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iking Distance 2

명헌우성


* 모든 설정은 2차 창작을 위해 날조 및 변형된 것이며, 실제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날조, 캐붕 주의

미츠이에겐 대학 때 잠깐, 이라고 하긴 했지만 1년 반은 잠깐이라고 하기엔 다소 어폐가 있었다. 1년 반은 어떻게 보면 짧지만 또 어떤 관점에서 보기엔 결코 짧지 않다. 더구나 갓 스무 살을 넘긴 시점에서의 1년 반 연애라면 인생의 가치관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 연애가 후카츠의 본질을 뒤흔들었다고까지 말하기엔 무리가 있어도, 후카츠에게 지워지지 않는 어떤 흔적을 남긴 건 자명했다. 시간이 이 정도 흘렀으니 그 흔적도 조금 옅어지긴 했다만…. 시간의 속성은 침식과 풍화인 탓이다.

사와키타 에이지를 알게 된 건 전시회를 보러 가서였다. 키가 훌쩍 크고 볼 캡을 쓴 남자애가, 후카츠가 전시에서 제일 보고 싶어 했던 그림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어서 그림을 보는 데 방해가 됐다. 그래서 후카츠는 그 남자애에게 조금 자리를 비켜줄 수 있냐고 물어보려 했다가, 남자애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남자애는 울고 있었다. 남자애가 그렇게 솔직한 얼굴로 우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로 우는 것도 후카츠는 처음 봤다.

젊은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사와키타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울고 있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그립고 원래 살던 집과 동네가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대학에 진학하느라 여태껏 살던 본가를 떠나 도쿄로 상경한 학생들은 한 둘이 아니다. 그걸 본가와 고향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고, 본가와 고향에서의 유리遊離라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후카츠는 전자고 사와키타는 후자였다. 사와키타는 후자 중에서도 향수병이 빨리 온 편이었다. 상경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부모를 보고 싶다고 줄줄 울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부모를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약해진 것치고 사와키타는 꽤 의연하게 굴었다.

- 그렇게 불쌍한 눈으로 볼 필요 없어요.

목소리도 어찌나 당당하고 냉정한지 다소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한번 울고 나면 괜찮아지니까….

그래도 후카츠는 자기 앞에서 눈물 흘린 미인을 그냥 지나칠 위인은 못 됐다. 정확히 하자면 사와키타가 아름다운 남자여서 그랬다는 게 맞다. 아마 여자였으면 별 관심 안 주고 그냥 제 갈 길 갔을 테다.

후카츠는 사와키타에게 밥도 사주고 마실 것도 사 주며 인적 사항 수집부터 했다. 본가는 시즈오카, 학교는 도쿄대. 문과1류의 1학년. 도쿄대의 신입생이라는 사와키타의 이야기를 듣고 후카츠는 어쩐지 사와키타의 당당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나 문과1류 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도쿄대의 입시와 커리큘럼은 여타 대학과 조금 달라서, 학부별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도쿄대는 문과 1·2·3류와 이과 1·2·3류로 신입생을 모집하여 1·2학년 때에는 전원을 교양학부 소속으로 해서 필수교양 강의를 듣게 하고, 2학년 겨울학기나 되어야 학부를 나누어 전공 강의를 듣게 한다. 문과1류로 입학한 대다수는 법학부에 진학하고, 법학부를 졸업한 대다수는 판사, 검사, 변호사, 또는 고위공무원의 길을 걷는다.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오며 안 그래도 수재나 영재 소리만 들었을 애들인데 빛나는 미래까지 눈앞에 보이니, 보통 도쿄대생들은 콧대가 높고 기세등등하다. 사와키타의 당당함도 그런 데에서 연유하는 것이리라고 후카츠는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사와키타의 오만함이 보다 본질적인 것임을 깨닫는 데엔 후카츠에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지만….

