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iking Distance 3

명헌우성

사와키타 에이지는 좀처럼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건 사회성 부족과 철이 덜 든 오만함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그런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무엇을 숨기고 꾸미는 것이 천성적으로 서투른 것에 가까웠다. 태초적 순진함과 솔직함의 압착적 융합 같은 거였다. 빈말로라도 싫은 걸 좋다고 못하고 좋은 걸 싫다고 못하는 건 그 나름대로 솔직하고 꾸밈없어서 좋았지만 이따금 그렇게까지 숨김없을 필요가 있나 싶긴 했다. 다들 솔직해지는 방법을 몰라서 선의의 거짓을 꾸며내는 것은 아니다. 보기 좋게 다듬고 포장하는 게 거짓의 획책이라고 할 건 더더욱 아니다.

물론 후카츠가 사와키타의 그런 면에 처음부터 염증을 느낀 건 아니었다. 갖고 있는 패를 하나도 숨기지 못하고 다 보여주고, 머리를 굴릴 때에는 그게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것이 한창 콩깍지가 씌어 있을 땐 꽤나 귀엽게 생각될 때도 있긴 했다. 그러나 헤어지기 직전엔 그게 현명함을 배우지 못한 경솔함의 일환으로 느껴졌었다. 

- 나는 다른 사람 기분 살피느라 내 기분 숨기는 건 못하겠단 말이에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말다툼을 하다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후카츠가 그럼 내가 여태까지 네 기분 살피느라 내 기분 숨긴 건? 이라고 묻자 사와키타가 한 대답이 걸작이었다. 

- 그럼 후카츠 상도 앞으로 내 기분 신경 쓰지 말고 솔직해지면 되잖아요. 

그때 아마 후카츠는 사와키타와 자신이 본질적으로 다른 부류의 인간임을 느꼈던 것도 같다. 아마 그런 것에서부터 후카츠는 사와키타와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게 아니었을까? 

적당한 거리의 사이에선 상대방이 나와 결이 같은 인간일 필요까지는 없다. 관계의 유지를 위해선 몇 가지의 공통점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하지만 거리를 미처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에선 수십 가지의 공통점보다는 상대방이 나와 같은 생각인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할 때가 있다. 서로의 입장 차를 느낄 때 한없이 마음이 멀어지는 듯한 감각을 무엇으로 명명하면 좋을까? 후카츠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걸 무엇이라 일러야 할지 몰랐다. 

그때의 사와키타 에이지만을 기억하고 있는 후카츠 카즈나리로서는 그러니까, 지금의 사와키타 에이지가 꽤 낯설었다. 얼굴과 눈동자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가 잘 읽히지 않는 탓이다. 감지할 수 있는 건 다소의 피로함이 전부였다. 

피의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든 참고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든 조사의 기본은 기싸움이다. 수사관이 조사에 매달리며 쩔쩔매는 기색을 보이면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입을 다문다. 입을 열게 하고 듣고 싶은 내용을 술술 불게 하자면 심리전을 통해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갖고 있는 패를 절대 까발려선 안 된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철저히 감추어야 하고, 블러핑도 어느 정도 필요하며, 의표를 찌르는 대답이 나왔을 때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답변이라는 인상을 주어야지 결코 당황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불안과 초조함의 투사도 조사할 때만큼은 절대 금물이다. 

사와키타를 마주한 후카츠는 사와키타가 꽤나 경찰다워졌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투명하게 감정과 기분을 비출 것만 같던 눈동자에서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건 직업적 연마인지, 세상의 때에 잠식된 혼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와키타의 눈은 후카츠의 기억보다 한층 깊어지고 조금 매서워져 있었다. 피부가 얇은 탓에 눈가에는 벌써 살짝 주름이 잡혀 있었는데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20대 후반의, 분위기가 잡혀 가는 미남의 얼굴은 이리저리 뜯어봄직했다. 가지런한 모양의 눈썹만이 그대로였다. 목소리도 말투도 예전보다 차분해졌다. 그게 또 듣기 괜찮았다. 

- △△씨의 부인이 불륜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어떻게 갖게 된 건가요? 

- 그건 간단해…요뿅. 

- 간단하다고요? 

