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iking Distance 1
명헌우성
* 모든 설정은 2차 창작을 위해 날조 및 변형된 것이며, 실제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날조, 캐붕 주의
탐정과 사무장 둘뿐인 사무실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건 다 사무장이 부지런한 덕이다. 보통 사무장의 업무라 하면 접수된 건의 대략적인 검토 및 관련 상담, 고객 영업, 추후 클레임 처리 등의 탐정업 보조 업무다. 사무실 관리·유지 및 의뢰비·성공보수 수납, 세무법인 기장이나 간단한 경리 등의 업무는 별도의 직원을 한 명 더 두고 맡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럴 여력이 되지 않는 영세한 사무실의 형편상, 사무장인 노베 마사히로가 2인분의 일을 하고 있다. 깔끔한 성격의 노베는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 화분 관리, 커피머신 청소, 화장실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잡무를 군말 없이 해내고는 했다. 노베는 그런 걸 불평불만할 성격은 아니다. 노베가 불만을 갖는다면 그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기인한다.
가령 이 사무소의 소장이자 사무실을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후카츠 카즈나리가 사건 조사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일주일째 신문과 잡지만 들여다보고 있다든가 하는 것.
후카츠 카즈나리라는 남자란 그렇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신문에 코를 박고 있을지언정 늘 검은색 혹은 회색 양복을 멋들어지게 챙겨 입은 채다. 넥타이와 커프스도 빼놓지 않는다. 머리도 늘 단정하게 잘 빗어 넘긴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고, 면도도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게으른 탐정의 트레이드마크일 것 같은 담배 쩐 내가 잔뜩 밴 트렌치코트, 노랗게 물든 와이셔츠 깃, 제멋대로 자란 수염과 피지로 번들거리는 피부, 프림이 들어간 믹스커피를 달고 사는 탓에 위염을 동반한 입 냄새…. 확실히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탐정이기 이전에 자영업자로서 모범적인 자세임은 맞았다. 셜록 홈즈나 에르퀼 푸아로도 자신을 꾸밈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다고 묘사되니까…. 물론 후카츠 카즈나리가 그 둘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려면 갈 길이 한참 멀다.
그 둘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기 위해선 일단 신문을 접고 파일철에 곱게 끼워 둔 의뢰 내용부터 분석하는 게 맞겠지만….
일간지의 실황 기사든 주·월간지의 르포 기사든 전부 인터넷에 게재되고 손 쉽게 스마트폰을 통해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카츠는 종이 신문을 고집했다. 밑줄 치고 스크랩도 해야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건 요즘엔 태블릿으로 다 된다고 노베가 말하자 후카츠는,
- 실물은 소각하면 된다뿅.
- 무슨 소리야?
- 태블릿은 디지털 포렌식이 된단 얘기다뿅.
라고 하며 신문을 사각사각 오려 스크랩을 하는 것이다.
사무실에 있는 책장에는 후카츠가 그 동안 처리한 사건 관련 서류보다는 스크랩북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스크랩북의 내용엔 딱히 일관성이 없다. 보이스피싱, 다단계 유사수신, 방화, 절도, 불법풍속업소 영업, 가짜 명품 유통, 의약 리베이트, 강간, 성추행, 스토킹, 영업기밀유출, 환치기, 대마, 필로폰, 주거침입, 뇌 물, 횡령, 집단폭력, 임금체불, 가정폭력, 보험사기, 해킹, 음주운전 등의 혐의사실을 실은 기사들은 공통점과 연속성을 갖지 못한 채 개체화되고 파편화된 사실의 나열로만 보였다. 스크랩이라면 어떤 주제를 갖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게 노베의 견해였다. 저건 그냥 수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모아둔 것일 뿐이라면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경제적일 테다.
그러니 후카츠가 쓸모없는 스크랩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게 노베의 솔직한 심정이다.
