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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미코] 2기 파트2 이전 짤막한 날조

카이지랑 미코코가 데이트?하는 이야기

군만두 가게 by 이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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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까지 라멘 가게 앞에서♥

 

동글동글 귀여운 필체로 적혀진 작은 쪽지를 카이지는 한숨을 쉬며 주머니 안으로 쑤셔 넣었다. 거리낄 것 없이 내리쬐는 겨울날 햇빛으로 가득 찬 거리를 카이지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걷다가도 갑작스레 머리카락을 거칠게 헤집곤 했다. 쪽지를 건네받을 적을 회상하자니 머릿속이 견딜 수 없게 복잡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인생에 여자도, 고백받은 경험도 하나 없던 카이지가 생각해도 그건 데이트 신청이었다. 영락없는 데이트 신청.

 

“카이지 씨!”

 

카이지가 모퉁이를 돌아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맑게 인사하는 여자의 이름은 미코코, 봄에 피는 꽃의 색깔을 담은 코트 아래로 치마가 무릎 깨에 걸쳐져 있었다. 미코코는 그들에게 일면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녀가 카이지를 좋아하고 있단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열렬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아주 열렬하게!

 

행복하게 웃고 있는 미코코를 보고서 카이지의 걸음이 미세하게 더뎌졌음에도 둘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미코코는 곧 카이지가 다가올 짧은 새를 못 이기고 종종걸음으로 먼저 다가설 만큼 카이지를 좋아했다. 미코코는 카이지에게만 이끌리는 자석 같았다. 그런 미코코를 볼 때마다 난감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카이지와의 상성과는 별개의 일이었음에도 그러했다.

 

“보고 싶었어요. 카이지 씨는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카이지는 미코코가 곤란했다. 미코코가 숨길 새 없이 그대로 내비치는 호감이 부담스러웠고, 에둘러 하는 거절에도 그것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카이지는 식사, 그것도 단둘이서 하는 식사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미코코의 요청을 거절하려는 순간 사카자키의 부릅뜬 눈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카이지는 지금쯤 누구보다 게으르게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을 터였다. 사카자키의 눈동자에 입이 있었다면 ‘남는 거라곤 시간뿐이면서 같잖은 핑계로 거절하지 마라!’라고 말했을 것이다. 사카자키는 그의 딸 미코코를 끔찍이 아꼈기 때문에 미코코가 기뻐할 만한 일이라면 카이지가 들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이지는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한 미코코에게 무어라 대답하는 대신 그저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휘적이고는 나무로 된 손잡이를 밀었다.

 

가게 내부는 아담하면서도 깔끔했다. 휴일의 점심 시간대에 맞춰 자리는 비어 있는 곳보다 차 있는 곳이 많았고, 작은 공간을 채우는 적당한 대화와 웃음소리로 활기가 돌았다. 천장에 달린 밝은 조명은 카이지가 선택한 구석진 자리까지 빛이 환하게 들었다. 새삼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평범한 일상이 카이지에게 어색하게 다가왔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막일을 하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편한 옷을 입고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공간에서 불안감에 쫓기지 않으며 제대로 된 끼니를 먹는 것은 그에게 퍽 오랜만인 일이었다. 이렇게나 눈물겹도록 평범한 일상이라니, 카이지는 등받이가 있는 목제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맞은편의 미코코에게 어색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써 노력해야만 했다.

 

“괜찮은 곳이죠?”

“어, 어….”

“이 주변엔 괜찮은 곳이 많으니까 앞으로 카이지 씨랑 자주 오면 되겠네요.”