사와키타의 미모에 몰입하느라 별 생각 없이 말을 이으려던 후카츠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사와키타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 없이 이것저것 나불댈 자리가 아님을 갑자기 깨달아서 그랬다. 

- 그건 탐정의 영업기밀…입니다뿅. 

- 지금 말장난하자고 부른 게 아닌 건 아실 텐데요. 

사와키타는 후카츠를 노려보는 듯도 하고 쏘아보기도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사와키타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 지금 어떤 사건의 참고인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겁니까? 퇴직자면 알 거 다 알 사람이…. 아, 중요 사건은 딱히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잡다한 거, 계장이 시키는 거만 하다가 퇴직해서 잘 모르는 건가요? 

- 말이 심하네…요뿅! 

피의자도 아니고 참고인을 상대로 날을 세우는 건 그렇게 좋지 못한 전조다. 사건이 영 안 풀리고 있거나, 증거가 없어 참고인으로 불렀을 뿐이지 사실은 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전자 쪽인 것 같았다. 사와키타의 표정이 슬슬 무너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사와키타를 보고 후카츠가 말을 꺼냈다. 

- 잠시 담배 좀…뿅. 

- 담배 피워요? 

예전에는 안 피우지 않았냐는 물음이 얼굴에 그대로 씌어 있었다. 

- 화장실도 뿅. 

- 다녀오세요. 

사와키타의 승낙이 떨어지자 후카츠는 사무실 뒤편에 있던 미츠이에게 눈짓했다. 미츠이는 바로 상의를 챙기곤 일어섰다. 

- 후카츠 씨는 제가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사와키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약간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카츠와 미츠이는 도주하는 사람처럼 사무실을 나왔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옥상이었다. 경시청 건물엔 저층에 흡연구역이 없기도 하거니와, 흡연구역이 있어도 다들 건물 밖으로 나가기보단 옥상으로 가는 걸 선호하는 게 흡연자들의 심리다. 미츠이는 짐짓 참고인을 감시하는 사람처럼 후카츠를 밀착해 따라붙다가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지자 표정을 풀었다. 

- 후카츠, 담배 안 피우잖아. 

- 맞다뿅. 

- 근데 웬 담배 핑계? 

- 그래야 너랑 한숨 돌릴 시간 좀 벌 것 같아서 뿅. 

미츠이는 담배를 꺼내 물며 픽 웃었다. 

- 덕분에 계장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피울 수 있어서 고맙네. 

후카츠는 미츠이가 담배 몇 모금을 빨아 들이는 걸 잠자코 보고 있었다. 미츠이는 급하지 않은 동작으로 연기를 뱉으며 후카츠에게 질문했다. 

- 후카츠,△△씨의 부인이 불륜하지 않는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사설 탐정들 흔히 하는 것처럼 대상자들 휴대폰에 사생활 감시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한다든가, 차에 몰래 위치 추적 장치를 단다든가, 미행을 한다든가, 쓰레기통을 뒤진다든가 그런 거야? 

- 개인정보보호법위반으로 입건될 짓은 안 한다뿅. 

- 그러면? 진짜 어떤 단서를 가지고 추리라도 한 거야? 

후카츠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딱히 자영업자의 영업 기밀과 고객 정보를 누설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미츠이에게라면, 그리고 오프 더 레코드라면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 보통 배우자가 불륜이라며 증거를 찾아달라고 의뢰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정황 증거에 기반한 심증과 확신을 갖고있다뿅. 누구한테 줬는지 모를 명품백의 영수증이라든가, 회식이 많아서 귀가가 늦는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회사는 회식을 한 번도 안 했다는 직장 동료의 증언이라든가, 외모에 전혀 신경을 안 쓰다가 갑자기 스타일을 가꾸기 시작했다든가, 귀가하면 배우자의 말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핸드폰만 붙잡고 있는다든가삐뇽. 

- 확실히 그렇겠네. 

- 그런데 △△씨는 그런 얘기보다는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나쁜 년인지, 버릇을 고쳐 놓으려 해도 영 쉽지 않다고 푸념하기 바빴다뿅. 아내가 동네 마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번에 젊은 남자애가 그 마트에 파트타임으로 들어간 걸 봤다며 바람났을 거라고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고 흥분해서 날뛰었다뿅. 우리 사무장이 얘기 들어주느라 고생뿅…. 