탐정이라는 사람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닌 데 비해서 사무소를 찾아오는 의뢰인은 의외로 있는 편이다. 입소문이나 소개를 통해 오는 사람도 없고, 딱히 전단지나 명함, SNS 홍보를 진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소를 꾸준히 찾는 의뢰인이 있는 건 사무소가 워낙 목이 좋은 곳에 있는 덕이다. 카스미가세키·신바시·긴자의 교차점, 그곳에 자리한 9층 빌딩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후카츠 탐정사무소>라는 간판은 밖에서 볼 때 참으로 시인성이 뛰어났다. 그 간판에 이끌린 풋내기 손님이 하나씩 들어오고는 했다. 탐정에게 일을 맡겨볼 생각은 처음이라, 어디에 일을 맡기는 게 좋을지 알 수 없던 차에 간판에 이끌려 들어 온 선량한 초짜들이다.
탐정에게 맡기는 일은 보통 둘 중 하나다. 첫째, 수사기관에서 처리해주지 않는 일. 둘째, 수사기관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일. 전자는 흔히 흥신소 스타일의 업무에 가깝다. 배우자의 불륜 증거 찾기, 연락이 끊긴 첫사랑 찾기, 약혼자의 뒷조사, 경쟁 상대방의 흠 찾아내기 등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일들이다. 후자는 수사기관에 신고든 고소든 했지만 오랜 시간 해결되지 못한 채 미제로 남거나,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된 건의 해결. 이런 건들은 정말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에 나올 법한 일이다. 하지만 후카츠 같은 영세한 개인사업자에게 그런 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하고, 그런 건은 보통 대형 탐정법인에 암암리에 의뢰가 들어간다고 한다. 물론 이쪽은 아주 불법에 가깝다.
그러므로 후카츠 탐정사무소에 들어오는 일이라 하면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압도적이다. 아니면 간혹 집 나간 고양이나 개를 찾는 일. 지금 후카츠 탐정 사무소에 있는 2건의 미제도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의뢰인은 남편이 긴자의 마담과 불륜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는 40대 후반의 ○○씨, 그리고 아내가 회사 동료와 불륜하는 것 같아 뒷조사를 맡긴다는 30대 중반의 △△씨였다. ○○씨는 열흘 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선수금 5만 엔을 내고 갔고, △△씨는 닷새 전에 지금은 돈이 없어서 곤란하다며, 불륜 증거를 잡아 내면 성공 수당을 많이 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보증금 개념으로 만 엔을 내고 갔다. 도합 6만 엔, 노베에게는 그게 꼭 빚처럼 생각됐다. 빚은 일을 해서 갚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후카츠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문제이지만.
노베는 잘 닦인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신문을 보는 후카츠의 면전에 들이댔다. 날씨가 꽤 쌀쌀해진 지 오래건만 커피에는 얼음이 잔뜩 담겨 있었다. 노베는 냉수 먹고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돌려서 하는 남자다. 후카츠는 신문을 접고 커피를 받아 들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 뭐가 불만이냐뿅.
- 일을 해야지, 후카츠. 사무실에 들어 온 의뢰 건들 말이야.
노베의 말에 후카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 그런 일은 재미없다뿅.
- 일이 재밌어서 하는 사람이 어딨어?
- 난 재밌으려고 일하는 거다, 뿅.
이 무슨 이상적인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일을 재미있게 느끼고, 그를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는 건 이론적으로야 아주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일’이란 건 그렇게 되지 않는 법이다. 돈을 버는 데에는 어쨌든 너저분하고 치졸하며 모욕적인 부분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걸 배제하고자 함은 다소 어른스럽지 못한 발상이라고 노베는 생각하고 있는 바였다. 그러니까 노베는 후카츠가 이런 말을 할 때 꼭 어린 아이를 달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 후카츠, 우린 어른이고. 어? 들어온 일은 제대로 해야지. 책임은 져야지. 들어 온 의뢰가 있고, 그게 미제로 남아 있잖아.
