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요시키
발화점 (Ignition Point)
에스
아직 두 명밖에 안 됐다고…? 다음은, 죄수번호 3번. 요시키…
요시키
실례.
에스
으악! 무슨 짓이야! 이거 놔…!
요시키
…… 쳇. 기묘한 일이군. 제압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막상 힘이 들어가지 않다니……. 이봐, 이건 무의식의 어쩌고 같은 건가? 최면이라든지.
에스
사람을 덮쳐 놓고 뻔뻔하게 되묻네… 시스템적으로 간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했어. 자세한 사항은 나도 잘 몰라.
요시키
호, 그런 것치곤 성실한 대답이잖아. 카이치 씨도 네가 아는 건 많지 않아 보인다고 했고… 어쩌면 이쪽을 쳐봤자 의미 없을지도.
에스
꽤 기분 나쁜데 한 대 쳐도 돼?
요시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너, 탈출에 협조할 생각이 있나?
에스
탈출? …… 없어. …… 아직까지는.
요시키
요컨대 ‘하는 거 봐서’인가. 수를 쓰네.
에스
딱히 그런 생각은 아니었지만. 얼추 비슷하기는 하네. 경우에 따라서는 협조할 수도 있어. 예를 들어… ‘탈출’을 돕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면.
요시키
도움? 어디에?
에스
잣대를 세우는 데에.
요시키
아아…… 그 잘난 [용서]의 잣대 말이로군. 네가 혼자서 고심하고 쌓아올려 봤자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그야말로 탁상공론이다.
에스
그렇게 말해도…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별로 흥미 없는걸.
요시키
그렇다면 네가 세우는 그 잣대는 무엇을 위해서지?
에스
……. 잘… 모르겠어. 개인적인, 호기심?
요시키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오는군. 네가 용서한다느니 하지 못한다느니 고상한 소리를 떠들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사람은 죽고 사회는 병든다. 쓰이지 못할 지식 따위 단순한 신선놀음이야.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기술 따위가 포르노그래피에 불과한 것처럼. 언제나 목적을 생각해라.
에스
놀고 싶었을 뿐인데 혼났다….
요시키
그러니까 그런 안일한 태도가 열받는다는 거야. 도덕이나 윤리가 대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네 지적 유흥을 위해서는 아닐 거 아닌가.
에스
그럼 반대로 요시키는 도덕이나 윤리가 왜 존재한다고 생각해?
요시키
사람이 사람임을 지키기 위해서.
에스
즉답하네….
요시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할 정도의 오만함이라면 그에 걸맞는 책임은 져야지. 개인은 우주 속 티끌만도 못한 존재인데, 고작 그 하나가 기분 좋아지기 위한 욕구 따위로 다른 생명을 침범하고 유린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에스
음… 그럴듯하네. 계속해봐.
요시키
애초에 그런 알량한 뇌 속의 호르몬 반응 현상에 수많은 희생이 뒤따른다는 건 잘못됐어. 적어도… 무의미하게 소비되어서는 안돼.
에스
그렇다면… 요시키의 살인은 의미가 있었나 보네.
요시키
그걸 살인, 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숭고한 선택을 더럽히지 마.
에스
그래. 그렇다면 그 [선택]의… 목적은 뭐였어?
요시키
…….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에스
그래서, 나한테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어쩐다 한 건가. 효과는 있었어?
요시키
있기를, 바랐어. …… 아니, 그 뒤에 눈 떠보니 여기였는데 네가 물어볼 질문이냐.
에스
그랬나…….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니까. 애초에 나도 아무런 기억이 없고.
요시키
마음에 안 드는군. 기억상실 간수와 기약 없는 감옥 놀이라니.
에스
기약이라면 3심이 끝날 때까지이다만.
요시키
그게 정확히 언젠데?
에스
…….
요시키
그것 봐라. 그런 걸 보고 기약이 없다고 하는 거다.
에스
그렇네. 나한테 주어지는 시간이… 얼마인지는 나도 모르는 거네.
요시키
힘 빠지는 소리. …넌, 자신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안 하는 거냐.
에스
그쪽은 별로. 궁금해야 하는 거야?
요시키
하…. 그야 네 마음이지. 그저 너도 이 밀그램이라는 감옥의, 실험자 신세라면… 탈출할 때 빼고 갈 수는 없겠군, 이란 생각을 했을 뿐이다.
에스
어라. …… 의외로 상냥하네. 에루의 말이 맞았을지도.
요시키
에루 녀석, 무슨 소릴 하고 간 거냐….
(종소리가 울린다.)
요시키
심상 추출인가, 그건가.
에스
눈치가 빠르구나. 각오는 돼 있어?
요시키
이제 와서 할 것도 없어. 언제든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살아왔으니까. 네가 용서하든, 하지 않든, 달라질 건 없어.
에스
으음, 과연 어떨까… 그 부분은 조금 흥미가 생기네.
요시키
절대로.
에스
그래. 그렇다면……. 죄수번호 3번, 요시키.
너의 죄를 노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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