에 앉혔대.“
”허민지가 너 좋아한대.“
엥.
”그래서 너랑 이어주고 싶대. 허민지 예쁘고 착하다고. 전영중이 연애 안 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애들이랑 잘 지내는 거 보면 분명 사귈 수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널 봤는데 진짜 잘 지내더라. 전영중은 성준수 없으면 술자리고 자시고 밥도 안 처먹는다고 와줘서 고맙다고 자꾸 지랄하는데, 하... 야 전영중.“
”아니, 야 준수야 잠깐만. 누가 누굴 좋아해?“
”니 옆자리 걔가 너를. 니가 귓속말하고 쳐 웃으면서 대화한 그 여자애가 너를. 술 마시지 말라고 물 따라준 걔가. 니가 잔 치워준 걔가.“
”아니 씨발,“
”됐다 간다. 잘 해봐라.“
좆됐다. 초비상 좆됐다. 꼬인 매듭을 어디부터 풀어야할지 가늠도 안 온다. 붙잡을 새도 없이 멀어졌다. 택시. 드라마마냥 바로 잡힌 택시에 올라탄 성준수를 잡을 수가 없었다.
준수야
준수야 대답 좀 해줘
준수야??ㅜㅜ
나진짜걔랑아무사이아니야
하 개우혁 이 씹새끼를 진짜.. 연신 보내봐도 사라지지 않는 1표시에 영중이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나한테는 성준수 좋아하는 여자애라고 해놓고, 그게 다 이중트랩이었다고? 이 씹.. 트랩 설치 잘하는 새끼. 별명 개우혁에 맞게 몰이 잘하는 개새끼도 아니고. 영중도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준수야 진짜
나 지금 집 가고 있거든
개우혁이 또 개소리 한거니까 제발
우리 대화 좀 하자
엉?
나 금방 도착해.
아저씨 제발 밟아주세요. 제 애인이 죽을병에 걸렸대요. 영중의 말에 조용히 미터기의 숫자가 올라가는 속도가 상승했다.
급하게 도어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준수와 눈이 마주쳤다. ... 어디 가?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짐을 싼 준수의 모습에 영중이 급하게 현관부터 막아섰다. 양팔로 현관을 막은 모양새가 꽤 웃길만도 한데 준수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었다.
”허민지랑 잘해보지 왜 왔대. 비켜, 나 갈 거야.“
”아니이.. 그니까 어디 가냐고, 어? 목적지라도 좀 알자.“
”니 말고도 묵을 집 존나 많으니까 걱정 마.“
”뭔 소리야 너 친구 없잖아.“
안그래도 차갑던 시선이 이젠 아예 알래스카마냥 싸늘해졌다. 꺼지라고. 그정도로 굴릴 전영중이 아니다.
”야 준수야 나 진짜 걔랑 아무 사이 아니야. 개우혁 그새끼가 나한테는 허민지가 너 좋아한다고 했다고. 그래서 너랑 이어주고 싶다고 나 아니면 너가 술자리에 안 온대. 그래서 좀 데려와달라고 한 거였어. 근데 나도 처음엔 진짜 너 데려갈 생각 없었는데 너가 간다며. 근데 막.. 너가 나 있으면 가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간 거야 나도.“
”...“
”나 진짜 허민지? 걔 오늘 처음 봐. 동명이인인 줄 알았어. 너 좋아하는 민지는 따로 있는 줄 알았다고. 아니 그 술 좀 조심해서 먹으라는 게 크게 막 그런 건 아니잖아, 준수야 제발.“
”좋아하는 걸 말로 해서야만 아냐고 드라마에서 그랬잖아.“
”... 어.“
갑자기? 잠시 현관을 막아서던 팔의 힘이 풀렸다. 툭 원위치로 돌아온다. 준수가 어디 갈 생각이 좀 사그라든 것 같아서 그랬다.
”근데 너는 말로 안 해도 알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뭐라고 안 한 거야. 너는 그냥, 행동에서도 보여. 근데 나한테 말도 해주니까, .. 하 씨발 뭐라냐. 야 걍 꺼져 뒤지기 싫으면.“
”왜 말을 하다 말아..! 끝까지 해.“
”... 니가, ... 씨발 나는 니가 그럴 때마다 널 죽이고 싶어. 알아? 행동에서도 보인다고. 니가 얼마나 다정하고 상대를 위하는지 그런 게 다 보인다고. 근데 그게, 왜,“
”... 너 울어?“
”누가 울어.“
너가. 말을 할수록 차오르는 눈물을 멍하니 지켜만 보다가, 근데,에서 툭 흐르는 눈물에 영중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왜 울어? 현관 막을 생각이 죄 사라졌다. 급하게 준수의 앞으로 가 섰다. 소매를 길게 빼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진짜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좆같다. 니가 다정한 게 왜, 하... 그래서 그렇다고. 허민지가 널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걘 이미 씨발 오늘 너랑 그지랄 한 게 썸이라고 생각하겠지. 아 진짜 좆같다...“
”야, 야 준수야. 미안하다. 아니 좆같게 해서 미안해. 아니, 아니고 다 아니고. 울려서 미안해 진짜. 아니, 아닌가. 뭐부터 미안해야 돼, 나. 다정해서? 암튼 진짜 다 미안해 그냥 너가, 네가 그런 생각 할 줄도 몰랐고 나는...“
영중이 횡설수설 말을 이으며 어색하게 준수를 품에 안았다. 씨발 진짜... 품 안에서 들리는 욕에 어깨를 꽉 안았다. 준수야 미안해 제발 그만 울어라, 엉? 나 허민지고 개우혁이고 걍 싹 다 연락 안 할게 진짜 미안해. 말 한 거 지켜라, 씹새끼야. 풀린 것 같은 말투에 영중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 당연하지. 진짜 꼭. 약속. 옆구리를 잡는 손길에 등에 소름이 돋았다. 와, 씨발. 드라마 존나 정확하네.
격렬하게 키스타임을 가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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