- 그거 안 해도 된다, 뿅.
- 왜?
- 불필요하니까, 뿅.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 노베를 보며 후카츠는 빠르게 덧붙였다.
- ○○씨의 남편은 불륜이 맞다뿅. 하지만 ○○씨는 남편과 이혼할 생각은 없다뿅. 그냥 심증을 물증으로 확실하게 굳히고 싶을 뿐. 하지만 이혼할 생각이 없다면 물증을 갖고 있는 게 오히려 지옥이 된다, 뿅. 그러니까 ○○씨는 이틀 안에 의뢰 취소하고 계약금 환불해 달라고 할 거다, 뿅.
- 그럼 △△씨는?
- △△씨의 아내는 불륜 안 한다, 뿅. △△씨가 의처증, 뿅. 불륜이 아니니 잡아야 할 증거도 없다, 뿅.
노베는 후카츠의 설명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진작 공유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이다.
- 그걸 바로 알았어?
- 바로는 아니고. 나도 사건 파일도 보고, 나름의 탐문도 했다뿅. 노베가 퇴근하고서.
- ○○씨는 그렇다 치고, 그럼 △△씨한테는 아내를 의심하지 말고 정신과에 가 보라고 바로 이야기해주는 게 맞지 않아?
- 정신 문제 있는 사람한테는 함부로 조언하는 거 아니다, 뿅.
노베는 일단 납득하는 척했지만 그러면 6만 엔의 처리가 문제가 된다. 전부 환불해줘야 한단 얘기일까? 그러면 이번달 사무실의 수입은….
하긴, 노베가 사무장으로 들어 온 이후 사무소는 흑자를 본 적이 없다. 항상 감당이 될까 싶을 정도의 적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카츠는 사무실 임대료도, 관리비도, 세금도, 노베의 월급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지급했다. 경영난에도 폐업 생각도 없어 보였다. 보통은 월급만 잘 나오면 사무소의 운영에는 별 생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노베의 책임감은 그런 적당주의를 막았다. 사무소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는 다소 구시대적인 직무 개념을 유지하고 있는 게 노베 마사히로였다. 그러니까 초조한 거다. 초조하니까 후카츠 카즈나리에게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후카츠가 도대체 무슨 돈으로 사무소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노베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 그렇다.
- 그러면 일을 아예 안 할 생각이야?
- 그건 아니다뿅.
- 그럼 어떤 일을 할 건데?
- 재밌는 일, 뿅.
- 재밌는 일이 뭔데?
- 일단 불륜 증거 찾는 일은 아니겠지, 뿅.
노베로서는 후카츠가 말하는 ‘재밌는 일’이 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사무소에 오는 일거리들 중 후카츠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없을 거란 것…. 그렇다면 사건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사건을 알아서 물어오는 게 맞지 않을까? 적어도 재미있는 일을 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일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건 좋은 자영업자의 자세가 아니다.
- 그러면 나가서 뭔가 찾아보는 게 맞지 않아?
- 안 그래도 경시청의 나으리랑 점심 예정, 뿅.
그 말을 듣고도 노베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후카츠와 밥 먹는 사람이면 뻔하다. 후카츠의 경찰 동기였다는, 출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 하나.
- 교통부의 그?
- 이제 교통부 아니다뿅. 이번 인사에 형사부로 발탁뿅.
노베는 그 말에 놀란 얼굴을 했다.
- 미츠이 히사시가 형사부로 갔다고?
- 맞다뿅.
- 수사1과? 수사2과?
- 수사1과뿅.
- 대박이네. 그럼 잘 보여야지!
노베는 반색을 하며 후카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잘 다녀오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건 덤이었다.