흔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건 쉬운데 사랑의 지속은 어렵다는 것. 감정이 크다고 이해의 깊이가 깊어질 수는 없다는 것. 기대와 현실의 불일치에 괴로워하고 있노라면 어느 새 상대방은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에 가 있다는 것. 후카츠는 사와키타와 급격히 가까워지고 서서히 멀어졌다. 무언가를 알아차렸을 때엔 이미 둘 사이의 틈이 봉합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었단 얘기다. 그렇게 헤어졌고 다시는 소식을 들을 일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분명히 후카츠의 기억으로 사와키타는 변호사 지망이었다. 그러니까 경찰이 되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를 따지는 게 웃기긴 한데 일단 사와키타는 경찰에는 안 어울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료 사회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판사도 검사도 사와키타의 적성에는 안 맞으니 당연히 변호사 지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후카츠는 사와키타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다. 둘의 관심사는 거의 현재에 존재했다. 유행하는 노래, 오늘의 저녁 메뉴, 주말에 볼 영화, 학교에서 있었던 우스운 사건, 시험 공부 이야기, 본가에서 받은 택배 이야기 같은 거. 의도적으로 그런 얘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어쩐지 사와키타와는 누구와 해도 무방한 신변잡기 이야기만 하게 됐다. 그건 오래 가지 못할 관계임을 본능적으로 예지함에 따른 거였을까? 후카츠는 새삼 가장 미래를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 시기에 각자가 생각하는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은 걸 우습게 여겼다. 불분명한 기억과 판단에 의존해 당연히 사와키타가 변호사 지망일 거라고 생각한 것도 그렇다. 후카츠가 경찰을 빨리 그만두지 않았다면 사와키타는 미츠이의 상사가 아니라 자신의 상사일 수도 있었다는 점을 후카츠는 무슨 블랙 코미디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을, 후카츠는 동시에 조금 안도했다. 

흔히들 관료 사회에는 소극적이고 조용하며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과 좀 다르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겠지만 싹싹하고 적극적이며 활발한 스타일이 인기 있는 건 관료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윗사람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능력(예를 들어 술을 잘 마시고, 아첨을 잘 하고, 상사가 원하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 상사의 불합리한 말에 토 달지 않고, 그러면서 실제 업무 능력과는 관계 없이 업무도 잘하는 것처럼 포장하는)을 갖추고 있어야 요직에 올라갈 수 있다. 공무원의 업무라는 게 성과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퍼포먼스보단 인사권자에게 잘 보이는 게 우선이다. 그러니 당연히 일만 잘하는 건 소용 없다. 일만 잘하고 그 외의 부가적인 것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승진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데 고생은 또 고생대로 하게 된다. 보상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일이 힘들고 사건·사고가 터지기 쉬운 자리에 가게 되는 게 그런 사람들인 탓이다. 

공무원은 승진에서 밀려나도 자리보전하며 다닐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승진에 목을 매냐 싶겠지만, 금전적인 부분에서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관료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동기 부여 수단은 승진이다. 인간은 의외로 동기와 목표에 절실하다. 동기와 목표가 없으면 그 순간 낙오와 도태의 길로 빠지는 걸 모두가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승진에 초연해 보이는 사람들도 후배가 치고 나가는 순간 안달이 난다. 승진에 안달하는 사와키타를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후카츠의 머릿속에서는 잘 상상이 안 됐다. 그러니까 사와키타는 관료 사회랑은 안 맞는다고 후카츠는 단언하는 것이다. 누가 후카츠에게 너는 그러면 관료 사회에 어울리는 성격이라 경찰에 들어간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별개의 이야기라고 대답하겠지만.