 

카이지는 미코코가 대답하기 곤란한 말을 할 때면 멋쩍게 웃었다. 돈코츠 라멘으로 하겠단 카이지를 따라 미코코도 같은 걸 주문했다. 첫 데이트 장소로 라멘집이 과연 어울리느냐의 문제는 카이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랑하기만으로도 바쁠 시기를 어두침침한 도박장에서 탕진한 그는 귓등으로라도 연애담을 스쳐본 적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게 있냐는 미코코의 질문에 그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을 반사적으로 툭 던졌을 뿐이었다. 분명 노역장에서 나오게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해주겠다며 다짐했던 카이지였으나, 막상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니 들끓던 욕구도 푹 꺾여버렸다. 느슨한 일상에서 손만 뻗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들과 제한된 상황에서 겨우 짜내어 맛본 쾌락의 무게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간극에서 찾아오는 괴리감으로 카이지는 라멘이 나오기 전까지 미코코와 무슨 얘길 나누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기, 카이지씨는 어떤 타입의 여자가 좋아요?”

 

카이지는 하마터면 먹던 라멘을 도로 뱉을 뻔했다. 미코코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거침이 없었고 거기에 진땀을 빼는 건 언제나 카이지였다.

 

“뭐, 뭐라고?”

“저, 카이지 씨의 이상형이 궁금해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카이지에게 미코코의 시선이 콕 붙었다. 카이지는 별안간 유리잔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 게 갑자기 왜… 궁금한데?”

“그거야 카이지 씨가 좋아하는 타입을 알아야 절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카이지는 눈을 질끈 감고서 어째서 미코코가 자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했다고 보기엔 자신을 스스로를 돌아보기에도 여자를 한눈에 사로잡을, 그럴만한 멋진 점은 없었다. 그렇다면 시간을 들여 서서히 반했다, 그렇다기엔 미코코는 거의 첫 만남부터 카이지에게 푹 빠져있었다. 이것도 아니라면 사카자키에게 무슨 이야긴 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럴듯한 생각이 카이지의 뇌리를 스쳤다. 일개 도박으로 따낸 돈일지라도 크게 한몫을 해낸 카이지로인해 가족이 화합하게 되었고, 미코코는 그런 자신을 한꺼풀 쯤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이보다 나은 정론은 없을 것 같다며 카이지는 짐작했다. 카이지는 빠르게 현실 속으로 돌아왔다.

 

“그런 거 생각해본 적 없어!”

“거짓말, 그럴 리가 없는데, 맨날 숨기기만 하고 카이지 씨는.”

 

거짓말이라기엔 카이지는 솔직히 이상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연애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형에 대해 떠올려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엔 확연히 다른 인과관계가 있었다. 그는 이성에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애초에 누군가와 연애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스스로 그러한 생각에서 멀어지는 것을 택했다. 실로 패배자다운 사고방식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보통 누군가가 호감을 드러낸다면 정도껏 호응은 해주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나아가는 방식일 터였다. 그러나 카이지는….

 

“구, 굳이 말하자면……”

 

지나치게 솔직했다!

 

“예쁜 여잔가…?”

 

눈치도 없었다! 손을 꼭 모은 채 두근대는 가슴을 졸이며 카이지의 대답을 기다리던 미코코의 어깨가 늘어졌다. 생기 있던 목소리가 물에 빠진 동전처럼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전 예쁘지 않아서 끌리지 않는 거예요?”

 

카이지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자각도 없이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일단 되는대로 말하고 상황을 어떻게든 어물쩍 넘기려 했던 카이지는 축 저진 미코코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카이지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미코코를 향해 과장되게 손을 저었다. 미코코를 기분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어떻게든 이 질문을 넘기기만 하면 될 거라는 안일한 기질이 상황을 악화시켜버렸다.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미코코!”

“그럼 뭔데요 카이지 씨는 제가 싫어요?”

 

카이지는 그게, 그게, 라며 이어지지 않는 말을 반복했다. 이런 상황은 겪어 본 적도 없고, 당연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답이 나오지 않는 카이지의 머리가 이리저리 핑핑 돌았다. 여기서 더 잘못하면 울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카이지의 머리를 더욱더 조였다. 카이지의 행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본심이지만, 그가 미코코를 싫어해서 껄끄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필사적으로 미코코를 피하는 것은, 왜냐하면….