미츠이 히사시는 후카츠의 친구이며, 대학 동기이고, 경찰 동기이기도 하다. 후카츠는 경찰에 다닌 지 2년 3개월만에 직장을 그만뒀지만, 미츠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의 끝까지 경찰에 붙어 있을 거라고 저주에 가까운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다.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진 올라갈 거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긴 했는데 벌써부터 마음먹은 것처럼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공무원들의 점심 시간은 12:00-13:00으로 정해져 있지만, 도쿄뿐 아니라 전국의 핵심 부서들이 모여 있는 모여 있는 관가官街인 카스미가세키는 보통 11:30부터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점심 시간의 시작이다. 그 시각이 되면 이 건물 저 건물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 나오고, 근처의 식당가들도 곧 사람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따라서 카스미가세키 사람과 같이 점심을 먹자면 식당에 전화 예약을 해놓거나, 아니면 11:20쯤 식당에 미리 도착해서 자리를 맡아두는 게 좋다. 후카츠와 미츠이가 만나기로 한 식당은 예약이 되지 않는, 후미진 곳의 카페테리아다. 예약을 받지 않는 건 워크인으로도 손님이 차고 넘쳐서 그렇다. 토스트와 수란, 나폴리탄 스파게티로 된 정식에 드립 커피를 내 주는 세트가 명물이었다. 각 성의 국장이나 과장급도 꽤 찾는 곳이라고 명성이 자자했다.
후카츠는 일찌감치 사무소를 나섰다. 그새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빠른 보폭으로 휘적휘적 걷는 발걸음 사이사이에는 어느새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거리의 이벤트가 가득했다.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어둔 상점도 꽤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려면 아직 한 달 이상 남아 있었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진작에 크리스마스를 알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바로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된다. 시골에서 자란 후카츠는 가끔 도쿄 도심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낯설다. 상경한 지가 벌써 10년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낯설다는 감정을 사무치게 느낄 때엔 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도쿄에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정겨운 고향을 놔두고 굳이 타지에서 떠도는 사유는 명확했지만….
후카츠 카즈나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귀향할 생각이 없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후카츠 본인이 게이여서이다.
그리고 그건 후카츠가 경찰을 그만 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경찰은 미디어를 통해 꽤 근사한 정의의 수호자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거대한 악의 축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도 봉급 생활을 하는 공무원이다. 폐쇄성과 수직성, 그로 인한 보수성은 공무원 조직을 이루는 근간이나 다름없고, 경찰청은 그 중에서도 그 특성이 두드러지는 기관 중 하나다. 경찰에 다니는 남자라면 마땅히 아름다운 아내를 얻어 내조를 받고, 일과 사건에 매몰되는 것을 모범적으로 생각하는 쇼와 시대의 풍조가 내부에는 아직도 만연했다. 점점 분위기가 바뀌고는 있다지만 그런 풍조가 완전히 일소되기는 쉽지 않다. 워커홀릭을 표방하며 독신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결혼 눈치를 주는 곳이다.
후카츠가 경찰에 들어온 지 반 년쯤 됐을 때였나. 근무실적도, 성품도, 후배들 지도도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하고 있는 논캐리어 출신 주임 하나가 계속 승진을 못하고 있어서 후카츠가 의아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보다 떨어지는 사람들은 승진을 하고 있는 데도…. 보통 시험을 앞둔 사람은 시험에 전념할 수 있도록 비교적 한가한 자리에 배치를 해주는 게 공직사회의 관례이건만 그 주임은 경부 진급 시험을 봐야 하는 입장임에도 사건이 쏟아지는 계의 주임 자리에서 나가질 못했다. 딱히 세평이 나쁜 것도 아니고, 윗선에게 밉보일 타입도 아닌데 인사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걸 보고 후카츠는 궁금함을 숨기지 못했다. 주임님은 왜 바쁜 자리를 맴돌죠? 승진시험도 봐야 하는 사람이…. 그랬더니 눈치가 빤한 선배 하나가 후카츠에게 넌지시 귀띔했다.