- 그거 완전 전형적인 DV남 대사잖아. 

- 그래도 현직이라고 바로 알아듣네뿅. 

미츠이는 후카츠를 잠깐 노려 보고선 이어 말했다. 따지고 보면 프로는 미츠이고 아마추어는 후카츠인데, 후카츠가 미츠이를 아마추어 취급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것만으로는 하지만 확신할 수 없잖아. 

- 맞아뿅. 그래서 △△씨의 부인이 일하는 시간대에 그 마트에 두어 번 가봤다뿅. 

- 어땠어? 우리 사무실에 조사받으러 왔을 땐 꽤 강단 있는 스타일로 보였거든. 그 있잖아, 말수 없는데 생활력 강한 타입. 

미츠이는 마지막 한 모금을 진하게 빨았다. 후카츠는 허공을 잠시 응시하다가 답했다. 

- 미츠이가 느낀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뿅. 수수한 스타일에 성실하게 일하는 여성, 뿅. △△씨가 의심하는 젊은 남자애랑은 아예 일하는 시간도 달랐다뿅. 일부러 그 마트에서 취급하지 않을 것 같은 상품이 있는지 물어보면서 떠 봤는데 남자한테 여지 주는 스타일도 아니었다뿅. 그리고 입술이 심하게 부르터 있었다뿅.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고뿅. 

- 맞고 사나보네? 우리 사무실 왔을 땐 얼굴 멀쩡했는데…. 

- 가정폭력 신고 내역 없었냐뿅?  

- 없었어. 

- 뭐, 이런저런 이유로 신고 안 하는 피해자는 적지 않다뿅. 그리고 DV 신고도 못하는데 남편 눈 피해 바람 피우긴 쉽지 않다삐뇽. 

- 그렇지. 잘못하면 맞아 죽으니까. 

미츠이는 다 피운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후카츠에게 이제 가자는 뜻으로 고갯짓을 했다. 다시 사무실로 가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갔다. 

- △△씨가 DV였다는 거, 계장한테 진술할 거야? 

- 글쎄. 그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경찰에서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뿅. 

- 사건이 꼬이겠네…. 

미츠이는 영 심란한 표정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사건의 가능성은 하나로 좁혀져야지, 여러 갈래로 갈라질수록 결과가 꼬이기 쉬워서 그렇다. 흔히들 수사란 여러 개의 사실에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법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사의 결과는 수사의 초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미 심증으로 확정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받쳐줄 수 있는 증거를 찾아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다. 그에 근거해 경찰은 검찰에 송치를 하고, 검찰은 법원에 기소를 하고, 법원은 판결을 하는 것이다. 그걸 얻어내는 방법이 예전에는 고문이었다면 현대에는 과학적 증거의 제시를 통해 실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거란 것이 다를 뿐이다. 

보통의 사건이라면 살해 동기가 가장 명확해 보이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파면 대개 증거가 나온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당연히 피해자의 배우자다. 피해자의 배우자를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하다가 증거가 몇 개 나오면 입건하여 피의자로 전환하고, 자택 및 핸드폰의 압수수색과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혐의점을 찾아내면 될 일이다.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 싶으면 바로 체포영장을 청구하여 체포하고,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면 될 일. 앞으로 나아갈 길이 험난한 오르막과 자갈밭이어도 일직선으로만 길이 뻗어 있다면 그냥 나아가면 된다. 그러면 결국 출구가 나오고 결론이 난다. 

이 건의 문제는 이미 정해진 길에 갑자기 샛길이 나타났다는 거다. 이 건은 이전의 연쇄 살인과 같은 방법으로 피해자가 살해당했으므로 연쇄 살인으로 규정되어야 마땅했다. 모방범의 소행일 가능성도 당연히 조사했지만 모방범의 소행이라기엔 이전의 수법과 완벽한 일치를 보였다. 그러므로 연쇄 살인이 맞다. 그러므로 특명수사6계에 사건이 온 거다. 살해 동기가 명확한 사람이 있어도 그건 우연일 뿐이고, 동기만으로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후카츠와 미츠이가 바깥 바람 냄새와 담배 냄새를 묻히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사와키타는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은 미츠이를 가볍게 째려보고는 뒤이어 후카츠를 노려보는 것을, 후카츠는 짐짓 모른 척했다. 그래도 사와키타의 표정은 조금 풀려 있었다. 후카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마 이런저런 생각의 정리를 조금 했을 테다. 

