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5 명우응상
이명헌의 첫번째 편지
To. 사와키타。
나다, 뿅.
편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사진만 달랑 보내긴 심심해서 몇 자 써본다.
지금쯤 일어났나? 정리는 어느 정도 했고, 시차는 적응됐는지, 그리고 ABCD는 좀 익혔는지 궁금한 게 많다. 뿅.
알다시피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윈터컵 준비다. 다들 평소보다 더 열심이라 별로 신경 쓸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전술 체크를 몇 번이고 했다. 지나치게 조용하고, 코트는 너무 텅 빈 느낌. 내내 곤두서 있다가 이 공백이 슈퍼에이스의 부재라는 걸 알아챈 지 얼마 안 됐다. 누가 없으니까 아주 텅 빈 것 같다. 사실 어딜 봐도 네가 생각난다.
내 일상은 네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 별로 재미는 없겠지만 재밌게 읽어라. 뿅. 이제부터 네가 모르는 이야기를 할 거니까.
네가 본가로 떠난 다음 날. 주말이라 연습은 없고, 난 누가 없으니 할 것도 없어서, 사진이나 인화하려고 외출했다. 뿅. 등불이 예쁘다며 들떴던 너만 기억나고, 뭐가 얼마나 예뻤는지 기억이 안 나서 확인하려고.
그날 니초메바시에 가기 전 들렀던 서점에서 기초 영어책을 사던 네 모습에, 사실 티는 안 냈지만 내내 굉장히 심란했다. 영어 공부도 좀 같이 해둘걸 그랬지, 뿅.
사진관에서 나오다 눈에 띈 불꽃 축제 포스터에 무작정 오마가리행 열차를 탔다.
알아 뿅.
나답지는 않았지. 그냥 마침 그날이었고, 등불도 밝고 예쁘다고 좋아했는데 불꽃은 더 좋아하겠다는 생각만 났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더라고 뿅.
수만 가지의 빛을 내며 쏟아지는 불꽃들이 예뻤다. 하늘 가득 채워 수놓았던 반짝임이 찰나에 희미해져 흩어지는 게 더 아쉽고 섭섭할 때 불꽃들이 다시 온 하늘을 뒤덮고 세상을 밝혔다.
확실히 너무 멀었고 인파에도 지쳤지만, 후회 없는 절경이었다.
그럼에도 너랑 함께 왔다면 난 또 기억을 못 할 거다.
찬란한 불꽃이 쏟아지던 그 순간이 사와키타 너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무래도 틀렸다. 너는 사라지지도 않고, 반짝임도 네 눈만큼은 아니라.
다음엔 네 눈에 비치는 불꽃을 보고 싶다.
네 새로운 일상을 아예 모르니 난 항상 네 소식이 재미있겠다.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연락해라 뿅.
찬 바람이 불 때, 우승컵 들고 만나러 갈게.
P.s. 아, 이제 삐뇽이다.
9/13
카즈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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