- 주임님 능력 있고 성격 좋고 다 좋지. 근데 게이야. 그거 때문에 몇 년 전에 문제가 됐었어. 그런 사람을 누가 간부로 올리고 싶어하겠어? 하지만 일은 잘하니까 바쁜 자리에서 뺑이는 치게 해야지.
후카츠는 아아, 하고 납득했다. 그리고 아마 그때가, 후카츠가 경찰을 그만 둘 마음을 먹은 때인지도….
카페테리아 안은 벌써 꽤 자리가 차 있었다. 두 명이 앉을 곳을 안내해달라고 했더니 바 테이블에 앉으라 해서 알겠다고 했다. 미츠이는 후카츠가 도착하고서 15분쯤 있다가 모습을 나타냈다. 미츠이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던 후카츠는 옆에 미츠이가 앉자 손을 내리고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 담배 냄새 난다, 뿅.
- 미안! 근데 점심 먹으러 나올 때 아니면 담배 피우기가 쉽지 않아서.
그래서 연달아 두 대를 빠르게 피우며 왔단 얘기였다.
- 길빵했단 얘기, 뿅?
- 아, 좀 봐 줘라.
- 길빵하는 놈들은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 뿅.
후카츠는 경찰 출신이 보통 그렇듯 흡연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정해진 장소에서 피우는 게 좋다고 생각할 뿐…. 그러니까 노상 흡연은 딱 질색이다.
- 우리 계장이 담배 냄새를 싫어해. 요새 사무실에서는 다들 안 피우는 분위기니까 사무실에서야 참고 있지. 그런데 밖에 나가서 피우고 온 것까지 눈을 부라리면서 눈치주는 건 좀 심하지 않아?
- 건강이 안 좋은 걸수도 있지, 뿅. 몇 살인데, 뿅.
- 나보다 한 살 어려. 도쿄대 나왔고.
- 캐리어?
- 엉.
그 사이 미츠이는 식사를 주문했고 빠르게 음식이 나왔다. 미츠이는 토스트를 베어 물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댔다. 후카츠는 수란을 깨뜨려 나폴리탄과 섞고는 면을 포크에 둘둘 말아서 입에 넣었다. 익숙한 맛이 혀에 감도는 느낌이 좋다. 이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 덕에 공무원들이 이곳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걸지도…
- 계장 놈, 하여튼 좀 또라이 같애. 아니, 또라이가 맞아.
- 어느 점이, 뿅.
- 똑똑한 건 알겠는데 싸가지가 없어. 캐리어들 다 그렇긴 한데 캐리어 치고도 그래. 진짜 안 맞아. 재수 없어.
그렇게 미츠이는 같이 일한 지 한 달 조금 넘은 직장 상사의 험담을 끝없이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츠이 히사시는 지난 달에 있었던 정기 인사에서 형사부 수사1과 특명수사6계로 발령이 났다. 일부 범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며 수사1과 산하에 특명수사대책실이 설치되었고, 그 아래에 제 1, 2, 3, 4, 5계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6계가 신설되었고, 미츠이는 그 계의 주임으로 발탁됐다. 특명수사계는 보통 경찰 내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가는 곳이고, 누가 봐도 미츠이의 인사는 영전이었는데 미츠이 본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 내 생각에 여기, 수사하라고 만든 부서가 아니야.
- 그럼?
- 사람 찍어내려고 만든 부서지.
미츠이는 잔에 남은 커피를 쭉 삼켰다.
- 생각해 봐. 특명수사계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캐리어 출신 경부를 계장으로 앉히는 게 말이 돼? 거기다가 주임이 나인 건 또 말이 되냐?
- 둘 다 워낙 우수해서 그렇게 앉힌 걸수도 있지, 뿅.