사와키타는 머리가 좋아서 판단이 빠르고 정확했는데 마음이 약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무르게 구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하다고 친절하게 구는 것 또한 아니었다. 향상심과 호기심, 솔직함이 극대화된 성격은 반면 배려심과 인화력, 자상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알고 보면 착한데 보면 볼수록 싸가지가 없고, 알고 보면 여리고 자상한데 또 어떤 부분에서는 매몰차고 비정했다. 객관성이 없지는 않는데 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타입이라 가끔 남자친구인 후카츠가 보기에도 재수 없긴 했다. 물론 후카츠는 사와키타의 그런 부분도 사랑했지만 남들의 눈에 그렇지 않을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미츠이는 잔뜩 뭐 씹은 표정으로 후카츠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급하게 복귀했다. 후카츠는 미츠이와 헤어지고 사무실까지 천천히 걸었다. 길거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와 냉기를 품은 공기가 사람들 사이사이를 채웠다. 사람들의 옷깃과 숨결을 헤치고 지나가던 후카츠는 불현듯 걸음을 멈추고 택시를 잡았다. 행선지는 롯폰기. 아까 그 사건의 이야기가 불러 일으킨 충동에 기인한 것이다. 특명수사6계에 배당됐다는 사건이 ‘그 사건’이라면, 미츠이가 죽는 소리를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사건의 첫 희생자가 나온 건 7년 전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로 가득 찬 롯폰기의 번화가에서 첫 희생자가 나왔을 때엔 아무도 그 건이 연쇄 살인의 시발점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인은 기도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 교살이라는 얘기다. 범행에 쓰인 물건은 가늘고 긴 줄(감식 결과로는 PVC 전선일 거라고). 피해자에게는 방어흔이 없고, 손톱 아래나 목덜미 같은 곳에도 범인의 DNA는 없었다. 부검 결과 약물 반응도 없고, 성폭행당한 흔적도 없었다. 아마 자는 도중에 살해당한 후 시신이 옮겨졌을 확률이 높아, 사건을 맡은 아자부경찰서에서는 당연히 면식범의 소행으로 생각하여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지인들을 들입다 쑤셔 댔다. 하지만 담당 형사들이 들쑤신 그 누구에게서도 어떤 증거나 혐의점은 나오지 않았고, 수사는 교착상태에 빠지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 다음 연말에 동일한 수법의 희생자가 나왔을 때, 아자부경찰서에서 이를 보고받은 경시청에서는 재빠르게 사건을 연쇄 살인으로 규정하고 수사1과에 수사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범인 검거에 나섰다. 언론에서도 연이어 대서특필을 했다. 언론이 강력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건 첫째, 그런 사건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서이고 둘째, 범인 검거를 위해 사건을 크게 보도하도록 경시청에서 출입 기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어서이다. 

언론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돈으로 치환하여 수익을 내는 구조로 돌아간다. 사람들의 관심은 곧 판매 부수 증가 또는 뷰 수 폭증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약간의 판매 수익과 다량의 광고 수익으로 이어진다. 강력 사건을 각 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하는 건 그런 연유다. 타인의 사고와 불행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흥분제가 된다…. 그리고 경시청은 그 관심을 이용해 사건을 널리 퍼뜨려 시민들의 제보를 받아 범인을 검거하는 데 활용함과 동시에, 검거 후에는 사건 해결을 실적으로서 홍보하는 효과를 노린다. 소위 윈윈 전략이라고 하는 거다. 하지만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면 그건 바로 역효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관심은 공포심과 경찰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고, 피의자를 검거하기는커녕 특정도 하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은 연이어 질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경시청의 수사본부는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마주했다. 그게 몇 년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 꼭 한 명씩의 희생자가 나오고, 경찰은 계속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사건 처리는 보통 3개월을 데드라인으로 본다. 사건 발생 혹은 신고 시점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그 사건은 보통 초장기미제가 되는 탓이다. 처리 기한 3개월을 넘기면 수사본부는 해산되고, 사건 기록은 그대로 박스에 담겨 캐비닛 구석에 처박히게 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설치된 수사본부는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해산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경찰의 미제이자 숙제가 되어버린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채 그렇게 계속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수사본부가 설치될 때마다 책임자들은 사건 미해결의 책임을 쥐고 좌천됐고, 곧 이 사건은 경찰 내에서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사건이 됐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사건 미해결에 따른 경찰 내부의 좌천 인사를 두고 어떤 일간지에서 이를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 명명한 뒤 사건은 흔히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 불리고 있었다. 경찰에서의 정식 명칭인 롯폰기 연쇄 살인 사건보다 언론에서 명명한 사건명이 더 유명한 것이 되었다.

사건 기록과 압수물 일체는 아마 사건 재배당을 거쳐 특명수사6계 사무실로 이관됐을 테다. 미츠이는 사건 기록을 봤을까? 후카츠는 사건 기록을 읽어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지만 진작에 경찰 외부인이 된 후카츠가 그 기록을 읽을 수 있을 리 없다. 경찰 외부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수많은 기사의 요약과 재조합, 그리고 현장 탐문 정도다. 지금 후카츠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그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일단 롯폰기에 가 봐야겠다는 충동이 있었을 뿐이다. 

