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

01. 카이치

딥 원 (ディープワン)

(에스의 발소리. 심문실 문이 열린다.)

카이치

왔군요, 에스 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스

그래, 심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카이치

네,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잔뜩 있거든요.

에스

시작부터 특이하네. 죄수번호 1번, 카이치. 밀그램은 너희를 살인죄로 입건했고 내게 그 판결을 맡겼어. 두려움이나 죄책감 같은 건 없어?

카이치

하하,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해도 되죠?

에스

응, 묵비도 거짓말도 인정. 특별한 시스템으로 너희의 기억에서 직접 심상을 추출할 수 있대. 심문은 어디까지나 서브고, 메인은 그 노래야.

카이치

신기하네요. 그런 게 있다면 일이 백 배는 재밌었을 텐데.

에스

카이치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보고 싶어 하는 타입인가.

카이치

이왕 하는 일이면 재미있는 편이 좋지 않나요.

에스

무슨 일을 했는데?

카이치

‘노래’가 없을 뿐이지 에스 군과 비슷해요. 말과 행동을 보고 심리와 사고를 읽는 겁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제겐 판결권이 없단 거네요. 있었어도 사양했겠지만. 윤리 공방은 질색이거든요.

에스

왜? 꽤 재밌는 일인데. 세 번의 기회 안에 올바른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같은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카이치

삼심제로군요. …… 그런가, 에스 군은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에스

바로 그걸 알아내려고 하고 있어.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지와, 그 잣대는 무엇으로 세워야 할지.

카이치

…….

에스

왜 그래?

카이치

아뇨, 어쩌면 에스 군은 저와 동류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에스

잭카로프도 카이치를 동족의 느낌이 난다고 하던데. 아직까지는 공통점을 모르겠어.

카이치

하하, 그래요? ——그렇구나, 조금 마음이 놓이네. 너라면 뭐든 납득이 갈 만한 답을 내놔 주겠지.

에스

그걸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힘내 볼게.

카이치

응, 응. 기대하고 있을게요. 자, 더 물어보고 싶은 건?

에스

‘죄’에 대한 건 직접 보고 듣기로 하고…… 감옥의 분위기라든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든가?

카이치

아하하, 분위기 말이죠. 꽤 성격들이 걸출나서 말이에요. 벌써부터 이 ‘밀그램’이 무엇인지, 배후에는 누가 있는지, 그런 것들을 파악하고자 뭉치고 있단 말이죠. 정보 수집과 교환, 협력과 의심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정신 차리지 않으면 반역당할지도 몰라요?

에스

그건 곤란하네. 참고해 둘게.

카이치

전혀 곤란해 보이는 표정이 아닌데. 꽤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에스

그야 곤란한 것과 재밌는 건 별개니까.

카이치

하하, 이런 면이 정말. …… 에스 군, 몇 살 정도죠?

에스

아마, 16세?

카이치

비슷하네. 조금 그리운 기분이 됐어요.

에스

혼자서만 알아들을 얘길.

카이치

그래도 이번에야말로,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욕이 나기도 하네요!

에스

그러니까 혼자서만 알아들을 얘길.

카이치

아하하, 미안합니다. 이번엔 이쪽에서 질문. 에스 군의 판결이 끝나면 어떻게 되나요?

에스

나도 거기까지는 몰라. 내게 맡겨진 건 [용서한다] [하지 않는다]의 판단 뿐. 뒤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들은 바 없어.

카이치

흐음, 그런가. …… [용서한다] [하지 않는다] 군요. [유죄], [무죄]가 아니라.

에스

이미 정해져 있는 법이라는 잣대를 쓸 거면 굳이 내게 맡기는 의미가 없겠지.

카이치

다른 말로, 그렇게 해서 이루고 싶은 목적이 무엇인가가 궁금해지네요. 그래, 아까 말한 잭카로프 말이죠. 에스 군에게는 뭔가 말을 걸고 있나요?

에스

응, 상당히 떠벌거려.

카이치

저희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지만. 뿔 달린 토끼라는 거, 미확인 생명체잖아요? 완전히 허무맹랑하지만도 않지만, 그렇다고 실재하는지도 불확실한. 상상의 존재와는 다른, 실존의 ‘가능성’이 있는 존재.

에스

상당히 세세한 분류네….

카이치

후후, 판단의 근거는 이런 디테일에서 드러나곤 하니까 익숙해지는 편이 좋아요. 요컨대, 이 밀그램이라는 건, 어떤 영적이거나 신화적인 공간이 아니라, 분명히 현실에 기반하지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곳임을 은유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에스

…… 그거, 중요해?

카이치

그럼요? 인간의 인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다르니까요.

에스

정말로 ‘해결’할 생각인 거구나, 너희들….

카이치

어떨까요? 저는 아직까진 중립이랍니다.

에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너희들의 행동도 바뀌는 거지. 음, 알겠어. 평범한 윤리나 도덕관뿐만 아니라, 벌어질 일의 결과까지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거네.

카이치

하하, 말에 실린 무게 치고는 꽤나 즐거워 보이네요.

에스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푸는 보람이 있어지니까.

(종소리가 울린다.)

카이치

어라, 슬슬 수다 시간은 끝인가 본데. 어때요? 만족스러웠나요?

에스

그럭저럭. 적어도 네 성격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카이치

손해본 느낌이 아니었다면 다행이에요. 전 꽤나 수확이 있었어서. 이런 건 주고받는 게 비슷해야 이후로도 원만하단 말이죠.

에스

뭐, 사실 나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이쪽이 다행인 게 아닐까. 지금부터 심상을 추출할 건데, 각오는 됐어?

카이치

네에. 궁금하니까 제게도 슬쩍 보여주셨으면 좋겠지만.

에스

그건 안 돼. 자, 그럼…… 죄수번호 1번, 카이치.

너의 죄를 노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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