- 나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
미츠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부라렸다. 이럴 때의 인상은 꽤 험악해서, 준캐리어 경찰관이 아니라 일선서 강력계에서 십 년 이상은 일한 논캐리어 같다. 그것도 좋게 말해주는 거고, 어느 땐 야쿠자 같은 느낌이 날 때도…. 미츠이의 말로는 어릴 때는 결코 그런 인상이 아니었는데, 고교 때 방황하느라 폭주족이랑 어울려 놀면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후카츠는 그 방황에 대해 자세히 캐물은 적은 없지만 어쩐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던 기세는 얼마 안 갔다. 미츠이는 이내 축 처져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 후카츠, 너 사무소는 잘 되냐?
- 그럭저럭?
잘 된다고 말하기엔 후카츠가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었지만, 원래 앓는 소리를 하면 잘 될 것도 안 되는 법이다.
- 나 잘리면 거기에 취직 좀 시켜줘라.
- 거절, 뿅.
- 아, 왜!
- 사무장이 유능해서 잉여 인원은 필요 없다, 뿅.
- 바닥 청소라도 할게. 먹던 컵 설거지도. 화분 키우기도.
- 사무장이 알아서 다 하고 있다, 뿅.
- 나 진짜 잘릴 수도 있을 거 같단 말이야….
미츠이는 보기 드물게 머리를 싸쥐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밥값은 각자 알아서 계산했다. 공무원한테는 밥을 사주지도, 얻어먹지도 말아야 하는 법이다.
식당을 나온 둘은 휘적휘적 거리를 걸었다.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 입은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꽤나 시선을 끌게 된다. 둘 다 남성 평균을 웃도는 키고, 후카츠는 미남이라고 하기 조금 어려울지 몰라도 미츠이는 확실히 미남 쪽에 속했다. 미츠이는 대학 때도 잘생겼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근사해졌다. 그건 후카츠도 마찬가지긴 했는데 여자에 관심이 없다 보니 그런 걸 느낄 기회는 없었다.
미츠이는 담배를 꺼내 물려다 후카츠의 눈총을 받고는 슬픈 표정으로 담뱃대를 집어 넣었다.
- 전자담배로 바꿀까봐.
- 그걸로 바꿔도 길에서 피우는 게 길빵인 건 변하지 않는다뿅.
- 그래도 전자담배는 연기도 안 나고 냄새도 안 나잖아. 냄새 때문에 계장 눈치 보는 것도 억울한데 이 참에 바꿀까?
하지만 후카츠는 미츠이가 연초를 고집할 것을 안다. 간지에 죽고 간지에 사느라 듀퐁 라이터를 쓰는 놈이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갈아탈 리가 없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미츠이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 후카츠.
- 뿅.
- 강력 사건이 일어나서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돼. 수사1과에 수사본부가 생겨. 관리관이 일선서 경관들 끌어모으고, 수사1과 인력이 몇 계나 모여 만들어진 대형 수사본부. 하지만 초동수사가 잘못된 건지, 범인이 지나치게 용의주도한 건지 사건은 해결되지 못하고 점점 미궁으로 빠져. 언론에서는 연이어 비난이 쏟아지고, 수사본부는 인원이 하나둘 빠지다가 해체가 돼. 사건은 결국 미제가 되고, 수사본부장은 경질이 돼.
- 그런 사건들이 종종 있지, 뿅.
- 그런 사건을 신생팀에 배당한 저의가 뭐겠냐고.
경시도 못 단 캐리어를 계장으로 앉혀두고는…. 미츠이는 머리를 싸쥐었다.
