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히마리
어둠 속의 눈빛 (tapetum lucidum)
에스
…….
히마리
…….
에스
…… 죄수번호 4번, 히마리. 너무 뚫어지게 보는 거 아니야?
히마리
분석은 중요하니까.
에스
되려 내가 심문받는 기분이네……. 본인이 죄수라는 자각은 있어?
히마리
그건 오판이라고 말하고 싶네. 업무 중 사고를 살인이라고 하면 누가 위험한 일 같은 걸 하고 싶어 하겠어?
에스
히마리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어?
히마리
대체적으로. 뒤쪽의 일이라는 거지. …너무 알면 다친다.
에스
하지만 아는 게 내 일인걸. 밀그램 내에서는 안전한 것 같으니까, 안위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마.
히마리
…흐응, 밀그램 내에서는 안전하다라. 왜 그렇게 생각해?
에스
이것저것 죄수들을 제한하는 장치가 있더라고.
히마리
그래, 그 시스템 말인데……. 요시키가 말해줬어. 덤비는 것까진 가능했지만, 정작 본격적으로 제압하려고 했더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그건… 무슨 메커니즘이지? 어떤 물리적인 설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지?
에스
좀 신나지 않았어?
히마리
그야! 신기술이잖아!!! …… 흠. 말대로 조금 들뜬 것 같긴 하네. 잊어줘.
에스
기억해 둘게.
히마리
잊어.
에스
여긴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 많구나. 나를 포함해서.
히마리
너 말야. 알고 있는 거… 정말 없어?
에스
슬슬 대답하는 것도 질리는데 다음 사람한테는 그만 물어보라고 해주면 안될까?
히마리
그래도 간수라는 위치니까, 너만이 알 수 있는 정보 같은 게 있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도, 물론 있겠고.
에스
…엇, 그건 그런가. 확실히 나는 구속도 되어있지 않고, 특별하게 제한된 행위도 없으니까.
히마리
흐음, 흐음……. …에스 군, ‘판단의 잣대’를 세운다고 했었나.
에스
응, 지금 제일 관심 있는 분야야.
히마리
그걸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밝혀내야 하는 거고.
에스
노력하고 있어.
히마리
나랑, 거래할래?
에스
거래?
히마리
정보의 거래. 나, 알고 있는 게 꽤 많거든. 값은 꽤 비싸지만? 이런 상황이니까 특별히 물물교환으로 해줄게. 요컨대…… 에스 군만이 알아낼 수 있는 이 감옥에 대한 정보. 그런 것들을 알려주면, 나도 에스 군이 가지고 싶어 하는 정보를 줄게.
에스
그건…… 재밌어 보이는 제안이네. 하지만 왜? 히마리는 그걸 알아서 뭐가 좋은데?
히마리
필요하기도 하고… 개인적 호기심 충족도 겸사겸사. 알아? 정보라는 건 그 자체로 많은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열쇠가 되거든.
에스
알 것 같아. 쌓기 놀이에서 블럭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히마리
갑자기 웬 놀이 얘기? 여하튼,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런 장사는 안 하는 타입이거든. 어때?
에스
재밌어 보이니까 할래.
히마리
나 참…… 애냐.
에스
아마도 애일걸.
히마리
그럼, 정보는 얻는 대로 보고해줬으면 해. 참, 그리고 보급품 신청을 받던데 말야. 인터넷까지 바라진 않지만, 컴퓨터 정도는 반입해줄 수 없어?
에스
기계는 잘 모르지만…… 어디에 쓰려고?
히마리
있으면 어떻게든 쓰게 돼 있어. …없으면 불안하기도 하고.
에스
컴퓨터 중독…
히마리
아니야.
에스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고려는 해볼게.
히마리
…….
에스
왜?
히마리
아니, 새삼. 간수라는 것치곤 꽤나 권한이 없구나, 싶어서.
에스
어…… 그야……. 나는 밀그램 바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까… 보급품 같은 건 잭카로프를 거쳐서 조달한단 말야.
히마리
그 잭카로프 말인데. 에스 군에게는 말을 건다며?
에스
카이치도 물어보던데, 놀라운 일이야?
히마리
놀라울 일이지. 이게…… [현실]이라면?
에스
…… 무슨 뜻이야?
히마리
에스 군은 SF 같은 거 좋아해? 난 꽤 좋아하는 편.
에스
공상과학물?
히마리
그래.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차이는… 실현 가능성과 설득력이거든.
에스
그렇구나. 갑자기 그건 왜?
히마리
으응, 그냥 말이지.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현상들이 어쩌면,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은 아닐까 한 거야.
에스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히마리
누군가의 프로그래밍으로 돌아가는 세계라면 많은 것이 설명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필요해. 이곳이 무엇인지 판단할 단서가.
(종소리가 울린다.)
에스
우왓, 벌써 시간이.
히마리
뭐야? …심문 끝? 간단했네.
에스
야, 얕보였다.
히마리
아닌데. 꽤 높이 사고 있어.
에스
내내 휘말린 것 같지만 말이야…. 이제, 심상을 추출해야겠지.
히마리
미리 말해두겠지만 아프거나 힘든 건 사양이야.
에스
그럴 일은 없어!
히마리
…잊지 마? 우리, 교섭한 거야. 대가는 선불, 거래는 공정. 알겠지?
에스
알겠어. 뭔가를, 알아오면 되는 거지.
죄수번호 4번, 히마리.
너의 죄를 노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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