참고인 조사는 그럭저럭 알맹이 없이 마무리되었다. 어차피 후카츠는 중요 참고인도 아니고 사정 청취만 하는 정도이니 이 사무실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였다. 진술조서를 열람하고 내용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간인까지 하자 조사의 절차는 완료되었다. 대낮에 시작한 조사였는데 어느새 바깥엔 어스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겨울의 도쿄는 원체 해가 빨리 지기는 한다. 해가 빨리 지며 스산함이 일시에 몰려드는 기분 때문에라도 역시 겨울은 별로다. 후카츠는 코를 훌쩍이며 특명수사6계 사무실 구석 옷걸이에 걸쳐둔 코트를 걸쳤다. 

- 후카츠 상. 

밖으로 나가려는 후카츠의 등 뒤로 갑자기 사와키타의 목소리가 꽂혔다. 

-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 삐뇽. 

- 탐정이랍시고 사건 파고들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이건 경찰의 일입니다. 현실은 에도가와 란포 소설도,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도 아니니까요. 듣기로는 영업이 잘 안 된다던데, 괜히 여기에 개입해서 유명세라도 얻어볼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예전에는 그냥 솔직할 뿐이었는데 이제는 말 하나하나에 가시가 박혀 있다. 후카츠는 미츠이가 사와키타의 욕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특명수사6계 사무실을 나갔다. 

후카츠 탐정 사무소라는 안락한 장소에 돌아왔을 땐 성실한 사무장인 노베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후카츠는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 감동을 받는 편이다. 

- 사무실 닫고 퇴근하지 그랬어, 뿅. 

-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노베는 후카츠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신뢰하고 있다. 꼴보기 싫은 상사일지라도 상사가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갔다고 하면 걱정되는 게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인간적인 정을 갖고 있는 상대에 대해서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걱정이 서려 있는 노베의 얼굴을 보고 후카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별 거 아니었다뿅. 단순한 참고인 조사인데 뭐. 

- 그래도…. 하필이면 의뢰인이 그런 일을 당하다니 말이야. 

노베는 영 마음이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사무소에 왔던 △△씨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카츠는 노베와 사무실에서 이르지 않은 저녁을 먹었다. 근처의 식당에서 포장해 온 히츠마부시는 꽤 맛이 있었다. 먹으면서 노베와는 아무 일 없었던 듯 하릴없는 이야기를 했다. 노베는 긴자의 유명 약국에서 파는 피로회복제 세트(긴자 클럽의 호스티스들이 애용한다는)를 먹어 봤는데 크게 효능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물꼬를 트며 온갖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화제를 이어갔다. 흡연자는 비타민A를 다량 섭취할 시 폐암 발생률이 급증하므로 루테인은 물론 종합비타민도 가려먹어야 한다는 노베의 이야기를 들으며 후카츠는 미츠이를 생각했다. 흡연 인구는 점점 줄고 있고, 흡연의 해악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미츠이도 담배를 조금씩 줄이며 점진적인 금연의 길로 나가는 것이 이로울 터였다. 그러나 금연을 시도하는 동안 미츠이가 보일 불안과 예민함을 생각하면 그냥 흡연하도록 두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미츠이는 대학 때보다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확실히 성미가 불 같은 데가 있었고 그 경향은 불안함을 품고 있을 때 더욱 강해지는 편이었다. 그 성질머리를 견뎌야 할 주변 사람을 생각하면 미츠이 히사시의 금연 시도는 사회적으로 크게 득이 될 것이 없긴 했다. 

히츠마부시를 다 먹어갈 무렵 밥을 조금 남기고 녹차와 육수를 부어 오차즈케로 먹는 것이 또한 별미다. 후카츠는 원체 오차즈케를 좋아해서 사무실에도 인스턴트 오차즈케를 구비해 둘 정도였다. 준비해 둔 따뜻한 녹차를 밥에 부으면 밥알의 전분기가 수분에 부드럽게 풀어지며 밥알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을, 후카츠는 굉장히 좋아했다. 좋아하는 메뉴를 먹는 시간은 온전히, 그 어떤 침범도 없이 그 자체로 보전되는 것이 좋다. 보통은 그래야 할 터인데…. 