경시청 형사부를 받치고 있는 과라고 하면 역시 수사1과와 수사2과인데, 수사1과는 강력범을 수사하고 수사2과는 흔히 말하는 특수사건을 수사한다. 미디어에서는 캐리어 출신의 젊은 경부나 경시들이 수사1과에서 나대는 모습이 많이 비치긴 하지만 사실 수사1과는 캐리어 출신들이 가는 과가 아니다. 이건 강력사건과 특수사건의 차이점에서 기인한다. 강력사건은 일선에서의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초동 수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현장에서 발로 뛰어 본 사람의 전문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반면 특수사건이라 불리는 뇌물, 기업범죄, 대규모의 경제범죄 등은 자금 추적과 수사정보 수집, 다양한 사실관계와 증거의 법리적 해석이 중요하다. 그건 눈이 좋고 머리가 말랑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사1과는 일선에서 인정받은 논캐리어의 영역인 거고 수사2과는 젊고 유능한 캐리어와 준캐리어의 영역인 거다.
그런데 수사1과의 노련한 경찰관들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신설된 계에 배당했는데, 그 계의 계장과 주임 다 서른이 안 된 캐리어와 준캐리어라는 건 인원 구성에서부터가 문제가 있는 거다. 장기 미제 강력사건은 노련한 논캐리어 출신의, 수사경력 3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 맡아도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데 실무 경력이 얼마 되지도 않는 경험이 일천한 책임자를 앉혀두고 수사하게 하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수사 미진을 꼬투리로 삼아 책임자와 계원들을 전부 찍어내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미츠이가 조만간 잘릴 거 같다고 괴로워하는 이유가 다 있다.
- 그러니까, 배당된 사건이 뭔데 뿅.
- 그거.
- 그거가 뭐냐 뿅.
후카츠의 질문에 입을 열려던 미츠이는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후카츠에게 양해를 구하곤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미츠이의 얼굴은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뭣이! 를 연신 내뱉던 미츠이는 전화를 끊곤 후카츠에게 말했다.
- 후카츠, 나 잘릴 날 진짜 얼마 안 남았나보다.
- 도대체 왜 그러냐, 뿅.
- 지금 과장이랑 실장이 계장 데리고 기자회견 시작했대.
진짜 못 참겠네, 하고 미츠이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카츠는 이번엔 담배에 불을 붙이는 미츠이를 말리지 못하고 그냥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미츠이는 담배를 몇 번 급하게 빨더니 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비벼 끄곤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스트리밍 앱을 켰다. 뉴스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보기 위해서다.
화면에서는 기자회견 특유의 어수선한 플래시 세례가 터지고 있고, 기자회견의 당사자들은 차분하게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당사자들의 얼굴이 한 명씩 나오며 동시에 자막으로 당사자들의 이름과 나이, 직급이 띄워지고 있었다. 수사1과장, 특명수사대책실장 다음에는 특명수사6계장이 비춰졌다. 웬만한 배우 뺨치게 잘생긴 얼굴 밑에 띄워진 자막은 사와키타 에이지(27세), 경부, 경시청 수사1과 특명수사제6계장….
[경시청에서는 미제 사건의 선제적 해결에 중점을 두고, 장기 미제로 남아 있는 사건 중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건들을 특명수사계에 배당하여 사건 재개 이전에 사건 해결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경시청에 신설된 특명수사6계는 그런 중임을 맡은 계로, 롯폰기에서 연말마다 벌어지고 있는 미제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목표로 할 것이며….]
수사1과장의 딱딱한 브리핑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쩐지 처연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특명수사6계장, 사와키타 에이지의 얼굴을 후카츠는 잘 알고 있었다.
- 과장도 실장도 우릴 보내버리려고 작정했구만.
좌절하고 있는 미츠이 옆에서 후카츠는 넌지시 운을 띄웠다.
- 너네 계장이 사와키타였냐, 뿅?
- 우리 계장 알어? 어떻게? 만난 적 있어?
- 예전에 친했다, 뿅.
- 예전에 언제?
- 대학 때 잠깐.
눈을 굴리던 미츠이는 이윽고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렇게 보여도 미츠이는 기민하고 눈치가 빠른 편이다.
- 설마 사와키타가 니 구남친 중 하나냐?
후카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 묵비권의 행사는 부정보단 긍정의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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