택시에서 내린 후카츠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커다란 쇼핑몰과 방송국을 끼고 있는 도로의 가로수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장식되어 있었다. 해가 지면 발광 다이오드들이 일제히 하얗게 빛을 내며 꼭 보석을 뿌려놓은 것처럼 빛을 낸다. 길거리는 꼭 빛의 은하수처럼 황홀함을 뿜어내고, 일루미네이션 사이로 멀리 주홍빛의 도쿄타워가 비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그건 어둑해진 시각의 이야기이고, 낮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전선이 감겨 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를 지나는 인파는 상당했다. 번화가이므로 당연한 일이다. 

경찰이 연쇄 살인의 실마리를 도통 찾아내지 못하는 건 피해자들 사이에 그 어떤 일관성이나 연관성도 찾아볼 수 없는 탓이 컸다. 분명히 범행 수법은 일정하다. 그러므로 동일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다분하고, 동일인의 소행이라면 피해자들 사이에는 일견 보이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추론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범행의 동기를 추론하는 데에는 범행의 방식보다는 피해자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찾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프로파일링은 범행 수법과 범행 도구, 범행 장소 등을 분석하여 범인의 동선과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하는 수사 기법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를 추적하여 누가 그랬는지를 밝혀내는 거다. 육하원칙 중 다섯 가지를 제외한 왜? 에 해당하는 게 범행 동기다. 피해자의 직업, 사는 곳, 외형, 학력, 재산규모 등을 추적해서 범인이 왜 그 피해자를 노렸는지, 피해자를 해침으로서 무슨 이득을 얻었는지를 분석하면 당연히 찾아내야 할 범위는 줄어든다. 범행 방식을 분석하는 게 종적인 면의 분석이라면 범행 동기 분석은 횡적인 면의 분석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문제는 범행 동기를 추론할 수 없다는 거다. 피해자들 사이에는 아무 공통점이 없었다. 성별, 나이, 학력, 직업, 고향, 재산, 가족관계, 사는 곳, 종교, 등 그 모든 점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없었다. 그냥 아무나 죽였다는 걸까? 하지만 그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연쇄 살인에는 분명히 일정한 패턴이 있다. 살인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분명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연쇄 살인임에는 분명한데 연쇄 살인의 대상을 추정할 수 없다…. 해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찾고 있으니 경시청의 수사력을 동원한다 해도 딱히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사건을 신생의, 경험이 일천한 계장과 주임 그리고 어중이떠중이 계원들이 해결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 해도 후카츠는 사무소에 미츠이를 취직시켜 줄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유능한 사무장 외의 군식구는 필요하지 않다. 

후카츠가 사무실로 돌아오자, 유능한 사무장인 노베가 당황한 표정으로 후카츠를 맞았다. 

- 늦었네, 후카츠. 

- 탐문 좀 하느라 뿅. 

- 탐문? 

- 그냥 좀, 뿅. 

입고 나간 트렌치 코트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치고 있는 후카츠의 등 뒤로 노베가 급하게 말을 이었다. 

- 후카츠, 자리 비운 사이에 △△씨가 왔었어. 

- 의처증 환자가? 

- 엄청 화내고 갔어. 왜 빨리 일을 안 해주냐고. 

웬만해선 당황하는 법도 없고, 고객 응대에 큰 어려움도 보이지 않는 노베가 잔뜩 진땀을 흘린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난리를 피우고 간 모양이었다. 후카츠의 태만은 고스란히 노베의 일거리로 돌아온다. 후카츠라고 해서 그 점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카츠가 방임에 가깝게 사무실을 믿고 맡기는 건 결국 노베가 군말없이 일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건 노베 마사히로는 하는데 미츠이 히사시는 못한다. 미츠이의 잔소리를 떠올리자 후카츠는 없던 두통마저 생기는 기분이었다. 미츠이는 절대 안 돼…. 새삼 그런 마음을 되새기는 후카츠였다. 

- 그냥 돈 환불해주지 뿅. 

- 안 그래도 얘기했어. 우리 탐정이 이래저래 조사한 결과 사모님이 불륜을 하는 거 같진 않다고. 조사 결과가 불만스러우시면 환불해드리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벌컥 화를 내더라고.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면서. 

- 귀찮네 뿅. 