갑작스런 초인종 소리에 후카츠도, 노베도 화들짝 놀랐다. 이 시각에 찾아올 사람은 없다. 누구지? 후카츠와 노베는 의아한 눈동자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잡상인인가? 그런데 이 시각에?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에는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도 함께였다. 

- 아무도 안 계세요? 

노베가 엉거주춤 일어서려 하자 후카츠가 손사래를 쳤다. 

- 내가 나가볼게, 뿅. 

이 시각에 온 방문자를 불친절한 태도로 쫓아보낼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노베는 친절해서 칼같이 사람을 쫓아내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을 연 후카츠는 잔뜩 찌푸렸던 미간을 순식간에 풀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나타나리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었던 탓이다. 사와키타 에이지였다. 사와키타는 후카츠의 얼굴을 보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 식사하고 있었어요? 

- 뿅…. 

사와키타는 손으로 오른쪽 입가를 가리켰다. 입가에 뭘 묻힌 걸 깨달은 후카츠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최악이었다. 

- 식사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해요. 

- 용건, 뿅. 

- 그냥 할 얘기가 있어서…. 

사와키타는 아까의 예민한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 들어와, 뿅. 

- 실례할게요. 

사와키타는 사무실 안에 노베가 있는 걸 보고 살짝 놀란 눈치였으나 곧 예의바르게 목례했다. 노베는 후카츠를 보고 ‘도대체 누구야?’ 하는 얼굴을 했으나 후카츠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눈치 빠른 노베는 입 밖으로 질문을 내뱉는 대신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노베가 자리를 뜨자 사무실에는 후카츠와 사와키타만 남았다. 

- 앉아 뿅. 

그래도 손님이라 물을 끓이고 가루 녹차를 타서 사와키타 앞에 내밀었다. 사와키타는 컵을 받아들고 호로록 마시며 사무실을 두리번거렸다. 

- 사무실, 나쁘지 않네요. 

- 여긴 왜 왔어, 뿅. 

- 그냥…? 

- 그냥이란 게 어딨냐, 삐뇽. 

꽤 오랜만에 대화하는 것치곤 분위기도, 말투도 자연스러워서 후카츠는 순간 사와키타와의 공백을 잊을 뻔했다. 아까의 참고인 조사는 대화라고 할 게 아니니 대화의 횟수에 카운트하면 안 되는 것이고. 

- 아까 했던 얘기, 

- 응. 

사와키타는 참고인 조사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일할 땐 아무래도 예민해져요. 나도 모르게 말이 까칠하게 나오고. 내 의도보다도 말이 날카로워지고. 

- 그렇냐, 삐뇽. 

- 후카츠 상한테만큼은 안 그러고 싶었는데…. 

사와키타는 어딘가 억울한 표정이었다. 

- 그러니까 내가 아까 한 말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건 꽤나 뜻밖이었다. 후카츠는 눈알을 굴렸다. 

- 사와키타를 나쁘게 생각한 적은 없다뿅…. 

- 그러면 다행이고요. 

사와키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얼굴은 역시나 후카츠가 봐 온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사람을 홀리고, 끝없이 빠져들게 하는 속성이 있다. 보석의 반짝거림에 눈을 뗄 수 없듯이…. 후카츠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소용돌이가 일었다. 후카츠를 보던 사와키타는 갑자기 질색하는 표정을 했다. 

- 여전히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후카츠 상은. 

- 내가? 

- 그 표정이…. 

사와키타는 그러나 말을 잇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 됐어요.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서 뭐하겠어요. 

- 싱겁긴, 뿅. 

- 어쨌든, 이런 말만 하려고 온 건 아니고. 

사와키타의 목소리와 말투가 살짝 바뀌었다. 조금 더 날카롭고 정교해진 것을 보니 시답잖은 얘기는 아닐 성싶었다. 

- 탐정 일은, 하기 괜찮아요? 

- 뭐, 그럭저럭. 

- 경찰은 왜 그만뒀어요? 