 

“잠깐 나가자! 나가면 제대로 얘기해줄게!”

 

서로 목소리가 커진 탓에 이목이 쏠린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카이지는 미코코에게 눈짓으로 입구 쪽을 가리켰다. 미코코는 그런 카이지를 슬픈 눈으로 가만히 응시하다 먼저 자리를 옮겼다.

 

 

 

“그… 내 말 좀 들어봐 미코코.”

 

카이지는 식당을 나서기 전 미코코의 표정이 신경 쓰여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미코코는 카이지 앞에서 밝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에, 이렇게나 슬픈 표정을 지은 미코코는 카이지에게 처음이었다. 카이지가 먼저 말을 건넬 때면 언제나 아이처럼 눈을 빛냈던 미코코는 지금은 미동 없이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카이지는 신중해야 했다. 그물그물한 속에서 최선일 말을 고르고 골라내며 미코코를 조심스레 곁눈질로 살폈다. 주머니 속에서 담뱃갑이 카이지의 손가락을 타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카이지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오해 없이 제대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미코코가 싫은 게 아니야. 그래,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 그냥 빚쟁이였을 뿐이었어. 하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이 살다가… 이제 겨우 빚이나 갚고 나온 거야. 스스로 이런 말 하기도 질리지만, 객관적으로 절대 좋은 사람 같은 게 아냐. 그러니까, 그래,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 솔직해져야 했다.

 

“그런데 왜, 날…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

 

카이지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어만 갔다. 말과 말 사이가 드문드문 떨리기도 했다. 그만큼 진심을 드러냈다. 카이지는 물밀듯 밀려들어 오기 시작하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미코코의 시선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카이지를 향했다. 카이지는 여태껏 보여준 적 없었던 붉어진 얼굴을 손등으로 겨우 덮고 있었고 미코코는 그만 대답할 새도 잊고 멍하니 카이지를 바라보았다.

 

미코코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카이지는 점점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겨울바람이 잔잔히 그를 스쳐 지나감에도 한여름 속에 있는 듯한 더위를 느꼈다. 눈이 가려져 미코코의 표정조차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확인할 용기도 없었다. 손등으로 얼굴을 반절이나 가리고 있었지만, 이미 다 들켜버렸다고 생각했다. 카이지가 알 수 없는 손 하나 너머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정적만이 흘렀다. 그 참을 수 없는 고요함에 카이지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입가가 의지를 벗어나 떨렸다.

 

“카, 카이지 씨….”

 

정적을 깬 것은 미코코의 목소리였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카이지의 손을 따뜻한 손가락이 느리게 잡아 내렸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으면 도와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이제는 아빠도 있고, 저도 있으니까요, 미코코가 덧붙였다. 카이지는 분명 지금쯤 가장 부끄러워하고 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시야에 들어온 미코코도 어쩐지 만만찮게 쑥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해답이 된 듯 미소로 풀어진 표정이었기에 그제야 카이지는 안심했다. 안도감에 한숨을 쉬는 것처럼 카이지는 내뱉었다.

 

“미안….”

 

미코코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런 카이지씨가 너무 좋아요. 반드시 카이지 씨가 절 좋아하게 만들 테니까요!”

 

미코코는 카이지를 흔들림 없이 바라보며 다시 생기 넘치게 웃어 보였다. 결의에 넘치는 모습이 과연 미코코다워서 카이지도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하얀 입김이 시린 공중으로 점점이 퍼져나갔다. 열이 오른 얼굴에 닿아 오는 차가운 바람을 그들은 기분 좋게 느꼈다. 겨울과 봄, 둘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캄캄하고 싸늘한 그늘 사이로 아침 햇살이 몇 번이고 한결같이 파고들면 시나브로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분명 그들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느리게나마 물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둘을 감싸는 겨울 햇볕은 여전히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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