세상의 온갖 문제는 8할이 돈에서 기인하고, 따라서 그 문제들은 대개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후카츠의 지론이다. 후카츠의 불성실한 일처리에 비해 고객들의 클레임이 적은 건 환불을 잘 해줘서 그렇다. 안 그랬으면 민·형사상으로 골치 아픈 일에 수 차례 엮였을 테다. 환불을 해준다는데도 화를 내는 고객들은 골치 아프다. 뭘로 기분을 풀어줘야 할지 추측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그렇다. 이래서 정신 문제 있는 사람과 엮이면 피곤하다. 문제의 해결 중에 가장 쉬운 것이 돈, 가장 어려운 것이 기분인 탓이다. 

- 그래도 잘 돌려 보냈으니 다행뿅. 노베가 고생 많다뿅. 

후카츠로선 꽤 진심을 담아 말한 거였는데 노베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 후카츠, 느낌이 안 좋아. 

- 뭐가, 뿅. 

- 그 사람 뭔가 사고칠 것 같아. 

- 사고? 

- 나갈 때 이제 자기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고 나갔는데, 그게 영 꺼림칙해. 

노베는 영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후카츠는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 별 일 있겠냐뿅…. 

그렇게 말하며 책장에 꽂힌 스크랩북을 꺼내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스크랩북 탐독에 몰두하는 것만이 후카츠가 할 수 있는 일일뿐…. 

유능한 사무장은 가끔 탐정보다도 촉이 좋다고 한다. 사건이 될 만한 냄새는 귀신 같이 맡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후카츠는 이 한가한 사무실의 사무장인 노베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결국 촉이란 건 빅 데이터다. 이 사무실엔 빅 데이터가 쌓일 만큼의 사람이 방문하지 않으니 후카츠가 그런 노베의 말을 등한시한 것도 다소 일리는 있었다. 

후카츠는 △△씨의 일을 금방 잊었다. 롯폰기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금세 흥미를 잃었다. 미츠이에게서도 그 이후 연락이 오지 않은 탓이다.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언제나와 같이 시시한 며칠이 이어졌다. 이따금 사와키타의 생각은 났다. 미츠이랑은 영 성격이 안 맞을 텐데 사와키타도, 미츠이도 고생이겠다 싶었다. 딱히 걱정이라기보다 그냥 그럴 거라는 추론과 논증에 가까웠다. 사와키타가 어떻게 살든지 걱정할 입장이 아니라는 건 후카츠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다시 엮여서 어떻게 다시 뭘 해보자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걸 확인하면 그걸로 된 거였다. 

분명히 그랬을 텐데, 삶은 후카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한가한 사무실이 대개 그렇듯 사무실 전화는 거의 울리는 법이 없다. 그래서 가끔 전화가 걸려올 때면 후카츠도, 노베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곤 한다. 대개가 광고 전화인 걸 알면서도 그렇다. 울리는 전화는 사무장인 노베가 받는다. 노베는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전화를 끊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 후카츠, 전화 받아봐야겠는데. 

그러나 지금의 전화를 받고 노베는 전화를 끊는 대신 의아한 얼굴로 후카츠에게 말했다. 

- 누구? 

- 경시청 수사1과 특명수사6계의 미츠이 경부보라고. 

- 미츠이? 

왜 휴대폰으로 안 걸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후카츠는 별 생각 없이 전화를 당겨받았다. 

- 왜 전화했어, 뿅. 

<후카츠. 긴 말은 못하겠고. 본론부터 말해야겠다.> 

- 무슨 일, 뿅? 

<△△씨라고 알지?> 

잊고 있던 이름을 미츠이의 입에서 듣게 되니 퍽이나 뜻밖이었다. 

- 알아, 뿅. 

<△△씨 관련해서, 참고인 조사 좀 하러 와야겠다.>

- 참고인 조사? 

<△△씨가 네 사무소에 부인 불륜 관련 의뢰한 적 있지?> 

- 맞아 뿅. 

<설명하자면 긴데.> 

수화기 건너에서 미츠이가 입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씨, 며칠 전에 교살된 채로 발견됐어. 롯폰기에서. 지금 언론사에는 엠바고 내린 상태라 기사는 아무데도 안 나서 넌 들은 바 없겠지…. 하여튼 내일 조사 받으러 와.> 

미츠이의 통보에 후카츠는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리고 계장이 직접 조사한다니까, 마음의 준비도 하고.> 

이런 식으로 구남친과의 재회가 성사되는 건 그 어떤 추리소설에서도 없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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