- 내가 경찰이었던 거, 알고있어뿅? 

- 미츠이 상한테 들었어요. 둘이 대학 동기에, 경찰 동기라면서요. 

후카츠는 사와키타와 사귈 때 자신의 친구들을 한 번도 소개해 준 적이 없었다. 그건 사와키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후카츠가 미츠이랑 그렇게 붙어 다녔어도 미츠이도, 사와키타도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거다. 서로의 친구를 소개해 주지 않은 건 그냥 둘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 같은 거였다. 사와키타는 이제 와서 그게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 그만둔 건 개인 사정, 뿅. 

- 여기가 다니기 쉽지 않은 데긴 하죠. 

작게 한숨을 내쉰 사와키타는 말을 이었다. 

- △△씨 건, 어떻게 생각해요? 

- 무슨 말이냐, 뿅. 

- 연쇄 살인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건 꽤나 뜻밖의 말이었다. 

- 수법도 동일하고 시신이 발견된 장소도 동일하니 모두가 연쇄 살인이라고 보고 있죠. 근처의 CCTV를 분석하며 피의자를 특정하려고 애를 쓰고 있긴 한데 거짓말처럼 CCTV의 사각으로만 돌아다닌 것 같아요. CCTV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전문가의 소행이에요. 

여태까지 롯폰기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렇다. 그 어떤 목격자도 없고, 그 어떤 CCTV에서도 범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오로지 남아 있는 건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는 시신, 그리고 사건. 연결 고리가 끊겨 있으니 추적과 역추적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건 보통 전문가가 아니고선 안 된다. 모방범의 소행일 리도 없다. 그러니 동일인의 소행이고, 연쇄 살인이다. 그건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사건을 수사하는 팀의 계장인 사와키타가 다른 말을 하려는 거다. 

- 나는 이걸,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 말해봐, 뿅. 

- 내 생각엔, 연쇄 살인이 아니에요. 

후카츠는 드물게 눈을 크게 떴다. 

- 그러면? 

- 이 사건은 진범이 따로 있어요. 그리고 아마 이전의 다른 사건들도…. 내 생각엔 그래요. 

후카츠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역시 △△씨의 부인이었다. 말갛고 강단 있던 얼굴이 차마 남편을 죽였을 거라 생각하긴 어려웠지만…. 원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곤 알 수 없는 법이다. 

- 그럼 다른 진범을 찾는 방향으로 수사할 예정, 뿅? 

- 아뇨. 그건 어려워요. 지휘부에선 연쇄 살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과장님도, 부장님도 연쇄 살인범을 못 찾아내면 경시청의 평판이 떨어진다고, 사건 맡은 계원들 전부 좌천되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에요. 

- 그러면. 

- 그래서 후카츠 상한테 찾아온 거예요. 

사와키타는 갑자기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후카츠 상이, 이 사건이 연쇄 살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줬으면 해요. 

- 그건 경찰이 해야 할 일 뿅. 

- 경찰이 못하면 탐정이 해야죠. 

- 사건 의뢰, 뿅? 

- 그렇다고 해 두죠. 

이건 확실히 재미있는 일이었다. 후카츠가 여태까지 찾던 그런 일. 후카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드레날린이 심장 박동을 요동치게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말을 한 게 사와키타 에이지만 아니라면 잔뜩 잰 체하며 넙죽 사건 의뢰를 받아들였을 일이다. 

- 사와키타. 

- 네. 

- 아까 사건 파고들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삐뇽. 

- 그랬죠. 그땐 진심이었는데 지금은 생각 바뀌었어요. 

- 현실은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 아니라며, 뿅. 

- 현실은 마츠모토 세이초나 미야베 미유키에 더 가까우니까요? 

한마디도 안 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말발은 오히려 더 세진 것 같기도 했다. 

- 굳이 나한테까지 이러는 이유가 뭐냐, 삐뇽. 경찰에서 수사해야 할 일을….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사와키타는 묘하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좌천되고 싶지 않거든요. 여기서 고꾸라질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뭐라든 해봐야 해요. 

이번엔 후카츠가 한숨을 쉬었다. 

- 제 의뢰 받아줄 거죠, 후카츠 상? 

후카츠는 다음날 노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고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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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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